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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5.31 [15:04]
[성경통독 가이드]지혜서II: 시 편(31)
김정권 장로의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 가이드 150
 
김정권

지혜서 II: 시 편 31

김정권 장로의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 가이드 150

 

 통독성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그리고 마태복음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신구약을 통으로 읽는 것이다. 이 메모는 신구약 1,189장을 4장씩 묶어서 298회분을 게재 할 예정이다. 매 성경 모두(冒頭)에 필요한 연대나 자료를 제시하여 성경 읽기에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성경의 매 장은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었는데 성경 메모는 단락 별로 제시하였고 지방이나 성읍과 일부분이지만 인명은 간단한 각주로 처리하였다. 본문과 대조하여 읽기 바란다. 단락별로 필요한 경우 적용과 기도를 넣었다. 이 메모에서는 논쟁이나 비판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성경의 흐름, 맥락, 요의, 함의, 경우에 따라서는 내용 정리 등을 기술하였고 가능한 간단히 처리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적색으로 된 것은 모두 성경 본문의 각주(脚註)이다. 성경은 우리의 맛있는 양식이며, 성경을 읽음으로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해 진다. 맛있는 1189, 행복한 298

 

▲     © 김정권



                      시편 119-122편 메모

 

 

<119 > 여호와 사랑 즉 역사적 승리     <지 혜>

 

   * 저자는 알 수 없다. 연대는 바빌로니아 포로 후기 에스라 시대로 추정한다.

     성경에서 가장 긴장인 이 119편은 22()으로 되어있으며 각 연은 8절씩 구성된다.

     매우 정교한 구조이다. 각 연, 각 절의 시작은 히브리어 알파벳 22자를 차례로 첫 글자로

     하고 있다. 이런 형식의 시를 답관체(踏冠體 acrostic)라고 하며 예레미야 애가 1-4장도 이런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시는 역사 시이며 역사적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답관체(踏冠體 또는 이합체 離合體, acrostic)란 시의 첫 음이나 끝 음을 모으면

     어구(語句)가 되는 형식이다. 시편 119편은 히브리어 알파벳 22자가 매절의 첫 자가 된다.

   * 단락의 주제에 [‘매절의 첫 자는 히브리어 알파벳이란 설명은 생략하고 첫 번째 자’,

     ‘두 번째 자부터 표기하겠다.

 

[첫 번째 자(א알레프)로 시작: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의 법을 지킴] (119:1-8)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는 율례를 지키는 복을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도움이며 그분의 선택으로만 율례를 지켜나갈 수 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자기 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다.

 

[두 번째 자( ב베트)로 시작: 주의 율법을 즐거워함] (119:9-16)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때 율법을 지키는 것은 의무나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 된다. 가볍고 즐겁고 참으로 좋은 것이 된다. 이런 사람만이 율법을 즐거워한다.

 

[세 번째 자( ג김멜)로 시작: 율법으로 악의 세력을 이김] (119:17-24)

 

  율법의 근원은 하나님 사랑에서 찾아야 한다. 율법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는 연구는 항상 필요하다. 하나님이 율법을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여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율법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주셨음을 항상 기억하고 순종해야한다. 그 길이 곧 인간 삶의 지표 일 것이다.

 

[네 번째 자( ד 달레트)로 시작: 고난 중에도 주의 말씀이 곧 생명] (119:25-32)

 

  시편 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은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한다. 율법을 묵상하는 것은 복 받은 사람이 하는 행위이다. 우리에게 고난이 닥쳐온다 하자 문제는 심령이 이 고난을 어떻게 받아드리고 대처하는가? 믿음의 백성은 항상 고난 중에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하고 넉넉히 이길 힘을 공급 받는다.

 

[다섯 번째 자( ה헤이)로 시작: 주의 율례를 아는 것이 복] (119:33-40)

 

  진리는 먼저 들어야 하고, 그다음 깨달아야 하고, 그다음 심령의 변화가 있게 되고, 그다음 마음의 천국을 이루게 된다. 진리를 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규례는 사람으로 가장 값지게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길이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말씀을 듣고 아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이다.

 

[여섯 번째 자( ו와우)로 시작: 비방하는 자에게 보여줄 확실한 법도] (119:41-48)

 

  불법 자들은 그 자체가 법을 무시하는 사람들이다. 법이 있으나 지키지 않으며 마음으로 법을 존중하지 않는다. 시인은 하나님의 율례를 지킴으로 자유자가 되며 형통(亨通) 한 길을 걷는 것을 악인들에게 보여 줌으로 그들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일곱 번째 자( ז자인)로 시작: 주의 법도로 지키는 규례] (119:49-56)

 

  믿음의 사람에게 규례를 지키는 것은 짐이 아니라 즐거움이요 가벼운 것이다. 즐거움으로 행하는 자는 건강하고, 소유가 늘고, 타인의 위에 서고, 만사가 형통하게 된다. 고로 즐겁게 행하는 것이 곧 건강이요, 재물이다.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로 부터 이런 복을 얻은 사람이다.

