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파워인터뷰생활/건강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19.09.19 [19:08]
루터의 정치사상을 통해 본 한국교회
한국교회 '힘 겨루기'가 아닌 '힘 나눠주기' 필요
 
이범진
 
 루터의 종교개혁은 이미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 끝이 났지만, 개신교 종교개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종교개혁은 ‘기억’ 이상의 것이다. 그때 당시 종교개혁이 우리에게 주는 유산은 하나님 말씀의 재발견, 교회를 하나님 말씀의 피조물이 라고 보는 것, 힘의 영역에서 민중의 영역으로의 기독교가 옮겨진 것 등이다.
 
종교개혁은 16세기의 역사이지만, 그때의 신학적 통찰들이 21세기 우리의 실천에 지침을 주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유산이 21세기 우리에게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와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공동체,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의 교회의 역할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미래에 대한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아직도 한국 교회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처음에 루터는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려고 하지 않았다.

▶ "교황은 그가 그 직권 혹은 교회법의 위세로 부과한 형벌 이외에는 어떤 벌이든지 용서할 권세나 의지를 가지지 못한다." (95개조 논제. 5., 권위는 인정하나 권위 이상을 행사하지 말라는 루터의 의도가 담겨있다.)

 그는 다만 중세 가톨릭교회 안에 뿌리내린 '악한 것들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고 그 뿌리를 지탱하고 있는 교황에 대한 분노였다. 그것이 95개조 반박문으로 표현되었다. 반박문에 나타난 루터의 개혁사상은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되어버렸지만, 그때 당시 가톨릭의 중심 어르신들에게는 상당한 센세이셔널을 일으켰나보다. 내가 선이고 상대방은 악이 되었다.

▶"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였다는 것을 선언하거나 혹은 시인하는 이외에 어떤 죄든지 사할 힘이 없다. 기껏해야 그는 그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들만을 사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경우에 있어서도 만일 그의 사회하는 기능이 업신여김을 당하게 될 때 사함 받았다는 죄는 확실히 그대로 잔재할 것이다." (95개조 논제. 6.,)

 

▲ 1521년, 독일제국회의에서 카를5세앞에 서있는 마르틴 루터(헤르만 프리더만,1864)     © 이범진
루터와 교황이 ‘제로섬 게임’을 벌였다면 개신교와 천주교가 분리되었을까? 이분법적인 투쟁을 벌였던 둘 사이에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흡수하거나 통일시키지 않고 둘로 나누어 졌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넓게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신을, 좁게는 정치세력으로서의 교회사를 볼 수 있다. 같은 하나님을 믿지만, 이 땅에 살면서는 성격이 전혀 다른 정치체를 원했던 것이다. 종교개혁은 '수직'에서 '수평'으로, '교조'에서 '민중'으로 기독교의 힘이 옮겨진 개혁이었던 것이다.



사실 루터가 등장하기 이전에 중세 가톨릭의 정치체에 반기를 든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요하네스 후스, 그는 종교개혁을 1세기 앞두고 비극적으로 화형을 당하게 된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반역자 후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단지 루터의 시대가 르네상스와 인문주의 시대에 가까웠기 때문인가. 

 나는 그것과 더불어 루터의 종교개혁의 성공(?)요인을 ‘대안정치’에서 찾는다. 이미 루터는 구체제에 반하는 정치이념을 갖고 있었고, 그의 주변에 비슷한 사상을 갖고 있는 동역자들을 갖고 있었다. 이것이 면죄부 판매라는 폐습으로 인하여 표출되었지만, 이미 그 시대의 저변에는 루터의 사상에 동조하는 입장이 항상 존재하여 왔던 것이다. 95개조 반박문이 공개되고, 프린팅 되면서 루터의 사상에 동조하는 세력들은 더욱 늘어났다.

루터의 정치사상은 무엇인가? 미루어 보건데 성서의 우월성, 이신득의, 만인 제사장주의를 강조한 그의 정치사상은 ‘힘의 분산’이었다. 중세 가톨릭이 독점하고 있던 ‘완전한 신’으로부터 얻은 명분은 힘의 독점을 가져왔고, 이것은 성서의 해석권, 교황의 권위 등에서 잘 나타난다. 이러한 힘의 독점은 면죄부 판매라는 폐습을 낳았다. 결국 종교개혁으로 힘의 분산을 시도했고, 성서가 민중들의 손에 들어옴으로써 힘의 분산은 어느정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루터의 생각처럼 ‘힘’과 ‘교황’은 분리 될 수 없었다. 교황의 힘을 인정하는 이들은 그대로, 힘의 분산에 동참한 이들은 개신교로 분리되었다. 그래서 태생적으로 개신교는 다양성을, 가톨릭은 통일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면서 루터의 정치사상인 ‘힘의 분산’은 동시에 ‘힘의 분열’을 의미하기도 했다. 특히,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이 그렇다. 엄청난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힘을 공공의 선으로 사용하기가 힘들다. 힘의 독점을 피해 교파가 백여개가 넘도록 분산되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분열을 의미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아 한 몸된 공동체를 이루라고 말하는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머리가 백개도 훨씬 넘으니, 그 모습이 흉측하기 짝이 없다. 한국교회가 퇴보하는 것에 대해서 대형교회책임론이 심심치않게 등장하고 있지만, 사실 대형교회의 폐습은 중소형교회의 분열된 힘을 통합시킴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 지도자들의 정치적 행동에 관해 연구한 역사가 marty, martin은 "그들의 종교적 세계관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과 "힘의 공백을 감지"했을 때 "그 공백을 채워 잘못된 세상을 바꾸고자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할 때 그들은 적극적으로 활동한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서 자신들을 제압할 '힘'이 존재하지 않을 때 적극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시청앞에 자주 모이고, 정치운동에 적극적인 이유가 꼭 '득실거리는 좌파척결(?)'만은 아닌가보다.

 머리가 백개인 예수를 상상하는 것도 끔찍하지만, 각기 다른 정치적 사상과 이념을 바탕으로 힘을 분열시키는 한국교회를 보고 있는 것도 두려운 일이다. 개신교의 종교개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루터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교황의 권위를 빼앗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힘없는 자들에게 힘을 나눠주고자 했던 것이다. 힘겨루기를 극복하고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힘을 나눠줌이 진정 루터의 개혁을 잇는 길일텐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07/06/15 [20:52]  최종편집: ⓒ newspower
 
관련기사목록
[루터] 루터의 회심 김현배 2015/06/10/
[루터] '루터지역'에서 종교개혁을 기념하다 정하라 2012/09/05/
[루터] 루터의 정치사상을 통해 본 한국교회 이범진 2007/06/15/
뉴스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8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