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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2.09.27 [07:19]
[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박국양 박사]거지 전도회에서 결성된 독수리 7형제
박국양 박사-가천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흉부외과 명예교수, 하나반도의료연합 이사장
 
정희수

 

한국CCC 62년의 역사는 고 김준곤 목사(1925.3.28-2009.9.29)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1958년 한국CCC 설립하고 대학생 선교를 못자리판으로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김준곤 목사의 팔순을 기념해 지난 2005년에 제자, 지인, 국내외 동역자 110여 명으로부터 글을 받아 [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라는 기념문집을 만들었다. 기념문집에 원고를 주셨던 분들 중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 역사적인 글들을 뉴스파워에 다시 올린다. (편집자 주)

▲ CCC 아가페 다운 박국양 박사     ©뉴스파워



제가 대학에 입학하던 1975년도는 유선 체제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구체화되 어 데모가 한창이었습니다. 입학식 날 충격을 받은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문교부 장관이 축사를 할 때 앞줄 대학원 학생들이 축사 도중에 일어서서 퇴장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졸업식에서 목격한 이상한 광경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1975년 처음 관악산으로 사시를 한 서울대학교에서의 기대에 찬 학교생활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데모 구경이 다였습니다. 3월이 지나고 4월이 되어도 데모는 계속되었고 저는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학생들의 박정희 하야소리가 친숙하게 들리게 되었습니다. 여름 방학이 되어서야 데모는 멈추었지만 가을 학기가 시작되자 다시 데모가 시작되었습니다. 방학 때는 고등학교 학생 집에 입주해서 학비를 벌었고 친구들과 시국도 논하고 소위 이념 동아리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성격이 지긋하지 못해서 그 이념 동아리에 아주 빠져들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이념 동아리가 유행이었고 어쩌면 당연한 시국적인 산물이었습니다.

 

학생들은 모든 것을 독재 국가와 독재자에게서 스트레스의 원인을 찾았습니다. 책을 가지고 공부한 시간보다술 마신 시간이 훨씬 많았고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 것보다 명동의 술집과 튀김집이 훨씬 친숙했었습니다. 부모님은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고 좋아했지만 저는 아니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학문에 대한 회의, 삶 자체에 대한 의미를 잃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을 만나게 해 준 친구

고등학교 2학년 때 특별한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항상 말없이 교실을 깨끗이 치우고 항상 행동이 다른 사람과 달리 모범적으로 보였던 그 친구는 제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수학여행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저에게 수학여행비를 주기도 했습니다. 마음속으로부터 참 고마워하고 저런 친구도 있구나하고 느꼈던 그런 친구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의과대학에 입학을 했는데 그 친구는 재수를 한 후 1년 늦게 같은 대학에 입학했었습니다. 예과 생활이 거의 끝나가던 어느 날 네 하숙 집에 가 보고 싶은데하면서 방문한 그 친구는 저녁을 먹은후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 저는 그 친구의 진지한 질문에 깜짝 놀라서 무슨 말이야, 너는 당연히 내 친구지하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는 ‘‘그럼 내가 다른 친구를 소개하고 싶은데 괜찮아?”하고 말했고 저에게 예수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날 바로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황성주라는 이 친구는 주일날 CCC로 저를 데리고 갔고 김준곤 목사님을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목사님은 축도가 끝나고 기도하는 시간에 채플 입구로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오는 형제자매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였는데, 그때 처음으로 목사님의 손을 잡은 것입니다. 그 후 저는 CCC 사람이 되었습니다.

 

CCC에서 경험한 세상은 제가 지금까지 경험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이었지만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행동하는 것도 달랐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형제와 자매는 곧 친숙한 저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같은 목사님

 

황성주는 저를 한남동에 있는 목사님 댁으로 데리고 가기도 했는데 당시 기도 모임이 있기 전 음악을 듣던 시간에 ‘‘이 음악이 헨델의 메시아입니다.”라고 목사님이 설명해 주시던 생각이 납니다. 모두 바닥 또는 의자에 앉아서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차도 마시고 식사도 했는데 처음 예수를 믿던 시절이어서 기도 중에 아버지, 아버지'하고 속삭이듯이 이야기하시는 목사님이 참 이상하게 느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다시 가보고 싶다고 늘 느꼈습니다.

