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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10.20 [06:03]
찬반양론(贊反兩論)과 또 다른 우상
익산 북일교회(예장합동) 김익신 목사
 
김익신

 

                                  

 

 

▲ 익산북일교회 김익신 목사     ©뉴스파워

다리가 없이 몸이 둘이 붙어 있는 둘이자 한 사람인 정말 희귀한 사람을 보았다.

몸통은 하나인데 머리가 둘인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도 보았다.

 

미디어 매체를 통하여 접하게 그 사람들의 모습은 한마디로 충격적인 모습들 이었다.그러나 인간의 감정으로 볼 때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었지만 그들이 자연스럽게 공생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필자는 여러 가지 감동이 솟구침을 느끼게 되었다. 한 마디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으며 더 행복한 삶과 사회를 만들어 누릴 수 있는 우리들이지만 그렇지 못함에 대한 묘한 죄스러움은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필자는 이런 현실 앞에 서 있는 나와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 현재를 돌아보고자 한다.

인류역사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사회가 贊反으로 극명하게 분리가 된 모습들을 많이 보곤 한다. 에덴동산에서도 아담과 뱀의 관계를 통해서 贊反을 볼 수 있었던 것으로 출발하여 가인과 아벨, 그 이후에도 수많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다른 贊反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사도 바울과 실라도 贊反兩論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결말 또한 우리는 보았다.

 

그런데 현대 우리 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그 贊反兩論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건국일에 있어서도, 김구 선생 및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도, 일제 강점 36년 침탈, 4.3사건, 세월호 사건, 광주 민주화 항쟁인 5.18, 코로나19, 백선엽 장군의 사후 예우, 박원순 시장의 평가, 차별금지법의 입안, 동성애법, 부동산 법 등 기타 수많은 이슈(issue)에 대하여 너무 극명한 贊反兩論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또한 교단의 역사를 보더라도, 신학사상이나 교회제도에 있어서도, 교회 정치에 있어서도 언제든지 贊反兩論은 뗄 수 없는 공존의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또한 우리를 두렵게 하였으며 비참한 현실 앞에 많은 것을 잃게 된 결실도 보아 왔다. 그 후유증은 지금도 살아 있어 모든 이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贊反兩論이 우리 삶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그리고 어떤 사안에 있어 찬반양론이 당연히 따를 밖에 없다고 하자, 그 이후에 어떤 현상을 만들어 내냐 하는 것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의 고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과가 너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 비참한 결과는 대한민국 근대사에서도 얼마든지 보아 왔다. 그 출발이 무엇인가? 贊反兩論이다.

 

그러나 만들어진 결과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1. 양시론(兩是論)이다. 모두가 다 옳다고 하는 입장에 선다. 2. 양비론(兩非論)이다. 둘 다 틀렸다는 입장이다. 3. 극단주의 이분법적 사고에 의한 흑백논리이다. 우유부단한 양시론이나 모호한 양비론도 문제이지만 극단주의적 사고가 두렵다. 우리 사회는 찬반양론이라는 씨앗이 극단주의를 잉태하여 양극화 현상을 탄생시켜 혼란의 열매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두렵다. 그리고 그 참혹한 모습들이 우리 앞에 널브러져 있지 않게 될까 두렵다.

 

로마의 포폴로 광장이나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은 과거 광장정치 현장으로 유명하다. 자유 민주주의는 시민이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광장정치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만큼 광장에 모여 贊反兩論 토론을 활발히 하여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날의 광장을 사뭇 달라졌다. 분열(分列)정치의 산지가 되고 말았다. 폭력과 욕설이 넘치며 저주가 쏟아진다. 이래서는 결코 미래가 없다. 아니 재앙이 따를 뿐이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역할이 크다는 사실을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다. 왜일까?

 

과연 贊反兩論의 중심부에 서서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의 배경이 순수한 것이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누가 이런 모습과 결과를 기뻐할까를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고통스러움을 느낀다. 국가적 현실 앞에 격렬한 贊反兩論이 전개 되는 그 중심부에 또 다른 우상이 자리 잡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말이다. 또한 격렬하게 贊反兩論을 펼쳐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존재가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마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고통스럽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는 주의 음성이 떠오를 때도 더욱 고통스럽다. 贊反兩論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결코 나쁘다고 하고 싶지도 않다. 贊反兩論이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복음이 더욱 빛을 발하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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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8/21 [13:44]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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