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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목사 설교 ] 성자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자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일원교회 주일예배 설교(2022.9.4)
 
김명혁   기사입력  2022/09/04 [15:05]

 

▲ 사회를 본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김명혁 목사     ©뉴스파워 범영수

성경: 11:28-30

 

제가 20081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48개월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일원동 일원교회는 20211017일 주일 처음으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22327일 주일 두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나를 만드신 신앙의 선배님들 10분을 바라보며라는 제목으로 저의 삶에 대한 간증 설교를 했는데, 오늘 202294일 주일 여기 세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 주신 이성은 목사님과 성도들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무슨 제목의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렀더니 이성은 목사님이 오늘 마 11:28-30을 분문으로 삼고 "성자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자"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마 11:28-30을 분문으로 삼고 "성자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자" 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너무너무 귀중하고 너무너무 보배스러운 제목의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본문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8-30).

 

성경은 성자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의 귀중함을 계속해서 지적했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5).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고후 10:1).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1-3).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딤후 2:24,25).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3-5).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3:12-14).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성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성부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의 뜻을 따라서 하늘 영광을 다 내어 버리시고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저주의 죽음을 몸에 지니시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심으로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지옥의 저주에서 구원하신 구세주이신데 성자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모든 죄인들을 하늘의 공의에 따라서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대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구원의 손길을 펴시는 온유와 겸손의 극치를 몸에 지니신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놀라우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9:12,13). 성자 예수님께서는 나중에는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면서 반드시 지옥의 저주를 받아 마땅한 로마 사람 군인들과 죄인들을 향해서 다음과 같은 온유와 겸손그리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죄 사함과 축복의 선언을 하셨습니다. 아주 긴 말씀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 하고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가고 예수의 아는 자들과 및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23:33-49). 성자 예수님께서는 온유와 겸손이 충만하신 너무너무 놀라우신 분이셨고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충만하신 분이셨고 그리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죄 사함과 축복이 충만하신 분이셨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은 거기에서 그치고 만 것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성자 예수님을 핍박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한 사울을 온유와 겸손의 모습으로 부드럽고 따뜻하게 부르셨습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9:1-7). 결국 사울의 운명은 성자 예수님의 극단적인 온유와 겸손으로 인해서 완전하게 바뀌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중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1,2).

 

성자 예수님께서는 또한 배신자 베드로와 제자들을 온유와 겸손의 모습으로 부드럽고 따뜻하게 부르셨습니다. 배신자 베드로와 제자들이 디베랴 바다에 가서 고기를 잡으려고 했는데 아무 것도 잡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배신자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온유와 겸손의 모습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모습으로 다음과 같은 일곱마디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 일곱마디 말씀들을 해변 칠언이라고 합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21:5). “그물을 배 오른 편이 던지라”(21:6). “와서 조반을 먹으로”(21:12).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21:15). “내 어린 양을 먹이라”(21:1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21:18).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21:19). 결국 온유 겸손하신 모습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모습으로 하시는 말씀들 일곱 마디를 들은 베드로와 제자들의 운명은 완전하게 바뀌어 지고 말았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는 소 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죄와 허물이 가득한 일곱 교회들을 온유 겸손하신 모습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모습으로 부르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온유와 겸손이 충만하신 분이셨고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충만하신 분이셨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2:1,4,5). “서머나 교회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2:8,10).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네게 두어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2:12,14,16).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2:18,20).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3:1).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어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3:7-8).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내가 네 행위를 아너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3:14,15,19).

