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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9.15 [14:02]
<서평>한국기독교와 초기의료선교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직접선교? 간접선교?논란"
 
이범진

 
복음은 현실이다.
10년 이상 북한에 의료지원을 한 유진벨 재단 회장(stephen w. linton)은 얼마 전 “북한의 의료진들이 처음에는 약품에 한글만 써 있어도 '독이 있을까'하여 거부하고 안 받았는데, 이제는 의료지원해주는 단체는 전부 '예수쟁이'인 것을 알고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장로교의 초기의료선교(신재의), 서울지역 초기 장로교회의 동향과 제중원(김권정), 감리교의 서울지역 초기 의료선교(조이제)     ©이범진

이 책은 복음이 현실이었다는 것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의료라는 현실을 통해서 우리의 삶 가까이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책의 저자인 신재의, 김권정, 조이제는 의료사업이 단순하게 ‘간접선교’의 한 부분이라는 기존의 주장에 맞서 의료선교가 갖는 구체적이면서도 역사적 의미를 심층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19세기말 당시 의료선교는 한국정부와 사회의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큰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전개될 복음전도와 교회설립의 중심이 되어 한국 기독교 역사와 문화 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선교는 그저 선교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기능론적 인식이 팽배해 ‘현상적 접근’에만 머무르게 한다고 비판한다.

▲ 알렌과 언더우드는  선교 방법에서 입장차이를 보였다. (왼쪽-언더우드,오른쪽-알렌))    © 이범진
탈레반 사건 이후로 선교방법론에 대한 논란이 과열되고 있는 가운데, 과거 알렌과 언더우드 역시 선교 방법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선교가 금지되어 있는 한국의 상황 속에서 알렌은 의료활동을 통한 간접적이고 점진적인 선교를 주장하였고, 언더우드는 순교를 무릅쓰고라도 직접적으로 거리에서 선교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지금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내가 만약 이슬람권 국가로 선교를 가게 되었을 경우, 나는 어떤 판단을 내릴까?

이책을 읽다보면 선교는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선교는 먼저 그들의 삶 자체를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집중해야 함을 말해준다. 그것이 ‘이슬람교의 문화’이던지, ‘전통적인 문화’이던지 상관없이 먼저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나라를 선교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는 것이라 말해준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초기 의료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은 삶속에서 함께 어우러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복음’은 그들에게 더이상 ‘福音’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삶과 어우러진다는 것은 단순히 기간의 문제는 아니다. 10년을 선교지에 있어도 그들과 ‘다른’생활을 한다면 그들과 하나 된 삶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른’생활을 하는 선교사의 복음을 그들이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그들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그런 삶을 말하는 것이다. 초기 의료선교는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아파하는 이들을 치료해주는 것이 복음의 ‘실체’인 것이다.

선교로 야기되는 분쟁과 갈등들은 우리가 인터넷으로 클릭하면서 보아온 상황들보다 더 심각하다. 지금까지의 방법들은 反야훼적, 反예수적이었다는 것을 역설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침략자들이 영국이었던 인도에서 기독교의 이미지가 안 좋았던 예에서 보듯이 말이다.

우리는 ‘포교’활동이 아닌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닌가? 진정한 선교를 위해서는 결신자의 수보다도 예수의 현실성이 필요하다.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현실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직접적인 선교는 피 흘리는 선교게임을 끝내지 못할 것이다.

사실 ‘직접적인 선교’나 ‘간접적인 선교’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다. 직접적인 선교가 오히려 간접적일 수 있고, 간접적인 선교가 직접적인 선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선교사들의 의료활동을 통해서 ‘실질적 복음’을 몸소 체험한 사람은 복음을 직접적적으로 본 것임을 증명해낸다. 칼과 총을 겨누고 믿음을 강요한다면 그것보다 간접적이고 부정적인 선교가 또 어디에 있을까? 고통 받는 곳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이름 없는 이들과 함께 예수처럼 함께 '사는' 선교, 그것을 간접선교라 이름 붙인다면 우리는 기꺼이 간접선교에 ‘올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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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8/15 [11:5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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