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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와 선교사 출신 교회 브라운 목사, 포항 방문
“美 선교사들 한국에 뿌린 복음의 씨앗․열매에 큰 감동”
 
이수미   기사입력  2023/05/31 [00:36]

 

1905년 포항제일교회를 세우는 등 대구․경북선교의 꽃을 피운 제임스 아담스(″ 안의와) 선교사를 파송한 미국 캔자스주 토피카시 토피카제일교회 샌드라 브라운 담임목사가 지난 28일 포항을 찾았다.

▲ 1905년 포항제일교회를 세우는 등 대구․경북선교의 꽃을 피운 제임스 아담스(″ 안의와) 선교사를 파송한 미국 캔자스주 토피카시 토피카제일교회 샌드라 브라운 담임목사가 포항을 찾았다.  © 뉴스파워



이날 오후 이두우 포항제일교회 원로장로 초청으로 포항마린호텔(옛 청룡회관)에서 ‘토피카제일교회 샌드라 브라운 목사 포항방문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 자리에는 브라운 목사와 그의 딸, 황기석 예장통합 역사위원장, 소기천 한국교회정론 대표, 박주홍 리차드위트컴 기념회 대표, 박진석 포항기쁨의교회 담임목사, 신성환 포항목양테마교회 목사, 플린백 변호사(통역) 등이 함께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보내온 환영사를 통해 “미국에서 오신 샌드라 브라운 목사와 따님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120년 전 토피카교회 청년들을 한국선교사로 조선 땅에 보내 복음의 빛을 비추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이 바르게 설 수 있었다”고 감사했다. 이어 “브라운 목사님과 따님이 한국 속의 한국을 느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두우 장로는 브라운 목사에게 꿀 20박스와 인견이불 두 세트를 선물하고 감사했다.

 

브라운 목사는 만찬 뒤 안의와 선교사가 개척한 포항제일교회(당시 포항교회)와 교회 역사관을 둘러봤다. 그곳에서 안의와 선교사의 열정과 선교열매를 확인하며 큰 감동과 도전을 받았다.

 

브라운 목사는 “지금 미국은 영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토피카제일장로교회 선교사님들이 조선에 뿌린 복음의 씨앗과 열매를 보며 엄청난 감동과 열정을 얻을 수 있었다. 미국에 돌아가면 이 내용을 보고하고 미국이 다시 지구촌 선교로 새로워지고 한미동맹이 한층 강화될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브라운 목사는 지난 26일 부산초량교회를 방문, 역사관을 둘러본 뒤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리차드 워트컴 장군 묘역을 참배했다.

 

27일에는 대구제일교회에서 설교한 뒤 동산의료원(옛 제중원)을 둘러봤다. 28일 포항 방문에 이어 29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토피카제일교회 출신 안의와 선교사는 대구경북에서 125개의 교회를 개척했다.

안의와 선교사와 숭실학교 설립자 윌리엄 베어드(한국명 배위량) 선교사, 찬송가 작사가 부인 애니 베어드(″ 안애리) 선교사, 윌리엄 블레어(″ 방위량) 선교사, 조지 맥큔(″ 윤산온) 선교사 등이 모두 토피카제일장로교회 출신으로 한반도에 파송돼 수많은 교회와 학교 등을 세웠다. ‘6·25전쟁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위트컴 장군도 이 교회 출신이다.

 

▢ 안의와 목사가 세운 포항제일교회의 열매

포항제일교회는 칠포교회, 용흥교회(현 늘사랑교회), 북부교회(현 기쁨의교회), 동부교회(현 송도교회), 대련교회, 장동교회(현 송동교회), 죽천교회(현 그루터기교회), 우각교회, 구계교회, 환호교회 등을 개척했다. 해외교회 개척도 29곳이나 된다.

1911년 11월에는 영흥초등학교를 설립했으며, 포항 3·1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주동자 6명이 체포되어 실형을 받았다.

