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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2.08.10 [21:39]
[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하용조 목사] 세상을 환히 밝히는 등불
하용조 목사(온누리교회, 두란노서원 원장, CGN TV 이사장 등 역임)
 
뉴스파워

한국CCC는 고 김준곤 목사(1925.3.28-2009.9.29)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1958년 한국CCC를 설립하고 대학생선교를 못자리판으로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김준곤 목사의 팔순을 기념해 지난 2005년에 제자, 지인, 국내외 동역자 110여 명으로부터 글을 받아 [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 라는 기념문집을 만들었다.

기념문집에 원고를 주셨던 분들 중 여러 분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 역사적인 글들을 뉴스파워에 다시 올린다. (편집자 주)

▲ 고 하용조 목사     ©온누리교회

 

 

김준곤 목사님을 처음 뵈었을 때는 1965년, 제가 원하던 대학에 낙방하고 재수를 하던 때였습니다. 저는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원로)를 통해 CCC에 처음 인도를 받았습니다. 당시 명동에 소재하고 있던 CCC 회관은 젊은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생명력이 넘쳤습니다. 목사님은 특별한 사람들처럼 보이는 그들 앞에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 당시 젊은이치고 목사님의 설교에 감동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 역시 깊은 감동을 받고 계속 그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보통 교회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생명력과 비전이 있었던 것 입니다. CCC 모든 사람들은 순교할 각오로 예수를 믿는 것 같았습니다. 은혜가 넘쳐흘렀습니다.

 

거듭남의 비밀을 체험한 입석 수양회

 

그해 여름 8월, 경기도 입석에서 열린 하계 수양회에 참석하면 서부터 저의 생애에 엄청난 변화와 도전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거듭난 생활로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이후 지극히 형식적이던 신앙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성령님의 조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고 거듭남의 비밀을 체험하지 못한 저에게는 일 대 혁명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입석 수양회에서 겪은 세 가지 영적 경험은 구원의 확신, 성령의 기름 부으심, 비전의 발견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저의 생활과 목회에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 후 7년 동안 CCC에 흠뻑 빠져 살았습니다. 대학 시절 폐병에 걸려 학교를 휴학하는 어려움도 겪었지만, 복음에 깊이 빠져들어 가는 삶이 무엇인지를 경험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미래가 무엇인지 설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일은 세월이 가면 잊어버리거나 희미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세월이 흘러도 어제의 일처럼 선명한 법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당시의 일이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라 가슴이 뛰고 흥분을 감출 수 없는 것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별히 입석 수양회에서의 영적 경험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없이 흐르는 생수의 강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당시에 목사님이 전하셨던 메시지가 귀에 생생합니다. 그것은 구원의 말씀이요, 십자가의 말씀이요, 성령의 말씀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성령님을 아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님을 통하여 죄를 깨닫고 예수님을 믿으며 심판과 종말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저의 목회와 사역의 핵심에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생각해 보면 이 모두가 목사님의 성령 사역과 복음 전도의 열정에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목사님에게서 배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비전입니다. 비전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 라 잉태하는 것입니다. 구원과 성령 체험 이후에 얻어지는 것은 비전과 헌신입니다. 목사님의 세계 선교와 민족을 향한 비전은 분명하고 확실하며 변함이 없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피를 토하는 것 같은 열정과 확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이론과 지식과 관념이 아니라 성육신된 것입니다. 목사님이 목회를 하지 않고 대학생 선교에 뛰어든 것도 세계 선교와 민족 복음화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젊은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민족과 세계를 복음화 하려는 차원 높은 전략이었습니다.

 

생명을 걸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여 이 민족에게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고 외치는 목사님의 메시지는 영원히 저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메시지는 지금까지 저의 목회와 삶에 시금석 이 되어 있습니다.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고난을 겪은 사람들이 항상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투쟁하면서 고난을 겪을 때 당신들은 무슨 일을 했느냐는 질문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분명하게 전할 메시지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저의 가슴에 심어 준 바로 그 메시지입니다. 당신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동안 나는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다.”

 

둘째는,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성령입니다. 목사님의 설교 속에 항상 숨 쉬는 것은 십자가의 고난이요,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또한 목사님의 설교에는 항상 부활의 소망이 숨 쉬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언제나 성령과 생명과 부활로 가득 찬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불굴의 믿음을 담고 있습니다. 죽었다가도 살아나고, 절망했어도 승리합니다. 민족 복음화의 꿈과 세계 선교의 비전도 바로 이러한 부활의 성령 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 입니다.

 

셋째는, 자유롭고 모험적이며 창의적인 사고입니다. 목사님에게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젊었을 때나 지금이냐 언제나 동일한 비전과 열정과 모험심을 느끼게 됩니다. 30대보다 더 불타는 열정이 있고, 40대보다 더 풍부한 아이디어가 있으며, 50대보다 더 성숙한 모험심을 갖고 계십니다.

 

목사님은 언제나 새로운 출발을 하십니다.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내고, 그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는 일에 끊임없이 도전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 비전의 사람

 

제자로서 목사님을 바라보며 가지게 된 세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첫째는, 학생운동의 소망입니다. 목사님과 학생운동은 뗄 수없는 관계입니다. 비록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하시나 목사님은 영원한 학생운동가 이십니다. 목사님의 최대 유혹은 목회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은 학생 운동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학생 운동은 젊었을 때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브랜드는 시공을 뛰어넘는 ‘영원한 학생 운동’입니다.

 

이 땅의 모든 학생이 복음을 받아들일 때까지 목사님은 학생운동가로 기억되어 제자들의 가슴에 학생 복음화를 위한 열정의 불을 지펴 주실 것입니다.

 

둘째는, 비전 캐스팅의 소망입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람, 비전의 사람입니다. 목사님이 비전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목사님은 꿈꾸는 영원한 소년입니다. 언제나 타국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과 같습니다. 오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금방 떠날 것 같기도 합니다.

 

목사님은 어디에나 머무르지 않습니다. 걸어가면서 꿈을 꾸고, 일어나서 꿈을 노래합니다. 목사님은 민족 정신사의 강을 바꾸는 공동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공동체란 꿈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나사렛형제들이 생겼습니다.

 

목사님은 아무리 세상이 어려워도 교회가 사도행전적 부흥을 노래하며, 세상의 소망이 되는 꿈을 키우도록 성령님이 운행하는 예수공동체란 비전을 캐스팅해 주실 것입니다.

 

셋째는, 목사님의 건강한 삶입니다. 어두운 바다에는 등대가 필요하며 어두운 밤에는 등불이 필요합니다. 방황하고 혼미한 이 시대에 바른 말씀과 비전을 던져 주시는 목사님이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제자들 곁에서 어두운 세상을 환히 밝혀주시는 등대로, 등불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용조 목사는 1946년 평남 진남포에서 4대째 예수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건국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원을 거쳐 미국 바이올라대 명예 문학박사와 미국 트리니티신학대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전주대학교 이사장, 한동대학교 이사,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두란노서원 원장, CGN TV 이사장을 역임했다.

하용조 목사는 2011년 8월 2일, 향년 65세로 소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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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7/01 [08:1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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