 

성자 예수님께서는 온유 겸손하시고 부드럽고 따뜻하신 분이신데 나중에는 조선 나라의 불교와 선도교의 지도자인 길선주 도사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부르셨고, 선교사를 때려서 죽이려고 했던 평양의 깡패 두목 이기풍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부르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너무너무 온유 겸손하시고 너무너무 부드럽고 따뜻하신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온유 겸손을 지니고 부드럽고 따뜻하게 살라고 분부하시는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목회자이신 한경직 목사님의 온유 겸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예수님 닮은 온유와 겸손의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한경직 목사님만큼 예수님 닮은 온유와 겸손을 몸에 지닌 사람도 별로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예수님께서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순종하면서 사셨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9,30). 한경직 목사님은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부드럽고 따뜻하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신 온유와 겸손의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한경직 목사님을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한국교회의 귀중한 지도자들이 한경직 목사님을 가리켜 목회의 위대한 신화를 남겨놓으신 우리들의 선한 목자”(김선도 목사), “예수님을 닮은 분”(림인식 목사),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목회자이며 봉사자이며 사랑의 사도이며 20세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성자”(정진경 목사), “길고 긴 20세기를 흔들림 없는 자세로 사도의 길을 걸어오신 목사님”(강원용 목사), “세계에서 성자로 불리는 목회자”(강신명 목사), “내가 흠모하고 흉내 내고 닮을 목자”(김준곤 목사), “한국교회의 백 년 역사에 있어서 목회자로서의 영원히 기억될 최고봉에 서신 분”(김희보 목사), “뵙기만 해도 감격의 눈물이 볼을 적시게 하는 분”(신현균 목사), “나의 믿음의 아버지”(박조준 목사), “목회자의 삶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옥한흠 목사),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김용기 장로), “한국교회에 내리신 하나님의 귀중한 선물”(손봉호 교수), “가장 존경하는 사람”(125명 기자들) 이라고 칭송을 했습니다. 빌리 그래함 박사는 다음과 같은 진솔한 고백을 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제가 가장 존경하고 사모하는 분입니다. 20 세기의 가장 위대한 목회자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한 목사님과 같이 있으면 저는 부족한 부분들을 많이 느꼈기에 그 분을 닮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불교의 송월주 스님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이 나라 민중을 사랑과 자비의 정신으로 돌보신 목자와 같은 분입니다. 특히 월남 피난민들과 이 땅의 민중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서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도덕적으로 일깨워 올바로 살도록 지도하신 민족의 지도자셨습니다. 남북간의 화해와 교류,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에도 기초를 마련하신 분이십니다. 나는 한경직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천도교의 김재중 교령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그 분은 한 마디로 성자였어요. 한경직 목사님은 나라와 민족을 참으로 사랑하고 지도하신 민족의 지도자였고 20세기의 성자였어요.” 강하고 자만한 사람은 이와 같은 진솔한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따뜻하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신 온유와 겸손의 사람만이 이와 같은 진솔한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함이 아닌 약함을 몸에 지닌 사람만이 온유와 겸손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평생 약함질병의 고난을 몸에 지니고 사셨는데 1972423일에 행한 약할 때에 강하니라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인간이 약할 때는 흔히 겸손하여 집니다. 건강하던 이가 중병에 걸려 약해지면 겸손하여 집니다. 교만은 만죄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약할 때에 기도를 더하게 됩니다.”

 

