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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2.09.27 [07:19]
최순동 장로(만나농장 대표), 땅과 함께 살며 믿음으로 5남매 키워
이민초기 젊은 시절 방황하다 예수님 만나 변화돼
 
이동근

 

 

▲ 미국에서 어려운 밭농사를 하면서 5자녀를 믿음으로 훌륭하게 키운 최순동 장로 부부     © 이동근

 

 

 

"우리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농장에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자녀들을 위한 기도만 했는데 다 하나님이 들어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시애틀 북쪽 스노호미시 카운티 레이크 스티븐스에 ‘만나 농장’(Manna Farm)을 운영하고 있는 최순동 장로(76)는 부인 최재금 권사와 함께 흙 속에서 힘든 농사를 짓는 어려움 가운데에도 1남4녀의 자녀들이 모두 훌륭하게 성장해 중앙일보 시애틀 지사의 장한 어버이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채소 농장에서 부모의 일을 어릴 때부터 돕기도 했던 자녀들은 장학금을 받고 공부해 명문 대학 졸업 후 큰 딸 은영씨는 변호사, 둘째 딸 애나씨는 치과 의사, 아들 대니씨는 치과 의사, 셋째 딸 디나씨는 안과 의사,그리고 막내딸 은혜씨는 보잉 엔지니어로 모두 성공한 전문인이 되었다.

현재는 막내딸을 제외하곤 모두 결혼해 의사인 큰 딸 사위와 치과의사인 둘째 딸 사위도 얻었고 손주들이 12명이 되었을 정도로 세월이 흘러 이젠 전문직을 떠난 자녀들도 있지만 모두 행복한 가정을 누리고 있어 믿음의 가정으로서 대가 이어가고 있다.

최순동 장로 부부는 자녀들이 모두 공부를 잘해 의사, 변호사가 된 것에 기쁘지만 그것보다 모두 믿음이 좋고 착하고 선하게 자란 것을 자랑하고 있다.

부부는 아이들을 새벽기도를 비롯해 구역 예배 등 모든 교회행사에 데리고 다녔다. 최장로는 아이들이 교회에 나와 졸더라도 데리고 다닌 결과 하나님 은혜를 받고 한국말도 잘하고 착하게 잘 자랐다고 말했다.

▲ 최순동 장로 칠순 때 자녀,사위, 며느리, 손주등 대가족이 모였다.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 이동근

 

2세이지만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큰딸은 장학금으로 대학 공부를 했으며 음악에도 조예가 있고 특히 교회에서 한글학교 교사와 동시통역을 맡기도 했다. 디나씨는 성경을 빠르게 읽는 속독법 교사로도 봉사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에서 일부 고위층들이 미국 유명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자녀들의 허위 스펙을 만드는 등 문제가 일고 있지만 정말 최장로 부부는 미국에서 오히려 한국보다 더 어려운 채소 농장을 하면서도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 본이 되고 있다.

76년에 시애틀에 이민 온 그는 78년부터 형 최순식씨와 함께 메리스빌에 워싱턴주 한인사회 최초로 ‘최스 한국 농장’을 시작했다.

한때 최스 한국농장은 75에이커의 큰 규모에 배추, 무 등 한국 야채를 재배, 서북미와 타주의 한국 식품점은 물론 세이프웨이 체인에까지 납품하기도 했다.

최장로는 이후 독립해 2003년에 에버렛에 4.5에이커의 새로운 농장을 구입하고 이름도 '만나 농장'으로 바꾸었으며 채소보다는 꽃 묘목 등에 주력해왔다. 다시 2011년에는 이보다 몇 배 큰 현재의 27에이커의 큰 농장으로 이주했다.

“그동안 은퇴 목사, 선교사님들이 쉴 수 있고 성도들이 기도할 수 있으며 믿지 않는 사람들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농장을 기도해왔는데 이것도 하나님이 주셨다.”고 감사했다.

27에이커 농장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은 스노호미시 카운티 당국이 최씨 기존 농장 땅 4.5에이커를 도로 공사를 위해 매입하는 조건으로 더 큰 농장과 교환해 주었기 때문이다.

