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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0.23 [13:01]
광주가 나은 세계적인 화가 오승윤 화백의 죽음
그의 차향 은은한 작업실에서 난 바다를 생각해냈었다. 끝없는 바다를...
 
강경구

2000년 4월 화가 오승윤, 그를 만났다.

   
화가 오승윤, 그를 만났다. 광주가 나은 세계적인 화가...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무등산 자락, 산과 하늘이 만나고 그 산의 그림자로 넉넉한 동네, 모성의 품속같은 산아래 토담집에 사계(四季)의 무한함을 숨쉬며 공유하는 아주 특별한 사람, 멀리 고성처럼 둘러싸인 무등의 본토로 인하여 그리움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지산동, 그의 차향 은은한 작업실에서 난 바다를 생각해냈었다. 끝없는 바다를... 어디서부터일까? 저 찬연한 직관과 풍성한 추상의 물결들이 용솟음치어 파도가 되고 하얀 분말로 토해내는 아픔이 영글어 바다가 되고 하늘이 됐다. 그래 삶이 곧 죽음이요, 죽음이 곧 삶이듯 그에게 사물은 낱낱이 분해되고 쪼개진다. 그리고 만들어지는 하나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세상이다. 그로 인해 명명된 모든 것에 묻어있는 혁명의 빛깔은 노랑, 파랑, 빨강, 검정, 흰색이다. 우리는 그것을 오방색이라 하고 그는 이 불멸의 색감을 우리의 것, 우리 전통에서 건져냈다.

그가 그토록 싫어했던 표절같은 모방

1982년, 몸담았던 8년간의 대학강단을 떠났다. 그후 10년간을 떠돌던 그를 사람들은 은둔이라 했지만 그에게 있어 이 은둔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시어처럼 어디메 꽃처럼 숨어있음이라 하겠다. 10년간, 그는 바람처럼 살았다. 무수한 독서와 발바닥이 패이도록 오고간 혹한의 지리산에서 일년에도 대여섯번씩 날밤을 세기도 했다. 지리산 산동, 산이 있기에 물이 있고 물이 있기에 바람이 있음이라 했다. 나무와 숲을 그리고 그 곳을 오가는 수많은 흔적과 느낌속에서 그의 시선과 마음을 온통 빼앗아 버린 그것은... 어쩌면 그가 그토록 싫어했던 표절같은 모방과 전통과 문화의 단절을 향해 치닫던 당시의 경향과 시류를 향한 반기와 오기였으리라.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그가 이제 봇물이 터지듯 봄의 꽃들로 피워내고 있다. 62세인 그가 시작하는 그림은 그림이 아닌 삶 그 자체이다. 보아라! 이 어찌 그림이라 할 수 있는가? 放下着이 이것이구나.

우리나라 미술의 미래는...
우리나라 미술의 미래는 광주에 있다고 본다. 요즘도 난무하는 표절같은 모방이 주는 단조로움과 다분히 정치적인 일부 성향들에 곤혹스럽다. 미술계는 마치 바다를 항해하는 목표가 분명한 한 척의 커다란 배와 같아야 한다. 줄기차면서도 꿋꿋한 항해가 이루어지길 화단에 바란다. 광주지역의 문화수준은 이제 세계적이라 해야겠다. 중요한 것은 단절된 우리의 것을 끊임없이 되찾고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인식부터가 문제인 것은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하면 마치 대가인냥 대접받는다. 문화의 선진국에서는 나이 60이 돼서야 신인식을 치른다고 한다. 훌륭한 작품을 굳이 말해본다면 그것은 기술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밤낮 해야될 것은 캔퍼스를 뚫을만한 안광(眼光)을 지니는 것이다.

“동과 서 - 영원한 미의 신비를 향한 여행” 展
   
2000년 4월 20일 그의 작품이 우리에게 온다. 광주 시립미술관에 전시될 이번 전시회는 수기야마 유, 알랭 본네프와, 파비오 칼베티가 참여했으며, 순회전의 성격을 띄어 전시회 후엔 일본으로 장소를 옮기는 세계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계기다. 이렇듯 오승윤 화백의 작품들은 세계적인 거장들과 어깨를 견주며 한국의 독창성을 선양하고 있다. 90년대 초부터 이미 그 기반을 유럽이라는 토양에 깊숙이 뿌리내렸기에 피카소, 보나르, 베르나르 뷔페 등 1급 작가의 작품만을 표지에 장식했던 프랑스의 유력 미술지 ‘위니베르 데자르’의 표지에 아시아 최초로 그의 작품 “풍수”가 실려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음을 확인해 보였다. 지난 96년 몬테카를로에서 특별상 수상이후 세계는 그를 우리 화단의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2006년 1월 그의 죽음을 보며 ...
13일 오전 11시 집에서 먼 풍암동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그는 6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잔잔한 미소와 혀끝을 감돌던 향긋한 향을 풍기던 그 날의 한 잔의 차 나눔을 잊을 수 없다. 엄격하다시피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탐색하던 그와 가슴 가득 밀려드던 호기심으로 그의 그림 세계에 빠져 허공을 맴돌던 나, 1시간여... 방 밖을 나와 바라본 무등산에 투영되어 비로소 확인하였던 그의 희끗한 수염과 그림의 붓끝에 맴돌던 그의 가족의 모습들... 모두들 나와 서로를 반기며 웃음과 가족애가 묻어나던 그 때를 정말 잊을 수 없다. 어찌보면 문화수도를 꿈꾸던 광주는 문화의 한 축을 잃어버린 것이다.


   
광주 동구 지산동 오승윤 화백의 작업실에서 발견된 유서에서 '판화는 그대로 둬라. 재판시 증거로 놔둬라'라는 글과 함께 '사회는 너무 냉정했다', '예술은 나의 목적이었다' 등의 글 귀가 발견됐다고 한다.


10년을 맞이했던 2004년 광주비엔날레에 지역 최고령으로 우리나라의 '전통 대례'를 배경으로 한 '바람과 물의 역사'라는 600호 대작을 선보였던 오승윤 화백를 더 이상 볼 수 없다. 시인 고은은 오 화백에게 헌사한 '오승윤색' 이라는 시에서 그의 색의 특징을 '천 오백년 가을 단풍 단청으로부터 온다'며 '승윤의 화려강산 두둥실'이라고 까지 노래했는데 15일 영결식 이후 시신은 전남 화순군 동복면 선영에 묻힌다.

위의 글 중 일부는 광주문화예술신문 재직시 기사화했던 글입니다.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군요... 악수를 나누며 헤어지던 그 날의 영상은 내겐 지워지지 않을 추억이 됐습니다.

*강경구 기자:광주문화예술신문 편집국장 역임, 뉴스파워 광주전남 취재본부장, 취재문의는 ksharim@dreamwiz.com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 전)전남도민일보 기자/ 전)전남매일신문 도시재생 칼럼니스트/ 의학박사(수료), 대체의학석사, 경영학석사/시인(광주문협/문학춘추)/ 현)조선간호대학교 겸임교수/ 전)조선대학교 초빙교수/ 현)광주복지재단 강사/ 2013 농촌봉사대상 개인 국무총리상/ 2017 자원봉사부분 단체 대통령상/ 2018 농촌봉사 단체 농축산식품부장관상 / 2013, 2014, 2015 전라남도 도지사 표창 /2014,2017 담양군 표창/ 2014 광주 동구 표창/ 2015 화순군 표창/ 2016 장흥군 표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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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1/15 [04:32]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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