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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12.01 [18:16]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 아니다”
문준경의 방계 4대(孫) 정원영 목사(제일교회) “남편(정근택) 씨와 사이 좋았다”
 
김철영

  

낙도의 순교자문준경 전도사(1891. 2.2-1950.10.5.).

 

▲ 문준경 전도사     ©

한국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 성결교 총회장을 역임한 이만신 목사, 성결교단 총무를 역임한 이봉성 목사, 내적치유사역자 정태기 교수 등에게 신앙적 영향을 끼쳤던 전남 신안의 전도자로 6.25 전쟁 때 공산당에 의해 증동리 백사장에서 순교했다.

 

문준경 전도사에 대한 스토리 중 남편(정근택)씨와 결혼해 첫날 밤 소박을 맞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한마디로 비련의 여인이고, 남편은 참 나쁜 사람이 된다.

 

그런데 문준경 전도사의 방계 4대손인 정원영 목사는 소박맞은 여인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정 목사는 서울신대와 신대원을 졸업하고 전주 바울교회를 거쳐 미국 탈봇신학교에서 공부를 한 후 서울 은평구에 소재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일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정 목사는 초등학생 시절 전남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 바닷가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지와 묘지 앞에서 삼촌으로부터 할머니에 대해 들으면서 나도 할머니처럼 믿음의 사람이 될 거야라고 다짐했었다고 회상했다.

▲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의 방꼐 4대손 정원영 목사(제일성결교회)     © 뉴스파워

  

그가 문 전도사에 대한 자료를 찾고, 관련자들의 증언을 청취하고, 글을 받아 지난해 영원한 전도자, 하나님의 사람 문준경을 출판했다. 그 책에서 문 전도사에 대해 잘못 알려진 내용을 바로 잡은 것이다.

 

문준경 전도사의 남편 정근택 씨의 생질(조카)인 정태기 목사(전 한신대 교수,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총장)저는 두 분을 간간이 옆에서 직접 뵐 수 있었다. 그때의 모습을 기억하면 두 분은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문 전도사님은 버림 받은 분이 아니며 여전히 집안의 어른이셨다. 정근택 숙부님은 윤리나 도덕이 없는 분이 아니었으며 항상 본받고 싶은 그런 분이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문 전도사님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복음의 어머니라며 우리 신앙의 선진이고 귀한 자랑이다. 배경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 어찌 순교의 유산이 바르게 세워질 수 있겠는가.”라며 그간 곡해되었던 역사적 사실들이 바르게 정립되고 순교의 역사가 바로 세워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원영 목사는 저는 순교자의 자손임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다.”그런데 문준경 전도사님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자랑스러운 할머니는 버림 받은 여인이었고 할아바지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또 내용이 이쪽저쪽 서로 맞지 않았다.”그래서 문준경 할머니의 품에서 귀염 받으며 직접 신앙을 전수받은 어머니께 사실 관계를 여쭙고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집안 어른들을 찾아 나섰다.”고 밝혔다.

 

정 목사는 가장 먼저 집안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성장금 할머니를 찾아가 뵈었다. 문준경 할머니가 사셨던 등선리의 집과 담 하나를 두고 살았던 성씨 할머니로터 두 분은 정말 좋은 분들이었제. 다만 아를 못 낳아서 그랬제.”라는 증언을 들었다. 결혼한 첫날 밤 소박맞았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정원영 목사가 발굴한 내용에 의하면, 문준경 전도사는 189122일 전남 무안군(현 신안군) 암태면 수곡리에서 문천영의 34녀 중 3녀로 출생했다.(호적에는 189255일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1908318일 무안군 지도면 증동리 정회운의 삼남 정근택과 결혼했다.

 

▲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의 삶과 예수제자의 삶이 용해되 있는 증도면의 초입 증동리 교회 첨탑를 바라보며 윤동주의 시 십자가를 생각했다.     ©강경구

19181215일 시아버지가 별세한 후 3년 상을 지켰으며, 이로 인해 정씨 문중의 효부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니까 문 전도사는 정근택 씨와 10년 이상을 같이 살았다는 것이다.

