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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문] 6.25와 한국교회의 회개
주도홍 교수(백석대 전 부총장, 기독교통일학회 초대회장)
 
주도홍   기사입력  2023/10/25 [17:00]

이 글은 대한민국기독교원로의회가 지난 13일 오전 11시 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개최한 회개기도주간 선포식에서 주도홍 교수(역사신학, 백석대 전 부총장)가 "6.25와 한국교회의 회개" 주제로 발표한 것이다.(뉴스파워)

▲ 주도홍 교수(전 백석대학교 부총장)     ©뉴스파워

 

 

1. 들어가는 말

 

주어진 주제 한국전쟁과 회개를 함께 생각하려 한다. 과연 오늘 한국교회는 6.25 한국전쟁 발발 73주년, 휴전 70주년을 맞이하며 무엇을 해야 하며, 왜 한국교회는 회개해야 하는지? 물론 우리는 슬픈 역사를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이유 중 우리의 회개는 계속되는 남북의 분단과 긴장, 남남의 사회분열과 오늘 한국교회의 어두운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회개는 크리스천에게 말할 것도 없이 새로운 출발점에서 요구되는 것이다. 회개는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이며 복된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회개의 외침으로 시작했다. 크리스천의 회개는 하나님의 죄 용서를 믿을 때 가능하다. 한국교회의 회개도 그 용서를 전제로 한다. 하나님의 용서, 인간의 회개다. 주의 기도는, 하나님의 용서는 인간의 서로를 향한 용서를 전제로 함을 말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6:12) 용서하지 않을 때, 회개할 수 없다. 21세기 오늘 한국교회의 출발선은 바로 회개와 용서라 할 것이다.

유대기독교 사상을 닮은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와 아렌트(Hanna Arent, 1906-1975) 그리고 현존하는 볼프(Miroslav Volf, 1956-)는 용서에 대해 말한다. 나치로부터 생존한 레비나스와 아렌트는 전체주의에 함몰된 나치의 속성을 증인의 눈으로 보고 그렸는데, 그 속성은 바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 죄의식 없는 무감각이다. 나치에게 개인은 전체주의 유토피아를 이루는 단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아렌트는 예루살렘에 이송된 나치 전범 아이히만(A. Eichmann)1961년 재판에 참여하면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목격했는데, 그것은 죽음의 극심한 고통 가운데 처한 타인의 관점에서 사고하지 않는 전적 무 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그 한 예가 우리도 경험한 잔인한 6.25 전쟁으로, 전체주의에 사로잡혀 타인의 고통을 향한 () 사유곧 생각 없음에 전쟁의 잔인성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지만, 레비나스는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인간이 되어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스스로 나아지신 십자가에 달린 빌립보서 2장이 말하는 예수님의 자기 비움, 케노시스(kenosis)를 자발적 자유, 혁명적 순종, 급진적 수동성이라 부르며 문제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아렌트에게 이미 일어난 범죄 행위는 결코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없는 환원 불가능성을 갖는다. 나치의 잔인한 범죄를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없지만, 보복이 아닌 용서를 통해서만 끊어낼 수 있다. 아렌트는 예수님에게서 용서의 가르침을 받는다. 예수님이 보이신 용서가 신앙, 종교의 영역에서만 언급되는 것을, 아렌트는 아쉬워하며, 예수님의 용서가 폭넓게 진지하게 세상에 제시되길 원한다. 아렌트에게 예수님이야말로 불화하는 세상에 진정한 용서를 보여준 분이었다. 용서하지 않을 때, 희생자는 영원히 희생자로 남지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해야 하는 용서만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비로소 그 범죄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그런데 볼프는 이어 말한다. 용서란 죄가 아니라는 말은 아닌데, 먼저 마땅히 처벌해야 하는 죄로 인정할 때만, 용서가 가능하기에 용서 안에 정의, 용서의 실현을 향한 정의가 함께한다. 결과 용서는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까지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이다.필자는 여기서 덧붙이고 싶은데, 진정한 회개, 죄의 용서, 나아가 원수사랑은 성령의 역사로서 로마서 12:21이 말하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십자가의 정의이다. 그러기에 용서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표식, 성령의 열매이다.