최장로는 미국인이 운영했던 이 농장을 배추, 무, 깻잎, 고추, 토마토 등 각종 야채 농장으로 만들어 한인들도 많이 찾아와 직접 따며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족들이 도심에서 볼 수 없는 넓은 야채 농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갖고 싱싱한 야채도 구입하며 기도회도 할 수 있는 등 모든 사람들의 쉼터가 되길 바랍니다.“

특히 매년 가을에는 싱싱하고 매우 큰 무와 배추 등을 직접 땅에서 뽑아내고 고추도 따는 재미를 맛 볼 수 있고 특히 유명한 아이스 케이브 얼음동굴로 가는 길에 있어 많은 한인들이 찾아와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땅과 함께 살며 5남매를 믿음으로 잘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최장로가 방황하던 초기 이민 젊은 시절에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려운 미국 이민생활을 시작할 때 술집을 내 집처럼 전전하며 생애에 가장 부끄러운 삶으로, 가족과 친척들에게 버림을 당하기까지 했으나 기적적으로 하나님을 만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고 가정이 부유해졌다고 한다.

전남 광양 출신인 그는 시골에서 농사하기 싫어 서울로 와서 사업을 하다 30세인 76년에 시애틀에 왔다.

잠시 목재공장에서 일하기도 했으나 78년에 형님인 최순식씨와 함께 메리스빌에 워싱턴주 한인사회 최초로 야채 농장을 시작했다.

특히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으나 형식적으로 그냥 다니기만 했는데 미국에 온 81년에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다.

이민생활에서 언어 장벽, 생존 경쟁, 불안과 공포 등으로 방황하게 되자 모든 것을 잊기 위하여 술과 담배, 화투놀이에 낙을 삼고 주말이면 유흥업소를 찾아 육신의 즐거움을 찾으려고 허랑방탕하였다.

그러나 어느 날 밤 꿈에 한없이 술을 마시고 말 못할 실수를 하여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를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서 "염려 마라, 너를 위해 목사님께서 기도하신다. 그러니 괜찮다. 염려 마라." 하시는 것이었다.


▲ 몇년 전 가을에 최순동 장로가 밭에서 재배한 커다란 무를 선보이고 있다.     © 이동근


꿈에서 깨어난 그는 깜짝 놀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새벽 5시에 교회 기도원이 있는 스노호미시 기도원을 찾아갔다. 과연 당시 초대목사였던 고필균 목사님이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계시는 것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였다.

"저의 놀라움과 죄책감이야 이루 말로 할 수 없었지요. 그렇게 돌아온 저는 다음날 아침부터 담배와 술을 하지 않도록 할 줄 모르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목사님은 무엇 때문에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하고 싶은 것 못하고, 가고 싶은데 못 가며 뭐가 부족해서 바보 같은 저를 위하여 먹지도 않고 기도합니까? 하나님 저도 목사님이 너무 감사하니 술과 담배를 끊고 새사람이 될 수 있는 마음을 주세요."

"제가 꿈을 꾼 그날 밤 술을 먹고 실수를 하여 그 부끄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때 예수님께서 내 옆에서 목사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실 그 때에 부끄러움과 함께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모든 죄가 한꺼번에 순간적으로 보였습니다."

그 후 새사람으로 거듭난 그는 36세인 83년 2월에 교회에서 장로 안수를 받았다. 특히 하나님의 은혜를 전도하기 위해 당시에 자신의 간증이 실린 전도지 3,000장을 만들어 시애틀, 타코마 지역의 술집을 찾아가 전도했으며 여러 교회에서 간증하기도 했다.

당시의 전도지를 지금도 귀하게 간직하고 있는데 술집을 찾아가 만났던 많은 한인들이 자신의 간증에 은혜를 받고 네프킨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주며 같이 기도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고 뒤돌아 봤다.

간증문에서 최장로는 부르짖고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장로의 직분으로서 사명감을 다할 것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또한 과거를 하나님께 청산 회개하고 이제는 산 소망을 가지고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저와 같이 허영에 들뜬 생활 속에서 근심, 걱정, 불안, 공포에 사로잡힌 심령을 위하여 날마다 하나님 앞에 간구하며 주의 품으로 돌아오길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눈물로 기도하는 저의 심령은 기쁨이 충만하기만 합니다. 오늘 모두 소망을 가집시다. 주 예수의 음성을 들읍시다. 주 예수를 만납시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해 두시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 예수를 만납시다. 여러분 부족한 여기 이 사람에게 종의 도를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기도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십자가 밑에서 우리 함께 만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같은 믿음으로 한창 바빴던 농장 일에도 지장이 많았지만 항상 하나님 일이 최우선이었다.

