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파워인터뷰생활/건강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20.12.04 [19:15]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재림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영천 하나승리교회(20. 3. 15) 주일예배 설교문
 
김명혁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재림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성경: 마 16:21,24,25, 20:19-21, 1:8-11

 

▲ 강변교회 김명혁 원로목사     ©뉴스파워

 

 

제가 20141221일 주일 영천 하나승리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오전 11시 예배 시간에는 나의 삶과 목회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오후 2시 예배 시간에는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18624일 주일 두 번째로 와서 오전 11시 예배 시간에는 주일 성수의 귀중한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오후 2시 예배 시간에는 모험심과 담력의 귀중한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했습니다. 2019624일 주일 여기 세 번째로 와서 모험심과 담력의 귀중한 신앙”(2) 이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계속했습니다. 오늘 2020315일 주일 여기 네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우기진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무슨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우기진 목사님이 십자가와 부활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사실 부활주일을 한 달 앞둔 오늘 십자가와 부활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는 것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십자가와 부활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열심히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거의 다 준비했을 때 십자가와 부활에다 승천과 재림이라는 말을 추가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재림의 예수님을 바라보며라는 좀 긴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과 핵심은 물론 십자가와 부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땅에 오셔서 온갖 고난과 핍박과 저주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다가 삼 일 후에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으로 심판과 저주를 받아 마땅한 우리 죄인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과 구원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들과 일꾼들이 되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아서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신 목적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고 삼일 후에 부활하시기 위해서라고 분명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16:21).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과 함께 승천과 재림이 아주 귀중한 성자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재림의 네 가지 길로 걸어가시는 성자 예수님을 바라보는 아주 귀중한 내용의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시는 성자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시는 성자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화려하고 찬란한 모습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시는 성자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모습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저주로 가득한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매를 맞으시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는 모습은 정말로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8:20).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저희에게 가르치시되”(8:31). 성자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은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16:24,25).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면서 핍박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는 자들이라고 하시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5:11,12).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시는 성자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모습은 너무너무 비참한 모습이었지만 동시에 성부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게 나타나신 너무너무 놀라운 삶과 사역의 모습이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지옥의 저주를 받아 마땅한 로마 군인들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중보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23:33,34). 성자 예수님께서는 또한 자기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가던 온갖 죄악을 범한 강도 한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서 아주 간단한 말 한 마디를 했을 때 그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23:42,43). 도에 넘치는 극진한 사랑과 구원의 선포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사랑의 기도와 구원의 축복을 선포하시는 성자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던 로마 군인들의 두목인 백부장이 너무너무 놀라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23:47).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시는 성자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모습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저주가 가득한 너무너무 비참한 삶과 사역의 모습이었지만 동시에 성부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게 나타난 그래서 저주받아 마땅한 로마 군인들과 강도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죄인들이 죄 사함과 구원의 축복을 받으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 너무너무 놀라운 축복의 모습이었습니다. 나중에 그와 같은 십자가의 길을 충성스럽게 걸어가신 분들이 스데반 집사와 사도 바울과 서머나의 폴리캅 감독과 대동강에서 목이 잘려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와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들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과 죽음 때문에 이 세상의 수 많은 사람들이 죄 사함과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너무너무 비참한 길이었지만 동시에 너무너무 축복된 길이었습니다

 

