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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2.05.28 [10:48]
김준곤 목사가 설립한 신안군 지도읍 봉리교회 최용호 목사 "이곳에 김준곤기념관 짓고 싶다"
"전남 신안군 지도읍 봉리교회 옆에 기념관 짓자고 신안군수에게 제안했다"
 
김철영

전남 신안군을 천사의섬이라고 한다. 신안은 3무의 고장이라고 한다. 점집(무당)이 없고, 술집이 없고, 풍어제가 없다고 한다.

 

임자도는 일제시대 우리나라 최대 민어파시가 있었다. 천일염으로 유명하다. 바둑왕 이세돌은 신안 비금 출신이다. 하의도는 김대중 대통령을 배출했다.

▲ 신안군 지도읍 봉리교회 최용호 목사     © 뉴스파워

 

기독교계에서는 한국대학생선교회(CCC)1958년 설립한 김준곤 목사와 중앙성결교회 담임목사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을 지낸 이만신 목사, 치유사역을 한국에 소개한 치유대학원대학교 정태기 교수, 안산제일교회 고훈 목사 등 많은 목회자들을 배출했다.

 

김준곤, 이만신, 정태기 교수 등은 낙도의 순교자로 알려진 문준경 전도사로부터 신앙적 영향을 받은 분들이다. 지도에서 가까운 증도면증동리 백사장 순교지 인근에는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증도는 전남 완도군 청산도와 함께 슬로우시티로 지정되었으며, 국내 최초로 금연지역으로 선포된 곳이다. 주민의 97퍼센트가 금연자라고 할 만큼 자연 환경 뿐만 아니라 보건 측면에서도 청정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주민 대다수가 교회를 출석하고 있다.

▲ 신안군 지도읍 봉리교회     © 뉴스파워

 

신안군 지도읍 봉리 원동마을 초입에는 봉리교회가 있다. 이곳은 김준곤 목사의 생가가 있는 마을로 이 교회는 김준곤 목사가 1951415일 목사 안수 받기 전에 교회를 설립했다.

 

이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용호 목사는 신안군 도초면 출신으로 서울에서 목회를 하다가 지난 2011년 부임해 지금까지 목회를 하고 있다.봉리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위임목사가 되어 교인들과 주민들을 돌보는 목회를 하고 있다.

 

지난 1130일 땅거미가 지면서 해가 어둑어둑 서산으로 넘어가는 오후 520분 경에 봉리교회를 찾았다. 교회 옆 부지에 김준곤목사기념관을 세웠으면 하는 바람을 전해왔기에 몇 차례 통화를 한 후 이날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최 목사도 신안이 고향이다. 고훈 목사와 같은 도초 출신이다. 공부를 잘 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 신안군 지도읍 봉리교회     최용호 목사© 뉴스파워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대학에 진학해 법학을 전공했고, 공직에서도 일했어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늦게 장신대 신대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됐어요. 계속 공부를 해서 샌프란시스코신학교에서 Th.D.(신학박사)를 받았습니다.”

 

최 목사는 봉리교회 바로 옆에 김준곤 목사의 생가가 있고, 봉리교회도 김 목사에 의해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역사적인 교회를 섬기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김준곤 목사님은 세계적인 대학생선교 지도자이셨고, 민족복음화운동을 이끄셨던 분입니다. 이곳에 기념관을 건립하면 전국과 전세계에서도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까운 증도 문준경 순교기념관, 소악도 12사도 순레길 등 기독교 탐방 순례 코스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 목사는 2년 전 교회 옆 700평의 땅을 매입했다. 그리고 기도하던 중에 친하게 지내는 박우량 신안군수에게 구상을 이야기했다. 박 군수는 소악도 12사도 순례길을 조성하는 일도 군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박 군수는 최 목사의 이야기를 듣고 좋은 방안이라며, 담당 공무원에게 적극 검토를 해보라고 지시했다. 우선 김준곤 목사의 생애와 사역 그리고 기념관이 건립될 경우 신안군 문화관광에 미칠 효과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면 좋겠다고 했다.

 

최 목사는 김준곤 목사의 생애와 사역을 기리는 공원 조성 형식으로 할지, 건물 중심의 기념관으로 할지도 검토를 해봐야 합니다. 아이디어가 실행이 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리겠지요.”

 

봉리마을은 주민 모두가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지도읍은 복음화율이 70퍼센트에 가깝다.

▲ 김준곤 목사님이 장로회신학교 1회로 졸업하셨을 때 사진. 우측이 6.25 때 순교하신 인정진 사모님. 따님 은희.     ©뉴스파워

 

19506.25 전쟁으로 경기도 파주 금촌에서 목회를 하다가 고향인 이곳으로 사모(인정진, 초등학교 교사)와 네 살 된 어린 딸을 데리고 피난을 왔던 김준곤 전도사는 103일 부친은 학살되었고, 인정진 사모는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는 이유로 순교를 당했다. 김 목사도 스물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극적으로 구출되었다.

 

그런 아픈 역사를 간직한 그는 이듬해인 1951415일 어린 딸(은희, 나성영락교회 권사, 2021724일 소천)을 데리고 봉리교회를 개척했던 것이다.

