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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박세직 장로] 김준곤 목사님과의 인연을 생각하며
박세직 장로-전 국회의원,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회장, 국가조찬기도회 회장
 
뉴스파워   기사입력  2022/09/04 [14:26]

한국CCC 62년의 역사는 고 김준곤 목사(1925.3.28-2009.9.29)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1958년 한국CCC 설립하고 대학생 선교를 못자리판으로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김준곤 목사의 팔순을 기념해 지난 2005년에 제자, 지인, 국내외 동역자 110여 명으로부터 글을 받아 [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라는 기념문집을 만들었다. 기념문집에 원고를 주셨던 분들 중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 역사적인 글들을 뉴스파워에 다시 올린다. (편집자 주)

▲ 박세직 장로     ©뉴스파워



김준곤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81년과 2년 사이 제가 수도경비 사령관(지금의 수도방위사령부 전신)으로 재직할 때였습니다. 김 목사님으로부터 전갈이 와 목사님을 사무실로 모셔 대회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한국의 장래는 미래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청소년에게 달렸으며 그들에게 바른 인생관과 큰 꿈을 심어 주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역설하셨고 이를 위해 대학생들을 상대로 CCC 운동을 전개하고 계신다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들 대학생을 영적으로 지도하고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려 하니 건축 예정지가 수도경비사령부 군사 작전상 통제구역 내에 위치한 데다가 청와대에 인접해 있어 건축 허가를 얻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특정 지역에 대한 건축은 수도 경비 사령관의 명목상의 허가사항이기는 했으나 사전에 청와대와 국방부 등 관계기관의 동의가 있어야만 기능했습니다. 저는 김 목사님으로부터 학교의 위치와 관련 도면 및 서류를 받고 일차적인 검토를 지시했습니다. 과거 청와대 기습사건 이후 주변의 건축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던 때인지라 실무자가 일차로 청와대 경호실과 협의했을 때는 청와대 주변에 다수의 학생을 응집하게 하는 건축 허가를 완강히 거부했었습니다.

 

저는 김 목사님의 인격과 성향, 그리고 대학생을 선도하시겠다는 대학생선교회의 근본 취지를 부연 설명하고 고층 건물을 세우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문제로 소요 같은 것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확약을 해 줌으로써 청와대와 관계기관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며칠 후 김 목사님께 학교 건축 허가서를 보내드렸더니 그렇게 기뻐하실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김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합니다.

 

그 후 김 목사님은 어려운 건축 허기를 단시일 내에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을 무척 고마워하시면서 저를 공석이나 사석에서 만날 때마다 옛날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저에 대한 치사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김준곤 목사님과 서울올림픽

 

저는 김 목사님을 알게 되면서부터 오히려 많은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1986년 저는 체육부 장관이 되어 '86 서울 아시아 경기대회와 '88 서울 올림픽대회의 조직위원장을 겸하여 대회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북한 정권은 이 양 세계대회를 방해할 목적으로 아웅산 폭파사건을 일으켜 각료급 인시를 17명이나 사망케 하는가 하면 김포공항에 폭탄을 터뜨려 행인 여러 사람을 숨지게 했고, 중동에서 귀국하는 근로자를 실은 KAL 858기를 폭파해 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사망케 하는 끔찍한 사건들을 유발하여 서울올림픽을 끈질기게 빙해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군사정부에 반대하는 학생들, 특히 운동권 학생들이 서울올림픽 반대를 위한 분신자살을 기도하는 등 격렬한 반대 시위가 잇달아 일어났고, 급기야는 서울올림픽을 결정했던 국제올림픽위원회마저 서울올림픽 개최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검토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서울올림픽이 암초에 부딪힌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오로지 하나님뿐이라는 생각에서 저 자신은 물론 교계 지도자와 성도들을 향해 서울올림픽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실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때 김준곤 목사님은 이와 같은 국민의 기도운동에 앞장서서 이 운동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학생들을 설득, 자제시킴은 물론 서울올림픽에 적극적으로 동참토록 권유해 주신 것입니다.

 

김 목사님을 비롯한 많은 교계 지도자들이 일으킨 서울올림픽을 위한 기도운동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전국적으로 실시된 새벽기도, 산상기도, 금식기도 등 갖가지 모양의 중보기도는 드디어 서울올림픽을 5() 올림픽(최다 참가, 최상의 화합, 최고의 성과, 최적의 안전/봉, 최대의 흑자)5()의 올림픽(데모, 폭력, 사건 사고, 독직 사건, 폭풍우가 없는 올림픽)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국제장애인올림픽(Paralympics) 4년마다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는 도시에서 거행하게 되어 있었으나 1984년 미국 LA 올림픽에서도 장소를 구하지 못해 동부의 롱 아이랜드에서 쓸쓸하게 개최해야만 했고, 그전에 있었던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서는 장애인이 한 사람도 없다.’라고 공언하여 장애인 올림픽을 치르지도 못했습니다.

 

서울올림픽 당시는 교계 지도자들의 뜨거운 기도 끝에 올림픽이 끝난 다음 장애인 올림픽을 인력, 시설, 물자, 자원봉사자 및 재정지원은 물론 개·폐회식까지 서울올림픽 때와 똑같이 출연해 줌으로써 장애인 올림픽을 동반 개최하여 세계인의 찬사를 받은 바 있습니다.

