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규 교수(아신대, 역사신학)는 “김준곤 목사의 민족복음화운동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문화명령(창1:28)과 선교‧ 전도대사명(마28:18-20)을 한국교회사 속에서 가장 잘 구현한 운동 중의 하나이며. 엑스플로 ‘74는 그러한 역사적 실례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엑스플로 '74 50주년 기념 희년학술대회가 21일 오전 10시 분당 지구촌교회(담임목사 최성은)에서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아신대 교회사 박응규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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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수는 지난 21일 오전 10시 분당지구촌교회 그레이스홀에서 열린 엑스플로'74 50주년 희년학술대회에서 ‘엑스플로 '74와 한국교회사적 의미’라는 주제 발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날 대회는 “엑스플로 '74 리멤버 회고와 전망” 주제로 한국CCC, 나사렛형제들, 세계성시화운동본부, EXPLO '74 희년대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이날 발제는 박응규 교수를 비롯해 이상규 교수가 ‘엑스플로 ‘74와 한국교회사적 의미’를 주제로 발제했으며, 조귀삼 교수(한세대 명예교수)가 ‘원심력적 선교구조에 내재된 엑스플로 '74의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주제로 발제했다
박 교수는 발제를 통해 “1970년대는 한국교회 100주년을 앞두고 각 교단이 경쟁적으로 교세 확장운동을 펼친 시기였고, 이에 따라 교회 성장이 획기적으로 일어났던 때이기도 했다.”며 “장로교 합동측은 1만교회운동을 전개했고, 장로교 통합측은 연 300교회 개척운동을 펼쳤다. 또한 감리교와 성결교도 교세 확장에 적극 나섰다.”고 밝혔다.
이어 “1974년 김준곤 목사가 CCC를 중심으로 한국교회를 결집하여 추진한 엑스플로 ‘74는 1973년 열렸던 빌리 그레이엄 서울전도대회를 통해 촉발된 부흥의 열기를 더 한층 고조시키고, 한국교회의 교회들과 선교단체들이 연합하여 대중전도운동과 함께 교회성장의 기운을 확실하게 자리잡게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대중전도집회는 그 이후의 교회 부흥을 견인하며 한국 교회를 근대화시킨 원동력이었고, 놀라운 교회 성장의 촉매역할을 했으며, 복음주의운동을 발흥시킨 결정적 사건이었으며, 해외선교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박용규 교수(총신대 명예교수, 역사신학)의 글을 인용했다.
박 교수는 “김준곤 목사는 1970년대를 맞이하면서 무엇보다 민족복음화에 대한 강력한 소망을 선포하면서 한국의 모든 기독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러한 시대적 소명을 위해 함께 헌신할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특히 “1907년도에 일어났던 대부흥운동이 한민족을 중심으로 한 회개운동과 전도운동이었다면, 1974년에 일어난 엑스플로‘74를 통해 ‘한국교회의 오순절’이 세계 각국에 복음화의 씨앗을 널리 퍼뜨리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고, 그 꿈과 기도가 훗날 이렇게 평가 받기를 염원했다.”며 엑스플로 ‘74대회 개회사를 소개했다.
김 목사가 선포한 엑스플로 ‘74개회사에는 “한국은 제2의 이스라엘이 되었다.서울시는 제2의 예루살렘처럼 성시화가 되었다. 한국은 공산주의를 신앙으로 완전히 극복했다. 한국은 세계 사상 전례 없는 이상적 국가가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미국은 민주주의를 수출하고, 일본은 상품을 수출하고 프랑스는 자유를 수출하고 영국은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러시아는 공산혁명을 일으켰고, 중국은 문화혁명을 일으켰고, 서유럽의 사회는 섹스혁명을 일으켰는데, 한국은 예수혁명, 성령의 혁명을 일으켰다. 한강변의 기적은 예수의 기적이었다. 그들이 민족의 가슴마다 그리스도를 심어 성령의 계절이 그 땅에 왔다.”는 민족복음화가 이루어진 이후의 모습을 선포했다.
박 교수는 “엑스플로 ‘74는 한국 기독교계에 전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하게 심어준 영적 대각성 집회였으며, 학원복음화운동의 방향성이 민족복음화와 더불어 세계선교로 전이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미국에서 개최되었던 엑스플로 ‘72와 더불어 엑스플로’74는 CCC운동에 ‘국제적인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는 면에서도 그 역사적 의미가 지대했다.”고 평가한 존 터너(John G. Tuner)의 글을 인용했다.
