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파워인터뷰생활/건강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22.07.04 [16:28]
심창섭 교수 “이혁 목사, 지도할 필요가 있다”
한서노회와 성남노회, 황서노회 제기한 신학조사 보고서 단독 입수 공개
 
김철영

  

총신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심창섭 교수는 한서노회와 성남노회, 황서노회 등이 제기한 한서노회 이혁 목사에 대한 신학조사연구를 진행한 인사 중 한 명이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를 역임한 송인규 교수(IVF 총무, 현 한국교회탐구센터 소장)와 목회자 1명이 조사연구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 심창섭 교수     ©뉴스파워

 

그 가운데 심창섭 교수가 가장 강하게 이 목사를 비판한 것으로 확인됐다. 심 교수는 한서노회가 이혁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목사면직을 시킨 것에 대해 놀라는 표정이었다

 

심 교수의 연구보고서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대위원님들, 논자가 제기한 이 혁 목사의 문제점들은 이 혁 목사를 소환하여 확인하고 지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도를 거부할 경우 이대위차원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해 열린 제106회 총회에서 총회이대위는 이혁 목사 처리의 건은 연구분과 수임사항으로 심창섭 교수에게 연구의뢰를 맡겨 보고서를 제출케 하였으며, 연구보고서에 의해 이혁 목사를 출석시켜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신학사상 질의서를 통해 답변서를 받아서 최종 총회의 지도에 순응키로 하였는 바 아래와 같이 결의한다. 결론: 이혁 목사 건은 종료키로 하다.”고 결의했다

 

이같은 총회의 지도에 순응키로 했다는 결정에 반하여 한서노회는 재판국(국장: 은요섭 목사, 서기 양기열 목사)을 설치해, 원고 측이 제출한 증거자료 조사, 신학자 자문, 세 차례의 피고인 입장 청취 등을 통해 지난 325일 재판국원 전원일치로 목사 면직 처분을 내렸다. 재판국원은 진영화 목사, 이재동 장로, 신근호 장로, 유종찬 장로, 이수근 목사 등이다.

  

이는 신학지도를 하지 않고 무리하게 한서노회가 목사면직을 시킨 것이다.

 

심창섭 교수의 연구보고서를 분석 검토한 총신대 신대원 교수를 역임한 모 교수는 감정이 많이 올라간 글이라며 이혁 목사가 주장한 내용 중 오해의 소지가 있는 한서노회가 재심을 열어 이 목사의 면직을 취소하고 신학적으로 잘 지도하면 된다.”고 밝혔다.

▲ 이혁 목사 신학검증을 한 전 총신대 신대원 심창섭 교수와 이혁 목사 측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     © 뉴스파워



뉴스파워가 입수한 심창섭 교수와 이혁 목사 측이 지난 3월 29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을 보면 한서노회의 이 목사 면직에 대해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심 교수는 지난 3월 29일 이혁 목사의 재판 소식에 "재판은 무슨 재판? 인지요. 그 때 잘 해결된 걸로 아는데요."라고 답했다. 

▲ ▲ 한서노회 이혁 목사 면직 관련 이혁 목사측과 신학조사연구한 전 총신대 신대원 심창섭 교수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 뉴스파워


이에 대해 이 목사 측이 "한서노회에서 진행한 이혁 목사에 대한 재판입니다."라고 답하자 "그때 이대위 분위기는 잘 해결된 걸로 알아요"라고 답했다. 

심 교수는 "이대위에서 해결했는데 노회에서...왜?"라며 "저는 재판 처음듣는 소리"라고 답했다. 자신의 보고서 내용에 의해 이 목사가 한서노회에서 목사 면직을 시킬 것을 예상하지 못했음을 보여준 것이다.

목사에 관한 건은 노회 소관이다. 따라서 목사 면직의 절차에 대한 정당성을 따질 일은 아니다. 다만, 이 목사의 주장이 목사면직을 시킬만한 내용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이 목사가 총회의 결의에 순응하는지가 중요하다. 한서노회가 이 부분을 간과했다면 정치적 재판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뉴스파워는 심 교수의 보고서에 이어 송인규 교수의 보고서를 소개할 예정이다.

 
다음은 심창섭 교수의 연구보고서 전문.

(각주는 생략한다:뉴스파워)

 

이 혁 목사의 신학사상 검토

-한서노회와 성남노회 등이 제기한 문제점 중심으로-

 

I. 서론

 

이 혁 목사의 신학사상에 대해 3개 노회(한서노회, 성남노회, 황서노회)가 의문을 제기하였다. 노회들이 제기한 문제점들은 동일하거나 유사하다. 노회들이 제출한 문제점들을 검토하기 위해 이 혁 목사의 강의 녹취록들과 복음 교재 시리즈들을 참고했다. 녹취록들은 제기된 문제와 유관한 부분의 강의들을 중심으로 검토 하였다. 이 혁 목사의 강의안 시리즈는 복음의 기초, 복음 1.2.3, 성경적 교회, 종말론 1.2 등의 책자로 출판되어 있다. 이혁 목사의 신학사상을 비판한 성남노회의 제출 문서는 한서노회에서 제출된 문서(대한예수교 장로회 한서노회)와 동일하다. 같은 내용이 한서 노회 8쪽에서 23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 문서에 수록된 이 혁 목사의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을 중심으로 검토해서 정리한다. 노회에서 제기한 문제점들을 이혁 목사의 자료와 비교 검토한 후 결론을 내리겠다. 각 단원마다 소결론을 내리고 마지막에 종합적인 결론을 내리려 한다.

