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뉴스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선교의 창시자이시고 주역이시고 수행자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바라보며”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목사), 좋은 소식교회, 2022년 1월 30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명혁   기사입력  2022/01/27 [13:07]

 

성경: 22:18, 3:16, 10:45, 1:8

 

▲ 김명혁 목사     ©뉴스파워

 

제가 20081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4년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제가 200823일 처음으로 좋은 소식교회에 와서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0912일 두 번째로 와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어머니 교회의 모습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1320일 세 번째로 와서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256일 네 번째로 와서 어린이들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21014일 다섯 번째로 와서 자원하는 신앙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31013일 여섯 번째로 와서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4216일 일곱 번째로 와서 성령의 감화와 도우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5118일 여덟 번째로 와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솔한 삶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575일 아홉 번째로 와서 어루만져 주시고 안아주시는 위로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613일 열 번째로 와서 새해와 여생의 소원과 기도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671011 번째로 와서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712212 번째로 와서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 소망을 지니고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772313 번째로 와서 나의 삶과 사역을 축복하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7123114 번째로 와서 한 해를 돌아보고 새 해를 맞으며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8610일 열15 번째로 와서 가장 귀중한 삶은 섬김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89916 번째로 와서 오직 예수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921017 번째로 와서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910618 번째로 와서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20223일 주일 19 번째로 와서 교회란 어떤 곳인가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20823일 주일 20번째로 와서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고 좋은 음식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21117일 주일 21번째로 와서 주일 성수와 예배 드림의 귀중한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21425일 주일 22번째로 와서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지니고 사신 신앙의 선배님들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21912일 주일 23번째로 와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유익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오늘 2022130일 여기 좋은 소식교회에 24번째로 와서 여러 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주신 허기정 목사님과 이영란 사모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무슨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허기정 목사님이 오늘 선교에 대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교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다가 오늘 선교의 창시자이신 성부 하나님과 선교의 주역이신 성자 예수님과 선교의 수행자이신 성령 하나님을 바라보며라는 좀 긴 제목으로 설교를 하기로 하고 허기정 목사님에게 물었더니 아주 좋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2022130일 주일 좋은 소식교회에 24번째로 와서 선교의 창시자이시고 주역이시고 수행자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기리며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제목으로 설교를 하기는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선교라는 주제는 우리 죄인들에게 있어서 너무너무 귀중하고 너무너무 보배로운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계속하시는 선교사역이 없었다면 우리 죄인들은 죄 사함이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었고 모두 저주와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선교의 창시자이시고 주역이시고 수행자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바라보며라는 제목의 설교를 시작합니다.

 