박 교수는 특히 “엑스플로 ‘74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김준곤은 민족복음화운동에만 머물지 않고 1978년부터는 세계복음화대성회(1980년 8월 12-15일, 서울 여의도광장)를 준비하면서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의 비전을 꿈꿀 수 있는 작업을 구체적으로 추진했다.”고 밝혔다.
▲ 엑스플로 '74 50주년 기념 희년학술대회가 21일 오전 10시 분당 지구촌교회(담임목사 최성은)에서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학술대회 포럼 좌장 심상법 교수(우)와 발제자 박응규 교소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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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엑스플로 ‘74대회 이후 한국교회는 전도훈련을 통한 성장의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며 “전도훈련 요원들을 훈련하여 전도를 한 결과 교회 출석 인원이 33% 증가했고, 목회자들도 개인전도를 본격화했으며, 한국교회 성장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특히 “CCC와 함께 전도전략을 함께 사용하고 도움을 받은 장로교 합동 교단에서는 1976년부토 1978년 2년 사이에 교회수가 2484개에서 3684개로 약 1200개의 교회들이 개척되었고, 신자의 수도 이 기간 동안 68만 명에서 100만명으로 증가했다.”는 전석재의 논문 <CCC가 한국교회 성장에 끼친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 내용을 인용했다.
박 교수는 김준곤 목사가 엑스플로 ‘74를 통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으로는 “1970년대 청년대학생 전도와 한국교회의 전도와 부흥운동이 활성화 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준곤은 민족복음화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하고 “그가 발의한 국가조찬기도회, 전군신자화운동, 성시화운동 그리고 그가 주도한 대형집회는 민족복음화를 위한 줄기찬 시도였고, 이런 노력이 1970년대 이후 한국교회 성장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또한 “김준곤은 복음주의자로서 한국에서의 복음주의운동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하고 “그의 신앙적 배경이나 신학교육의 여정을 고찰해보면 그는 누구보다 철저한 복음주의자였다. 정치적 변혁보다 복음에 의한 변혁을 우선시 했고, 제도의 개선보다 심령의 변화를 우선시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이와 함께 “김준곤은 복음주의 신앙에 근거한 반공주의 형성과 통일운동에도 크게 기여했다.”며 “특히 국제정세를 주시하면서, 지속적인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해서도 경고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제기될 수 있는 좌파 이데올리기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며 베트남과 캄보디아가 공산화 직후 40일 금식기도회와 구국기도회를 개최한 것을 언급했다.
박 교수는 엑스플로 ‘74의 한국교회사적 의의에 대해서는 총신대 교회사 교수와 총장을 지낸 고 김의환 박사의 글을 인용하면서 “엑스플로’74대회는 획기적인 교회사적 사건으로 엑스플로‘74대회를 통해서 만인제사장이라는 위대한 종교개혁 유산을 계승하여 평신도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전기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특히 총신대 박용규 교수의 글을 인용해 “미국에서 근대복음주의 부흥운동의 일환으로 대중전도운동이 일어난 것처럼 한국의 대중전도운동도 서구의 복음주의운동과 초교파 학생운동 그리고 로잔운동의 영향으로 부상한 일종의 근대부흥운동이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김준곤은 엑스플로‘74 전도대회를 교회사적으로 성령의 제2폭발이라고 표현했다.”며 “제1폭발은 오순절 성령강림사건(행2장)이고, 제2폭발은 종교개혁이라고 했다.”며 “빌리 그레이엄도 엑스플로 ’74대회가 열리기 직전에 이 대회를 가리켜 한국교회의 ‘정신 혁명의 큰 횃불’, ‘기독교 역사상 획기적인 성회아며 아시아와 세계복음화를 위한 총진군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했다.
또한 “한경직도 이 대회를 통해 ‘한국과 아시아와 전세계에 큰 빛’을 던지는 사건이 되리라는 전망도 피력했다.”며 “엑스플로 ‘74는 산발적으로 일어났던 한국 민족복음화운동을 결집하여 한국교회가 연합하여 본격적으로 세계선교운동으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현재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위기들을 극복할 수 이는 길은, 김준곤이 그토록 외쳤던 순수한 복음, 즉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을 증거하고 그리스도인의 가슴마다 피묻은 복음이 심겨져 그 정신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몸소 가르쳐 주었다.”고 밝혔다.
또한 “이 길만이 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이요, 침체되고 성장이 둔화되는 오늘날의 한국교회에 새로운 부흥의 길임을 김준곤은 민족복음화운동을 통해 우리에게 각인시켜 주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