 

 

2. 1907년 한국교회의 대부흥

 

1) 회개

한국교회는 2007, 1907년 대부흥 100주년을 맞아 부흥, 어게인!’을 외쳤다. 그렇지만 결과는 개독교라는 부끄러운 별명을 얻는 구호에 그쳤는데, 무엇보다 한국교회의 부흥을 향한 이해가 역사적이지도 성경적이지 않았다. 그 부흥 저변에 자리한 회개를 도외시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2007년 한국교회는 차라리 회개, 어게인!’을 외쳐야 마땅했다. 의료선교사로서 제중원의 임시원장을, 협성신학교(, 협성대학교)와 피어선기념성경학원(, 평택대학교)의 교수와 교장을 지낸 캐나다 출신 감리교 목사 하디(Robert Alexander Hardie, 1865-1949)19039월 원산 주일예배 설교 중 한국인 회중 앞에서 자신의 교만과 실수를 눈물로 자백한 회개를 시작으로, 연이은 성도들의 공개 자복을 통한 회개와 윤리적 갱신이 원산 부흥의 특징적 현상이라 언급하지 않아도, 교회사에서 부흥의 출발점은 회개였다. 교회사에서 대표적 예가 둘 있는데, 사도행전 2장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부흥과 18세기 미국에서 일어난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5-1758)의 대각성운동인데, 곧 철저한 회개로 찾아온 심령의 부흥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오늘의 주제 ‘6.25 한국전쟁과 회개는 많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2) 섬김

어떻게 1907년 한국의 부흥은 가능했나? 선교사들은 여러 가지로 암담한 시절 복음 전파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것은 한 마디로 성령의 열매인 섬김, 디아코니아(Diakonia)였다.입으로 복음을 전할 수 없을 때, 선교사들은 입을 닫고 먼저 몸으로 행동하였다. 이는 1561벨기에 신앙고백이 말하는 하나님의 계시의 두 모습, 곧 창조, 보존, 인도를 통한 행위와 말씀을 통한 계시와 일치한다.초기 한국의 선교사들은 학교와 의료활동 그리고 사회계몽에 나셨다. 18852월 선교사 알렌는 고종의 허락을 받아 국립병원 광혜원, 곧 제중원이 설립되었다. 1893년 선교연합회는 의료사업을 선교로 여기며 한반도 전역 주요 도시에 병원을 세우기로 하였다. 2년 후 1895년 전국에 콜레라가 만연하여 서울에서만 5천 명이 그리고 전국에 걸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자, 선교사들의 헌신적 사랑의 섬김은 온 백성의 환호와 신뢰를 받았다. 1886년 아펜젤러는 고종의 허락으로 배재학당을, 같은 해 스크랜톤 역시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을 설립하였는데, 여자들의 사회적 위치가 혁신적으로 바뀌었다. 이후 언더우드의 경신학교가 고아들을 데려다가 시작되었으며, 장로교 최초의 여학교 정신학교가 고아를 데려다 기숙하며 시작하였다. 1906년 평양에 세워진 숭실전문학교는 1907년 장로교와 감리교가 함께 경영하다가 1913년부터 장로교 선교회가 단독으로 운영하였다. 1909년 기준, 전국에 950개의 기독교 학교가 설립되었는데, 그중 장로교에서 605개 학교를, 감리교에서 200개 학교를 설립하였다. 세브란스는 18863월 최초의 의학교로, 1913년 장로교와 감리교 연합으로 경영하였다. 19153월에 시작된 연희전문학교는 장로교와 감리교 공동으로 설립 되었다.

선교사들의 한글 보급은 문맹 퇴치 일환이었지만, 성경을 읽도록 함에 목적이 있었다. 1889년 감리교 선교사 올링어는 출판사를 설립하고 1891년부터 출판을 시작했고, 189522,000부의 책과 소책자를 발간했다. 1887년 언더우드, 아펜젤러는 성서위원회를 조직하고, 성경 번역, 개정, 출판, 반포하였다. 1893년 제1차 장로교 공의회는 발행하는 모든 문서를 한글로 작성하기로 했다. ‘언문이라 멸시받던 한글은 선교사들의 활약으로 연구 개발하였으며, 1896한영사전이 발간되었다.

