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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12.03 [22:04]
[김준곤 설교] 사마리아 여인의 실존적 샘터에서 만난 예수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
 
김준곤

성경: 요한복음 4:1~34

우리가 잘 아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과의 생수 문답에서 우리에게 주는 몇 가지 교훈을 생각해 보면,

▲ 1980년 8월 12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80세계복음화대성회에서 김준곤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10만 선교사 헌신서약을 이끌     ©뉴스파워



1. 예수께서 사마리아로 가셨습니다.
 팔레스틴은 남북이 불과 190km정도밖엔 되지 않지만 유다, 사마리아, 갈릴리로 3구분 되어 있고 유대인들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갈 때 심한 지역감정 때문에 직선거리로 3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우회하여 6일 동안이나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마리아로 가야만하는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는 일입니다.

주께서는 계시록 3장 20절처럼 개개인의 마음문 밖에서 두드리시고 열기만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그는 직접 찾아오시고, 저자세를 취하며 참으시고 기다리십니다. 주를 만난 우리의 경험을 살펴보면, 얼마나 오랫동안 주님 이 나를 기다리시고 두드리시며,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나를 부르시고 나를 찾아와서 나만이 아는 이름을 부르시면서, 나와 사랑의 관계를 확립 시키셨습니다. 그 주님이 지금도 민족과 학원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2. 사마리아 여인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온 인류를 상징합니다.
 그 여자는 몹시 고독하고 목마른 여인이었습니다. 남의 눈을 피해 아무도 물 길러 오지 않는 제일 더운 정오 때 우물에 나왔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한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찾고 있습니다. 목마르고 그리위하며 사모합니다. 마틴 부버는 “우리는 만남에로의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3. 사마리아는 이 세상을 상징합니다.
 한때 우리는 하나님의 아내였는데 악마의 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는 이질화, 혼종, 배교자를 상징하므로 이 세상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4. 야곱의 우물은 세상 사람들의 필요, 소원의 전부를 상징합니다.
 물처럼 필수품이 없습니다. 이 물은 없어서는 안 되며, 그래서 개인, 사회, 국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찾고 있는 그것 입니다. 그것은 야곱의 우물입니다.

이 야곱의 우물에 이 여인은 날마다 목말랐습니다. 인간의 욕망이라는 마차, 불길은 한이 없습니다. 그것들 속에 영원한 생명은 없는 것입니다. 어떤 것의 그림자이고 복사입니다.

예수만이 생수이고 생명의 떡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치 있다는 것과, 찾아야 할 것은 예수께 비하면 야곱의 우물인 것 입니다. 모든 영웅들이 얻었던 권력입니다. 학문과 예술을 통해서 얻으려 하는 만족, 쾌락 등은 사실 찾고 보면 무지개와 같은 것입니다. 황량한 폐허, 해수욕장의 가을, 마음의 사막, 화장터의 새벽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를 만난 자만이 “내가 찾는 것이 바로 당신이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5. 이 여인의 남편은 참 남편이 아닙니다.
이 여인은 남편을 정당한 남편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다가다 만난 남편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상징합니다. 이 세상과 죄악의 세력은 노예화시키며 우리의 헌신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인간의 마음을 쟁취하는 전쟁인 것입니다. 정치는 푯수 쟁취, 매스 미디어는 인간의 마음 매수 등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섬기고 살 수밖엔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무엇인가를 남편처럼 섬기고 살아야만 합니다. 오직 예수라는 새 남편을 모시기 전까지는 이런 가짜 남편의 부인 노릇을 해야 합니다. 그 남편들의 형편은 각각 다르나, 결국은 배신당하고 헌신짝처럼 버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나 나이 많아 늙을 때에는 그 남편들은 외면할 것입니다. 그때 그 여인이 부를 남편의 이름은 과연 누구겠습니까?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 불쌍합니다.