결국 한경직 목사님은 사랑과 섬김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마 한경직 목사님만큼 착함과 가난을 몸에 지니고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신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자들을 돌보기 위해서 신의주에서는 고아원과 보린원을 설립하여 고아들과 노인들을 돌아보았고 나중에는 영락 보린원을 비롯하여 모자원, 경로원, 노인요양소, 농아원, 장애아원, 어린이 집, 재가노인 복지상담소 등을 세웠고 월드비전을 창설했고 사랑의 쌀 나누기운동도 펴 나아갔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말이나 지식으로 설교하고 목회하신 분이 아니라 착함가난의 삶으로 설교하고 목회하신 분이었습니다. 영락교회의 집사인 이우근 부장판사는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는 삶으로 설교하는 설교라고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사자 후 같은 명 설교도 가슴을 쥐어뜯게 하는 감동적인 웅변도 할 줄 모르던 그는 그저 바보처럼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손과 발로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설교하고 선포했을 뿐입니다. 그는 바보처럼 살다 가셨습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장 멋진 자동차를 탈 수 있었는데도, 그는 바보처럼 좋은 옷 대신에 소매가 닳아 빠진 옷을 입었고 멋진 차 대신에 버스를 타거나 남의 차를 빌려 타곤 했습니다. 가장 안락한 아파트에 살 수 있었는데도, 바보같이 그것을 마다하고, 산꼭대기 20평짜리 교회사택에 들어갔습니다.” 시인 고훈 목사님은 한경직 목사님을 기리며 가난한 목자, 사랑의 목자, 작은 예수라고 목이 메어 불렀습니다. “한 사람을 만인만큼 소중하게 만인을 한 사람 대하시듯 어떤 요구에도 거절 못하시고 누구의 의견에도 손들어주시고 단 한 사람에게도 섭섭함 주신 일 없으신 한국의 성자여 한국의 작은 예수여. 모든 것 가지고도 아무것도 없으신 가난한 목자, 아무 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 다 가지신 사랑의 목자여. 우리가 오늘 여기 이토록 슬픈 것은 아무리 둘러봐도 당신 같은 목자는 하나도 없는 이 텅 빈 세상이 너무 슬퍼서 입니다.” 정진경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 분은 어떤 물욕이나 명예욕이나 사사로운 욕심도 없는 깨끗하고 청빈한 삶을 사셨습니다.” 손봉호 교수는 한경직 목사님처럼 청렴하고 철저하게 절제하는 성화된 삶을 산 사람은 전 세계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평신도인 박호성 장인숙 부부는 한경직 목사님의 청빈한 삶의 모습을 바라보는 숙연한 행복감을 이렇게 피력했습니다. “남한산성에서 뵈올 때에는 팔목이 헤진 쉐터를 입고 계셔 가난한 할아버지를 뵙는 것 같아서 그 검소함에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목사님을 생각만 해도 행복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목회 사역의 시작부터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는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 프랜시스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1932년 귀국 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신의주를 첫 목회지로 선택했고 1933년 신의주 제2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는 1936년경 고아원을 설립하여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1939년에는 고아들과 노인들이 함께 기거할 수 있는 보린원을 만들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인생의 삶을 지탱해 주는 세 가지가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항상 강조하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강조하면서 섬김의 삶을 살았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자 그리고 원수들에게까지 사랑을 베풀며 사는 것이 인간의 가장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이라고 강조하시면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관심과 사랑은 민족과 나라에 국한하지 않고 일본과 북한과 아프리카를 포함한 세계에 미쳤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평생 한국 나라와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봉사한 분이었지만 동시에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넘어서서 세계를 품고 사랑하며 봉사한 사랑과 섬김의 성자였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1958427일에 행한 우주시대와 신앙생활이란 제목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설교했습니다. “우주시대의 종교는 먼저 민족이나 국경을 초월한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종교는 전 인류를 포섭할 수 있는 사랑의 종교,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의 종교이어야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종교는 죄인을 구원할 수 있는 속죄, 구령의 종교이어야 될 것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약함과 함께 주변성을 지니고 모두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신 사랑과 섬김의 성자였습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도 온유와 겸손을 지니고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신 분이 셨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은 너무 높은 수준의 십자가 복음적인 삶을 살았는데 우리들은 너무 낮은 수준의 세속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은 너무나 주님 닮은 십자가의 복음적인 삶을 살았는데 우리는 너무나 주님 닮지 않은 세속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 프랜시스의 글을 읽고 나서 무한한 충격과 감동을 느꼈고 한경직 목사님의 삶을 살피고 나서 처절한 고뇌와 절망적인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저도 성 프랜시스와 한경직 목사님처럼 주님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며 온유와 겸손을 지니고 사랑과 섬김의 삶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살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게 됩니다. 저도 모든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하며 온유와 겸손을 지니고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도 가난과 고통을 짊어지고 가난과 고통이 되면서 온유와 겸손그리고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부족한 우리들에게 사도 바울과 성 프랜시스와 한경직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몇 백분의 일이라도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악함착함주변성을 몸에 지니고 주님 닮은 온유와 겸손그리고 사랑과 섬김의 삶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살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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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9/04 [15:05]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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