첫 번째로, “선교의 창시자이신 성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창조와 섭리의 하나님이신데, 아담의 후손들이 불순종과 반역의 온갖 죄를 범하는 것을 바라보시면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성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를 소원하시면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잡아서 번제를 드리라는 분부를 하셨습니다. 아마 성부 하나님께서 앞으로 성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속죄의 제물로 죽게 하시려는 생각을 하시면서 그런 분부를 아브라함에서 하셨을 것입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22:1,2). 결국 아브라함은 성부 하나님의 분부를 받은 즉시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달려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22:3,9,10). 성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절대 믿음과 절대 순종에 너무너무 놀라시면서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전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22:11,12,15-18). 여기 성부 하나님께서 절대 믿음과 절대 순종의 아브라함을 바라보시면서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라고 선포하신 말씀은 앞으로 성부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실 성자 예수님을 통해서 천하 만민이 사죄와 구원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될 것을 미리 선포하신 선교 창시자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 세상에 어린 아기로 태어나셨을 때 성부 하나님께서는 신약성경 첫 권 첫 장 첫 머리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1:1). 신약 성경 마태복음 11절의 말씀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구약 성경 창세기를 통해서 성자 예수님께서 앞으로 선교의 주역으로 세상에 오실 것을 말씀하셨는데, 나중에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는 성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죄인들을 위해서 대신 당하실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질고와 찔림과 죽음을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서술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53:4-7, 12). 너무너무 귀중한 선교 창시자의 예언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나중에는 온갖 죄악이 하늘에까지 상달한 저주 받아 마땅한 니느웨 사람들을 향하신 도에 넘치는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구원과 축복을 선언하시면서 앞으로 성자 예수님을 통해서 그와 같은 도에 넘치는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구원과 축복을 지구상의 모든 악독한 죄인들에게 베푸실 것을 예언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1:1,2).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찌라도 합당하니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4:911). 창조주이신 성부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정말로 선교와 구원의 창시자이셨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선교의 주역이산 성자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결국 선교와 구원의 사역을 실천하시기 위해서 성자 예수님을 죄 사함과 구원의 사역자로 즉 선교의 주역으로 세상에 보내시게 되었습니다. 성자 예수님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은 사도 요한이 성자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지극하신 사랑에 대한 말씀을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서술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3:16-18).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1). 사도 요한은 또한 성자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사랑과 위로와 도움과 축복에 대한 귀중한 말씀들을 많이 전했는데 그 중의 몇 가지 말씀만 인용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1-3).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15:1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20:21-23). 그러면 이제부터 선교의 주역으로 세상에 오셔서 사시고 사역하신 성자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6 가지로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선교의 주역이신 성자 예수님의 선교적인 삶과 사역은 첫째로 버리고” “떠나서” “찾아가는삶과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의 모델과 주역이 되시는 성자 예수님께서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하늘 집을 떠나시고세상을 찾아오셨기때문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2:6,7). 여기 자기를 비어라는 말씀은 박윤선 목사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하늘 영광을 떠나셨다라는 뜻이고 자기를 포기하고 버리셨다 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고후 8:9) 이라는 말씀도 부요함을 버리시고가난과 약함을 몸에 지니셨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복음 성가가 있습니다. “하늘 영광 떠나서 이 세상에 오신 주님, 섬기러 오신 주님 우리 위해 죽으셨네.” 성자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하늘 집을 떠나서세상을 찾아오시되구유에 찾아오셨습니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2:6). 구유에 찾아오신 성자 예수님께서는 한평생 목수의 집에서 가난하게 사셨고 가난한 자들과 병자들과 멸시 받는 자들과 저주 받은 자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시면서 죄인들과 병자들의 친구로 사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의 선교적인 삶과 사역은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하늘 집을 떠나서세상을 찾아오시되가난한 자들과 병자들과 멸시 받는 자들과 저주 받은 자들을 일일이 찾아오신 버림떠남찾아감의 삶과 사역이었습니다.

 

선교의 주역이신 성자 예수님의 선교적인 삶과 사역은 둘째로 찾아가는데 그치지 않고 찾아 간 곳의 사람들처럼 되는삶과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의 모델이 되시는 성자 예수님께서는 본래 하나님이셨고 말씀이셨는데 하늘 집을 버리고 떠나서 세상에 찾아오셔서 육신을 가진 사람이 되셨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1:14) 라고 사도 요한이 기록했습니다. “The Word became flesh.” 선교는 되는것입니다. 선교는 becoming 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육“Incarnation” 이라고 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그냥 사람이 되신 것이 아니고 죄 있는 육신을 가진 사람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너무너무 놀라운 일입니다.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8:3). 본래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님께서 살과 피를 가진 죄 있는 사람이 되신 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고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물론 헬라 인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죽는 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미련한 일이고 약한 일이고 멸시를 받을만한 일이라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러나 성자 예수님의 선교적인 삶과 사역은 찾아 간 곳의 사람들처럼 되는삶과 사역이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부요하신 분으로서 우리들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고후 8:9). 성자 예수님께서는 삶에 지친 그래서 목이 마른 수가성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그 여인과 비슷한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여인처럼 행로에 피곤하여 주저 앉으셨다고 했고 여인처럼 목이 말랐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4:6,7). 그 여자가 알아 들을 수 있는 평범하고 쉬운 말로 소통을 시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4:7). 너무너무 황송한 일이었지만 그것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고 죄인들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성자 예수님께서 취하신 선교적인 삶과 사역의 모습이었습니다. 성자 예수님의 선교는 버리고” “떠나서” “찾아가는것이고 그리고 되는것입니다. 나와 다른 존재가 되는것입니다.