 

그 뒤로 목사님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서 다시 그 집에는 가 보지 못했지만, 그때 그 분위기는 영혼이 편안한 아름다움을 주었습니다. 그 뒤 정동 채플에서 한 번 두 번 목사님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아버지 같고 큰형님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는 목사님이 참 좋았습니다.

 

집안에는 기독교인이 없었고 누구도 신앙을 이야기해 준 적이 없던 차에 저에게는 그런 목사님이 아버지처럼 느껴졌던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학문이나 친구 관계, 이성 교제에서 접할 수 없었던 전혀 다른 만남이었습니다. 누구도 의지할 수 없었던, 어쩌면 혼자 외롭게 이 험한 세상을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저는 CCC 김준곤 목사님과 형제· 자매들을 만난 것입니다.

 

독수리 칠 형제 이야기

 

심천 수련회가 끝나고 거지 전도회에서 결성된 칠 형제들이 모였을 때 목사님을 모시고 메시지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오셔서 전도자가 되려면 한두 가지 메시지를 외워야 한다고 해서 저만의 메시지를 외우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별로 머리에 든 것도 없는 어린 학생이 성경 말씀에다가 목사님이나 하는 예화까지 들어가면서 메시지를 외우고 다녔던 것이 참 우습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서 하나둘 성경이 저에게 익숙해졌습니다.

 

여름수련회 후에는 교회 부흥회로 칠 형제가 초청을 받았는데 목사님 말처럼 메시지를 외우는 바람에 저희 칠 형제들의 메시지는 빛을 발할 수 있었습니다. 메시지 내용은 주로 예수의 유일성과 성령 충만의 방법 등이었는데 예수님의 기적이 결코 막연한 기록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는 점을 강조할때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신이 났습니다.

 

CCC에서 개최한 심천 여름수련회 때 제가 순장을 맡고 있던 천막에서 마지막까지 영접 기도를 안하 고 제 눈만 똑바로 쳐다보던 순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했는데 왜 이럴까하며 저는 다른 많은 행사의 순서보다도 그 순원이 마음에 걸려 수련회 끝나고 집에 와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 다 믿어도 재는 안될 거야하고 잊어버리고 몇 년이 지났는데 바로 그가 CCC 간사가 되어 나타났을 때 저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 그때 나 때문에 속 많이 상했지? 하면서 저를 쳐다보던 그 순원은 지금 싱가포르에 선교사로 가 있습니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1994420일 미국에서 심장이식을 배우고 돌아와 처음으로 세종병원에서 심장이식에 성공했을 때 목사님은 주위의 많은 나사렛 선배님들과 함께 참석하셔서 저녁을 준비해 주시고 패를 만들어 축하해 주셨습니다. 당시 매스컴과 여러분들이 축하해 주었지만 제가 가장 존경하는 목사님이 직접 축하해 주셨던 이때만큼 힘이 난 때는 없었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집사람을 만나게 해 주시고 자녀들을 주신 것, 제가 가진 직업을 통해 하나님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김준곤 목사님과 CCC를 통해서 순수한 신앙을 제게 가르쳐 주시고, 배우게 하시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신앙의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김준곤 목사님을 통해 배웠던 신앙과 비전은 지금도 제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든지 제 마음속에 던져진 민족 복음화의 비전과 희망, 전인 구원의 빛,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의의 사명은 함께할 것입니다. 저는 목사님을 하나님을 향해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의 소유자로 기억합니다. 목사님, 저를 가르쳐 주시고 신앙 안에서 키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박국양 박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박사를 수료하였으며 아리조나 의과대학 흉부외과에서 연수를 하고 미국 의사면허를 취득하였으며, 세종병원 흉부외과 과장으로 심장이식 프로그램을 확립했다. 박국양 박사는 흉부외과 전문의로 심장수술 분야에서 의료적 성과를 거뒀으며 20년에 걸쳐 300여 명에 가까운 국내외 심장병 환자를 무료로 수술, 후배 의사들에게도 올바른 가르침을 주고 있다.

 

박국양 박사는 임상 발전 뿐 아니라 심장병 무료진료 등 각종 사회 봉사활동에도 헌신해 왔다. 국내외 심장병 환자 치료 및 탈북 의료인 지원 사업으로 의료 봉사는 물론 아프리카 유학생을 위한 장학사업과 노숙인과 출소자를 위한 자활사업 등 어려운 이웃들이 스스로 일어나 사회의 건강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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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8/01 [19:01]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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