 

II. 본론

 

1. 구원론

 

1) 영지주의(Gnosticism)적 요소: 이 혁 목사의 구원론에서 영지주의적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혁 목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복음만이 참된 복음임을 강조하므로 그것이 자신 만이 알고 있는 특별한 지식 인양 오해 받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이런 의미에서 영지주의적인 경향 혹은 요소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리고 기성교회의 복음과 믿음에 대한 가르침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이 혁 목사의 강의를 들은 수련생들이 기성교회 목사들의 가르침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고 기성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면 그것은 이 혁 목사의 영향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노회들이 주장하는 이 혁 목사의 구원론에서 영지주의적 요소는 분명하게 드러나지는않는다. 영지주의는 자신들만의 구원에 대한 특별한 지식(gnosis)과 영적세계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 혁 목사의 구원론에는 그러한 확정적인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이 혁 목사는 기성교회를 건강하고 바르게 세우는 일에 도움을 주도록 해야 한다. 지상의 모든 교회는 완전할 수 없다. 기성교회가 복음대로 살지 않는다고 기성교회의 복음과 믿음 전체를 비판하고 거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2) 구원파적 요소: 이 혁 목사의 가르침은 구원파적 요소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회들은 이 혁 목사가 구원 받은 자는 양심의 죄책감을 가져서 안 되고 또 죄를 짓지 않는다는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은 예수의 대속적, 형벌적, 죽음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속죄 사역으로 완전히 거룩해졌음에 대한 불신의 모습이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생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하며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 목사의 주장을 전체 문맥에서 이해해 보면, 중생한 자들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주장처럼 표현되지만 한편으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교리를 설명하면서 중생한 자들은 반드시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는 가운데 나온 표현이다. 즉 우리는 근본적으로 새롭게 된 존재이기 때문에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살아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 혁 목사의 설명은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노회들이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표현을 내포하고 있다.

 

요런 요한일서 39절 같은 거요. 이거를 이제 받아들여야 되는 거예요.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예수를 믿어도 죄를 짓는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까? 아주아주 지어요. 근데 요한일서 39. 죄를 안 짓는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안 짓는다. 여러분 이게 물론 구원파들이 이용하는 본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두 번째 시간에 이 본문을 설명할 건데요. 여러분 성경에서 아예 안한다는 거예요. ?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한다 그랬으니까. 이 씨가 뭐냐고 토론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새로운 존재라는 것, 이게 말씀이든 생명이든 성령이든 간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분명히 이야기 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죄를 범하지 않는 존재가 된다고 보는 거죠

 

즉 이혁 목사는 의롭게 된 자는 죄를 짓지 않는 참 믿음을 동반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지만 위와 같은 표현은 오해의 소지를 받을 수 있는 극단적인 주장임에는 틀림없다. 이 혁 목사는 참된 믿음은 행함을 동반해야 한다는 명제에 강하게 집착하고 있다.즉 이 혁 목사는 참 믿음을 가진 새로운 존재는 근본적으로 그 안에 하나님의 씨(씨가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않음)가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 혁 목사의 표현은 죄와 무관하게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노회에서 의문을 제기 할 수밖에 없는 충분한 근거를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이 혁 목사는 믿음이 참 믿음인지 아닌지는 행함으로 진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마태복음 720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는 성경을 인용한다.또 다른 성경적인 근거로는 야고보서 221-22절을 인용하면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예로 든다.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21)을 받았다는 구절은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와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행함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은 그 이전에 믿음의 행위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22절을 설명한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즉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의 행함을 있게 했으며 행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온전함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문제가 되는 것은 이 설명에서 이 혁 목사는 행함이 없으면 믿음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전제에 방점을 두고 있다. 즉 이 혁 목사는 이신칭의에 대한 불분명한 논지를 전개하고 오직 행함이 있는 믿음만이 참 믿음임을 강조하므로 바울의 이신칭의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를 갖게 한다. 이점에 있어서 이 혁 목사는 자신의 말의 진의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의롭게 된 자들은 죄를 범하면 안 되기 때문에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져야 된다는 표현인지 아니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자체가 더 이상 죄와 무관한 완전한 의로움의 행위를 동반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죄를 지어도 상관이 없다는 표현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2. 교회론

 

1) 정회원제도: 교인을 정회원과 준회원으로 나눈다는 주장을 한다.

 

이 혁 목사는 정회원제도를 실행하지 않는 교회는 성경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 혁 목사의 정회원 제도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많은 교회론 강의에서 다루고 있다. 이 혁 목사는 정회원 제도를 말하면서 기성교회의 징계와 체제가 무너져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이 목사는 치리가 없는 교회를 무너진 교회로 인식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가 치리와 권징의 정신을 상실한데 대한 비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이 혁 목사는 정회원이 없어도 교회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교회다운 참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회원 제도가 필수적인 요건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이 혁 목사는 정회원제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다. “나는 어떤 교회에 갔더라도 정희원 제도를 적용했을 것이다정회원 제도를 부인하면 출교, 권징해야 한다그리고 강습생들에게 정회원 제도의 교회를 적극 권장한다. “세습해서 교회라도 물려받으면 정회원 제도를 해봐라이 혁 목사는 권징을 실현하는 정회원 제도의 교회가 자신이 꿈꾸는 성경적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정회원으로 모인 교회의 특징은 모두가 가족공동체처럼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정회원 자녀들은 정회원이 되고 그들이 자라는 모습도 아름답고 교회안의 모든 가족이 함께 어울려 멋진 신앙공동체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회원 중심의 교회가 전국에 확장되면 정회원 날을 만들어 지키겠다는 포부까지 선포한다. 성령 강림주일을 정회원 주일로 정하겠다는 것이다.그리고 이 혁 목사는 이러한 성경적 교회를 지향하는 전국적인 모임을 갖고 성찬식을 거행하고 언약공동체가 된 것을 기념하겠다는 것이다.이 혁 목사는 이러한 권징과 정회원제도를 실행하므로 교회를 교회답게 세워 보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 혁 목사는 성경적 교회 교인의 자격은 세례가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 회심 즉 삶을 동반한 회심이어야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에 의하면 기성교회 교인은 진정한 회심이 아니라 세례를 기준으로 멤버가 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의 기성교회 세례에 대한 견해는 대단히 부정적이다. 그는 기성교회의 세례를 진정한 세례로 인정하지 않는다.기성교회의 세례는 진정한 회심이 아니라 지적인 동의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회심의 기준을 예수 믿고 거듭나는 사건에 머물지 않고 실제적인 삶으로 나타나야 함을 강조한다. 그는 회심신학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말하면서 교회행사와 활동과 같은 것은 피상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회심의 행위가 수반될 때 정회원 교인의 자격이 된다는 것이다. 즉 참되게 믿느냐 거짓으로 믿느냐의 판가름은 이러한 실제적인 삶을 사는 회심에 있다는 것이다.그래서 이 혁 목사는 정회원이 되기 위해 복음적인 회심이 무엇인가를 철저하게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성경적 교회론을 배워야 함을 강조한다.이 혁 목사가 말하는 참된 교회와 참된 신자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은 두 인용 부분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세워집니까?...예수 십자가 복음을 전해 받은 사람이 참되게 믿을 때 비로소 의롭다 하심을 얻으며(이신칭의) 교회가 됩니다. 교회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사람들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고 믿게 하는 것이 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사역이요 이로써 교회가 세워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회를 이루는 사람들이 참된 신자냐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온전하려면 교회의 ()회원(교인)이 온전한 신자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참되게 믿는지를 어떻게 압니까? 그의 신앙고백이 진짜인지를 알려면그의 삶을 보면 됩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그의 열매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되게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본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을 삽니다.”