 

[여덟 번째 자( ח헤트)로 시작: 말씀대로 경건한 행실을 하는 것이 복] (119:57-64)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행하는 것이 곧 믿음 생활이다. 말씀을 주신 이는 그 말씀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하려고 주신 것이다. 지혜 자는 그래서 그 말씀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무리 악조건에 있다 해도 말씀으로 산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성경의 원리는 2분법으로 생각할 수 있다. 즉 성경에서 다룬 내용은 그것이 믿음에서냐? 불신앙에서냐? 로 갈린다. 즉 의인은 말씀 믿음 사랑 복된 삶으로 연계된다.

 

[아홉 번째 자( ט 테드)로 시작: 고난 중애도 법도를 따름] (119:65-72)

 

  고난은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삶의 전환기를 맞게도 한다. 시련, 질병, 실패, 좌절은 단순한 어려움이 아니다. 이런 기회는 우리 신앙생활의 전기(轉機)를 갖게 하고, 오히려 하나님 앞으로 더 나아갈 계기를 마련한다. 일이 잘 될 때나 안 될 때에도 믿음은 변함없이 우리로 기쁨과 기도와 감사를 이어 가게 한다.

 

[열 번째 자( י요드)로 시작: 주의 긍휼을 내게 베푸소서] (119:73-80)

 

  의인이 고난을 당 할 때 악인들이 항상 거짓으로 의인을 넘어뜨린다. 그러나 고난이 왜 오게 되었는지를 가늠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유 없는 고난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고난을 통한 승리를 쟁취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악인은 의인을 강화시키는 도구에 불과하다. 어려움이 오더라도 묵상가운데 하나님의 메시지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열한 번째 자( כ 카프)로 시작: 이유 없이 핍박하는 자에게서 구원] (119:81-88)

 

  시인은 역경 속에서 구원을 기다리며 말씀을 사모하고 있다. 말씀으로부터 구원이 올 수 있어서 즉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하면 주의 말씀이 진리이고 그 진리로 말미암아서 구원에 이르게 된다. 역경에 처한 사람은 말씀을 붙잡고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 내가 주의 규례를 지키겠나이다. 83절에 연기 속에 가죽 부대유목민들에게 가죽 부대는 물이나 포도주를 담는 도구이다. 이것이 불가에 있으면 수축하여 못쓰게 된다. 시인은 자신이 아주 못쓰게 되었음을 표현한 것이다. 시인이 말씀에 의지하여 억울함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구하는 노래이다.

 

[열두 번째 자( ל 라메드)로 시작: 주의 법도는 나의 즐거움] (119:89-96)

 

  주의 법도가 내 속에 있음은 내가 살아있는 증거이다. 말씀은 진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 법도를 따르는 것은 기쁨이다.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주의 법도로 즐거움을 맛볼 수 없다면 그는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다. 구원받은 백성은 주의 법을 즐긴다. 그 속에 사랑이 항상 역사하기 때문이다.

 

[열세 번째 자( מ)로 시작: 노인보다 더 지혜롭게 되는 주의 법도] (119:97-104)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지혜를 주신다. 젊은이나 늙은이나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지혜 자가 된다. 시인은 주의 법이 입에 꿀보다 더 달다고 하였다. 그렇다, 연인 사이에 주고받는 편지를 생각해 보라 메시지가 그렇게 감미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 그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는 달고 오묘한 것이다.

 

[열네 번째 자(נ)로 시작: 어떤 위협에도 떠날 수 없는 주의 법도] (119:105-112)

 

  말씀은 발걸음을 인도하는 등불이요, 앞길을 비추는 등불이다. 말씀은 우리를 인도하는 지혜를 갖고 있다. 비록 대적들이 우리를 올무에 걸어 넘어뜨리려 한다 해도 말씀에 굳건히 서 있으면 절대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말씀은 우리의 생명이요 길을 인도하는 빛이다. 결코, 떠나서는 아니 된다.

 

[열다섯 번째 자( ס 사메크)로 시작: 말씀에 대한 깊은 사랑과 경외] (119:113-120)

 

  의인은 말씀을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그 말씀이 곧 생명이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인은 두 마음을 품은 자(119:113)이고, 행악 자(119:115)이며, 주의 율례를 떠나는 자(119:118)이며, 결국 세상의 모든 악인은 망한다(119:119). 이런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을 대비하면서 의인은 주의 율법을 사랑함을 명쾌하게 진술한다.

