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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박사 98세 일기로 소천 별세
군인 시절 포로수용소에서 예수를 만나 부활신앙에 기초한 희망의 신학 역설
 
김현성   기사입력  2024/06/06 [10:00]

 

 

희망의 신학자로 불리우는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몰트만(Ürgen Moltmann) 박사가 지난 3일 향년 98세의 일기로 튀깅겐에서 별세했다.

▲ 위르겐 몰트만 박사(독일 튀빙겐대 석좌교수)     ©뉴스파워

 

192648일 종교가 없는 가정에서 출생한 몰트만 박사는 군인 시절 스코틀랜드 전쟁포로 수용소에서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났으며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우셔서 언젠가 우리가 그분과 함께 웃을 수 있다"고 가르친 세계적인 신학자였다.

 

그는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희망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는 종말론적 미래로부터 인류 역사에 작용한다고 가르쳤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중요한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몰트만 박사에 대해 신학자 미로슬라프 볼프(Miroslav Volf)"몰트만 박사의 저작물은 실존적이면서 학문적이고, 목회적이면서 정치적이며, 혁신적이면서도 전통적이며, 읽기 쉽고 까다롭고, 맥락적이면서도 보편적"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 주제들이 고통에 대한 근본적인 인간 경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지난 80년 동안 "가장 널리 읽힌 기독교 신학자"라고 했으며, 종교학자 마틴 마티는 그의 저술이 "불확실한 교회에 영감을 불어넣고" "죽은 과거의 죽은 손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킨다"고 평가했다.

 

몰트만 박사에 대해 베스트셀러 기독교 작가인 필립 얀시(Philip Yancey)는 몰트만을 자신의 영웅 중 한 명이라고 불렀고, 2005년에 몰트만이 거의 12권의 책을 "샅샅이 뒤졌다"고 밝혔다.

▲ 독일 튀빙엔 대학교 신학대학 명예교수이자 ‘희망의 신학자’로 불리는 세계적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96세) 박사가 한국을 방문해 조용기 목사와 대담했다.     ©뉴스파워 자료사진

 

괴팅겐대학에서 몰트만은 고백교회와 동조하는 사람들 밑에서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칼 바르트의 신학을 가르쳤다. 그는 17세기 프랑스의 칼뱅주의자에 관한 논문을 썼는데, 그 논문은 성도들의 인내에 관한 교리에 초점을 맞췄다.

 

몰트만은 신학을 공부한 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외딴 마을에 있는 한 교회에서 목회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어디서든 내가 받은 첫 번째 질문은 내가 마귀를 믿느냐는 것이었다."며 사람들에게 니케아 신조를 암송함으로써 마귀를 쫓아낼 수 있다고 가르쳤다고 회상했다.

 

1957, 몰트만은 신학을 가르치기 위해 목회를 떠났다. 그는 다양한 주제로 강의를 했지만, 특히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기독교 소망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본대학교(University of Bonn)와 튀빙겐대학교(University of Tübingen)에서 그리스도 부활신앙에 근거한 희망을 주제로 가르치기 시작했으다.

 

몰트만은 1964년에 희망의 신학(Theologie der Hoffnung)을 출판하면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2년 동안 6쇄를 찍었고 여러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이 책은 1967년에 처음으로 영어로 출간되었으며, 신학자들의 관심을 받아 뉴욕타임즈의 주목을 끌었다.

 

196831면 기사에서, 그 신문은 유행하는 "하나님의 죽음" 신학에 대한 논쟁이 하나님이 "미래로부터 역사에 작용한다"41세의 몰트만의 사상에 대한 토론으로 대치되었다고 보도했다. 몰트만은 "에필로그에서만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기독교는 종말론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인용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일부 비평가들은 종말론에 대한 이러한 강조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몰트만이 최후의 일들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십자가 처형의 중요성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경시했다고 지적했다.

 

몰트만은 19684월 듀크 대학교에서 열린 희망의 신학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그러한 비판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번은 신학자 하비 콕스(Harvey Cox)가 방으로 뛰어 들어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총에 맞았다"라고 소리쳤다.

 

이 모임은 전국적으로 폭동이 일어났다는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신학자들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재빨리 해산되었다. 그러나 희망의 신학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던 듀크 대학의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학교 교실에 모여 철야 기도회를 가졌다. 그들은 6일 동안 킹의 죽음을 애도했다. 마지막 날에는 백인 학생들과 다른 학교의 흑인 학생들이 함께 민권운동가 "We Shall Overcome"을 불렀다.

 

몰트만은 고통의 변화시키는 힘에 감동을 받아 그의 두 번째 저서인 십자가에 못 박힌 하나님(Der gekreuzigte Gott)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1972년에 출판되었고 2년 후에 영어로 나왔다.

 

그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동일시되는 행위로만 이해될 수 있다"고 썼다.

 

몰트만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리스도인의 희망이라는 두 가지 사상을 결합시켰고, 이것이 그의 신학의 핵심이 되었다. 그는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그분의 실재와 미래에 비추어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우셔서 우리가 언젠가 그분과 함께 웃을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는 1994년에 튀깅겐대학에서 은퇴했지만 그 후에도 수년 동안 대학원생들과 함께 계속 일했다. 2016년 아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죽음과 부활에 관한 마지막 책을 썼다. 몰트만은 네 명의 딸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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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6/06 [10:00]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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