 

요즘 교회가 타락하여 제자가 아니어도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믿고 예수님을 따라 살지 않아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제자가 아닌 자들에게 세례를 주고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교회가 많은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이런 교회’(교회라 부를 수 없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참된 교회의 시작은 참된 신자가 교회의 () 회이 될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위의 두 인용구에서 이 혁 목사는 참된 교회는 정회원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정회원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예수의 가르침대로 삶을 사는 사람들(정회원)로 구성되어야 진정한 교회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성교회에서 세례교인을 정회원으로 받아드리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삶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이 혁 목사의 견해는 세례교인을 교회의 멤버로 인정하는 기성교회의 멤버십 기준과 확연히 차별화 된다. 이 혁 목사의 이런 주장은 기성교회의 멤버십과 충돌 할 수밖에 없다. 이 혁 목사는 자신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진정한 참된 교회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2) 성례론: 제한 성찬과 기성 교회 세례의 불인정을 주장한다.

 

이 혁 목사는 성찬 참여자는 자신이 설명한 복음에 대한 이해를 한 정회원만이 성찬에 참여시켜야 함을 강조한다. 이 혁 목사는 세례가 성찬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규정한 정회원이 성만찬의 참여 기준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기성교회의 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인 표현도 한다. “재세례파는 아니고요 폐세례파로 가야 할 것 같아요이러한 이 혁 목사의 급진적인 말은 무기력한 기성교회를 교회답게 하려는 열정과 바람에서나온 주장이길 바란다. 그러나 이 혁 목사의 발언과 그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기성교회와의 갈등을 유발 할 것이다. 전통적인 성례 참여를 거부하는 하나의 극단종파들(a radical sectarians)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또한 이 혁 목사는 교인들을 참된 교인들과 그렇지 못한 교인들로 가르는 극단론을 전개한다. 특히 기성교회의 교인들을 교인들로 인정하지 않고 이신칭의의 고백, 세례, 신앙생활을 엉터리 신앙과 허구적인 생활로 질타한다. 이 혁 목사의 주장은 신앙고백대로 삶을 살지 못하는 교인들을 향한 목회자의 안타까운 심정에서 나온 말로만 치부할 수 없는 오해의 소지를 갖고 있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 중에 이신칭의를 아무렇게나 믿는다고 하고 아무렇게나 세례로 공인해 주고 마음대로 살아가도 어쩌지 못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엉터리 교리다.”

 

이 표현은 물론 교회가 성경적으로 교회다워야 한다는 간절함의 울림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는 성경적 복음을 믿고 순종하는 정회원만이 참된 교인이고 기성 교인들은 교리들만 고백하고 믿는 엉터리라고 단언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혁 목사의 극단론은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려는 충정을 넘어 교회를 나누는 종파들의 극단적인 행위의 위험성이 있다.

 

3) 직분론: 직분 및 교회 관련 헌법을 무시 한다고 주장한다.

 

이 혁 목사는 정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이전의 교회 직분들 목사, 장로, 집사 등의 직분을 내려놓아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모든 교인을 직분이 아니라 성도로 인정하고 호칭해야 함을 주장한다. 자신이 말하는 참된 신자로서 교회의 정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직분을 내려놓고 형제로 칭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성도라는 명칭의 의미를 인식할 때 직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혁 목사의 직분에 대한 경시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는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이 혁 목사의 이러한 주장은 기성 교회의 직분들을 폄훼하거나 부인하는 의미가 있다. 교회를 직분 중심이 아니라 성도의 진정한 신앙이 교회의 중심이어야 함을강조한 것은 이해하지만 기성교회의 직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이 혁 목사는 교회론에서 직제중심의 교회를 부인하는 형제교회론에 치우쳐 있다.

 

4) 개인적인 믿음과 구원을 부정하는 주장을 한다.

 

노회들은 이 혁 목사가 교회적인 집단 믿음과 구원을 강조하면서 개인적인 믿음과 구원을 부정한다고 보고 있다. 노회들이 비판하고 지적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혁 목사는 교회가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구원의 실체가 교회이며 교회 없이는 구원이 없다고 단언 한다는 것이다.물론 이 말은 초대 교부 카프리아누스의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이 말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리는 곳이므로 교회가 말하는 구원의 복음을 듣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표현이다. 교회 자체가 구원의 능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이 혁 목사도 이런 의미에서 사용했겠지만 여러 가지 극단적인 표현들로 인해 오해를 살 수 있는 여지를 불러왔다. 즉 이 혁 목사는 구원이 개인구원임을 전제하지만 교회가 구원의 방주라는 것에 방점을 찍고 교회 자체가 마치 구원을 좌지우지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혁 목사는 교회와 상관없이 개인의 구원을 정의 내릴 수 있는 증거가 어디 있냐?”고 반문 한다.즉 구원은 개인적으로 받지만 교회와 무관한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 혁 목사의 주장은 교회가 곧 하나님 나라의 실재라는 강한 집착이 있기 때문에 파생한 결과론이다. 그래서 이 혁 목사는 교회를 떠난 개별적인 존재로서 신앙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을 개별적인 존재로 인정하는 것은 사탄적인 생각이라고 단언한다.이 혁 목사가 교회를 구원의 주체로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교회를 지상에서 실현된 하나님 나라의 현시로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형제교회론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혁 목사는 자신의 교회공동체(형제공동체)만이 참된 구원의 방패로 인식하는 오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교회공동체 전체가 구원을 받는다는 재세례파의 집단 구원론이 될 수도 있다.