기독청년회, 청년면려회 등 연합 청년운동 YMCAYWCA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국제적인 연합이었다. 또한 여성 봉사 활동이 활발해졌으며, 1894년 일어난 갑오개혁에 맞춰 사회제도의 개혁이 신분제 철폐로 양반과 평민이 한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며 신분제 및 노비제도 철폐에 공헌하였다. 여성의 교육권과 인권 보호 등 조선의 평등사상 출현이 기독교로부터 일어나 실현되었다.

 

침묵의 일정 기간이 지나자 선교사들은 비로소 입을 열어 조심스럽게 복음을 전파하였는데, 천지개벽하는 조선 사회를 보며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갖게 됨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1886/7년 소래교회, 1887년 정동교회, 새문안교회 등이 세워졌다. 188718881889년 선교사들은 이제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한 예로 신혼인 언더우드 부부는 1,600km의 먼 길을 돌며, 의사인 아내가 600명에 달하는 환자를 치료해 주었으니, 섬김과 말씀을 병행한 효과적인 전도였다. 조선 정부는 이제 선교사들에게 특별 여행허가증을 발행하였는데, 단순한 허가증이라기보다는 이들에게 각별하게 대접하라는 특혜명령이었다. 거처와 식사, 교통수단인 말을 제공하며, 경호원까지 따라 보내며, 한국어 통역을 담당할 사람도 제공하였다. 이는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암울한 시절 1907년 열화처럼 일어난 평양 대부흥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디아코니아, 사랑의 섬김 다음에 오는 그 결실로서의 말씀의 부흥이었다. 이는 성경적이라 하겠는데, 하나님은 두 가지로 자신을 계시하는데, 먼저는 창조 행위로 다음에는 계시 말씀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1910년 일제(日帝)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암담한 때였지만, 그사이 유일한 소망인 복음, 교회를 통해 한반도에서 1907년의 대부흥이 열화같이 일어났다.

 

김영재의 한국 교회사초대 선교사들의 전도 활동과 교회 설립선교사들의 문화사업다음에 오고 있음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선교사들의 한국인과의 첫 예배는 물론 비밀리에 이뤄졌지만, 1886년 이후이다.그 사이 그들은 조선인들을 말없이 섬기는 디아코니아에 힘썼다. 20세기에도 이러한 일이 분단 독일에서 일어났다. 동독에서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할 수 없을 때, 그 복음의 내용 아가페 사랑을 묵묵히 실천할 수 있었다. 서독교회는 디아코니아재단(Das Diakonische Werk)을 통해 사회주의 동독을 디아코니아를 통해 가난한 이웃을 섬겼고, 신앙과 사상으로 동독 감옥에 갇힌 죄수들 약 33,500명을 돈을 주고 가족과 함께 서독으로 데려오는 일 프라이카우프(Freikauf)을 했다. 결국 독일은 1990조용한 개신교 혁명통일을 맞이했다.입을 열어 복음을 전할 수 없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어리석음이며, 죽음을 이긴 부활에 문을 꽁꽁 봉한 채 불안에 떨던 제자들의 두려움이다. 어쩔 수 없이 한국 선교사들이 입을 닫고, 행함으로 복음의 내용인 사랑을 실천했지만, 이는 선교학적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선교학의 원리를 먼저 행하라 그리고 말하라!’라고 말해도 모자람이 없다고 하겠다. 집을 지으려면 기초를 놓는데, 디아코니아는 이처럼 선교의 기초라 하겠다.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는 말을 앞세움이라 하겠다.

 

 

3. 순교자 주기철(1897-1944)의 사상

 

순교자 주기철의 설교에서 순수복음과 성경적 윤리를 만난다. 19335월 아내 안갑수 사모가 34세를 일기로 소천하였을 때 주일설교 중 했던 주기철 목사의 회개는 절절했다.