 

둘 사이에 아이를 낳지 못했고, 1919129일 정근택의 형 정영범 씨가 대초리 등선부락에 분가를 시켰다. 아이를 낳지 못하자 문 전도사는 남편에게 후손을 이을 둘째 부인을 얻으라고 제안했다. 19221월 정 씨는 26세의 사별한 여인을 둘째 부인으로 맞았다. 그리고 둘 사이에 첫째 딸이 태어났다.

 

문준경 전도사는 남편의 둘째 부인의 첫째 딸이 태어나자 산모를 돌보고 태아를 받고 산후조리를 시켰다. 이후 둘째 부인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한편 후에 태어난 다른 자녀들도 깊이 사랑했다. 아이들도 문 전도사는 큰 어머니라고 불렀다.

 

문 전도사는 1926년 형제 중 기독교에 입문한 이의 권유로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며, 1927년 목포교회(당시 38)에 입고해 그해 11월 성령 체험을 하며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19284월에는 전성구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1931325일 목포교회에 이성봉 목사가 부임했다. 문 전도사는 3개월 후인 5월에 경성성서학원에 청강생으로 입학해 1936626일 제25회로 졸업했다.

 

문준경 전도사는 19327월 임자교회를 설립했다. 1934612일 이성봉 목사를 설교자로 모시고 예배당 헌당식을 했다. 19352월에는 증동리교회를 설립했다. 1938년에는 대초교회를 설립했다. 기도처는 임자 재원리, 망축리, 사옥도, 우전리, 지도둔독, 지도봉리 등이다.

 

특히 지도 봉리는 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의 고향으로 문 전도사는 먼 친척 되는 김 목사의 집에 들어 모친(김통안 권사)에게 복음을 전했다. 1924년생인 김 목사는 어린 시절 집에 온 문준경 아주머니로부터 처음을 복음을 들었다고 했다. 그의 신앙의 원초다.

 

김준곤 목사는 신학교를 다닐 때 문 전도사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한 후 문 전도사의 증동리교회 사택에서 신학교 동창 신복윤 전도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 역임)과 함께 두 달 반 동안 머문 적이 있다.

김 목사는 문준경 전도사의 마을의 대소사를 챙겼던 문 전도사의 사역을 보면서 교회의 목민센터 역할을 강조했고, ‘대신 거지운동을 강조했다. 그 도전을 받고 서경석 목사는 미자립교회 목회자들과 함께 나눔과 기쁨사역을 시작했다.

▲ 유성 김준곤 목사는 생전에 문준경 전도사의 묘소를 쓰다듬으시면서 "문준경 전도사님은 나의 어머니 같은 분이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뉴스파워

  

정근택 씨의 자녀들은지난 2014년 정근택과 문준경에 대한 잘못된 사실을 수정해 줄 것을 성결교단 총회장과 각 기관장들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그 내용 중에는 문 전도사가 처음 복음을 전한 임자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정근택 씨와 둘째 부인이 복음사역을 방해하고 박해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세 사람 모두 다정하게 지냈다고 했다. 특히 문 전도사가 경성신학원에 입학할 때도 정 씨와 의논을 했으며 학비도 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문 전도사가 임자도에서 교회를 개척했을 때는 큰 딸도 그 교회를 출석했으며, 증동리교회를 개척한 후에는 교회 자금을 위해 남편 정씨는 증동리 염산부락에 있는 논을 기증하여 교인들이 공동으로 경정해 교회 운영자금으로 사용하도록 했다고 했다.

 

정 씨는 서남해 해상왕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한 분으로 목포어업조합을 설립할 정도로 인지도가 있는 분이었고, 임자도에 정근택 씨의 땅을 밟지 않고서는 다닐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재력가였으며, 이런 연유로 많은 이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특별히 교육에도 힘쓴 분이었다고 했다. 특히 당시 파시의 장으로 일했던 임자도 타리섬에 사비를 들여 학교를 세워 지역민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줬다고 했다.

 

신안 증도 문준경순교기념관에 소박받고 평생 버림당함으로 살아낸 고난의 세월이라는 설명문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 좋은 며느리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사실이 왜곡되어 전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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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0/23 [12:49]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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