 

▢ 대구·경북 선교의 아버지 ‘안의와 선교사’

안의와(James Edward Adams·제임스 에드워드 아담스) 선교사는 대구·경북지역 선교의 아버지로 불린다.

안의와 선교사는 1895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해 부산선교부에서 2년간 한국어와 지방풍습을 공부하고 1897년 대구 선교부로 파송된다.

 

이듬해인 1898년 자신의 집에서 교회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대구제일교회의 모태가 됐다. 의사인 죤슨 선교사와 함께 제중원을 설립했다. 이 제중원이 지금의 동산병원이다. 계성중학교도 세웠다. 지금의 대구제일교회와 동산병원 부지, 계명대학교의 구 캠퍼스 모두 안의와 선교사가 선교사역 가운데 확보한 땅이다.

그는 전 재산을 복음전도기금으로 내놓았고, 1923년 대구선교부를 은퇴하기까지 40년가량 한국선교를 위해 드렸다.

 

그는 26세 젊은 나이에 한국에 와서 사역 중 아내 넬리 딕(43세)을 잃었지만 고통가운데에서도 조선 사랑을 이어가 주위를 감동시켰다.

그의 장남인 안두화 선교사는 계명대학교 설립자이며, 포항선린애육원 설립자 중 한 명이다.

 

안의와 선교사는 포항지역에서 흥해교회(흥해중앙교회·흥해제일교회의 전신)와 포항교회(현 포항제일교회), 방산교회(장기교회 전신) 등을 개척했다.

안의와 선교사가 설립한 경북지역 교회는 최소 26개나 됐고, 전도기금으로 본인 대신 전도인을 파송해 설립한 교회도 1930년 1월 당시 경북노회 전체 설립교회의 25%나 됐다. 이 전도기금에 의해 계속 운영된 교회는 73개나 됐다.

대구·경북 최초 교회인 대구제일교회의 설립자는 배위량 선교사(William M. Baird·베어드)와 안의와 선교사로 기록돼 있다. 대구제일교회의 설립일은 1893년이다.

 

▢ ‘6·25전쟁 고아의 아버지’ 위트컴 장군

‘6·25전쟁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위트컴 장군은 유엔군 부산군수기지사령관으로 한국에 오기 전에 가족과 함께 토피카제일장로교회를 다니며 선교사의 꿈을 키웠다.

 

위트컴 장군은 6·25전쟁 전후로 부산군수기지사령관으로 근무하면서 1953년 11월 27일 부산역전 대화재로 6천여 세대, 3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추위와 배고픔에 떨자 군수 창고를 열어 잠을 잘 텐트와 먹을 것을 나눠줬다.

 

이 일로 위트컴 장군은 미국 연방의회의 청문회에 불려갔다.

의원들의 쏟아지는 질책에 장군은 조용히 말했다. “우리 미군은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지만, 미군이 주둔하는 곳의 사람들한테 위기가 닥쳤을 때 그들을 돕고 구하는 것 또한 우리의 임무입니다. 주둔지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고, 이기더라도 훗날 그 승리의 의미는 쇠퇴할 것입니다”

의원들은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온 장군은 전쟁이 끝나고도 돌아가지 않고, 군수기지가 있던 곳을 이승만 대통령한테 돌려주면서 ‘이곳에 반드시 대학을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부산대학이 설립된 배경이다. 그러나 부산대 학생도, 교직원도, 졸업생도 이런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다.

장군은 메리놀병원도 세웠다.

 

한편, 이두우 포항제일교회 원로장로는 2018년 8월 토피카제일장로교회를 방문, 한국에 복음을 전한 이 교회 출신 선교사들을 확인 한 뒤 2020년 '토피카제일장로교회 조선에서의 사역'을 발간했다. 
그간 안의와 선교사 등 토피카제일교회 출신 선교사들이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알려져 있었다.

포항=이수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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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5/31 [00:36]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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