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관동대지진 때 6000명 이상의 조선인・중국인이 학살당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김교신 선생, 함석헌 선생에 큰 영향을 끼쳤던 우찌무라 간조(1861-1930)가 당시 자경단으로 활동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 삿뽀로농업학교에서 10여개월 교사로 재직하면서 우찌무라간조 등 십수명의 학생들과 성경읽기를 했던 윌리엄 클락 선교사의 동상. 일본을 떠나면서 Boys be ambitious in Christ라고 했는데, christ는 빠져 있다.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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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찌무라 간조는 삿포농업학교에서 교사로 9개월 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밤에는 1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성경읽기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전한 윌리엄 클락 박사(williams S. Clark 1826-1886)의 제자로 일본을 대표하는 신학자이자 목회자이자 저술가이다.
우찌무라 간조는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했던 일본의 양심적 지성 야나이하라 다다오(1893~1961) 동경대 전 총장을 비롯해 일본을 이끈 영향력 있는 제자들을 키워냈다. 그런 그가 자경단으로 활동했다니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순찰활동을 했겠지만, 조선인과 중국인을 살해하는 데는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삿포로 농업학교는 홋카이도 농대가 되었다. 20여 년 전 방문했을 때 교문 앞에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精讀(정독)"이라고 새겨진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아마도 윌리엄 클락( 선교사의 독서운동(성경읽기)의 역사성과 정신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학교 1층 강당 한 칸에는 초기 학교의 역사자료와 함께 윌리엄 클락 선교사의 발자취를 담은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의 동상에는 그가 일본을 떠나면서 제자들에게 남긴 “Boys be ambitious"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Boys be ambitious in Christ"라고 했다. "소년들이여, 그리스도 안에서 야망을 품으라"이다.
삿뽀로 시내에서 1시간 거리인 아사히카와 작은 숲에는 그 유명한 크리스천 소설가 <빙점> 작가 미우라 아야꼬 선생의 기념문학관이 2층 규모로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빙점>은 일본 기독교의 순교사를 다룬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보다 널리 읽혀지고 있는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다.
문학기념관을 방문하는 관람객 중에 1년에 1~2명은 미우라 아야꼬의 삶과 소설을 읽고 예수를 믿겠다고 결단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의 남편은 당시 그 지역 교회들에 미우라 아야꼬 여사가 쓴 책을 기증했다고 들었다.
미우라 아야꼬 여사가 생전에 그 지역에서 구멍가게(상점)를 하다가 늦은 나이에 작가로 등단해 유명 작가가 되었기에 지역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하고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 1980년 8월 12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80세계복음화대성회에서 김준곤 목사가 기도를 하고 있다.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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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선교를 기반으로 평생을 '어머니처럼 하나밖에 없는 내 조국'을 끌어안고 민족복음화운동에 헌신하셨던 스승 김준곤 목사님은 누구보다 민족을 사랑하신 예레미야 선지자 같은 분이셨다.
예수님과 민족 복음화를 도전하실 때마다 말씀을 잇지 못하시고 눈물을 보이셨다.
김 목사님은 <민족복음화의 환상과 기도>에서 (민족복음화운동의 결과로 인하여) "그리하여 수십 만의 젊은이들이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소서."라고 도전하셨다.
김 목사님은 우리의 눈이 나라와 민족을 넘어 세계 열방을 품고 나아가야 함을 몸소 실천하셨던 것이다. 민족주의를 넘어설 때 비로소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사역을 통해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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