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빌 1:3-5, 4:10,15
제가 2008년 1월 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3년 7개월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고 이따금씩 큰 교회들도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2008년 4월 26일 주일 큰 교회인 광야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루디아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같은 일꾼” 이러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9년 12월 1일 주일 열 다섯 번째로 와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20년 5월 31일 주일 여기 열 여섯 번째로 와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비결”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21년 3월 7일 주일 열 일곱 번째로 와서 “학교와 하나님과 교회와 나라를 사랑한 3.1운동의 주역 이승훈 선생을 기리며”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오늘 2021년 8월 22일 주일 열 여덟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주신 임명희 목사님과 정경화 사모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무슨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임명희 목사님이 오늘 “소통”에 대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의 삶”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아주 귀중하게 여기는 제목과 내용의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평생 목회와 교수와 선교와 구제 사역 등을 하면서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에 치중했다고 생각합니다. 강변교회를 개척해서 28년동안 목회를 하면서 신자들과 교역자들과의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에 치중했고 특히 새 신자들과 어린이들과의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에 치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피차 고마움과 기쁨과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과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을 누리면서 기쁘게 살았는데 빌립보서에 “기쁨” 이란 말을 17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빌 1:3-5).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4,5).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빌 4:10,15).
제가 강변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주력한 것은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이었는데 특히 어린이들과의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에 주력했던 일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오늘 그 이야기들을 좀 길게 하려고 합니다. 저는 어린이들을 아주 많이 좋아했고 어린이들도 저를 아주 많이 좋아했습니다. 주일 아침마다 11시 예배 전에 제가 주일 학교 각 부서에 들어가서 어린이들을 만나곤 했는데 유아부와 유치부 어린이들은 저에게 달려 들어 안기고 업히곤 했습니다. 유치부 어린이들 몇 명은 나에게 빙빙 돌려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이들의 두 손을 붙잡고 빙빙 돌리곤 했습니다. 유년부 어린이들 몇 명은 저에게 꼭 안겨서 그 대로 안겨 있기를 좋아했습니다. 주일 저녁 예배 시간에는 유아부와 유치부와 유년부 어린이들 10여명이 나와서 성경 암송도 하고 노래도 부르곤 했는데 얼마나 예쁘고 귀여웠는지 모릅니다. 2살 난 예나 4살 난 혜성이 4 살 난 주한이 4살 난 지민이가 성경 암송하는 모습은 너무너무 귀여웠습니다. 성경 암송과 노래 후 제가 스티커를 한 장씩 주곤 했는데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은우 라는 3살 난 아이는 주일 날 교회에 오면 꼭 목사님 방에 가자고 했습니다. 스티커 한 장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배 후 점심 식사를 할 때 거의 매번 예은이와 지원이가 제 옆으로 다가 오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엄마가 스티커 받지 말랬어요”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생글생글 웃는 얼굴 표정은 스티커를 한 장 주었으면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스티커를 한 장씩 주면 활짝 웃으면서 좋아하곤 했습니다.
어느 해 여름 유년부 어린이들이 양평으로 수련회를 떠났습니다. 제가 버스에 올라가서 어린이들을 배웅하며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 때 어린이들이 “목사님도 함께 가요!” 라고 졸라 댔습니다. 그래서 저는 짐도 싸지 않았는데 어떻게 갈 수 있느냐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때 어린이들은 저보고 빨리 집에 가서 짐을 싸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물, 어물 말하며 어린이들을 떠나 보냈습니다. 저는 한 참 생각하다가 몇 시간 후 김종군 목사님과 함께 양평으로 자동차를 타고 달려갔습니다. 유년부 어린이들이 함께 모여있는 방으로 들어가자 어린이들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목사님이 약속을 지켰다!” 제가 오겠다고 약속을 하지도 않았는데 어린이들이 저보고 약속을 지켰다고 하면서 좋아했습니다. 저는 어린이들과 물 놀이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얼마 후 제가 떠나려고 하자 어린이들은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디서 자겠느냐” 라고 하자 은정이와 하림이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둘 사이에서 자면 되잖아요.” 그 말을 들은 선생님들이 너무너무 재미있어 했습니다. 어린이들은 너무너무 예쁘고 귀엽습니다.