둘째로, 부활의 길로 걸어가시는 성자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활의 길로 걸어가시는 성자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부활의 길로 걸어가시는 성자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모습은 근심 걱정 두려움에 가득 찬 제자들에게 위로와 격려와 축복과 기쁨과 소망으로 넘치게 하신 너무너무 은혜로우신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는 근심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부활과 천국 소망에 대한 말씀을 미리 전부터 하시고 또 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1-3). 기독교 신앙의 중심과 핵심은 십자가와 함께 부활 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고 또 나타나셔서 위로와 격려와 축복과 기쁨과 소망으로 넘치는 너무너무 은혜로우신 말씀을 여러 번 하셨는데 그 중에 다섯 가지 이야기를 추려서 하려고 합니다.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나타나셔서 위로와 격려와 축복과 기쁨과 소망으로 넘치게 하신 사람은 일곱 귀신들렸던 저주 받아 마땅한 여자였던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서 울면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된 여자였습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십자가 아래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가상 칠언의 말씀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무덤가에 제일 먼저 찾아간 여자였습니다.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제일 먼저 나타나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20:16-18). 슬픔에 싸여있던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을 때 그녀의 삶이 하늘과 통하는 높은 차원의 기쁨과 소망의 삶으로 변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마리아야!” 라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마리아의 몸과 영혼에는 생기와 기쁨과 사명감으로 넘쳤을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그 다음에 나타나셔서 위로와 격려와 축복과 기쁨과 소망으로 넘치게 하신 사람은 엠마오로 걸어가던 두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부활의 주님을 만났을 때 저들의 눈이 밝아졌고 가슴이 뜨거워졌고 저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는 생기와 기쁨과 사명감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저들은 즉시 엠마오로 가던 발걸음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문을 닫아 걸고 숨어있던 열 한 제자들에게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24:32,35).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그 다음에 나타나셔서 위로와 격려와 축복과 기쁨과 소망으로 넘치게 하신 사람들은 한 주간 동안이나 문을 닫아 걸고 숨어있던 열 한 제자들이었습니다. 열 한 제자들도 부활의 주님을 만났을 때 저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생기가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제자들은 너무너무 놀라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니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24:36-43). 결국 열 한 제자들의 생애와 삶과 죽음이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다가 죽는 새로운 차원으로 바꾸어졌습니다.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그 다음에 나타나셔서 위로와 격려와 축복과 기쁨과 소망으로 넘치게 하신 사람은 배신자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이었습니다. 배신자 베드로가 부활의 주님을 세 번이나 만난 후에도 여섯 제자들과 함께 주님을 등지고 디베랴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갔다가 부활의 주님을 또 다시 만났습니다. 결국 베드로와 제자들의 믿음이 회복되고 사랑이 회복되고 사명이 회복되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21:15-19). 결국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평생 울면서 참회하는 회개의 사람들이 되었고 평생 울면서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들이 되었고 십자가를 지고 삶을 마무리하는 순교의 제물들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 보이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열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나타나서 부탁하신 말씀이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전념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에 전념하며 땅끝까지 이르러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1:3,4,8,9). 열한 제자들의 삶과 사역은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으로 충만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승천의 길로 올라가신 성자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가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까 승천하신 성자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모습이 승천하시기 이전의 모습보다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에 대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가 더욱더 깊고 더욱더 넓고 더욱더 충만하게 나타나신 모습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나타나 보이신 사람은 예수님을 핍박하던 그리고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서 죽인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던 사울이었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저주 받아 마땅한 사울에게 나타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울의 몸과 살과 피와 세포에는 하늘의 생명이 약동하는 혁명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결국 사울은 회개와 참회의 사람이 되었고,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었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화해의 사람이 되었고, 수고와 고난과 희생의 사람이 되었고, 십자가를 지고 달려가다가 삶을 마감하는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던 사울이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성자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9:1-6).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 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 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9:17-22). 십자가에 달려서 처참한 저주의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는 하늘 집으로 올라가셔서 얼마 동안 조용히 쉬시지 않으시고 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있는 저주 받아 마땅한 죄인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시면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고 또 다시 오신 모습을 바라볼 때 저는 눈물 어린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시작에 불과 했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이 온갖 죄악으로 가득한 모습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바라보시면서 밧모섬에 유배당하고 있던 사도 요한을 통해서 그 죄악들을 하나씩 하나씩 지적하시면서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라고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부드럽게 책망하시는 성자 예수님의 섬세하시고 부드러우신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또 다시 눈물 어린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2:1,4,5).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네게 두어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2:12,14,16).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것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볼찌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2:18-20,22,23).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3:1-3).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3:14-19). 부활 승천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신 성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들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너무나 세밀하게 관찰하시고 너무나 섬세하게 지적하시면서 부드러운 모습으로 잘못들을 책망하시면서 회개하고 또 회개하라고 분부하시는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너무나 좋으신 분이시라고 생각하면서 저는 또 다시 눈물 어린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주의 날에 밧모섬에 유배되었던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서 일곱 교회들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너무나 세밀하게 지적하시는 말씀을 하셨을 때 그리고 성자 예수님께서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 것을 보여주시고 또 보여주시고 또 보여주셨을 때 사도 요한은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닌 이미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바꾸어졌고 결국 하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하늘의 계시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부활 승천하신 성자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천군 천사들과 함께 계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또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도 요한은 게 4장부터 계 22장까지 내가 보니” “내가 보니” “내가 보니라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천국 소망을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분명하고 생생하게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4:1).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4:2).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책이 있으니”(5: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6: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종려 가지를 들고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7:9,10).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8:2).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열쇠를 받았더라”(9:1).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 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10:1).“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11:19). “하늘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12: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13: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14: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15: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16: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17: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18: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19: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20: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21: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22:1,2).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 부활 승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천군 천사들과 함께 그리고 큰 무리와 함께 계시는 하늘 집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게 하신 것은 너무 귀중하고 아름답고 축복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죄인들이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성자 예수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성자 예수님을 만나고 또 만날 때 우리들의 삶에는 죄 사함과 구원의 축복과 함께 하늘의 생명이 약동하는 하늘의 축복이 가득하게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성자 예수님을 만날 때 세상 영화에 붙어있던 세속적인 삶으로부터 하늘의 기쁨과 연결되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성자 예수님을 만났을 때 길선주 도사의 운명도, 이기풍 깡패의 운명도 변화되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주님께서 길선주에게 나타나서 길선주야, 길선주야, 길선주야라고 세 번 부르셨을 때 길선주 도사의 운명에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길선주는 조선 교회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주님께서 이기풍 깡패에게 나타나서 기풍아, 기풍아라고 부르셨을 때 이기풍 깡패의 운명에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기풍은 제주도 복음화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대부분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듣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이 섬세하게 적혀있는 성경책을 읽음으로, 정성껏 기도함으로, 그래서 성령님의 감동을 받음으로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주님을 만나고 또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운명과 삶이 변화됩니다. 죄 사함과 구원의 축복으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귀중한 삶을 살게 되고, 사랑과 섬김이 넘치는 귀중한 삶을 살게 되고,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복음을 전파하는 귀중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됨으로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 넘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일에 얽매어 사는 부끄러운 세속적인 삶으로부터 하늘과 통하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쁨과 생기와 사명감에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사도 바울처럼 이런 고백을 하게도 됩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4-37).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5-57). 얼마나 귀중하고 축복된 기쁨의 삶인지 모릅니다.

