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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2.01.17 [15:27]
[NCCK 사건과 신학] 방향을 잃은 분노
이성훈 목사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 NCCK 신학위원)
 
이성훈

  

 빠르다늘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 생각이 무색할 만큼 정말 빠르다요즈음 세상이 변해가는 속도 말이다.

 

어쩌다 보니 지난 7월부터 계속해서 청년과 관련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지난 7월의 ‘2021년 대한민국에서 청년으로 살아가는 일과 8월의 청년과 불안’, 그리고 9월에도 또 청년이다. 9월 사건과 신학 주제를 논의하면서 우리가 눈여겨보았던 것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올림픽 이후 스포츠 스타들에 열광하는 그들의 모습미디어에 등장하는 다크 히어로에게 보내는 그들의 관심폭력적인 미디어 컨텐츠의 주인공들에게 보내는 그들의 찬사 등등.

 

그런데 그사이 벌써 대중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는 듯하다드라마 ‘D.P’의 흥행도 잠시 어느새 오징어 게임이 모든 대중의 관심을 다 흡수하는 듯하다어쩌면 미디어의 파도에 우리가 휩쓸려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과 함께 이 맹렬한 조류를 감당할 수 없음에 현타(현실적 자각)가 몰려온다.

 

논의의 과정에서 청년들은 영웅’, ‘히로이즘’, ‘메시아니즘’ 등의 이야기를 했고그들의 선배들은 이 시대의 정치경제문화 엘리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에 대한 청년들의 저항의 형태에 대해 이야기했다그래서 이번 호의 제목이 좀 길다.

 

이 시대 영웅에 대한 이야기정치경제문화 엘리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에 대한 청년들의 저항의 형태에 대한 보고

 

이번 사건과 신학이 긴 제목에서 느껴지는대로의 야심찬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조심스러운 마음이다잘못이 있다면 글쓴이들이 아니라 편집진의 문제일 것이다다만 우리는 이제까지 엘리트들이 만들어놓은 이 사회의 질서를 이제는 우리 청년들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랄뿐이다.

 

<사건과 신학 편집팀>

▲ 방향을 잃은 분노     © 뉴스파워

 

담임목회를 하기 전까지 중고등부, 청년부를 전담하면서 이들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던 때가 있습니다. 이들은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또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알기 위해서 최신가요를 듣고, 청년들이 즐기는 온라인 게임을 하고, 만화책,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까지 섭렵하면서 지내왔습니다. 이젠 청년이 거의 없는 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쌓인 습성을 버리긴 어려웠는지 여전히 게임, 만화책 등에서 벗어나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학문적인 분석이 첨가된 글도 아니고, 냉철하게 지금의 사회를 바라보면서 쓰는 글도 아닙니다. 그저 40살이 넘어 초등학생 자녀가 있음에도 자신이 아직 청년인 줄 착각하며 살아가는 한 목회자가 인터넷 세상 속에서 변화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적는 글입니다.

 

대략 10년 전쯤 라이트노벨 시장에는 이세계(異世界)물이라는 광풍이 불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죽거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마치 판타지 게임과 같은 세상으로 떨어져 그곳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 소재는 여전히 잘 팔리는 소재이기는 합니다. 라이트노벨이나 애니메이션이 일본 작품이 많긴 합니다만, 우리나라의 청년들도 그것을 보며 열광했다면, 이세계에 관한 관심이 일본 청년들만의 관심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세계물의 광풍 속에서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인터넷 상에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은 청년에게 지옥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우리의 삶을 지옥이라고 칭한다면, 그것은 이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드러냅니다. 당시 청년들은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어했습니다. 마치 소설이나 만화에서처럼 이 세상을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가길 원하는 듯 했습니다.