 

주여! 저로 하여금 당신의 낮아지심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 세리와 창녀의 친구가 되셨고, 어린이의 동무가 되셨고, 걸인과 문둥이의 벗이 되셨으며, 마침내 강도들과 함께 저주의 십자가에 달리시고 음부에까지 내려가신 낮아지심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당신은 제자의 발을 씻기셨으니 저는 문둥이의 발을 핥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나의 속에는 여전히 나, 라는 놈이 남아있어, 당신이 좌정하셔야 할 자리에 이놈이 앉아있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받으실 찬송과 영광을 이놈이 받고자 하는 때가 종종 있나이다.”

 

자못 신비주의와 내세 신앙으로 빠져들 수 있는 고난의 때 일제의 한복판에서도 주기철의 확인된 글과 설교는 전혀 성경적이며 균형을 잃지 않고 있다. 주기철의 평양신학교 재학, 마신 문창교회 목회, 평양 산정현교회 목회로 나눌 수 있는데, 1937년 평양 산정현교회의 설교 10편이 가장 많이 발표되었으며, 19389월 제2차 검속 이후 그의 설교나 글은 찾아볼 수 없다. 첫 목회지 부산 초량교회에서의 설교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1920년대 기독교와 여자해방”(신생명), 1930년대 은혜와 책임”, “()의 준비”, “천하에 복음을 전하라”, “목사직의 영광”, “무거운 짐 진 자여, 예수께 오라”, “전도의 사명”, “성신과 기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나님 앞에 사는 생활”, “주의 재림”, “겸손하기 위하여등이 있다.

주기철 목사의 글과 설교를 통해 보면, 성경적 원리, 다르게는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이라는 종교개혁 추구에 충실함을 본다.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고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주기철의 글 기독교와 여자해방에서도 조화를 이루는데, 봉건적 속박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이혼과 같은 무절제한 방종으로부터 여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독교는 실로 여자해방의 선구자라 외친다. 이를 위한 논증의 근거는 성경이었다.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얻는 주기철의 구원론은 하나님 앞에(Coram Deo) 사는 삶으로 나아간다. 바로 여기서 불신자와 구별되는 거룩한 삶이 이뤄진다. 19378월 주기철의 설교 하나님 앞에 사는 생활은 경건, 정직, 태연의 삶이다. 태연이란 훼방과 비난을 받을 때에 드러난다.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정도를 걷는 당당이다. 우리는 이를 주기철의 경건주의 곧 개인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윤리라 부르며,주기철의 사회윤리를 19345월 남대문교회에서 행한 설교 은총과 책임을 통해 깨닫는다. 기독교인은 위로부터 은혜를 받고 실생활 가운데 책임을 감당한다. 크리스천의 삶은 은혜를 받고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 징책을 받는다. 그런 맥락에서 크리스천의 삶은 책임 윤리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개인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공동체로 향한다. 구원받은 개인은 사회로 나가 소금과 빛이 된다. 주기철은 1934년 남대문교회 부흥회 설교 은혜와 책임에서 말했다.

 

우리의 받은 물질적 축복을 살피자! ... 보다 큰 집과 많은 소유를 가지고도 그런 책임을 못 하고 사치 위에 사치, 호강 위에 호강하지만은 가난한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이나 교회를 위하여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자가 몇이나 있는가? 우리는 음식을 대할 때 굶주리는 이를 생각하고 의복을 입을 때 헐벗은 이를 생각하는가? 나를 이렇게 먹이고 입히는 뜻은 어디 있는가 살필 것이다.”

 

그렇다고 주기철에게 민족운동, 사회사업이 목회자의 궁극적 관심일 수 없다. 목회자는 이를 뛰어넘어 오직 하나님의 영광, 그의 이름, 그의 나라를 위해 사는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사자(使者)일 뿐이다. 물론 목사는 어떠한 때, 어떠한 경우, 어떠한 곳, 어떠한 사람에게라도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어야 한다. “君王을 충간(忠諫)하는 자 목사이오, 대통령을 훈계(訓戒)하는 자 목사이다.” 이러한 모습은 모세, 엘리야, 나단, 세례 요한에게서 확인되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목사는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직언의 용기를 가져야 한다.

