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시골에는 대문도 없고, 길과 집 사이에 경계는 몇 그루의 나무가 고작이었다. 울타리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노크할 대문이 없으니,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대신하였다.
대문이 없으니 스스럼없이 들락거릴 수도 있고 작은 것도 서로 나누어 먹는 정겨움이 있었다. 이제 그러한 일들은 추억일 뿐 대문 없는 그런 세상은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다. 갈수록 담벼락은 높아만 가고 대문은 굳게 닫힌다.
▲ 산울타리가 시골스럽고 정겹기 짝이 없다. © 공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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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산울타리가 희귀하다. 어쩌다 나무가 심어진 울타리를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그런데 산울타리가 있는 곳은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밭을 에워싸고 있는 것뿐이다. 언젠가 그곳마저 사람이 사는 집이 되면 벽돌담을 둘러치게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 우리 마을에 운명처럼 남아 있는 생나무 울타리가 몇 개 남아 있다. 사람이 사는 집에 나무 울타리가 남아 있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고맙게도 여름엔 마삭줄, 가을엔 쥐똥 열매가 탐스럽게 달려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 돈나무 울타리가 골목을 아름답게 꾸며준다. © 공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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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언제 잘려 나갈지 미래에 대한 보장이 없다. 밤사이에라도 주인이 변심하여 나무를 잘라내면 그만이다. 대신 그곳에 높은 담장을 쌓아도 할 말이 없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 사진에 담아두는 수밖에.
이제 다른 동네를 가면 나무를 심어 울타리를 삼는 집이 있으면 사진에 담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시골에 새 집을 짓는 분들에게 담 없는 집, 정원수를 겸하여 산 나무로 경계를 삼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 산울타리에 주렁주렁 맺힌 쥐똥나무 열매다. © 공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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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울타리에 있는 생나무는 내 집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흡수해 내고, 그 집안사람들이 마실 산소를 만들어 준다. 쾌적한 지구를 만드는 일에 한몫을 해낸다. 나무의 수종에 따라서 꽃도 볼 수 있고, 꽃과 나비와 새들까지 불러들일 수도 있다.
다만, 생나무 울타리는 방범 역할은 해낼 수 없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우리 집은 가져갈 것이 없다는 표시가 되어 더 안전할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경험하는 바로는 담을 높게 한다고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여행 때 고급 주택가에서 며칠 묵었는데 울타리도 없고 담도 없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현관문 하나만 잠가두면 그만이다. 대신 집 앞에 나무와 꽃을 심어 예쁜 정원을 가꾸어 놓았다. 어쩌면 집 앞에 심어둔 나무와 꽃이 기웃거리는 도둑의 마음을 순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사람의 안전보장은 대문이나 높은 담장에 있지 않다. 이 세상에는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은 없다. 우리의 안전은 오로지 하나님께 피하는 데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요새이시며, 피할 바위가 되신다. 그분은 우리의 가장 안전한 울타리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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