 

김준곤 목사는 영광 법성포교회, 광주서부교회(서현교회), 광주숭일중고등학교 교목과 교장을 역임하고 여수 애양원 한성신학교 교수를 거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가 1957CCC 설립자 빌 브라잇을 만나 한국CCC 사역을 제안받아 이듬해인 1958년 한국CCC사역을 시작했다.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였다.

 

김 목사는 CCC사역을 하면서 19622월 민족복음화의 비전을 품게되었으며, 19652월 김종필, 박현숙, 정일형, 김영삼 의원 등 20여 명의 기독 국회의원과 함께 국회조찬기도회를 창설했고, 이듬해인 38일에는 제1회 대통령조찬기도회를 열었다. 참석하기로 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갑자기 불참을 통보했지만, 3부 요인과 김영삼, 김종필 의원 등 국회의원과 주한 미국대사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또한 나사렛형제들 창단,전군신자화운동, 민족복음운동 선언, 춘천성시화운동 전도대회, 대전 충무체육관 1만명 민족복음화 요원 강습회, 한국교회 폭발적 부흥의 도화선이 됐던 엑스플로 ‘74대회, 10만 명 선교사 파송 헌신을 이끌어냈던 ’80세계복음화대성회, 한국창조과학회 창설, ‘84세계기도대성회, 전세계 95개 도시를 위성으로 연결한 엑스플로 ‘85대회, 뉴라이프 2000마닐라선교대회(CCC대학생 3000명 파송), GCOWE'95 세계선교대회, 등 실로 한국교회 부흥과 세계 선교의 시대를 견인했다.

특히 김수환 추기경, 송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 서영훈 적십자사 총재, 강문규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 등과 함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상임대표를 10년 간 맡아 북한동포 돕기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했다.

1999년 8월 4일 젖염소 450마리를 북한에 보내면서 CCC젖염소보내기운동을 전개해 황해북도 봉산군 은정리에 32만평 규모의 은정CCC젖염소목장을 완공해 북한 어린들에게 요구르트와 치즈를 제공했다.

김 목사는 "생존권이 소유권보다 우선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2002년 1월 28일부터 2월 3일까지 서경석 목사, 송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 강문규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 등과 함께 북한을 방문해 CCC가 지원한 젖염소목장을 직접 둘러보기도 했다.

북한의 190만 농가에 젖염소 한 마리씩을 보급하는 목표를 세웠다. 국토통일 이전에 사랑의 통일을 이루자고 역설했다.

▲ 신안군 지도 봉리 들녘     © 뉴스파워

 

최용호 목사를 만나고 나오면서 앞에 펼쳐진 들녘에서 유년시절 뛰어놀았을 소년 김준곤을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개펄까지 드러낸 바다에서 조개를 주워 유심히 관찰하는 소년 김준곤의 모습도 그려보았다.

 

일곱 여덟살 때 토방에 앉아 문준경 아주머니가 어머니(김통안 권사)에게 복음을 들려주고, 창가에 맞춰 구성지게 찬송가를 부르는 문준경 전도아주머니의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소년 김준곤의 모습도 상상을 해보았다.

▲ 신안군 지도읍 봉리 앞바다     © 뉴스파워

 

6.25의 아픔으로 1년 후 장로회신학교 1회 동기들인 엄두섭, 박요한 전도사 등과 함께 인정진 사모 장례식을 하는 모습도 그려보았다. 박요한 전도사가 맑은 목소리로 울밑에 선 봉선화를 곡에 맞춰 개사한 조가를 부르는 모습도 상상을 해보았다.

 

김준곤 목사는 2009929일 세상을 뜨기 전인 1년 전 인정진 사모의 묘 앞에 순교기념비를 하나 세웠다. 김 목사 소천 이후 봉리를 찾았다가 묘비가 서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 이전에는 따님 김은희 권사가 세워놓은 추모비가 있었다. 김 목사의 마음 한 켠에 평생 아련하게 남아있던 애잔함을 그렇게 조용하게 표현했을 것이다.

▲ 인정진 사모 순교기념비를 김준곤 목사가 2008년 세웠다.     ©뉴스파워

  

사과 속의 씨앗은 셀 수 있어도 씨앗 속의 씨앗은 셀 수 없다.”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 2006년 2월 15일 서울성시화운동 헌신예배에 앞서 외환은행 본점에서 서울영락교회까지 거리캠페인을 했다. 성시화운동 총재 김준곤 목사가 맨 앞     ©뉴스파워

김준곤 목사는 항상 모든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며 백문일답, 예수 그리스도를 외쳤다. 봉리교회를 떠나오면서 우리가 찾고 찾아야 할 분, 목이 터져라 전해야 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마음속에 새기고 또 새겼다. 돌비처럼 심비에 새겨야 한다.

 

봉리교회 입구에 설치해 놓은 오직 예수라는 표지석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 신안군 지도읍 봉리교회 입구에 세워져 있는 '오직 예수'     ©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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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12/01 [10:16]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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