 

청년들의 탈출 욕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든 것으로 보입니다. 긍정적인 의미로 탈출 욕구가 극복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반대의 의미로, 이들의 탈출 시도는 포기되었습니다. 헬조선이라는 표현과 거의 동시에 나온 표현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었습니다. 어차피 망한 인생 다음 생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자조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이런 자조적인 이야기들이 한동안 인터넷을 떠돌더니 최근에는 하나의 경향만을 보게 됩니다. 특정 집단을 적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향해 비난하는 모습입니다. 남성은 여성을, 여성은 남성을 공격하며 비난합니다. 정치적인 이야기들도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식의 글을 많이 보게 됩니다. 어차피 망한 삶을 살아가는데, 이 분노를 모두 표출하면서 살아가자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인터넷을 떠돌면서 느낀 청년들의 모습은 분노라는 단어로 요약됩니다.

 

이들의 분노는 삶의 문제에서 기인합니다. 우리는 왜 망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누가 이런 사회를 만들었는가에 대한 분노입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의 사회 구조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좌파 빨갱이 취급하며 민주주의 사회의 적인 것처럼 대했습니다. 현재의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길 바라는 이들이 그렇게 만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들은 우리나라의 사회 구조가 잘못되어있다는 점을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분노합니다.

 

저는 이 분노가 근본적으로 기성세대를 향하고 있다고 봅니다. 현재의 사회 구조를 만들어놓은 사람들은 저를 포함한 우리, 기성세대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치열한 서열경쟁을 요구하는 사회입니다. 무엇을 하던 서열을 나누고 줄을 세웁니다. 서열 상위에 속한 이들은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커트라인 아래에 놓인 이들은 덜 노력한 사람, 노력하지 않은 사람 취급을 당하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합니다.

 

조국 사태가 터졌을 때 언론은 그들이 권력을 가지고 비리를 저질러 딸을 좋은 대학에 입학시켰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 비슷한 시기에 대학에 입학했던 청년들이나 당시 대입을 준비하고 있던 학생들과 이야기해보면 이것을 권력형 비리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에게 노력을 강요했지만, 청년들의 노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영역이 있었습니다. 노력이란 말은 승자들의 전유물이 되었고, 패자들을 질타하기 위한 말이 되었습니다.

 

분명 청년들은 이런 사회 구조를 만들어놓고 유지해가는 기성세대를 향해 분노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30, 40대가 되어도 부모를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 경쟁률 100:1은 일상이 되어버린 취업경쟁 속에서 청년들은 자신들의 부모, 기성세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만든 사회 구조에 분노하지만, 지금의 사회 구조가 무너지고 기성세대가 무너질 경우 자신들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분노하지만 표출하지 못합니다. 이들이 분노 표출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지금 사회 구조를 지키고자 하는 기성세대들이 청년들의 분노가 향하는 방향을 꺾어 놓았습니다. 자신들이나 사회 구조를 향해 분노하지 못하도록, 특정 집단을 만들고 그들을 자신들과 구분하며 상대 집단에게 분노를 쏟도록 이끌었습니다. 이것이 현재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특정 집단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청년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후 40년간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의 방랑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들의 40년 광야 생활은 출애굽 당시 사람들인, 자신의 부모 세대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들의 죄로 인해 이들은 40년 광야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노해도 표출할 수 없습니다. 이미 광야생활은 시작되었고, 자신들은 이집트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광야를 떠돌며 가나안 땅을 향해 가야만 했고, 그곳에서 목숨 걸고 전쟁을 하며 땅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지금의 청년들이 어떤 영웅, 특히나 다크히어로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아이러니에 빠져 자신들이 직접 할 수 없는 사회 구조 개혁을 향한 바람일 것입니다. 어쩌면 서열 위주의 줄 세우기를 해왔고, 무한 경쟁이야말로 사회의 정의이며,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해왔던 기성세대를 향한 소극적 분노 표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금 사회에서 청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금 청년들이 사회 속에서 어떤 고민을 안고 있다면, 그 고민은 우리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문제라는 점을 생각했으면 합니다. 특정 집단이 만들어낸 구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 구조입니다. 우리가 청년들을 진심으로 생각하며 우리 자신의 모습, 그들을 광야로 내몰았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본다면 조금은 청년들이 살아가기 편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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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10/10 [10:47]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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