제가 잠깐 미국에 간 일이 있었는데 원주라는 어린 아이는 교회에 와서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저를 찾았다고 합니다. 엄마 보고 “목사님 어디 갔어?”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미국 갔다고 말하니까 원주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제가 이틀 빨리 돌아와서 원주에게 전화를 했더니 “목사님, 미국이에요 강변교회에요?” 라고 물었습니다. 강변교회라는 말에 원주의 얼굴은 함박꽃같이 환하게 피어났다고 합니다. 강변교회로 달려왔습니다. 꼭 안아주었더니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어린이들을 사랑으로 품어주면서 친밀하게 교제하면 어린이들은 목사님도 좋아하고 예수님도 사랑하게 됩니다.
저는 어린이들을 아주 많이 좋아하고 어린이들도 저를 아주 많이 좋아했는데 어린이들과 주고 받은 편지들을 소개합니다. 이레라는 아기는 생 후 8개월부터 제가 안아주며 예뻐하던 아이였습니다. 제가 제 방에서 이레를 안아주면 제 품에 안겨서 한 시간도 두 시간도 편하게 잠을 자던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방 소파에 들어 누어서 이례를 가슴이 안고 잠을 자곤 했습니다. 이레 엄마는 11시 예배를 마친 다음 이레를 제 방으로 데리고 와서 저에게 맡기고 몇 치간 후에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레가 5살 되었을 때 이사를 갔습니다. 5살 난 이레가 성탄절에 예쁜 편지를 써서 저에게 보냈습니다. “목사님께 메리 크리스마스. 목사님 저 어렸을 때 많이 많이 돌봐주시고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항상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목사님 그리고 또 할 말이 있어요. 저 나중에 크면 놀러 갈께요. ♡♡해요. 이레 올림 2004.12.21” 주은 이라는 어린이는 미국으로 갔는데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에게 목사님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전 교회가 제일 그리워요 그동안 예뻐해 주시고 안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고 싶어요 예쁜 스티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말씀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동생) 영준이 예뻐해 주시고 스티커 주셔서 고맙습니다. 멋지세요 주은이가 목사님께 ♡ 사랑해요. 축복 많이 받으세요. 전 초등학교 들어갔어요 친구들 사귀기가 힘들어요. 기도해주세요. 여기 교회들은 성경공부를 안 해서 실은 데 노력할게요. 기도해주세요. 강변교회처럼 좋은 찾아 달라고 기도해주세요. 주은이가 목사님에게 ♡ “
어린이들과 친밀하게 교제하면서 사랑으로 품어주면 어린이들의 믿음이 자라고 어린이들의 생각과 삶이 변화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의 성혜진이 보낸 편지를 소개합니다. 아기 때부터 제가 예뻐하고 사랑하던 믿음과 생각이 깊은 어린이였습니다. “목사님 제 꿈이 커졌어요… 목사님 요번 성탄절을 생각하면서 선물을 먼저 떠 올렸지만 설교 말씀을 듣고 나서 깨달았어요. 예수님이 태어나신 건 좋은 소식이지만 우리 죄를 위해서 돌아가실 분이었기 때문에 슬펐어요. 그래서 요번 성탄절은 선물만 고집할게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고 싶어요. 목사님 추운 날씨에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목사님 뜻 깊은 성탄절 되세요♪” 너무너무 착하고 예쁘고 생각이 깊은 글이었습니다. 혜진이의 편지 또 하나를 읽어 드립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도 커서 목사님이 되고 싶어요. 