 

5) 가견교회에 치우치고 불가견교회를 무시하고 약화 시킨다고 주장한다.

 

노회들이 이 혁 목사의 교회론은 불가견교회를 무시 혹은 약화시킨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 혁 목사는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현시 혹은 일치로 보는 강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죽으면 천국 간다고 하면 안 된다. 천국 가기 위해 여기 잠시 있는다고 해선 안 된다. 우리는 이미 천국에 갔다. 이미 교회 안에 있다.”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현시다.”주님이 오셔서 완성될 하나님 나라와 지금 여기서 교회로 살아가는 삶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 혁 목사의 이러한 주장들은 교회를 교회답게 세워야 한다는 강한 의지와 소명에서 나온 말들로 이해 할 수 있다. 이 혁 목사의 전체적인 강의의 맥락에서 이해해 보면 이 혁 목사는 교회를 천국의 삶의 실제적인 현장으로 구현하려는 의도가 확연하다. 이 점에서 이 혁 목사는 가견 교회를 하나님 나라와 일치시키는 오해를 충분히 유발시킨 것은 사실이다. 혹은 가견교회를 완성된 하나님 나라로 인식하는 중세기적인 교회론에 근접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즉 교회자체가 천국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교회론에 빠질 위험이 있다.

 

* 결론: 구원론과 교회론

 

이 혁 목사의 구원론과 교회론은 행위가 없는 한국교회의 믿음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말이다. 이 혁 목사는 한국교회가 복음을 신뢰하며 복음의 길을 따르지 않고, 순종의 삶을 살지 않는 것을 지적하면서 행위가 없는 한국교회를 지적한 것은 이해하지만 믿음과 행위의 일치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다음과 같은 위험성을 불러올 수 있다.

 

첫째, 믿음과 행위의 일치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기존 교회 전체를 믿음이 없는 집단으로 인식시킬 위험적인 요소가 있다.

둘째, 믿음과 행위의 일치의 완전성을 주장하고 그렇지 않는 믿음을 가짜라고 주장하면 완 전주의(perfectionism)에 빠지며 16세기 재세례파의 위험성에 빠진다.

셋째, 교회의 멤버십을 정회원과 비 정회원으로 구별하는 것은 교회 안에 교회’(church within church)를 만드는 종파들의 행동거지다.

넷째, 교회의 멤버십 기준을 세례에 두지 않고 행동을 동반한 회심에 두는 것은 객관성이 결여된 기준이다.

다섯째, 교회공동체 전체가 하나님 나라의 현시로써구원을 받는다는 재세례파의 집단 구원 론이 될 수 도 있다. 그리고 개인구원과 불가견교회보다 가견 교회론에 치우쳐 있다 는 비판을 유발시킨다.

 

칼빈은 구원 받은 성도를 의롭게 된 죄인(justified sinner)라고 하였다. 이 말은 의롭게 되었지만 여전히 죄인으로 머물러 있다는 표현이다. 그래서 의롭게 된 자는 죄를 짓지 않도록 성화의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죄를 짓지 않는 완전한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혁 목사는 완전한 믿음의 실재성을 추구하면서 그렇지 못한 믿음을 가진 자는 진정한 교회 멤버가 될 수 없고 구원이나 하나님 나라와 무관한 믿음을 가진 자로 간주하는 결정론(determinism)에 빠지고 있다.

 

3. 종말론

 

노회들이 이 혁 목사의 종말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다.

 

이 혁 목사의 복음 강의는 하나님 나라를 통해 교회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 교회는 다시 하나님 나라로 이어진다. 이 혁 목사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 혁 목사가 강조하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은 완성되어 이 땅(지구)에 드러날 하나님 나라다. 한 마디로 이 혁 목사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지구에서 이루어진다고, 다시 말해 지구가 천국이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며 가능성을 말하지 않고 확언한다. 그래서 위험하다.”

 

노회들이 지적한 이혁 목사의 종말론은 그의 종말론 강의안 1, 2 권에 수록되어 있다. 이 혁 목사의 주장을 검토한 후 노회들의 지적에 대한 타당성을 논하려 한다. 특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대목은 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을 피조세계의 회복과 지상천국의 의미로 해석하며 강조하는데 있다. 이 혁 목사는 재림 후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천국)를 지상천국과 현상적 피조세계의 회복에 국한시킨 오해를 야기 시켰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의 회복의 과정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는 문제가 없었다. 그 전개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이 혁 목사는 이러한 새 하늘과 새 땅의 회복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임을 신·구약 성경을 통해 해석하고 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약의 대표적인 성경은 이사야 65:17-19절의 말씀이다. 종말에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은 메시아의 오심과 그의 성취로 이루어진다(심판과 구속). 새 하늘과 새 땅의 회복은 예수의 초림과 십자가의 사역의 핵심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셔서 그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직접 인간으로 오셨다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그는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셨고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며 메시아시다. 그리고 예수는 자신의 생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다. 그것은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고, 죄를 용서하고,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실현하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대속적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속죄하시고 승리하셨다. 그의 십자가의 사역은 또한 사탄의 세력에 승리하셨음을 나타낸다. 이는 사탄의 나라의 멸망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는 부활과 승천하셨다. 그의 부활과 승천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형벌 대속적 죽음을 죽으셔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폐 하시고 모든 율법을 성취하심으로 의의 생명을 얻으신 증거다.”

예님의 부활은 하나님이 뜻하신 십자가 사역을 성취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승천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만물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을 의미한다. 주님이 되신 예수님은 온 우주와 만물을 통치하신다.”