 

 

4. 6.25와 한국교회

 

1945815일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맞아 다섯 해가 거의 채워 갈 즈음, 1950625일 한반도는 피비린내 나는 잔인한 전쟁에 다시 휩싸였다. 6.25를 통한 한반도 전역에 드러난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2차 대전 당시 유럽에 떨어진 포탄의 수보다 많은 양의 포탄이 한반도에 떨어졌다. 500만 명이 넘는 인명 손실과 1,000만 명의 이산가족 등 그 비참은 형언할 수도 없다. 한국교회의 아픔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는데, 대표적 예가 2의 예루살렘이라 자랑했던 평양을 위시한 북한교회 말살로, 교회 공동화는 오늘에까지 변하지 않고 있다. 남한에서도 508명의 목사가 살해되었으며, 전체 목사 반 이상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1,373개의 예배당이 전파(全破)되었고, 666개의 예배당은 부분 파손되었다. 당시 서울의 80%가 훼손되었다.무엇보다 6.25는 한국교회에 수많은 순교자의 피를 불렀다. 전택부는 당시 서울에서만 500명이 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피살된 것으로 추측한다.그런 혼란의 와중에 한국교회의 분열은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은 슬픔과 아픔을 더한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6.25로 인한 민족의 대이동은 서로를 향한 이질감과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한국교회는 분열로 나아갔다. 그야말로 6.25는 민족사의 최대비극이면서, 한국교회의 가장 큰 시련이었으며, 그 폐해가 오늘에까지 모든 삶의 현장에 살아 있다.

물론 사회주의 기독교의 부분적 활성화라는 말로 북한교회를 사회주의에 적응한 기독교라 부르며, 개인 구원보다는 사회구원을 강조하는 독특한 기독교의 영성을 보이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한 마디로 북한교회의 시계는 1940년대에 멈춰져 있는 것이며, 이는 종교는 아편이라는 김일성의 마르크스 종교관으로, 단지 공산주의 혁명의 수단으로 이해할 뿐이다.그러기에 기독교를 표방하는 북한교회를 어떻게 이해할지는 쉽지 않은데, ‘오픈 도어스에 의하면, 북한이 20년 연속 최악의 세계 기독교 박해국으로 지목되고 있는 점은 안타까운 현실이다.물론 교회는 늘 박해 속에서도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그러기에 북한교회의 유무를 논하기는 매우 조심스럽다.그렇지만 6.25와 함께 교회는 북한 땅에서 공동화의 위기를 맞이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6.25 1960년대 폐허와 가난 속에서 한국교회는 잘못된 성령 운동을 통한 신비주의, 영지주의 등 이원론의 이단들이 출현하였으며, 가난과 배고픔을 이겨내 잘 살아야 한다는 기복주의, 잔인하게 교회를 박해했던 공산당을 대적한 반공사상이 교회 안으로 깊게 침투해 들어왔다. 이러한 모습들은 일면 이해가 가능하나, 복음과의 상관성을 본질적으로 점검해야 할 과제를 한국교회에 남겼다. 먼저 어느새 한국이 경제 대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강단에서 강하게 외쳤던 기복주의의 유효기간이 도래했으며, 그 빈자리에 한국교회는 무엇을 채울지 물어야 할 것이다. 무신론으로 신앙의 자유를 짓밟는 유물론 공산주의를 교회는 용납할 수 없는데, 문제는 인간의 이념 반공사상이 미움과 저주의 얼굴을 한 채 어느새 설교강단에 복음인 양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복음은 십자가의 순전한 보혈이며, 죽음을 이긴 부활 생명이다. 여기에 가하고 감할 무엇은 전혀 없다. 2,000년 세계교회사는 복음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전하는 메시지는 힘을 잃고 있으며, 교인 수는 빠르게 뒷걸음질하고 있다. 특히 2019년 코로나 이후 그 현상은 가중되고 있다. 물질문명의 첨단을 달리는 21세기에 코로나로 인해 한국교회가 이토록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교회가 건강하지 않다는 말이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그렇지 못하고, 몸은 비대해졌으나 실제로는 허약하다는 것이다. 성경은 야고보서를 통해 이 땅에서 만나는 환난은 불가피한 요소라 말한다. 1907년 한국의 평양대부흥, 초대교회의 부흥, 유럽의 종교개혁도 박해에서 나온 열매이지 않은지! 돌아봐야겠다.

