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정원 제1호가 있는 정원의 도시에서 살다 보니 정원에 대한 책을 관심 있게 읽게 된다. 이번에 읽은 책은 비겐 구로얀의 <정원에서 하나님을 만나다>이다. 영성이 깊은 신학자의 저서다.
그는 이사하는 곳마다 정원을 만들고 정원을 영혼을 위한 오솔길로 삼아 거닐며,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듯이 신선한 묵상의 글들을 퍼 올리고 있다. 역자 김순현 목사 역시 비밀의 정원을 가꾸며 맑은 영성을 가졌다.
구로얀은 매일 흙을 만지고 뿌리면서 “나는 흙으로 지어졌고 언젠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떠올린다.”라고 했다. 구로얀은 신학자이면서도 성소나 서재에 있는 시간보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땅은 생명으로 북적인다. 온갖 종류의 벌레들, 미생물들로 가득하다. 작은 씨앗이 건강한 땅에서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음처럼 의롭고 흠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면 그분 안에서 새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 비겐 구로얀 저작 정원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 공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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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원을 일구는가? 생필품을 얻음만이 아니라, 정원은 아담의 서글픈 탄식을 기억하게 하며 낙원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꿈을 꾸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원을 가꿈은 우리의 최초의 고향을 개척하는 노동이 된다.
닛사의 그레고리우스는 아가를 주석하면서 “우리는 정원이라는 상징을 통해 진짜 정원사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정원을 새롭게 일구는 것을 알게 된다. 그분의 정원은 우리 자신이다. 그분은 낙원에서 인간 본성을 일구신 분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 국가정원에서 예쁘게 피어난 쪽두리꽃 © 공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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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텅 빈 무덤 밖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정원사를 의미하는 동산지기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분은 정원사의 대가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이 일구시는 천상의 신민(臣民)일 뿐만 아니라 그분의 도제(徒弟)이기도 하다.
우리가 정원을 가꿀 이유는 사람은 정원사의 대가이신 분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원을 가꾸는 만큼 그분의 형상대로 자란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구시는 밭일 뿐 아니라, 그분이 회복하고 계신 낙원에서 그분과 힘께 일할 동료 정원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겸손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정원을 일굴 때 우리 주위에서 낙원이 자라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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