 

예수님은 승천 후 성령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나라 회복을 통치하신다. 하나님의 나라 회복을 위한 구약의 예언과 예수의 성취와 성령을 통한 진행의 결과로 교회가 탄생되었다.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로 교회가 탄생되었다.”그리고 교회는 예수가 이 세상에 가져오시고 통치하시하나님 나라세상에 임했다는 증거요 그것을 나타내는 현시다.”교회는 창세전부터 이어 진행되던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과 그 역사의 성취다(?). 그러므로 교회는 수단이나 하나의 과정이 아니라 구원 경륜의 목적이다.”

 

지금까지 구약에 예언한 하나님의 나라(새 하늘과 새 땅)는 예수의 구속 사역을 통해 이 땅에 이루어졌고 미래의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도 주님의 오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이 혁 목사의 주장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 혁 목사의 장차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견해 중 주목할 표현은 세상이라는 용어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의 주되심은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시고 통치하신다.”

교회는..그 나라가 이미 이 세상에 임했다는 증거요. 그것을 나타내는 현시다.”

하나님 나라(오는 세상’)는 진군하고 사탄의 나라(세상’)는 쇠퇴한다.

말씀으로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기 때문에 사탄의 나라(세상’)의 멸망 또한 이미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어 이 세상에 이미 임하였다는 것은 사탄의 나라의 멸망이 시작되었다는 증거이며 결과적으로 그의 나라가 패배했음을 의미한다.”

사탄의 나라(세상’)의 멸망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되며 결국 완전한 멸망에 이르게 된다.”

 

이 혁 목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데 그에게 세상이란 개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혁 목사의 세상 개념은 일반적인 함의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점점 구체화 되어 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의미로 귀결된다.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천국이 된다는 의도로 이해된다. 마태복음 2414절에 온 세상에 천국 복음이 전파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설명하는 가운데 암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혁 목사는 온 세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온 세상: 여기서 세상은 오이쿠메네로서 거주하는 세상’(inhabitant world)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온 세상은 세상 전체를 가리키기 보다는 많은 지역을 강조하거나 과장하여 표현하는 용어이다.”

 

이 혁 목사는 거주하는 세상을 우리가 사는 세상임을 말하고 있다. 특히 이 혁 목사의 세상표현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예수의 재림론에서 활발하게 언급된다. 예수의 초림은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가져왔고 재림을 통해 이 세상에 완전한 승리가 있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예수는 왕으로 오셔서 만물을 다스리시고 온전한 통치가 있는 하나님 나라를 자기백성을 위해 다스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다스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로 계 21:1-7절의 새 하늘과 새 땅이란 말씀을 인용한다. 그리고 그는 3,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5,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라는 말씀과 7,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라는 말씀을 강조해서 인용한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짓는다. “...부활한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교회)이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으로서 만물을 새롭게 하심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조성하시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즉 이 혁 목사는 하나님이 자기들의 백성(교회)이 복된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새 하늘과 새 땅인 이 세상즉 지구를 새롭게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 혁 목사의 세상개념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성경적 개념에 함몰되어 있다. 그는 부활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아가는 데 그곳은 하나님의 백성이 살기에 적합한 세상이라는 것이다.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죄악 된 세상을 가리키는데 이런 세상은 없어지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의 회복 즉 모든 세계가 정화되고 갱신될 세상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 벧후 3:10절을 인용한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혁 목사는 새 하늘과 새 땅은 피조세계의 재창조(회복)를 의미하며 이곳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는 세상이라는 것이다.그 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은혜 언약에 포함된 모든 부요함을 최종적으로 누리는 곳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히 살 곳은 피조세계가 회복된 세상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것이다. 이 혁 목사의 이러한 견해는 후크마의 종말론에서 가져온다.

 

“ ‘우라논 카이논 카이 겐 카이넨’(새 하늘과 새 땅, 벧후 3:13, 21:1)이라는 표현은 기존의 만물(피조세계)을 새롭게 하시는 것이지(갱신의 의미 카이노스’) 다른 세상(다른 세상이란 의미에서의 새로운네오스’)이 아니다. 그곳은 영광스럽게 새로워졌지만 현재와 우주와 연속이 있는 우주일 것이다.”

 

그리고 이 혁 목사는 동일한 의미의 선상에서 롬 8:20-21의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바울은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 데서 해방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갈망하며 기다린다고 말한다(8:20-21). 이 속량은 두 번째 창조 곧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기존의 것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탄의 훼방 때문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창조세계(1:31)와 창조 목적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회복시킨다.”

 

이러한 이 혁 목사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하늘과 새 땅의 삶과 이 세상의 삶의 연속성으로 귀결 될 수밖에 없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삶이 현재의 창조 세계와 본질적인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현재 우리가 즐기면서 먹고 마시며 누리는 모든 일들을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

 

같은 논리로 이 혁 목사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백성들은 진보하고 모든 피조세계는 발전할 것이라고 언급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새롭게 하시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에덴동산의 회복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작정하신 계획들이 씨앗으로 남아 계속해서 진보해 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참 하나님 나라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은 에덴동산으로서의 단순한 회귀가 아니다. 이 주장은 에덴동산이 미완의 부족함을 지녔다는 말이 아니다. 본질에서 하나님의 온전함이 있으나 또한 그 안에는 발전의 씨앗을 두고 계속해서 진보해가도록 하신다는 말이다.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림에는 지속적 발전이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다. 따라서 온 우주가 하나님의 개념의 새롭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워질뿐더러 새로운 토대에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발전할 것이다.”

 

이 혁 목사는 종말론 강의 2에서 세상과 새 하늘과 새 땅의 연속성을 말한다. 그는 새 예루살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혁 목사는 계시록 21장과 22장에 언급된 새 예루살렘’, ‘새 하늘 새 땅에 대한 세대주의자들의견해를 반박 하면서 연속성을 말한다.

 

요한 계시록 21-22장의 새 예루살렘은 영화롭게 된 교회요. ‘새 하늘과 새 땅은 갱신될 이 지구에 펼쳐질 완성된 하나님 나라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휴거되어 거하는 공중에 있는 장소가 아니라 영화로워질 우리, 즉 교회를 이야기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이 구원 목적을 두시고 창조한 이 지구상에 펼쳐질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구원의 완성이다.”

