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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화가 박영의 귀촌일기(31)]사랑의 그림자, 사랑의 그늘
박영 화백(홍대 미대 서양학과, 프랑스 유학, 크리스천정신문화연구원장)
 
박영   기사입력  2021/11/24 [08:57]

 

이 논 저 논 고 논엔 맑은 물 고여 들고, 따사로운 햇볕은 메마른 내 영혼에 은은하여 우리의 뻑쩍지근한 마음에도 불붙은 그리움으로 흐벅지는데 어쩌겠습니까. 바람도 우리들의 속내를 알았는지 예사스럽지 않습니다. 푸르른 칼날로 쑤욱 쑤욱 솟는 저 습한 곳의 창포를 보세요. 타오르는 것이 비단 나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온유한 사람은 성을 빼앗는 용사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다고 했는데 이 불길 같이 치솟는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강하되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기로 했건만.

 

▲ 박영 화백의 아뜰리에     ©뉴스파워

 

여성에게는 근본적으로 음탕함이 숨어 있어 그것을 어느 정도 컨트롤 해주느냐에 따라 석녀가 될 수도 있고 적당히 욕망을 분출할 줄 아는 여성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서로가 사랑의 아름다움 속에 방목되어 버린 지금, 단지 황홀할 뿐입니다. 사랑하므로 난 행복했지만 이제 내 옆에 초록빛이 질펀해져 정사가 이뤄지는 순간입니다. 축복의 환희, 가진 것 없어 초록이라도 맘껏 가져야겠습니다.

당신도 관념의 거미줄을 확 걷어치우고 잔물결 속에 빠져드는 이른 새벽별처럼. 낭떠러지에 뿌리 하나 박고 바다를 연모하는 에델바이스의 순결처럼 그대로 황홀하게 젖어 드십시오. 내 몸이 만물의 일부가 되는, 일체의 상상력과 욕망을 초월한 우리들의 몸, 고통과 억매임은 우리들을 가둬 둘 수가 없을 것입니다.

▲ 박영 화백 그림     © 뉴스파워


 
사랑의 땅에 사랑의 숲길 속으로 뛰어듭시다. 막 이삭 패기 시작한 수숫대가 낮달을 마당 바깥쪽으로 쓸어내고 있습니다. 우리 몸속에 길을 내는 그 분의 뜻을 붉은 열매로 매달기까지 그지없이 맑고, 순하고 따스한 이 순간들을 누려갑시다. 하늘의 별들이 내 속에 내려와 별 밭이 되기까지 삼십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30년은 별 밭에서 초록별과 함께 주님의 성채를 이뤄낼 것입니다.

당신을 내 피라고, 내 살이라고, 내 숨결이라고. 당신이 내 집에 스며든 게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내 피돌기의 흐름 속에 내 살의 어느 알 수 없는 주름 사이에 그리고 내 숨결의 마디사이에서 생성되어 왔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무의 어두운, 그 침침한 구석구석을 물오른 여름이 긴 혀를 내밀어 핥기 시작합니다. 마알갛게 어둠을 씻는 물소리를 들어 보셔요. 가슴에서 허벅지까지 아득해지는 대지의 숨소리가 들리나요. 에너지를 가득 실은 바람이 몸의 이곳저곳에 초록 점을 찍기 시작합니다. 기필코 솟아오르고야 마는 저 몸의 싹들, 그 하얀 얼굴이 하늘 구름으로 다가서서 검은 눈 속에다 그늘을 뱉어냅니다.

! 그 분은 내게 그림자가 되겠다고 하지만 난 그에게 다가가서 뙤약볕 아래 나무 한 그루 없어도. 키 큰 미루나무처럼 나는 그에게 그늘을 만들어 드릴 것입니다. 사랑의 그림자, 사랑의 그늘, 그 속에 한 여름 느긋하게 쉬어가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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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11/24 [08:57]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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