 

 

5. 한국교회의 현재

 

오늘 한국교회가 위치한 현실을 살펴볼 것이다. 한국 통계청에 의하면, 한국의 자살률은 2018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OECD 국가 중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역시 통계청에 의하면 출생률도 0.78로 세계 꼴찌다. 2020년 기준 OECD 38국의 출산율 평균은 1.59, 나머지 37국은 다 1명대 이상으로, 1위 이스라엘(2.90), 2위 멕시코(2.08)2명대를, 일본은 2021년 출산율이 1.30명으로 한국보다 높다. 정말 이대로 가면 한국의 운명은 태풍 앞 등잔불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의 행복 지수는 35위로 역시 최하위며, 지난 3국제 행복의 날을 맞아 발간한 UN이 발간한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2023)에 따르면, 한국 국민이 스스로 평가한 삶의 질10점 만점에 5.951점을 기록하며, 조사 137개국 중 57위에 머물렀다. 10대 경제 대국이라는 한국은 이에 대해 정직하게 답해야 할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OECD 가입 30개국을 대상으로 갈등 지수를 산출한 결과, 2016년 기준 한국의 갈등 지수는 55.1포인트(p)3위를 기록했다. 이는 G5 국가인 프랑스(25.8p, 22), 독일(29.8p, 18), 영국(41.4p, 8), 미국(43.5p, 6), 일본(46.6p, 5)보다 높으며 멕시코(69.0p, 1), 이스라엘(56.5p, 2)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정부의 갈등 관리능력을 나타내는 갈등 관리지수는 27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2022년 혼인 이혼 통계 결과는 혼인 192천 건, 이혼 93천 건으로 심각한 가정파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에 의하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2021년 기준 37.6%OECD 평균 13.5%2.8배 정도로 최고 수준이다. 한국일보는 20237월 로이터 통신을 인용하여 세계 유일의 분단국 한국은 가장 호전적인 북한과 대치하고 있음에도 한국인의 전쟁 불감증 또는 안보불감증은 심각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세계에서 전쟁 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땅이 한반도라는 사실에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그 근거로는 네 가지인데, 미국의 군사력 쇠퇴, 조 바이든 외교정책팀의 북한 대응, 북한의 군사력 발전, 한국 국내 정치를 꼽았다.평화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한국교회는 과연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20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여론조사를 통해 본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는 가톨릭, 불교에 이어 꼴찌 3등으로, 아니 유교 다음으로 4등으로 주변으로 밀려난상태이다.다르게는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한국교회를 신뢰한다(31.8%), 신뢰하지 않는다(63.9%). 목사의 말과 행동에 믿음이 간다(30.0%), 믿음이 가지 않는다(68.0%). 크리스천의 말과 행동에 믿음이 간다(32.9%), 믿음이 가지 않는다(65.3%)고 답했는데, 일반 성도보다 목사를 덜 신뢰한다는 말이다. 가장 신뢰하는 종교는 가톨릭(30.0%), 불교(26.2%), 개신교(18.9%) 순이다. 그런데 사회봉사에 있어 가장 적극적인 종교를 개신교(35.7%), 가톨릭(32.9%), 불교(10.2%) 순으로 알고 있다는 것인데, 그런데도 개신교를 가장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은 숙고해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 가장 도움이 되는 봉사 활동을 하는 종교 역시 개신교(30.7%), 가톨릭(28.8%), 불교(13.5%), 기타종교(2.3) 순으로 조사가 되었는데, 모든 종교가 다 비슷하다는 의견은 5.5%이다.