 

그리고 이 혁 목사는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만물이 갱신할 것이며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교회라고 단언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 혁 목사의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견해는 간단히 정리될 수 있다. 복음서에서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의미는 함의적인 의미가 아니고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로 새 하늘과 새 땅은 피조세계의 회복을 의미하며 눈에 보이는 세상 즉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지구촌에서 이루어진다는 개념이 강하게 전달되고 있다. 그리고 중심에는 교회가 있다. 즉 천국이 곧 교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예시이기 때문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정된 후의 세상을 뜻하며 지상 교회도 천국이 된다는 것이다.

 

* 결론: 종말론

 

이 혁 목사는 종말에 이루어질 천국은 피조세계의 회복이라고 단언한다. 그의 주장은 지상천국 개념이 강하게 함의 되어 있다. 그리고 교회를 곧 지상 친국의 현시로 일치시킨다. 송 인규 교수는 [이혁 목사 신학에 대한 송인규 평가]에서 다음과 같이 잘 정리하고 있다. 종말론에서 이 혁 목사는 재림 후의 재 창조론에서 비록 우주의 피조세계 전체 회복을 언급하지만 신자들이 최종적으로 거할 곳은 지구(세상)로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혁 목사의 재창조된 새 하늘과 새 땅 즉 피조세계는 본질은 변하지 않고 형태가 새롭게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혁 목사는 천국에서도 실제적으로 먹고 마시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혁 목사는 천국에서도 지상처럼 문화 활동은 지속되고 보존된다고 보고 있다.

 

종말에 이루어 질 천국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한 견해를 갖고 있다. 이 혁 목사가 단언적으로 지상 천국론을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의 견해는 종말에 피조세계와 재창조세계의 연속성 불연속에 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이 혁 목사는 연속성의 근거로 후크마와 같은 개혁주의자들의 이론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칼빈은 벧전 310절 주해에서 성도들이 세상에 욕심을 내지 말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칼빈은 피조세계는 만물의 본질(substance)은 보존되지만 새로운 질(quality)을 얻기 위해 다 소멸될 것인데 세상 정욕에 함몰되어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여기서 만물의 본질은 보존 된다는 칼빈의 견해는 후크마와 같은 개혁주의 자들의 연속성 주장의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칼빈은 피조물의 재창조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즉 첫 번째 창조와 두 번째 창조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하지 않는다. 종말론에서 피조세계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어느 한쪽을 지나치게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지구의 불연속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세대주의적인 종말론에 빠진다. 또 다른 학자들은 지구의 연속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지상천국론 혹은 여호와 증인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헌에 속하기 때문에 기록으로 표현된 말씀들은 묵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 문자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정통 개혁교회 교인들은 극단적인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종말론에 치우치지 않는다. 오직 미래에 도래할 천국(하나님 나라) 건설은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겸허한 자세로 하늘나라의 소망과 영광을 바라보면서 겸손하고 감사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혁 목사의 새 하늘과 새 땅이론은 지상 천국론을 주장하는 여호와증인들의 종말론과 유사한 위험이 있다.

 

III. 종합적 결론

 

이 혁 목사는 기본적으로 성경적 복음(참된 복음)을 탐구하고 전하려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목사가 주장하는 참된 복음의 거울로 기성교회를 조명해 보면 기성교회는 개혁되어져야 할 대상이다. 이 혁 목사가 기성교회의 무기력한 신앙을 새롭게 하고 성경적인 교회를 세워보려는 의도는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고 세우려는 성경적 교회의 참된 복음 이론은 몇 가지 극단적 논리와 위험에 빠져 있다. 물론 이 혁 목사 자신은 직접적으로 아래와 같은 주장을 직접적으로 표현 하진 않지만 그의 주장들은 다음과 같은 오류에 빠질 수 있는 함의를 갖고 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믿음과 행위의 관계: 완전주의의(perfectionism)의 위험

 

이 혁 목사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행함이 없는 무기력한 믿음을 지적하고 행위를 동반한 소위 참된 믿음을 통해 참된 교회를 세워야 함을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나 이혁 목사는 믿음과 행위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오해의 소지를 살만한 주장을 하고 있다.

 

“...우리 한국교회는...이상한 흐름이 하나 있는데요. 그게 뭐야 하면 믿음은 행위가 아니다. 또한 믿음은 행위와 관계가 없다. 이런 식의 얘기가 굉장히 많이 있어요. 믿음은 그 행위로서의 측면이 아니고 또 믿은 다음에도 행위와 상관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힘주어 얘기하려고 했던 것은 참된 믿음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 완전히 자기를 드리는 것이며, 그 복음을 신뢰하며 그 복음의 길을 따르는 것이라고 얘기 했어요. 그러므로 저는 약간 오해의 여지가 있지만, 여러분 잘 들으세요. 저는 믿음을 얘기할 때 행위로 얘기하고 싶은 거예요. 믿음은 순종이에요. 믿음은 신뢰하는 행위다...”

 

위의 강의 중 믿음을 행위로 얘기한다든지 믿음은 신뢰하는 행위라는 표현은 행위 구원을 의미하는 오해의 소지를 갖고 있다. 믿음은 행위를 동반해야 한다는 이 혁 목사의 주장은 맞다. 그러나 기성교회의 믿음을 행위가 없는 믿음으로 단정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원론적으로 믿음은 반드시 행위를 동반하지만 행위와 믿음의 완전한 일치는 실제적인 신자의 삶에서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혁 목사는 믿음과 행위의 완전한 일치가 없는 신앙을 가짜 신앙으로 재단하고 있다. 신자의 삶은 점진적으로 성화의 과정에 있으며 완전에 상태에 이르지 못한다. 믿음과 행위를 일치시키는 이 혁 목사의 주장은 재세례파의 완전주의(perfectionism)에 빠질 위험이 있다. 물론 이 혁 목사는 행위가 없는 무기력한 교회의 신앙생활을 안타까워하는 목회자의 심정으로 표현을 한 것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의 표현들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2. 믿음과 행위: 반펠리기우스(Semi-Pelagianism)적인 위험

 