 

[열여섯 번째 자(ע아인)로 시작; 주의 구원과 가르치심을 사모함] (119:121-128)

 

  시인을 지켜주실 것과 악인들이 나를 박해하지 못하게 하실 것을 간절히 구한다. 그러나 시인은 고난 중에서도 주의 가르침을 받기를 원한다. 깨달음을 원한다. 중요한 메시지이다. 어떤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깨달음으로 심령의 변화가 생기고 그 결과로 변화된 삶이 따라오게 된다. 믿음은 생명이고, 그 생명이 있음은 사랑(행위)으로 표현되고, 사랑으로 모든 율법을 완성하게 된다.

 

[열일곱 번째 자(פ페이)로 시작: 주의 계명에 대한 열정] (119:129-136)

 

  하나님이 주신 증거는 너무 커서 항상 지키나 악인들은 지키지 아니해서 눈물을 흘리게 된다. 시인은 주의 율례에 대해 더 깊이 함입(陷入)된다. 이제 너무 열심히 경주한 사람이 마지막 결승점에서 헐떡이는 것처럼 절정경험(絶頂 經驗, pick experience)을 하는 사람의 열정과 같이 율법을 너무 사랑한다(119:131). 비록 주의 율법을 사모하지만, 악인들의 행패는 여전하고 그들은 불법 자들이요 악인이다. 악인들의 불신앙의 행동을 보면 시인은 눈물이 난다. 오늘 우리 주변의 악인들 또 주를 모르는 자들을 보고 우리도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안타깝게 여겨야 한다.

 

 

[열여덟 번째 자( צ 차데)로 시작: 주의 말씀에 대한 경탄] (119:137-144)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도 오묘하고, 의롭고, 정당하며, 순수함으로 그를 사랑하고 그 말씀에 대하여 놀라움을 표한다. 우리나라 말에 조문도 석사가야(朝問道 夕死可也)”라는 말이 있다. “아침에 도를 들어 깨닫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라는 말이다. 그렇다. 시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들어 진리를 깨닫고 구원을 얻은 백성이다. 그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 비록 환난과 우환이 있어도 기쁨으로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열아홉 번째 자(ק코프)로 시작: 위기에서 구원하실 것을 호소] (119:145-152)

 

  주를 부르는 자에게 응답하시옵소서. 시인은 구원을 호소한다. 시인이 처한 상황은 항상 고난의 길이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을 붙잡고 굳게 서서 구원을 호소한다. 더 깊은 구원의 확신은 더 율법을 사랑하고 지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악인의 손에서 구원될 것은 확신하지만 그래도 시인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한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해야 한다.

 

[스무 번째 자(ר레이쉬)로 시작: 주의 율법을 잊지 아니함] (119:153-160)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살리소서 내가 주의 율법을 잊지 아니하리다. 시인은 항상 율법을 묵상하며 그를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복 받은 사람은 주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악인들은 율법에서 멀어진 사람들이다. 그들이 세상에서 형통(亨通) 한 것 같아도 결국은 패망하고 영원한 형벌을 면하지 못한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그들을 불상이 여겨야 한다.

 

[스물한 번째 자()로 시작: 박해로부터 구원의 호소] (119:161-168)

 

  시인은 고난 중에서도 오로지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계명을 지켜 흔들리지 아니했다. 참 신앙인의 모습이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 권력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말씀에 순종할 때 모든 어려움은 풀려 나아간다. 시인은 내가 주를 사랑하여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합니다.” 라고 고백한다. 믿음의 사람의 참 능력은 세상이 두렵지 않은 것이다. 두려움은 사람을 무능하게 하므로 암세포와 같은 것이다.

 

[스물두 번째 자( ת 타우)로 시작: 말씀 깨달음에 대한 열망] (119:169-176)

 

  시인의 마지막 소망은 말씀을 깨닫는 것이다. 진리를 알고 느끼고 깨닫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말씀하셨다. 히브리 문학에서 강조 용법은 3번 반복해서 쓴다. 길과 진리와 생명은 구원의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깨달음이다(13:23). 깨달음에서 심령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이에 어찌 노래가 없겠는가!

 

 

<120 > 구원을 바라는 기도     <비탄과 참회>

 

   * 120편에서 134편까지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이다.

     120편은 바빌로니아 포로 귀환 후 성전에 올라가는 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52편과 유사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도엑의 고발이 있었던 때를 배경으로 한 것 같다.

 

[구원에 대한 간절한 기도] (120:1, 2)

 

  환난 중에 부르짖는 노래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후의 시이다. 하나님은 선하시니 항상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다.