언젠가 당장 LA로 납품할 배추 800 박스를 다듬어야 하는데 다른 교회에서 간증요청이 오자 농장 일을 중단하고 먼저 가려하니 형이 차를 막고 일을 해야 한다고 못 가게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를 뿌리치고 간증하러 차를 타고 가는 길은 더 은혜가 넘쳐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최장로는 81년 창립된 에버렛 장로교회(담임 고창훈 목사) 창립 성도이자 지난 41년을 한결같이 한 교회만 섬기고 있다. 선교에도 적극,여러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있다.

이 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죽도록 충성하겠다는 최장로 같이 부인 최재금 권사도 아이를 낳은 지 3일 만에 힘든 몸을 이끌고도 교회에 가는 열성 믿음을 실천하고 있다.

하늘나라에 가신 할머니 이만엽 권사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믿음으로 교회 출석하기도 했다.

효도상을 두 번이나 받았을 정도로 어머니 생전에 효도도 잘한 최장로는 미국에 와서 전공도 아닌 힘든 농사일을 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자녀들이 잘 자란 것만 해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특히 부인이 말없이 농장과 가정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궂은일을 다 하고 봉사도 많이 하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채소농장을 할 때는 채소를 납품한 업소들이 덤핑으로 팔아 마치 시집간 딸이 대우 받지 못하는 심정으로 마음 아프기도 했고 손님들이 좋다 나쁘다 말도 있었지만 이용해 준 손님들이 모두 고맙고 감사하다는 최순동 장로는 신앙도 감사, 생활도 감사, 늘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뒤돌아볼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실감난다고 한다.

지난 7월 4일 코로나 펜데믹 이후 몇 년 만에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이들 부부는 미국 독립기념일인 연휴인데도 쉬지 않고 밭에서 함께 호박 모종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린하우스에서 자란 모종을 그동안 날씨가 좋지 않아 이제야 밭에 옮겨 심는다는 두 부부의 얼굴은 오히려 몇 년 전보다 더 젊어 보이고 더 은혜롭게 보였다.

예전에는 일꾼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인건비도 비싸 두 부부만이 일을 하고 있으며 이제는 토마토 모종이 주요 작물이 되어 미국 가게에도 차떼기로 납품하고 있다는 최장로는 “밭에서 일하는 것이 건강에도 좋기 때문에 앞으로도 일할 수 있는 한 놀지 않고 일하겠다.” 라고 말했다.

집 벽에 걸려 있는 최순동 장로의 7순 잔치 기념사진을 보니 모인 많은 자녀들과 사위, 며느리, 손주들의 행복한 모습이 보여 농장의 풍성한 채소 작물처럼 이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나 농장 주소:7808 ST R 92 Lake Stevens, WA 98258

(시애틀 이동근 기자)

▲ 지난 7월 4일 찾아간 농장에서는 최순동 장로 부부가 호박 모종을 밭에 심고 있었다.     © 이동근



 

 

 

 

 

 



이동근:시애틀 뉴비전교회(담임 천우석 목사) 시무 장로. 전 중앙일보 시애틀지사 편집국장. 전 월간 신앙지 ‘새하늘 새땅’ 발행인

지은 책: 100명 신앙 간증집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들’ 상.하권, 서북미 여행가이드(2018), ‘아름다운 오리건’, ‘아름다운 워싱턴’, 중앙일보 칼럼모음집 ‘비, 눈, 바람 그리고 튤립’. 대한민국 국전을 비롯 일본 아사히 신문국제 사진전, 홍콩, 한국 국제사진전 등 수많은 사진전에 입상, 입선했다. 또 오리건주 오리거니안 신문 사진전에서 1위, 3위를 했고 미국에서 개인 사진전도 개최했다.

이메일:nhne70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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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7/06 [11:51]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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