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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대 심상법 명예교수] 현재와 미래 봉사권력자들에게…
심상법 목사(총신대 명예교수, 기획실장, 신대원장, 일반대학원장, 총장대행 역임)
 
심상법   기사입력  2023/05/02 [11:28]

 

산을 내려와야 산이 보인다.”는 어느 시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얼마 전 증경 총회장을 지내셨던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매우 편안해 보이셨다. 얼굴에는 비움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저런 모습이 하나님이 주시는 모습인데 하는 생각을 하며 아내와 함께 처소로 돌아왔다.

▲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 심상법 교수(총신대 신대원)     ©뉴스파워

 

절대 권력은 절대로 망한다.’는 교훈은 <반지의 제왕>의 영화를 통해서도 보여준다. 타락의 근원이 되는 절대 반지(권력)의 유혹 앞에 있는 골룸의 표정과 모습이나 심지어는 반지 원정대의 호빗 프로도가 마지막 절대 반지 앞에서 보인 표정과 모습은 너무도 눈에 선하다. 영화를 보면서 보이지 않는 망토의 힘까지는 어느 정도 방어적 의미에서 용납이 되었지만 그래도 마음속에는 나도 저런 안 보이는 힘의 망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절대 반지 앞에 서 있는 인물들의 표정과 모습은 모두들 괴물 같았다. 그것은 절대 반지를 이용해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수립한다고 생각을 갖지만 결국 자신도 악의 군주(사우론)처럼 괴물이 되어 가는 모습은 영화의 서사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절대 반지를 이용하려는 시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점이 한사코 절대 반지의 소유를 거부한 간달프의 모습이다. 작중의 악의 군주인 사우린은 당연하지만 안내자인 골륨과 권력욕이 없다고 하는 반지원정대의 사명을 가진 샘과 프로도까지 절대 반지 앞에 있는 극중 인물들의 표정과 모습은 가관이었다. 과연 나는 파괴해야 되지만 끼고 싶은 유혹의 절대 반지 앞에 어떤 마음과 표정과 모습을 가질까? 나의 그런 마음과 표정과 모습을 내가 객관적으로 볼 수는 있을까? 오늘 우리의 삶에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의 모습처럼 인간은 이렇게 절대 권력의 유혹 가까이에만 가면 점점 괴물이 되어간다. 우파의 정치인(목사?)도 마찬가지이고 좌파의 86세대도 마찬가지이다. 진영 둘 다 다 싸잡아 말해도 과히 틀리지는 않다. 섬기기 위해 권력의 자리로 나아가는데 권력의 자리에 앉거나 가까이만 가도 비뚤어지고 괴물이 된다. 소설과 영화나 드라마가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의 모습 속에 슬픈 것은 미래 정치 세대인 청년 민주 정치인까지 그러니 미래가 어둡다. 최근에 거대 야당인 민주당의 방송법 개정에 반대하여 <기자 반지 원정대>가 결속되었다고 한다. 슬픈 모습이다. 자주 화면에 비친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고 말을 듣노라면 추하면서도 심지어는 느끼하기까지 하다. 권력의 블랙홀 속에 있거나 그 아우라 근처까지만 가도 마치 반지의 제왕 영화중의 인물들처럼 괴물들이 되어간다. 이것이 어디 정치계만 그런가? 종교계도 다를 바가 없다. 모든 권력의 늪에서 보이는 모습이기도 하다. 문화권력, 언론권력, 법조권력, 경제권력, 교육권력, 정치권력, 심지어는 종교권력에 이르기까지. 이것이 권력의 힘이 가진 속성인 모양이다. 물론 필자는 권력 자체를 혐오하지 않는다. 권력이 가진 순기능과 그 역할이 있다. 제가 섬기고 따르는 그 분, 그분만은 우리에게 담백한 맛과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준다.

 

절대 권력자인 그 분. 천지를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 되신 분이시지만 동등 되심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시며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2:5-8). 섬김과 사랑과 희생을 통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절대 권력을 비우시고 내려놓으심으로 우리를 자신의 친구로 삼으셨다(15:15). 그래서 우리 모두는 그 분을 우리의 참된  친구로 더 나아가 우리의 구주로 섬기며 경배한다. 어찌 이것이 성자 하나님만의 이야기인가? 성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그 아들 독생자를 버리기까지 하심으로 스스로 패륜의 아버지가 되신 비련의 아버지이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우리를 자신의 자녀들과 후사로 삼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부르며 기도한다. 성령 하나님 또한 우리에게 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이 진리를 경험하게 하신다. 삼위 하나님의 이 은혜와 사랑을 우리는 설교 때마다 축도로 듣는다.

 

참된 권위(exusia)와 힘(dunamis)은 어디에서 오는가? 캄펠로는 <권력의 현혹(Power Delusion)>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권력은 쥘 때 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비우고 내려놓을 때 온다고 빌 2:5-8을 통해 설파한다.

 

일반 백성이며 학교 또는 교회를 잘 섬기기 위해 권력의 자리로 나아가는, 아니 나아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여,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을 다시 보고, 주님의 모습(2:5-8)을 다시 살펴보라. 제발 절대 권력의 반지의 유혹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라. 곧 총신대 이사장 선거가 있다고 한다. 언젠가 학교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 반지의 이야기를 경고같은 권면(제안?)으로 이야기 했지만 결국 사단이 났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교단 내 개인이든 특정 권력 그룹이든 절대 권력은 절대 망한다. 권력의 속성을 깊이 반추해 보라. 혹시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자신(집단)을 보지 못한다면 미래는 어둡고 파멸은 속히 온다. “나눔만이 나뉨을 막는다.”는 평범한 진리는 권력의 자리에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섬김의 자리라고 말하는 권력의 자리에는 더 없이 소중한 진리이다. 함께 함(연합)과 상생과 나눔의 모습을 가질 때 더 큰 발전이 있음은 자명하다. 신학교 잔치가 끝나가고 이제 미달 사태가 시작된 시점에 교단 내 많은 후원과 협력을 통해 학교 발전을 이루기를 원한다면 어떤 길을 택하여야 할까? 깊이 고민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한다. 봉사권력을 추구하려는 이들에게 주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를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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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5/02 [11:28]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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