 

선교의 주역이신 성자 예수님의 선교적인 삶과 사역은 셋째로 찾아 간 곳의 사람들과 함께 사는삶과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의 주역과 모델이 되시는 성자 예수님께서는 본래 하늘에서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천군 천사들과 함께 영광 중에서 사셨지만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하늘을 떠나시고 세상에 오셔서 세상의 사람들과 함께 사셨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1:14).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성자 예수님의 선교는 되는것에 그치지 않고 함께 사는것을 말합니다. 선교는 dwelling together 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시자마자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과 함께 사셨고나중에는 제자들과 함께 사셨고그리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면서 가까이 교제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9:10-13). 선교는 선교지에 가서 대형 집회를 잠깐 하고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 나라가 아닌 다른 곳에 가서 나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사는것입니다. 선교는 리빙스톤이나 슈바이쳐처럼 백인이 아프리카의 흑인들과 함께 사는것이고, 언더우드 선교사 4대 손처럼 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과 함께 사는것이고, 신홍식 선교사 3대 손들처럼 한국 사람이 태국 사람들과 함께 사는것입니다.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은 한센병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선교는 나 자신의 평안한 삶을 포기하고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과 함께 사는것을 말합니다.

 

선교의 주역이신 성자 예수님의 선교적인 삶과 사역은 넷째로 찾아 간 곳의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섬기는삶과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10:45).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22:27). 성자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의 몸을 어루만져 주시면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섬기셨고열병 환자의 손과 소경의 눈을 어루만져 주시면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섬기셨고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온유와 겸손과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로마 군인들과 그리고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강도에게도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섬김의 손길을 펴셨습니다. 그리고 원수들에게 까지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4). 선교는 함께 사는것이고 그리고 모두를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섬기는것입니다. “섬김의 선교적인 삶을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이 사셨다고 생각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몸으로 나타내면서 말이 아닌 삶과 죽음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이야말로 선교의 모델이시고 주역이신 성자 예수님을 본 받아서 모든 불쌍한 사람들을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섬긴 섬김의 본을 보이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데 신앙의 선배님들을 따라서 세계 곳곳을 찾아 다니면서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려고 애를 쓰곤 했습니다. 제가 세계 곳곳을 방문하면서 조그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면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모슬렘과 공산주의 진영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설교나 강의나 전도를 하지 않았지만 저들의 마음과 생각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놀라운 사실을 북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에서도 방글라데시에서도 중국 연변지역에서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무라취드에서도 발견했습니다.

 

선교의 주역이신 성자 예수님의 선교적인 삶과 사역은 다섯째로 찾아 간 곳의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삶과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죄와 사망과 저주에서 구원하시는 구세주로 세상에 오셨지만 동시에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의 주님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어느 날 세상을 등지고 절망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에게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의 주님으로 찾아가셨습니다. 수가성 여인을 찾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은 낮아지신 모습이었고 따뜻하신 모습이었습니다. 말하기를 싫어하는 수가 성 여인에게 먼저 말을 건네셨습니다. 소통을 먼저 시도하신 것이었습니다. 사실 소통이야말로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중요한 방편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낮아진 모습으로 그리고 따뜻한 모습으로 수가성 여인에게 말을 건네셨습니다. “여인이여, 내가 목이 마른 데 내게 물 한 모금 마시게 해 줄 수가 있소?” 그 여인은 아주 퉁명스러웠습니다. “별 사람 다 봤네. 점잖은 유대 양반이 개 같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건네며 물 한 모금까지 달라고 하시네.” 아주 무례하고 퉁명스러웠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고 계속해서 낮은 자세로 따뜻한 모습으로 말을 건네셨습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3,14). 결국 소통이 이루어졌습니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4:15). 수가성 여인은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했고 성자 예수님을 향해서 선지자로소이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수가성 여인에게 주님과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수가성 사람들과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도 이루어졌습니다. 수가성 여인은 물동이를 내 버려두고 수가성으로 달려가서 만나기 싫어하던 수가성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만난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그 결과 수가성 사람들이 성자 예수님에게로 나왔다고 했습니다(4:28-30).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 구유에 탄생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목적이 우리 죄인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심에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증오와 분노와 분쟁으로 가득한 세상과 우주에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가져오시는데 있었다고 누가와 사도 바울이 지적했습니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화해)하게 하려 하심이라”(2:14-16). 성자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화해와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5:23,24).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5:9). 저는 성자 예수님의 삶과 사역과 십자가에 나타난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가장 생생하게 나타내 보이신 분이 평화의 사도인 성 프랜시스와 사랑의 원자탄인 손양원 목사님과 한국교회와 사회가 존경하던 한경직 목사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은 모든 사람들을 찾아가서 낮은 자세와 따뜻한 자세로 말을 건네고 소통하면서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었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사람들은 물론 동물들과 식물과도 친밀한 소통을 하면서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었습니다.