 

한국교회는 세상과 잘 소통하는가의 물음에 그렇다(34.6%), 그렇지 않다(61.6%)고 답했다. 한국교회의 사회문제 해결 및 사회통합에 잘 기여하는가라는 물음에, 그렇다(31.6%), 그렇지 않다(64.7%) 답했다. 그럼 한국교회의 신뢰도 제고를 위한 개선점은 무엇인가를 물을 때, 불투명한 재정 사용(25.9%), 교회 지도자들의 삶(22.8%), 타 종교에 대한 태도(19.9%), 교인들의 삶(14.3%), 교회의 성장제일주의(8.5%)를 고쳐야 할 점으로 답했다.

 

한국교회의 신뢰도 제고를 위해서는 사회적 활동, 곧 윤리와 도덕 실천 운동(49.8%), 봉사 및 구제(27.9%), 환경·인권 등 사회운동(8.4%), 문화·예술 활동(4.3%), 학교 운영 및 교육 사업 활동(4.2%) 등이 요구되었다. 목회자의 신뢰도 제고를 위한 개선점으로는 윤리/도덕성(51.5%), 물질주의(14.5%)를 벗고, 사회현실 이해 및 참여(12.1%)가 요구되고, 교회 성장주의(6.4%)와 권위주의(6.0%)를 벗는 리더십(4.8%)을 보여줄 것을 주문했다.

 

기독교인의 신뢰도 제고를 위한 개선점으로는 남에 대한 배려 부족(26.6%), 정직하지 못함(23.7%), 배타성(12.1%), 물질/성공주의(16.3%), 사회에 대한 무관심(6.0%) 순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2019년 코로나 이후 2023년 기윤실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급격히 하락하여 21.0%로 우리나라 국민의 5명 중 1명만이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년 전과 비교할 때, 한국교회 신뢰도가 10.8% 더 낮아졌는데, 이는 예상과 다르게 급격히 하락한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겪은 3년 사이에 한국교회 신뢰도는 급격히 떨어진 결과로 나타났다는 사실은 조금은 충격적이라 할 것이다.이 힘든 시절 한국교회가 어떤 모습이었길래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성찰해야 할 것이다.

 

 

교회학교에 대한 통계도 한국교회의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 예장 통합 측은 2010년 유치부와 초등부, 소년부까지 교회학교 학생 수는 275천여 명이었다. 하지만 202017만여 명으로 40% 가까이 줄었다. ·고등부는 2010188천여 명에서 2020109천여 명으로, 역시 40% 가까이 감소했다.

 

·감의 경우, 20세 미만 교회학교는 201127만 천여 명에서 2019172천여 명으로 10만 명이나 줄었으니, 거의 같은 수준으로 줄어들고 있다. 예장 고신의 경우, 2016년 주일학교 학생 수 85천여 명에서 3년 후 20197만 천여 명으로 감소했다. 예장 합동 측도 다르지 않은데, 초중고 교회학교 학생 수가 10명 미만인 교회가 절반을 넘었다.

 

합동 총회교육개발원이 202011월과 121,250여 개 교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초등부가 10명 이하인 교회는 53%, ·고등부가 10명 이하인 교회는 51%로 나타났다. 예장 합동 총회교육개발원 담당자는 초토화 분위기라며, “2030년에 주일학교의 90%가 사라질 것이라는 교계 일각의 비관적 전망에 공감이 될 정도이다라고 말했다.곧 합동 소속 다섯 교회 중 한 교회가 주일학교가 없다는 소식은 한국교회의 암담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6. 비전 : ‘한국신앙고백

 

이런 현실에서도 만약 한국교회가 회개의 자리로 간다면, 기꺼이 꿈꿀 수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출발점인 회개와 용서에 서서 두 가지를 제안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여러 가지로 답답한 현실이지만, 그러기에 요구되는 회개와 용서는 한국교회의 삶의 동인이면서 동시에 비전의 근거라는 사실이다. 하나님 앞에(Coram Deo) 회개와 용서하는 자에게는 절망할 이유가 결코 없다.