목사님이 되고 싶으면 성경과 찬송을 많이 읽고 외우고 많이 쓰고 그래야겠죠. 그렇지만 참 어려울 것 같아요. 목사님! 목사님은 어떻게 목사님이 되셨어요. 제 생각에는 목사님은 분명히 하나님을 많이 믿고, 성경과 찬송을 많이 외우고 부르고 쓰셨죠? 목사님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목사님 같아요. 저도 목사님이 될려면 목사님처럼 성경을 많이 읽어야겠죠? 목사님 그리고 목사님이 될려면 참 어려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꼭 목사님이 되서 하나님도 잘 믿고 아주 훌륭한 목사님이 될 거에요. 목사님 궁금한 게 있어요? 목사님은 설교하실 때 은혜로운 말씀을 어디서 가져오세요? 성경책에서 가지고 오신 것 같아요. 성경책에는 은혜로운 말씀이 담겨있으니까요. 목사님 찬송가에도 은혜로운 찬양이 담겨있을까요? 그러면 안녕히 계세요. 목사님 사랑해요. 안녕히 계세요. 성혜진 올림 2001.3.6” 어린이들과 친밀하게 교제하면서 사랑으로 돌아보면 어린이들의 생각이 깊어지고 아름다워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혜진이가 저에게 보낸 편지가 50개가 넘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강변교회에서 은퇴한지 10개월 후 추수감사주일에 강변교회에 가서 설교를 했는데 그 때 초등부 어린이들이 저에게 편지들을 써서 주었는데 그 중에서 몇 개를 소개합니다. 얼마나 귀엽고 예쁜 편지들인지 모릅니다. “김명혁 목사님께. 목사님, 벌써 목사님께서 이 교회를 떠나신지 1년이 다 되 가는군요. 저는 어렸을 때 탈북하신 목사님께 정이 많았어요. 목사님 정말 사랑해요. 목사님께서 어렸을 적부터 저에게 항상 스티커를 주시곤 하셨죠. 목사님, 저는 2008년 동안 목사님이 때때로 그립곤 했어요. 오늘 다시 만나게 되어서 참 반가웠어요. 지난날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2008년 11월 16일 목사님을 사랑하는 금찬후 올림” “김명혁 목사님께. 목사님 잘 지내셨어요? 목사님 뵈니까 너무 반가워요. 목사님 2년 전에 있었던 여름 성경학교 수련회를 기억해 주시니 너무 기뻐요. 목사님은 은정이를 오래오래 기억해 주세요. 저 은정이도 목사님의 사랑을 오래오래 기억할게요. 자주자주 교회에서 만났으면 좋겠어요. 스티커를 오랜만에 받아서 기뻐요. 자주자주 오셔서 스티커 주세요. 저도 목사님처럼 사랑하면서 감사하면서 기뻐하면서 아름답게 살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2008년 11월 16일 김은정 올림” “김명혁 목사님 저 하림이에용~♥ 목사님이 이제 교회 설교를 안 하셔서 너무 슬퍼하고 있어요. ♥ ㅠ.ㅠ 저는 김명혁 목사님이 2006년 여름 여름 성경학교 때 오신 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 목사님이 다시 오셨으면 좋겠어요 ^^ 저 목사님 너무 좋아요. 목사님 사랑♡ & ♡ ^^ 조아 ♥ 스티커 마니마니 주신거 있잖아요~ 한번도 안쓰고 중요하니까 스티커 앨범에 모두다 ~~ 모으고 있어요. 목사님 주시는 스티커 정말 예뻐요~ ♥ ♡♡♡♡X1,000,000 다른 나라에서 전도하실 때 건강하고 힘들지 않으시게 제가 매일 기도해드릴게요. 목사님 ~~ 항상 감사하며 살게요 ♡ 사랑해요 ♡ 목사님을 사랑하는 하림이 올림 ♡” “김명혁 목사님! 저 솔림이에요. 전 목사님이 정말 좋아요. ♥ 목사님이 계속 우리 교회 담임 목사님이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원로 목사님이 되시다니 …ㅠㅠ 그렇다고 허태성 목사님이 싫은 건 아니에요 ~^^ 꼭 오래오래 만수 무강하셔서 우리 교회에서 항상 매주마다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른 나라에 가셔서 다치지 않고 잘 전도하시길 기도할께요! 목사님을 너무 LOVE 하는 솔림 올림 ♥♥ 2008.11.16 Sun 다음에 꼭 뵈요. ♡♡♡” 어떤 어린이는 이런 편지를 써서 주기도 했습니다. “지금 목사님에게 정이 안 가면 김명혁 목사님을 생각하곤 합니다.”