그런데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진정한 믿음과 그렇지 못한 믿음, 명목상의 믿음과 그렇지 않은 믿음, 진실 된 믿음이 있다는 걸 이제 알아야 되는 거죠...죽어 있는 믿음과 살아있는 믿음이 있다...전통적인 믿음이란 게 뭐냐 하면, 그저 이렇게 몇 가지 가르친 거, 어 네, 믿어요. 예 네. 거부하지 않아요. 어 그럼요 믿죠. 교리 같은 거? 이렇게 신앙고백 같은 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이시며, 우리를 대신 해서 십자가에 죽으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습니까? 어 네, 믿어요. . 안 믿은 줄 알았어요? 네 믿어요. 이런 거 있죠. 이런 거. 실제로 그런 믿음이 자신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그런 걸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냐면, 이 시대의 교회를 통해 볼 때, 너무 자기가 구원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너무 쉽게 해요. 좀 쉽게 하면 안 됩니까? 그런 생각도 할 수 있지만, 너무 쉽게 한다는 얘기는 무슨 얘기냐면, 왜 자신의 구원이 최종적으로 완성 될 수밖에 없는 지에 대해서 생각을 좀 안하는 거예요. 좀 생각을 하고, , 이렇게 되서 내가 구원이 완성될 거다. 이런 거를 안 하고 그냥 무조건적으로 확신을 갖습니다...보면은 교회는 또한 확신을 주려고 애를 써요. 제가 보면 믿음이 없는 사람인데. 막 확신을 갖게 하려고 애를 쓰고, 안기지면 막 때릴려고 하고 막 그러죠(웃음) 그래서 확신을 막 주려고 그래요. 당신의 구원은 확실합니다. 이야기하고... 이런 것도 긍정적인 측면은 있는 것 같아요. 낙심하지 않거나 좌절하지 않거나, 긍정적인 측면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확신해야하는가? 이런 내용이 부족한 거예요. 근거가 부족한 거죠. 여러분. 아니 목사님 그냥 구원 받는다고 믿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 얘기 할 수 있잖아요. 근데 이게 신앙이 안 그렇습니다. 여러분 결론만 있는 사람들 있죠? 중간 내용이 없고 결론만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은 실제로 믿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 결론이 참일 가능성이 적습니다... 중간 과정을 무시하고, 마지막 그냥, 나는 구원 받았어. 구원이 확실해. 한번 구원 받은 사람은 땡이야. 이런 전문용어도 쓰면서 뭐. 이런 사람들이 많은 데. 왜 한번 구원받으면 땡이냐는 거예요. 그 중간 과정이 없어요.”

 

위의 강의에서 이 혁 목사는 이런 중간 과정이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5분만 탁 건드리면 대답도 못하고 자기가 한 20, 30년 동안 가졌던 확신을 쉽게 흔드는, 흔들리는, 기반이 너무 빈약한, 모래위에 쌍은 성과 같은 신앙을 가진 자들이라고 지적한다.중간과정에 대한 이 혁 목사의 주장은 현재 교회의 구원에 대한 불확실성을 지적하고 자신의 강의를 통해 구원의 확신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수준의 발언이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교회의 주장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중간 과정의 지식이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면 이것은 역시 행위 구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혁 목사는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야고보서 214-16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는 구절을 인용한다. 그러나 야고보의 가르침은 믿음은 행함을 동반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지 믿음이 완벽한 행함을 동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혁 목사가 믿음과 행위를 일치시킨다면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개신교의 이신칭의의 근본교리에 반하는 주장을 하게 된다. 믿음과 행위를 일치시킨다면 중세교회의 반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적인 공로 사상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 혁 목사는 기성교인들의 믿음이 신앙고백 이상의 변화가 없는 삶을 사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다.

 

3. 교회론: 보편교회(catholic church)부정의 위험

 

이 혁 목사는 공교회의 보편성 보다 특정한 그룹의 지역교회를 강조한다. 교회를 가족공동체 혹은 형제공동체의 성격으로 강하게 규정한다.

 

교회는 혈연적 가족이 한 집에 거하며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살아가듯이, 사랑으로 함께 하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공동체다...또한 교회는 혈연적 가족과 같이, 아이가 태어나고 한 동안 부모와 가족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여 자라가며 양육 받다가 때가 되었을 때 가정과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고 늙으신 부모를 봉양하게 되는 식의 교회적 삶을 산다.”

 

이 혁 목사는 교회를 가족공동체로 인식하면서 재정도 나누어 가난한 자를 돌보고 각자의 소유를 함께 사용하는 사도행전 2장의 초대가정교회의 특징이 있다고 한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통치에 순종한다는 의미는 가족공동체가 된다는 의미이며 그렇지 못할 때 가족 공동체에서 추방(출교)된다. 교회적 가족은 혈연적 가족과 동일함을 강조하면서 교회는 혈연적 가족과 같은 공동체의 기초위에 세워진다고 주장한다.이러한 주장은 교회는 형제공동체로 삶을 살아야 진정한 교회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참 하나님의 백성인 공동체교회를 성전으로 삼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혁 목사는 성도들의 공동체적인 교회적 삶을 강조한다.

 

교회는 하나요 한 새 사람이다. 이렇듯 우리는 더 이상 분열된 한 개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론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한 몸, 한 가족 등의 관점으로 교회적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성도는 가족 공동체로 형제자매로 묘사된다. 이 혁 목사는 교회를 가족공동체 개념에 집착하므로 다음과 같이 교회를 묘사한다.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보라. 여러 특징이 있다. 가족 즉 부모 자식이나 형제 간의 관계는 끊을 수 없다. 즉 교회는 혈연적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다...그러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는다든가, 주님의 뜻대로 살지 않을 때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점에서도 혈연적 가족과 다르다. 항상 함께 살지 않는다는 점도 다를 것이다. 교회적 삶의 본질과 특징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혈연적, 가족처럼, 가진 것(재물)을 서로 나누고 필요한 곳에 사용하며, 자주 모이고 외롭지 않게 함께 살아가며, 어려운 일이 발생 했을 때 모두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함께 식사와 교제를 즐겨야 하며 자주 자기 집을 초대하여 한 가족처럼 살기를 애써야 한다. 가족의 지평이 교회를 향해 넓혀져야 한다.”