 

그 후 하계 올림픽과 국제장애인올림픽의 동반 개최가 하나의 전통이 되어 올림픽 역사상 하나의 큰 획을 긋게 되었습니다. 이 전통이 서울올림픽 이후 개최된 모든 올림픽에서 연연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목격할 때마다 무한한 긍지와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이 모두가 김 목사님처럼 어려운 이웃을 돕는 박애 정신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기독교계 지도자와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국가조찬기도회에 도움을 주신 김준곤 목사

 

1992년 저는 뜻밖에 고향 유지들의 권유를 받아 향리인 구미시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를 하여 14, 1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게 되었습니다. 국회에 들어가자 초선인 저에게 국회조찬기도회장이란 감투가 주어졌습니다. 110명가량의 기독교 국회의원의 친목과 영적인 성숙을 위해 매월 1회씩 조찬 기도회를 개최했고 매년 1회 대통령과 외국 기독교 지도자를 초청한 가운데 국가조찬기도회 준비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국회조찬기도회 초창기부터 이 운동에 참여하시고 직·간접으로 이바지해 오신 교계 지도자이심을 알게 되어 저는 한층 힘을 얻어 기회 있을 때마다 김 목사님을 찾아 크고 작은 일에 대한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때마다 김 목사님은 항상 반가운 얼굴로 저를 대해 주셨고 충고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국회조찬기도회가 주동이 되어 국회의원 장로성가대를 조직하여 불우 이웃이나 자선복지단체를 찾아 찬송을 부르고 위로하는 행사를 하는가 하면, 여야가 정책적인 의견 차이로 정치권에 이상기류가 생기면 여야 기독교 국회의원은 으레 국회 기도실에 나와 함께 찬송을 부르고 나라와 민족의 유익과 공의를 위해 정당을 초월해 함께 기도했습니다.

 

이때 김준곤 목사님은 여야 국회의원으로부터 많은 존경은 물론 당시 야당 의원들과 각별한 인연을 가지시고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중재 역할을 맡아 해주셨습니다.

 

한일 기독교 문화협의회와 일본선교

 

이미 잘 알려진 대로 김 목사님은 일본선교에도 크게 힘을 기울이고 오신 분입니다. 1994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전도집회 때 목사님과 동행하여 메시지를 전하도록 권유받고 동행한 적이 있었고 국제 CCC 총재인 빌 브라잇 목사의 전도 집회 때도 동행하여 메시지를 전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후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가 결정되어 제가 조직위원장으로 일하게 되었을 때 '88 서울올림픽 때의 경험을 살려 한일 간의 진정한 회개와 용서 그리고 우호 증진을 위한 기도회를 조직할 것을 건의하였던바 김 목사님께서 이를 쾌히 승낙하시고 일본의 저명한 목사들과 선교사들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이후 한일 두 나라의 기독교 지도자들과의 연합활동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어 수차례에 걸친 일본 측 기도회와 한국 측 2002 한일 월드컵 기독 시민운동 협의회의 상호 방문과 세미나를 개최할 수 있었고 지방 단위 순회 강연기도회 등을 통하여 양국 간에 기독교 문화 교류와 선교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것은 일본 측 교계 지도자가 다수 참석한 가운데 여의도광장에 설치된 대형 돔 안에서 수천 명의 대학생이 영하의 날씨에도 일주일이나 철야 금식기도를 하며 헌신하던 그 경건하고도 진지한 모습들입니다.

 

이와 같은 인연으로 저는 월드컵 준비기간에 일본의 한일 월드컵과 세계평화를 위한 현장 지원 활동 운동의 기수를 자처한 일본인 목사들의 안내와 초청으로 여러 번에 걸쳐서 일본의 방방곡곡을 두루 다니면서 강연과 간증을 하였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써 국경을 초월하여 영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모습들을 회상할 때마다 가슴에 뭉클한 감동하게 됩니다.

 

지금도 저는 이영덕 장로님과 함께 본 기독시민운동협의회의 명예회장으로 위촉받아 하나님 사업에 함께 헌신할 수 있는 것을 큰 기쁨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기쁨을 느낄 때마다 신앙지도자로서의 풍부한 인격과 학식과 지혜, 경건함과 따뜻한 인간애로 가득 채워 주산 김 목사님의 인자하시고 고매하신 인격 앞에 고개를 숙이며 지난날 베풀어 주선 친절한 지도와 갖가지 은혜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박세직 장로는 1933년 경상북도 칠곡군 출생으로,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학도병으로 입대했으며, 1953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95612기로 졸업했다. 1959년 서울대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사관학교 12기로 대통령 안보담당 특보와 수도경비사령관을 거쳐 1982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박세직 장로는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시절 총무처 장관, 체육부 장관, 국가안전기획부장 등 요직을 역임하고 88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와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지도력을 발휘해왔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과 신한국당 등에서 14~1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박세직 장로는 지난 2006년부터 재향군인회장에 취임해 국가 안보에 전력해왔다.

 

박세직 장로는 2009727, 향년 75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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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9/04 [14:26]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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