6. 이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는 종교적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 메시야, 구원, 예배 장소 등 종교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세상의 종교, 이것은 세상 철학과 이데올로기, 세상 사상과 종교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악마는 가장 종교적 입니다.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심오한 철학, 사상, 신비한 것 등으로 현혹시킵니다. 악의 꽃, 독버섯과 같은 미, 마약적인 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행과 금욕 종교를 만들고 순교까지도 시키는 악마가 만든 종교입니다. 참 남편은 한 분 뿐입니다. 참 진리는 하나입니다.

종교란 인간이 만든 종교이거나 하나님이 만든 종교, 이 두 가지밖엔 없습니다. 인간은 종교 없이 살 수 없는 고로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인간이 종교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는 종교 과잉입니다.


7. 참 생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는 말씀은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킵니다. 인간의 병은 상사병에 걸린 것입니다.

오직  하나의 사랑으로 치료가 가능합니다. 참 하나님을 그리스도 안에서 만날 때까지 이 그리움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당신은 나를 당신의 영광을 위해 창조했나이다. 그런 고로 주 안에 쉴 때까지 나에게는 평안이 없었나이다”라고 어거스틴은 고백했습니다.

주여, 당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처절하게, 그렇게 낮은 자세로, 그렇게 멀리 돌아와서 내 손목을 붙잡고 만나주셨나이까? 이 주님의 사랑으로 만나질 때 참 생수를 경험하게 됩니다.

성령은 보증 수표입니다. 내 속의 실력자, 이것은 객관적 실체입니다. 피조물의 창조자입니다. 그에게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납니다.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합니다.


8. 예수님의 양식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희어져 거두게 되었다’하시며 그 여인의 영혼을 하늘나라에 수확해  들이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기갈이 드셨습니다. 온 인류에 대한 사랑의 상처를 받고 계십니다. 전도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의 기갈, 갈증을 해소해 드리는 것입니다.

9.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여인과 만난 후의 여인은 완전히 다릅니다.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물동이를 내어 버렸습니다. 부끄러운 자신을 감추지 않고 사람들에게 나아갔습니다. 물동이를 버려 둘만한 필연적인 동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곳에서 주님은 이틀간 머무셨습니다. 이방 전도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3장에 나오는 당시의 지성인 이었던 니고데모의 대화 주제인 영생 문제에 비하면 이 여인의 주제는 멋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영혼의 복판에서, 영혼의 생활의 샘터에서 일어날 수 있고 찾아볼 수 있는 예수입니다. 자신을 내던져 섬길 남편 같은 분을 만났습니다. 이것이 실존적인 상황에서, 실존적인 행동으로, 실존적인 증언과 만남을 통해서 실존적인 증거의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관념적이 아닙니다. 그 즉시 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메시야를 만났다고 하며 이 분을 보라 했습니다.

예수는 신학교 교실이나, 사색의 샘터나, 기도원에서만 만나지는 분이 아닙니다. 사마리아 샘터에서 샘물과 같이 만나지는 것이며, 학생들도 학교에서, 장터에서 물건 파는 자도 예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물에서 물을 먹듯 만날 수, 마실 수 있습니다. 만병을 각각 다르게 처방하여 치료하는 것처럼, 내 병을 아시고 문제를 모두 아신 분과 만나질 수 있는 것 입니다.

주님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호흡과 같은 종교, 피와 살의 종교, 모든 것의 모든 것입니다. 절망적인 병상에서, 불타는 호텔의 극한 고통 속에서도 터져 나는 생수가 있을 수 있었을까요?

끝까지 그 사랑과 능력, 은총, 구원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을 볼 때 어찌 그것이 허구일 수 있습니까? 한낱 시적 사건일 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들어보고 들어봐도 그의 말밖에는 믿을 말이 없는 이 세상에서 주님의 굳건한 약속이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과 우리는 언제든지 만나집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속에 생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것은 정적인 것이 아니고 동적인 것입니다. 노인과 노인이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스파크가 일어나는, 다함이 없는 주님의 축복과 평안과 사랑과 기쁨의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서도, 생활의 도처에서 생수가 터져 나와야겠습니다.

 

*이 글은 김준곤 목사가 <CCC편지> 1982년 5월호에 기고한 것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84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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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0/08 [07:21]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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