 

이 혁 목사의 교회론 총론은 별 문제가 없다. 이 혁 목사가 교회는 구원 역사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고 주장하는 것은 맞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로서 구원 사역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주장도 맞다. 교회는 참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예수가 세우신 것이라는 주장도 맞다. 그리고 참된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 위에 세워진다는 주장도 문제가 없다. 사도적 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는 주장도 맞다.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가 천국열쇠를 받았고 그래서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키프리아누스의 말을 인용한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 혁 목사는 교회를 가족 공동체로 인식하면서 보편교회 보다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교회론을 전개하는 편협한 주장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가족공동체적인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가족공동체로 인식하면서 가시적인 실현을 강하게 강조하는 위험에 빠져 있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따르고 실현하지 못하는 교회는 참된 교회가 될 수 없다는 위험에 빠지고 있다. 이혁 목사의 위험성은 가족공동체적인 교회를 완벽한 교회의 참된 모델로 인식하는데 있다. 이러한 주장은 기존교회를 자신의 교회와 차별화 하면서 기존교회를 부정하거나 부인하는 경향을 초래할 수 있다. 이 혁 목사의 주장을 따르는 교인들이 교회에 발생한다면 교회내의 교회(church within church)라는 분파운동이 일어난다. 그리고 공교회의 보편성(universalism)을 파괴한다. 이 혁 목사는 가족공동체로서의 교회만이 완전한 교회의 모습임을 주장하는 독선에 빠져있다.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완전하지만 사람들의 지상 교회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에 임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 혁 목사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족공동체적인 교회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4. 종말론: 지상천국의 위험

 

이 혁 목사의 종말론에서 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을 피조세계의 회복과 지상천국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재림 후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천국과 현상적 피조세계의 회복에만 국한시킨다면 여호와 증인들의 왕국론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리고 교회의 회복을 천국의 삶의 예시로 국한시키는 것도 극단적인 판단에 치우친 해석이다.

 

이 혁 목사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성경적인 견해 중 주목할 표현은 세상이라는 용어이다. 이 혁 목사는 마태복음 2414절에 온 세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온 세상: 여기서 세상은 오이쿠메네로서 거주하는 세상’(inhabitant world)을 의미한다. 이 혁 목사는 거주하는 세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이 혁 목사의 세상표현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예수의 재림론에서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언급된다. 이 혁 목사의 세상개념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성경적 개념에서 지속된다. 그는 부활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아가는데 그곳은 하나님의 백성이 살기에 적합한 세상이라는 것이다.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죄악 된 세상을 가리키는데 이런 세상은 없어지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의 회복 즉 모든 세계가 정화되고 갱신될 세상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 벧후 3:10절을 인용한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혁 목사는 새 하늘과 새 땅은 피조세계의 재창조(회복)를 의미하며 이곳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는 세상이라는 것이다.그 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은혜 언약에 포함된 모든 부요함을 최종적으로 누리는 곳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히 살 곳은 피조세계가 회복된 세상 곧 새 하늘과 새 땅이 라는 것이다. 이 혁 목사는 동일한 의미의 선상에서 롬 8:20-21의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바울은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 노룻 하는 데서 해방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갈망하며 기다린다고 말한다.(8:20-21) 이 해방과 속량은 두 번째 창조 곧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기존의 것을 재창조하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사탄의 훼방 때문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창조세계(1:31)와 창조 목적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회복시킨다.”

 

특이한 것은 이 혁 목사는 하나님 나라의 연속과 발전을 주장한다. 이 혁 목사의 신천지에 대한 특이한 개념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삶과 이 세상의 삶의 연속성을 말한다. 즉 현 세상의 삶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연속적이며 발전한다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삶이 현재의 창조 세계와 본질적인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현재우리가 즐기면서 먹고 마시며 누리는 모든 일들을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

 

참 하나님 나라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은 에덴동산으로서의 단순한 회귀가 아니다. 이 주장은 에덴동산이 미완의 부족함을 지녔다는 말이 아니다. 본질에서 하나님의 온전함이 있으나 또한 그 안에는 발전의 씨앗을 두고 계속해서 진보해가도록 하신다는 말이다.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림에는 지속적 발전이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다. 따라서 온 우주가 하나님의 개념의 새롭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워질뿐더러 새로운 토대에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발전할 것이다.”

 

이 혁 목사가 새 하늘과 새 땅은 완성된 하나님 나라라는 주장은 맞다. 그러나 세상의 삶이 지속되고 발전할 것이라는 주장은 주관적이다. 예수님은 천국에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혁 목사가 새 하늘과 새 땅의 삶과 세상의 삶을 연속과 발전으로 보는 것은 지상천국론을 주장하는 왕국론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 혁 목사의 이런 주장은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에서 실현되기를 염원하는 열정에서 전달된 메시지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오해를 야기 시킬 수 있는 위험한 내용들이다. 예수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단언할 수 있는 어떤 교회도 지도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혁 목사는 종말에 세워질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한다고 말할 때 추상적인 개념으로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구체적으로 지구촌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분명한 견해를 밝혀야 한다.

 

* 논자의 건의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대위원님들

논자가 제기한 이 혁 목사의 문제점들은 이 혁 목사를 소환하여 확인하고 지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도를 거부할 경우 이대위차원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22/05/26 [14:33]  최종편집: ⓒ newspower
 
관련기사목록
[이혁 목사] 서철원 교수 “한국교회, '믿음고백'을 강조해야" 김철영 2022/06/21/
[이혁 목사] 이혁 목사 “인공지능과 같은 기계도 구원얻는다고 한 적 없다” 김철영 2022/06/16/
[이혁 목사] 이혁 목사 “앞으로 오해 없도록 주의하겠다” 김철영 2022/06/08/
[이혁 목사] 이혁 목사 "교단에서 사역하고 싶다" 김철영 2022/06/02/
[이혁 목사] 이혁 목사 탄원서 제출 관련 질의응답서 소명자료 김철영 2022/05/30/
[이혁 목사] 송인규 교수 “이혁 목사, 주장태도의 문제" 김철영 2022/05/28/
[이혁 목사] 심창섭 교수 “이혁 목사, 지도할 필요가 있다” 김철영 2022/05/26/
뉴스
광고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8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