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가 22일 일본을 방문해 일제가 한국에 자행했던 만행에 대해 사죄운동을 펼쳤던 고 오야마 레이지 목사를 조문했다.
▲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가 22일 일본을 방문해 일제가 한국에 자행했던 만행에 대해 사죄운동을 펼쳤던 고 오야마 레이지 목사를 조문했다. © 소강석
|
지난 16일 96세 일기로 소천한 오야마 레이지 목사는 소 목사의 초청으로 2015년 8월 서울시청 광장과 광화문에서 숭례문까지 이르는 대로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한국교회 평화통일 기도회’에 초청을 받아 30만 명이 넘게 모인 성도들 앞에서 엎드려 사죄의 절을 했으며, 새에덴교회에서 열린 행사에도 참석해 일제가 행한 만행을 사죄한 바 있다.
소 목사는 "그런 일을 하실 때 일본에서 얼마나 많은 공격과 비난의 화살을 받으셨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분은 그런 것에 굴하지 않으시고 일본의 양심이요, 예수님의 화해의 정신을 가지고 꿋꿋하게 한국을 향한 사죄와 한일 간의 화해의 다리를 놓아가셨다."고 추모했다.
▲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가 22일 일본을 방문해 일제가 한국에 자행했던 만행에 대해 사죄운동을 펼쳤던 고 오야마 레이지 목사를 조문했다. 고인의 아들인 세이지 오야마 목사를 위로하는 소강석 목사. © 소강석
|
소 목사는 "조문도 조문이거니와 상주이신 오야마 세이지 목사님을 만난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이고 영광이었다. 그 아드님이신 세이지 목사님도 아버지의 정신과 가치를 그대로 마음에 담고 계셨다."고 밝혔다.
이어 "그분이 초등학교 시절, 그때는 잘 몰랐지만 아버지 목사님께서 제암리 교회 재건 운동에 앞장서셨던 것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그리고 자라면서 아버지가 해오신 한국에 대한 사죄와 사과의 정신이 얼마나 숭고하고 가치가 있는지를 깨달았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가 22일 일본을 방문해 일제가 한국에 자행했던 만행에 대해 사죄운동을 펼쳤던 고 오야마 레이지 목사를 조문했다. © 뉴스파워
|
또한 "우리는 레이지 목사님의 시신 앞에서 손을 잡고, 아니 허깅(Hugging)을 하며 한일 간의 화해와 평화의 브릿지를 서로 함께 놓아가자고 다짐했다."며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저는 한국에서부터, 그분은 일본에서부터 화해의 다리를 놓아가자고 악수하며, 껴안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가 22일 일본을 방문해 일제가 한국에 자행했던 만행에 대해 사죄운동을 펼쳤던 고 오야마 레이지 목사를 조문했다. 고인의 아들 세이지 오야마 목사와 한일 간 화해와 평화의 브릿지 역할을 함께하자며 허깅하는 소강석 목사. © 소강석
|
다음은 소 목사가 자신의 SNS에 올린 전문.
오늘 저는 아침 비행기로 고(故) 오야마 레이지 목사님의 장례식에 조문을 하였습니다.
오야마 목사님은 한국인으로서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분이시지요. 그분은 지난 40여 년간 일본인이 한국인을 압제하고 말살한 행위를 앞장서서 사과하고 사죄를 하셨던 분이십니다. 특별히 제암리 교회에서 저질렀던 일본의 만행을 일본인을 대표해서 통렬히 반성하시고, 참회하는 차원에서 제암리 교회를 재건하는 일에 앞장을 서셨습니다. 저희 교회에도 두 번이나 오셔서 사죄의 절을 하셨습니다.
특별히 2015년, ‘광복 70주년 평화통일 기도회’에 저의 초청으로 오셔서 30만 명이 넘게 모인 군중들 앞에서 기꺼이 엎드려 사죄의 절을 하셨습니다. 그런 일을 하실 때 일본에서 얼마나 많은 공격과 비난의 화살을 받으셨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분은 그런 것에 굴하지 않으시고 일본의 양심이요, 예수님의 화해의 정신을 가지고 꿋꿋하게 한국을 향한 사죄와 한일 간의 화해의 다리를 놓아가셨습니다.
그러다가 지난주(5월 16일)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소천 소식을 듣고 마음에 엄청난 부담감을 가졌습니다. 물론 조전을 보낼 수도 있고, 조화를 보낼 수도 있지만, 그분에 대한 예의뿐만 아니라 그분의 정신과 가치를 이어가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직접 조문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비행기로 왔다가 조문을 마치고 저녁 비행기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조문도 조문이거니와 상주이신 오야마 세이지 목사님을 만난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이고 영광이었습니다. 그 아드님이신 세이지 목사님도 아버지의 정신과 가치를 그대로 마음에 담고 계셨습니다. 그분이 초등학교 시절, 그때는 잘 몰랐지만 아버지 목사님께서 제암리 교회 재건 운동에 앞장서셨던 것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자라면서 아버지가 해오신 한국에 대한 사죄와 사과의 정신이 얼마나 숭고하고 가치가 있는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레이지 목사님의 시신 앞에서 손을 잡고, 아니 허깅(Hugging)을 하며 다짐했습니다. 한일 간의 화해와 평화의 브릿지를 서로 함께 놓아가자고 말입니다.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저는 한국에서부터, 그분은 일본에서부터 화해의 다리를 놓아가자고 악수하며, 껴안고 약속하였습니다.
오야마 레이지 목사님이 한국을 오실때마다 의전을 담당하셨던 유송근 장로님이 함께 조문을 해서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오야마 레이지 목사님의 정신과 가치가 일본 교회, 그리고 한국 교회에 서로 확장되고 소통이 되기를 바라며, 목사님의 소천에 다시 한번 조의를 표하며 추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