어린이들을 귀여워하고 친밀하게 교제하며 사랑하는 일보다 귀중하고 행복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시면서 안아주시고 안수하시고 축복해주셨지요. 그리고 어린 아이 하나를 사랑하고 영접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고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지요.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 18:5,6).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어린이들을 귀여워하고 사랑하는 그래서 어린이들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사랑하고 소통하는 귀중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저의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의 대상이 제가 목회하던 강변교회의 신자들과 교역자들과 어린이들에게 국한한 것은 아니고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의 대상이 점점 넓어지고 확대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사실 저는 본래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극단적인 보수주의자였습니다. 일본도 북한도 중국도 공산주의도 모슬렘주의도 진보주의도 오순절주의도 타종교도 모두 싫어하고 비판하던 극단적인 보수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강변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 차츰 차츰 인종과 문화와 종교와 신학이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받아드리게 되었습니다.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의 대상이 점점 넓어지고 확대되었습니다. 일본 목회자들을 존경하며 사랑하게 되었고, 북한 사람들을 동족으로 인정하며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게 되었고, 중국을 문화가 비슷한 이웃 나라로 생각하며 존중하게 되었고, 신학이 다른 강원용 목사님과 조용기 목사님을 존경하며 사랑하게 되었고, 타종교 지도자들과도 친밀하게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노숙자들을 귀중히 여기며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게 되었고,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 가서 가뭄으로 죽어가는 모슬렘 사람들을 위해서 우물 열 개를 파주게 되었고, 방글라데시에 노재인 선교사를 파송해서 가난과 고난 중에 있는 어린이들과 모슬렘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펴게 되었고, 너무너무 극심한 가난과 고난 중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어린이들을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서 학교 하나를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중국 연변 지역의 불우한 조선족 고아 학생들 150여명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일을 지난 20여 년 동안 계속하게도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이웃들과 타민족들과 타종교인들과 반 기독교적인 나라들의 사람들과도 친밀하게 지낼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보람되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물론 이와 같은 일들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께서 죄악이 하늘에까지 찬 니느웨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면서 요나를 억지로 보내신 사실을 생각하고, 성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로마 군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신 성자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고, 그리고 나중에는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를 원수의 나라인 로마로 가서 순교의 제물이 되게 하신 성자 예수님의 지나친 사랑의 모습을 생각할 때, 우리들의 비판적인 자세도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자세로 바뀌어질 수도 있고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의 자세로 바뀌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비판적이고 배타적인 온갖 죄와 허물로 가득한 죄인 중의 죄인인데 하나님의 망극하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의 손길을 수 많은 반 기독교적인 사람들에게까지 펴게 되었고 그래서 수 많은 반 기독교적인 사람들이 부족한 저에게 진솔하고 친밀한 고마움을 나타내 보이게도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종류의 불우한 사람들에게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의 손길을 펴면서 살아가는 삶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다운 삶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의 삶”에 대한 말씀을 한 마디 더 함으로 오늘의 말씀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류의 불우한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의 삶을 사는 것이 아주 귀중하지만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의 삶을 사는 것보다 더 귀중하고 더 축복된 삶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온갖 죄와 허물로 가득한 우리 피조물들이 창조주와 구원자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의 삶을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죄인들은 하나님의 망극하시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의 삶”을 아주 조금은 살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비결 두 가지를 간단하게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첫째 비결은 우리 죄인들의 죄와 허물을 진솔하게 하나님께 고백하는 “회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 시대의 다윗은 성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화려한 제사가 아니라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 라고 고백하면서 평생토록 처절한 “회개”의 삶을 살았는데 다윗처럼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의 삶”을 산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6,1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10).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시 6:6). “회개”를 처절하게 한 다윗은 성부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는데 성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 1:1). 신약 시대의 사도 바울은 다윗의 뒤를 이어 “회개”를 처절하게 했는데 사도 바울은 사도 요한과 함께 하나님께서 쓰시는 귀중한 사역자들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1-24).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2-15). 처절한 “회개”를 우리 죄인들의 삶에 지니고 살게 될 때 우리 죄인들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의 삶”을 조금씩 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비결은 우리 죄인들의 몸과 마음과 정성과 시간과 소유와 생명을 모두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드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성부 하나님의 분부를 따라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을 때 성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아브라함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5-18). 성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과 드림의 삶을 기뻐하시면서 성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 1:1).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신들의 믿음으로 구원의 축복을 받은 신자들에게 권면한 말씀이 제일 먼저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제사 또는 예배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다시 말씀 드리지만 우리들이 위의 두 가지 즉 진솔한 “회개”의 삶과 “드림”의 삶을 살려고 최선을 다할 때 부족한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의 삶을 조금씩 살 수 있게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것으로 오늘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의 삶”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우리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과는 물론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소통의 삶”을 살아가는 그래서 감사와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귀중한 삶을 조금이라도 살아가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찬송가 “사랑하는 주님 앞에”(278, 220)를 함께 부르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