 

기독교는 만남과 교제와 나눔과 소통과 헌신의 종교입니다. 성탄과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주님을 깊이 만나고 친밀하게 교제하고 함께 나누고 진솔하게 소통하고 모든 것을 드릴 때 우리들의 삶과 사역은 감사와 기쁨으로 넘치는 축복의 삶과 사역으로 변화됩니다. 교육도 훈련도 필요하지만 진솔한 만남과 교제와 나눔과 소통과 헌신이 없는 기독교는 형식적인 종교가 되고 맙니다. 행사도 프로그램도 필요하지만 진솔한 만남과 교제와 나눔과 소통과 헌신이 없는 기독교는 형식적인 피곤한 종교가 되고 맙니다. 떠들썩한 마케팅의 종교가 되고 맙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회가 무슨 학원처럼 프로그램에 치중하고 있습니까? 프로그램과 교회성장에 우선순위를 두면 교회는 망합니다.” 방지일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자주하셨습니다. “전에는 우리들이 성령의 지배를 받으려고 무릎 꿇고 회개하면서 기도했는데 지금 한국 교회는 각종 음악과 각종 프로그램으로 성령을 지배하려고 대듭니다.”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들입니다. 성자 예수님을 만남이 운명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가슴이 뛰는 뜨거운 감사를 주님께 드리고 또 드렸습니다. 이런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 어떻게 부족한 저에게도 이런 주님 만남의 은혜와 축복을 허락하셨습니까? 주님, 어떻게 부족한 저에게도 이런 운명의 변화를 허락하셨습니까? 주님, 어떻게 부족한 저에게도 죄 사함과 죽은 것이 살아나는 축복을 경험하게 하셨습니까? 주님, 어떻게 부족한 저에게도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주님을 전하며 살게 하셨습니까? 주님, 어떻게 부족한 저에게도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주님을 증거하다가 죽어도 기뻐할 수 있는 마음까지 주셨습니까? 주님, 너무너무 황송하고 너무너무 감사한 것뿐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나 위하여 세상에 오신 주님! 나 위하여 죽으신 주님! 나 위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주님! 나 위하여 승천하신 주님! 나도 주님 위하여 살고 주님 위하여 죽게 하시옵소서!” 십자가와 부활의 계절에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주님을 새롭게 만나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주님께서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들에게 오셔서 우리들을 다시 만나주셔야 주님을 다시 만날 수가 있습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과 온유 겸손한 마음과 사모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다시 만나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떠들썩한 행사들이 아닌 조용한 삶의 변화가 필요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다시 오실 성자 예수님의 재림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실 때 천사들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했습니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1:10,11). 성자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마지막에 세 번 반복해서 하신 말씀도 재림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22:12).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22:20). 재림하실 성자 예수님의 모습은 천지와 동식물과 사람들과 에덴 동산을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하실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초에 천지와 동식물들과 사람들과 에덴 동산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이루실 새 창조의 사역이 성자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에덴 동산이 회복되고 온 우주가 회복되고 무덤에 묻혀있던 우리 죄인들의 모습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의 본래 보습을 회복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시기 위해서 성자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이 땅에 재림하실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사실 사도 바울도, 사도 요한도, 서머나의 감독도, 길선주 목사님도, 이성봉 목사님도, 손양원 목사님도 재림의 주님 앞에서 종말의 관점에서 자신들을 바라볼 때 고난과 환난과 핍박을 이기며 온유와 겸손을 몸에 지니고 죽도록 충성을 다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재림과 심판의 주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라고 권면했습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 4:3-5). 사도 요한의 마지막 기도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1).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마라나타라는 인사를 주고 받았는데 마라나타라는 말의 뜻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였습니다. 한국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님은 요한계시록을 만 독을 하고 암송을 하며 천국을 바라보고 사모하면서 한 평생을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한국교회의 무디라고 불리던 이성봉 목사님은 밤에 자다가 옆집 방앗간에서 방아 찢는 소리만 들어도 주님이 다시 오시지 않나 하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는 간증을 저는 중학생 때 직접 열두 번이나 들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도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손수 지은 주님 고대가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고적하고 쓸쓸한 빈 들판에서, 희미한 등불만 밝히어 놓고 오실 줄만 고대하고 기다리오니,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주님 계신 그 곳에 가고 싶어요.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주님, 내 영혼 당하는 것 볼 수 없어서 이 시간도 기다리고 계신 내 주님,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 옵소서.”

