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더글러스 맬럭은 <만일 당신이 산꼭대기 소나무가 될 수 없다면 골짜기의 소나무가 되라. 골짜기에서 제일가는 소나무가 되라. 만일 나무가 될 수 없다면 덤불이 되라. 덤불이 될 수 없다면 풀이 되라. 그리고 만일 풀이 될 수 없다면 이끼가 되라.>고 했다.
모처럼 집을 떠나 지리산 자락의 숲길 걸었다.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쉬엄쉬엄 걷는 일도 즐거운 경험이다. 숲길 좌우에 많은 볼거리가 있는데, 그중에 이끼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이끼는 일종의 스펀지와 같다. 대기 중의 온실가스를 흡수하며 공기를 정화해 준다. 이끼가 물을 흠뻑 머금을 땐 지표면의 5m 깊이까지 머금을 수 있다고 하니 홍수 조절 능력이 대단하다. 고립된 지역에서는 귀중한 물의 공급원이 되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의약품 개발 및 생물공학 분야에서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바위나 나무에 달라붙어 생장하는 이끼는 우리에게 심미적인 즐거움을 선물해 준다. 또 이끼의 열매는 동물들에게 먹이는 제공하고 보금자리가 되어준다.
▲ 바위에 붙어 자라는 이끼, 탄소를 흡입하고, 공기를 맑게 한다. 많은 물을 머금음으로 생태조절 기능을 해낸다. © 공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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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되지 못해서 이끼가 되었다는 시처럼 하찮아 보이지만 환경지표를 가늠케 하고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이끼는 사람과 자연 사이에서 소중한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이끼를 우습게보지 말라. 이끼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끼는 세상 속에서 관심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의 메시지가 된다. 후미진 곳에서 존재감 없이 살아가는 자라 해도 소중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 권정생 선생님의 그림책 <강아지 똥>도 민들레를 꽃 피우게 하는 데 쓰임새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 죽은 나무에서도 고운 이끼가 자란다. 이끼는 오염된 곳에서 생장이 멈추거나 퇴화되고 만다. 이끼는대표적인 환경지표 식물이다. © 공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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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에게도 격려가 될 만한 뜻을 암시해준다. 신자들은 이끼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바울은 유대 사회에서 만인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았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 박해와 비방을 받았다. 세상의 쓰레기와 만물의 찌꺼기같은 취급을 당했다고 했다.
하지만 예수 믿는 자들은 질그릇 같이 보잘 것 없지만, 보배를 담은 그릇이라고 했다.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했다.
▲ 이끼는 의약품 개발에도 큰 관심을 끌고 있으며, 사람에게 평안함을 주는 심미적인 효용가치를 지니고 있다. © 공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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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거창하게 살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행복은 높고 위대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온 마음을 다해 나의 몫을 다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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