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 늙는 게 아니다. 모든 동식물들도 나이를 먹고 늙는다. 글의 주제로 삼은 나무도 나이를 먹는다. 산을 오르면 먼저 눈에 띠는 나무는 젊고 싱싱한 나무가 아니라 늙고 나이든 나무에 마음이 끌린다.
▲ 교회 뜰에 있는 500년 된 팽나무의 엄장함 © 공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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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구멍이 난 나무, 구부러진 나무, 울퉁불퉁한 나무, 죽은 나무를 만나면 만져보고 요리조리 살펴보고 사진기에 담는다. 아마도 오래 오래 살아오는 과정에서 겪었을 풍상에 대한 동정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싶다.
모든 동식물들은 늙으면 볼품이 없어진다. 귀염둥이 강아지도 늙으면 윤기가 사라지고 움직임도 더디고 눈도 어두워진다. 사람이 늙으면 더욱 그렇다. 말로는 “늙는 것은 익어가는 것이다”라고 위안을 해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 조계산에서 만난 구멍 뚫린 나무 © 공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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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도 늙은 사람을 보면 피하거나 울어버린다. 고양이도 늙은 사람이 접근하면 슬슬 피하면서 예쁘고 인상이 좋은 사람이 다가가면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스스럼없이 안긴다. 허긴 자신도 자기 늙은 모습이 싫어 사진 찍기를 거부하고 거울 보는 것도 싫어하지 않는가?
그런데 나무는 늙을수록 품위가 있다. 늙은 호박도 대접을 받지만 나무만큼은 아니다. 나무는 늙을수록 아름답고 가치가 높아진다. 임금으로부터 정이품 지위를 얻은 소나무는 예외로 하더라도 국가로부터 보호수로 지정 받은 늙은 나무들이 많지 않던가?
이렇게 나무는 나이를 먹고, 많이 늙어도 대접을 받는데 사람은 그 반대다. 나이가 먹어 죽으면 보험금도 헐값이 된다. 가족 공동체 안에서도 소외를 받고 뒷방 신세를 면치 못한다. 집안 서열에서 손자나 애견보다 나중이다. 맨 꼴찌라는 말이 더 나은 표현이 되겠다.
과연 이게 옳은 것일까? 늙으면 그러는 거라고 여겨도 되는 것일까? 세상의 풍조는 늙으면 천덕꾸러기로 취급을 한다. 하지만 성경은 이를 강력하게 부정한다. 노인은 존경의 넘어 공경의 대상이라고 기록해 두었다. 솔로몬은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라고 했다. 솔로몬이 쓴 왕관보다 노인이 더 귀하다는 말도 된다.
▲ 지리산에서 얻은 수확물인데 바위와 나무가 서로를 기대고 있다. © 공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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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세대는 생산력은 낮아지고, 의료비 지출은 늘어난다. 그리고 가족들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 노인들은 국가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부담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은 물질적인 가치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늙고 병들어도 사람의 가치는 줄어들지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다. 노부모가 계시면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시설보다는 가족들과 어우렁더우렁 살면서 보살펴드림이 백번 옳다. 늙은 나무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맞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면 땅에서 잘되는 복을 주시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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