 

1) ‘한국신앙고백’(Confessio Coreana) 선언

 

2023, 6.25 발발 73주년, 휴전 70주년을 맞이하며 한국교회가 할 일이 있는데, () 교회적으로 선언하는 신앙고백이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신앙고백 공동체이다. 그 예가 20세기 나치 하에서 독일교회가 히틀러를 독일 구세주로 고백하는 거대한 오류에 들 때, 고백교회(die Bekennende Kirche)19345월 오직 하나님의 계시 진리인 성경에 근거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인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5항으로 된 바르멘 신학선언’(Die Barmer Theologische Erklaerung)을 순교적 각오로 발표했다. 19869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백의 인종차별정책 하에서 발표된 벨하 신앙고백’(Belhar Confession)으로, 1982년 아프리카 언어(Afrikanns)로 된 이 신앙고백을 남아프리카 연합개혁교회가 1986년 공적으로 받아들여 선언하였다.교회는 잔인한 폭력적 전체주의 나치와 남아연방의 인종차별정책 같은 폭력에 대항해야 하며,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 편에 서야 하며, 개인주의, 인종차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대적하는 죄이며 모든 분리주의는 원수와 증오를 만든다고 고백했다.

 

 

한국신앙고백작성을 위해 참고했으면 하는 신앙고백은 1563년 루터의 독일에서 발표된 개혁교회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Der Heidelberger Katechismus)이다. ‘살든지 죽든지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인지요?’로 서두를 시작하는 이 소문난 교리문답의 형식은, 1부는 죄에 빠진 인간의 비참(Von des Menschen Elend), 2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비참에서 해방되는 인간의 구속(Von des Menschen Erloesung), 3부는 구원받은 성도의 감사(Von der Dankbarkeit)로 되어있다. 결론부는 가장 강력한 감사의 도구인 기도(Vom Gebet)로 차분한 마무리를 한다.

 

KNCC1988, 복음주의 쪽의 1996년 한국교회의 통일선언문이 발표되었으나, 지난 20세기의 신앙고백으로 벌써 한 세대가 지났다. 이제 21세기를 맞아 한국교회가 새 시대에 맞는 신앙고백을 하는 일은 요구된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가 마음을 모아 20256.25까지 매주 모여, 6.25 75주년이 되는 20256.25를 기해 한국신앙고백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 결실은 여러 관점에서 소중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교회의 성찰과 회개, 용서가 모아질 것이며, 세계 유일한 분단의 아픔과 절망인 한반도뿐 아니라, 기후 위기 등 여러 가지로 어려운 지구촌의 세기말적 현상을 성경적으로 바라볼 때,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한국교회를 각성하게 하며, 한국교회의 현장(Kontext) 인식을 새롭게 하여, 교회의 길을 차분히 제시하리라 기대한다. 위임받은 준비위원들이 매주 정기적으로 모여 뜨겁게 기도하며 한국신앙고백을 준비한다면, 빠르면 2024년 아니면 20256.25에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역사적인 신앙고백은 긴 시간의 기도와 준비로 맺혀진 알찬 결실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2) 한국교회 회개의 날

 

한국신앙고백선언과 함께 한국교회는 625일을 한국교회 회개의 날로 그리고 6.25가 낀 한 주간을 한국교회 회개기도 주간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함께 모여 먼저 죄를 회개하고, 분단의 아픔을 눈물로 하나님께 신원(伸冤)하며, 전쟁 없는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며, 한국이 21세기를 선도하는 정의롭고 자유로운 선진 민주국가가 되며,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의 기둥이 되기를 소망하는 기도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21세기 지구촌 유일한 분단의 땅, 상호소통이 처절하게 사라진 분단과 갈등의 부끄러움을 내놓고 눈물로 회개하며, 북한 땅에 사라진 교회 회복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한국교회 회개기도 주간을 실천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예배당에 갇힌 한국교회가 눈을 들어 국가와 사회를 바라보며 국가와 이웃을 위해 공적으로 한국교회 회개의 날한국교회 회개기도 주간을 갖는다는 사실은 그 영적 열매뿐 아니라,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그것은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깨우칠 뿐 아니라, 교회의 국가와의 유대와 협업을 생각하게 하고, 고난에 처한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임을 인식하는 것이 된다. 무엇보다 한국교회는 사도행전의 회개를 통한 부흥과 한국 초대교회의 대부흥을 역사적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Soli Deo Gloria!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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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0/25 [17:00]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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