 

부족한 우리들도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깊이 생각하며 재림의 주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종말의 관점에서 재림의 주님 앞에서 나를 바라보지 않을 때 우리들은 방심하게 되고 자만하게 되고 무책임하게 되고 타락하게 되고 또는 낙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 앞에서 즉 종말의 관점에서 우리들을 바라볼 때 우리들은 정신을 차리게 되고 겸손하게 되고 책임감 있게 되고 소망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재림의 주님이야말로 우리들의 소망의 극치이고 우리들의 영광의 극치입니다. 재림의 주님이야말로 우리들의 겸손의 비결이고 우리들의 승리의 비결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성자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바라보는 일보다 더 귀중하고 더 보배로운 일은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들이 성자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볼 때 우리들은 주님을 만나게 되고 우리들의 운명이 귀중하게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기질과 성향이 아름답게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살과 피와 세포가 귀중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성탄과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재림의 주님을 깊이 생각하며 바라보는 귀중하고 복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지극히 낮아지신 성탄의 주님, 지극히 사랑하신 십자가의 주님, 생기를 불어넣어 살게 하시는 부활의 주님, 하늘의 소망과 영광에 참예케 하실 재림의 주님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고 만나면서 날마다 모든 것이 변화되는 변화의 삶과 성화의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20/03/15 [08:40]  최종편집: ⓒ newspower
 
관련기사목록
[김명혁 목사] 김명혁 원로목사, 서울 강남 판자촌 구룡마을 방문해 사랑실천 김철영 2020/11/07/
[김명혁 목사] “감당할 재난과 시험을 허락하시는 좋으신 하나님” 김명혁 2020/11/04/
[김명혁 목사] “행복은 하나님의 품과 교회의 품과 부부의 품과 자연의 품” 김명혁 2020/10/18/
[김명혁 목사] [김명혁 목사 설교]감당할 재난과 시험을 허락하시는 좋으신 하나님 김명혁 2020/10/10/
[김명혁 목사]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유익” 김명혁 2020/09/30/
[김명혁 목사]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마25:40) 김명혁 2020/09/11/
[김명혁 목사] “제일 귀중한 삶은 사랑하면서 사는 삶” 김명혁 2020/08/30/
[김명혁 목사] [김명혁 목사 설교]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아가는 삶" 김명혁 2020/08/16/
[김명혁 목사] [김명혁 목사 설교]“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살자” 김명혁 2020/08/11/
[김명혁 목사] “기도와 선교의 사람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삶과 사역” 김명혁 2020/07/09/
[김명혁 목사] [김명혁 목사]“나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 김명혁 2020/07/09/
[김명혁 목사] [김명혁 목사 설교문]하늘을 바라보며 영원을 사모하는 삶 김명혁 2020/05/22/
[김명혁 목사]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김명혁 2020/05/09/
[김명혁 목사]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재림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김명혁 2020/03/15/
[김명혁 목사] 김명혁 목사, 합동신학대학원에 저서 기증 김철영 2020/03/14/
[김명혁 목사] 3.1 정신이 한국교회에 주는 메시지 김명혁 2020/03/01/
[김명혁 목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예배와 기도회를 중단하는 한국교회” 김명혁 2020/02/24/
[김명혁 목사] 김명혁 목사 “6.25 전쟁을 되돌아보며” 김명혁 2020/02/23/
[김명혁 목사] 저의 지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맞으며 김명혁 2019/12/28/
[김명혁 목사]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김명혁 2019/12/19/
뉴스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8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