 

선교의 주역이신 성자 예수님의 선교적인 삶과 사역은 여섯째로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는 삶과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의 모델과 주역이 되시는 성자 예수님께서 제물 되는 삶을 사시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16:21).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는니라”(5:2). 기독교는 제물 되는 삶제물 되는 죽음으로 이루어진 종교입니다. “제물 되는 삶제물 되는 죽음이 없이 선교가 이루어진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가 없었다면 사도 바울이 없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186695일 대동강 변에서 27살의 젊은 나이에 순교의 제물이 된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의 제물 되는 삶제물 되는 죽음이 없었다면 1885년 조선땅에 선교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선교는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는 것입니다. “제물 되는 삶제물 되는 죽음이 구원의 역사와 선교의 역사를 만듭니다.

  

세 번째로, “선교의 수행자이신 보혜사 성령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보혜사 성령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 하시는 창조와 구원의 사역을 함께 수행하시는 분이시고 특히 구원함을 받은 우리 신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우리들의 예배와 섬김과 전도와 선교의 사역을 도우시는 수행자이시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4:16,1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6). 성자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들의 선교 사역을 도우시는 선교의 수행자이시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사실 보혜사 성령님께서 예루살렘에 강림하심으로 예루살렘교회가 세워졌고 그래서 예배와 교제와 섬김에 정성을 다 쏟게 되었고 그리고 성령이 충만한 일곱 사람들 택해서 집사들로 세워서 구제와 섬김과 전도의 사역을 수행하게 하셨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선교의 사역을 전적으로 수행하게 하셨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1-4).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6:3-8). 결국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핍박자 사울이 회개하고 사도 바울로 탄생했고 사도행전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7:55-60). 스데반 집사의 순교의 죽음은 사울의 회개와 헌신에서 그친 것이 아니고 안디옥으로 아시아의 전역으로 그리고 이방으로 십자가의 복음이 전파되는 선교의 방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보혜사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우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11:19-24).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안디옥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는데 안디옥교회는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성령이 충만한 바나바가 있었고 스데반 집사의 순교의 열매인 사울이 있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11:25,26). 결국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그리고 바나바와 사울의 협력으로 안디옥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는데 안디옥교회는 교회가 새워지자 마자 선교사를 아시아에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쌔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13:1-5). 바나바와 사울 즉 사도 바울은 그후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아시아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13:46-48). 바울과 바나바는 곳곳으로 다니면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는데 저들이 가서 복음을 전할 곳을 정해주신 분이 바로 보혜사 성령님이셨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분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 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16:6-15). 결국 루디아의 집에서 빌립보교히가 세워지게 되었는데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일 귀중하게 여기면서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모두 뻗친 너무너무 귀중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대한 사랑과 감사와 헌신을 다음과 같이 진솔하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1:3-8).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2:17,18). 사도 바울은 기쁨이란 말을 빌립보서에서 17번이나 사용했습니다. 이와 같은 너무너무 귀중한 선교와 목회의 사역이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선교의 창시자이시고 주역이시고 수행자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바라보며라는 긴 제목의 긴 설교를 마무리 합니다. 이와 같은 제목의 설교를 처음으로 했는데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너무너무 귀중한 내용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죄인들을 너무너무 많이 사랑하시고 도우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우리들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리고 귀중한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면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간절하게 원하시고 신앙의 선배님들이 성실하게 수행하신 선교의 사역을 이어 가시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선교 사역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을 돌리는 사역이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과 은혜와 축복의 손길을 베푸는 귀중한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허기정 목사님과 이영란 사모님과 좋은 소식교회의 성도들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가득하게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교의 사역을 계속해서 수행하시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22/01/27 [13:07]   ⓒ newspower
 
김명혁 목사 관련기사목록
인기기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