 

[악인에 대한 심판] (120:3, 4)

 

  이방의 훼방(毁謗)을 받고 악담(惡談)을 받던 일을 회상한다. 악인들의 말은 그들의 악한 말 때문에 악인들이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될 것에 대한 은유(隱喩)적 설명이다. 남을 헐뜯는 말을 한 사람은 결코 무서운 심판에서 벗어 날 수 없다.

 

[분쟁을 일삼는 이웃에 대한 탄식] (120:5-7)

 

  이방 중에 거하는 시인의 곤경을 설명한다. 시인은 화평하려고 하나 그들은 악의를 갖고 싸우려 한다. 메섹과 게달은 노아의 손자,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이며 이들은 카스피 해 근처에 살았다. 이스라엘이 이곳에 산적이 없으므로 직접적 관계보다는 호전적인 이들을 상징적으로 사용한 것 같다. 악인은 항상 싸우려 한다. 의인은 그들과 더불어서 싸움에 참여해서는 아니 된다.

 

 

<121 > 나를 지키시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      <시온의 노래>

 

   * 120편에서 134편까지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이다. 121편은 바벨론 포로 귀환 후 성전에

     올라가는 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순례자들이 즐겨 부른 노래인 것 같다.

[도움의 근원이신 하나님] (121:1, 2)

 

  하나님께서 나의 도움의 근본이시다. 나의 도움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께로 부터 온다. 사막에서 길을 걷는 사람에게 사막 산을 바라보면서 구원은 정말 어디서 올까? 뼛속 깊이 하나님이 지키심을 느끼고 외로운 사막 여로에서 확신과 안전함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이 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항상 지키시고 인도하심을 믿어서 두려움 없이 나아갈 것을 노래한다.

 

[개인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 (121:3, 4)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는 그 모습이 사실적으로 드러난다. 하나님은 우리를 실족하지 않게 하시며 그분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키시고 계신다. 시인의 확신, 그것은 개인과 이스라엘 민족에게 모두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지킴으로 개인, 가족, 교회, 사회, 국가가 안전하게 보존되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보호 아래 안전한 삶] (121:5-8)

 

  사막의 낮과 밤을 보라 낮에는 말할 수 없는 더위와 밤에 추위는 살인적이다. 시인은 하나님이 여기서 지켜 주신다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지키심으로 모든 환란에서 건져 주시고 우리의 출입을 영원히 지키신다는 뜻이다. 121편은 찬송으로 순례자들에게 애송되는 시이다. 고난을 겪는 사람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되는 시이기도 하다.

 

 

<122 > 예루살렘 찬양      <시온의 노래>

 

   * 120편에서 134편까지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이다. 다윗 당시의 예루살렘 모습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시는 예루살렘 순례자가 기록한 것으로 추측된다.

     저자는 알 수 없다. 1-5, 6-9절 두 연으로 나누어진다.

 

[예루살렘 순례의 권면] (122:1, 2)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를 권고한다. 이스라엘인에게 예루살렘 성을 순례하는 것은 일생의 큰일이고 기쁜 일이며 영광스러운 일이다. 시인은 예루살렘 성을 순례할 것을 권한다.

 

[예루살렘의 영광스러운 모습] (122:3-5)

 

  예루살렘을 찬양한다. 예루살렘은 종교와 정치에서 이스라엘의 상징이다. 성읍의 규모와 짜임새가 있고 민족적으로 성스러운 성읍이며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다. 따라서 순례자는 하나님의 성시(聖市)에 대한 찬양을 아끼지 않는다.

 

[예루살렘을 위한 축복] (122:6-9)

 

  예루살렘 성전에서 평강(平康)과 형통(亨通)의 복을 노래한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에게 형통(亨通) 함이 있고 궁중에도 형통함이 있으며, 하나님의 집에서 복을 구하게 된다. 하나님의 집은 성전(聖殿)이며, 성전 안에는 법궤(法櫃)가 있으며, 곧 하나님이 좌정하신 성스러운 곳이다. 예루살렘은 복 받은 곳이며, 그곳을 순례하는 자에게 또한 하나님의 복이 임할 것이다.

 



*김정권 시인(대구 침산제일교회 원로장로)는 대구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명예교수로 있으며 대한민국 황조근조 훈장을 수훈했다. 장애인 인권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특수교육 관련 다수의 저작물과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 가이드: 맛있는 1189, 행복한 298』(2016), 통독성경: 맛있는 1189, 행복한 298(2010-2018) CD(약 11,500페이지), 시집 『길을 모르는 사람의 길』(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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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4/02 [06:36]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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