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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12.05 [21:34]
김명혁 목사 “6.25 전쟁을 되돌아보며”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한복협 명예회장)
 
김명혁

 

▲ 김명혁 목사     ©뉴스파워

6.25 전쟁은 1950625일 일요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이 남북 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전쟁을 이었습니다. 6.25전쟁은 일어나게 된 배경은 우리 나라가 1945815일 해방 후 독립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의 강제 군정 하에서 남한은 미국, 북한은 소련의 정부가 들어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남북간에 이념적 대립이 발생했고 1948년에 38선을 경계로 각각 두 개의 정부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남북한 사이에 군사 충돌이 자주 일어났고 전쟁의 기운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북한은 소련에서 최신식 무기를 지원받아 기습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사실 전쟁의 배후에는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1950625일 일요일에 6.25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김일성의 명령에 의해 북한은 급작스럽게 탱크를 동원해서 무차별적으로 남한을 공격했습니다. 무서운 기세로 내려온 북한은 3일 만에 수도인 서울을 점령하고 남쪽을 향해 내려왔습니다. 저는 13살 소년이었는데 인민군들이 탱크를 타고 서울 시내를 점령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북한이 남한을 점령하자 당시 남한의 지도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서 16개 나라에서 모인 국제 연합군을 남한으로 보냈고 국제 연합군의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은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0915일 인천상륙작전을 실행했습니다. 2주 후 연합군은 서울을 탈환했고 국군과 국제연합군이 38선을 넘어 평양과 압록강까지 점령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북한 지역에서 철수하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소련은 전쟁을 멈출 것을 제안했고, 유엔과 북한군 사이에 휴전 회담이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1950625일에 시작된 한국전쟁은 1953727일 막을 내리며 총 31개월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전쟁은 끝이 났지만 우리나라 국군 약 13만여 명이 전사하고 45만여 명이 부상을 입었고, 이후로 우리 민족은 서로 나뉜 채 전쟁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6.25 전쟁으로 인해 이산가족이 생기고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며 큰 상처를 남긴 전쟁이기도 합니다. 또한 한반도는 아직까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슬픈 역사를 안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제가 6.25 전쟁을 경험하면서 저의 삶과 사역에 지니게 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201846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뉴스파워에 실린 일이 있었는데 10 가지 은혜 중 네 번째 은혜에 대한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려고 합니다.

 

네 번째로 대구에서 지낸 나의 소년 시절의 추억들을 살펴본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월남한지 2년 만인 19506256.25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인민군들이 탱크를 타고 서울 시내를 지나가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미국 비행기 B 29가 하늘을 나르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고 B 29의 폭격도 눈 앞에서 목격했다. 내가 들어갈 수도 있었던 방공호가 폭격으로 인해 무너진 것을 눈으로 목격하기도 했고 폭격으로 인해 사람들이 길가에 쓸어지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나는 전쟁의 불행과 전쟁의 비극을 직접 체험한 것이었다.

 

 

결국 나는 6.25 전쟁으로 인해 서울을 떠나 피난민 대열에 끼어서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이모부님이 서울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회사 사장님의 봉고차를 함께 타고 사장님 가족과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부산까지 내려갔다. 부산까지 내려가는 길에서도 폭탄이 터지고 길가에 쓸어지는 사람들도 많았다. 전쟁은 불행한 것이고 비극적인 것이다. 우리는 부산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부산에서 몇 달 동안 피난 생활을 하다가 우리는 대구로 옮겨와서 3년 동안 대구에서 피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대구에서 셋방 하나를 얻고 한 방에서 불편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모님이 시장에 나가서 옷감 장사를 하며 돈을 잘 벌어서 차츰 어려움이 없는 피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는 대구에서 3년 동안 피난 생활을 하면서도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했다. 새벽기도는 거의 빠지지 않았고 주일날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교회에 있으면서 예배를 정성껏 드렸고 봉사와 전도에도 최선을 다했다. 셋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새벽마다 대문을 열고 잠그지도 않고 교회로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문을 열고 나가서 밖에서 대문을 잠그는 방법을 알아내었다. 결국 나는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새벽마다 대문을 열고 나가서 밖에서 대문을 잠그고 교회에 가서 마음껏 새벽기도를 드렸다. 나에게 있어서 언제나 신앙생활이 첫째였고 공부는 둘째 셋째였다. 나는 대구에서 처음에는 대구제일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 때 어린이 사역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안성진 목사님이 어린이 사역을 담당하시고 어린이 사역에 관한 모임도 주관하셨는데 나는 그 때부터 안성진 목사님을 평생 사랑하며 존경하게 되었다.

 

나는 대구제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여러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 때 대구에는 SB(Sister/Brother) 즉 누나와 동생을 맺는 것이 유행했는데 대구제일교회에 다니던 누나뻘 되는 주명숙이라는 고등학생이 나하고 누나와 동생을 하자고 했다. 나를 귀엽게 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자고 했다. 주명숙 누나는 그 때 내가 다니던 영남중학교 교장인 주덕근 교장 선생님의 딸이었다. 나는 누나와 친하게 지냈는데 누나는 나를 누나 집에 데려가서 음식도 해 주고 선물도 주고 내 손수건도 빨아주었다. 나는 그 때 사과 껍질을 깎는 법을 누나에게서 배웠다.

 

내가 대구에서 잊지 못할 귀중한 추억은 한국의 무디라고 불리던 이성봉 목사님을 만난 일이었고 이성봉 목사님을 통해서 너무나 깊은 은혜와 감동을 받은 일이었다. 그 때 이성봉 목사님이 몇 달에 한 번씩 이 교회 저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셨는데 나는 빠지지 않고 거의 매번 부흥회에 참석해서 은혜를 받곤 했다. 나는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12번은 참석한 것 같다. 그 때는 부흥회가 월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개학 때는 새벽과 저녁 집회만 참석했지만 방학 때는 오전 집회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은혜를 사모했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참석한 것이었다. 물론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된 것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언제나 신앙생활이 첫째였고 공부는 둘째 셋째였다. 이성봉 목사님이 새벽마다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셨고 오전과 저녁 집회 때는 은혜 사모와 성결과 헌신의 메시지를 전하셨다. 천로역정 강의는 너무너무 재미있었고 은혜로웠다. 때때로 세상 만사 살피니 참 헛 되구나...” 허사가를 부르시곤 했는데 이성봉 목사님의 목소리가 너무 좋았고 감동도 충만했다. 성경 아무데를 찾아서 읽으라고 하시면 나는 성경을 찾지도 않고 즉시 읽곤 했다. 찾아서 읽으라고 하시는 말씀들을 내가 거의 다 암송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요일 밤에는 철야기도를 했고 토요일 새벽에는 안수 기도를 받았다.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좋은 목사님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후에는 묻지도 않으시고 너 기도 제목이 좋은 목사님이 되는 거지라고 말씀하시면서 안수 기도를 해 주셨다. 12번은 안수 기도를 받은 것 같다.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었고 축복된 일이었다. 나는 이성봉 목사님으로부터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삶이 너무너무 귀중한 것을 배우게 되었고 그래서 평생 회개를 힘쓰면서 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성봉 목사님은 죄 지은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이 아니고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지옥 간다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한 번은 대구 어느 교회에서 미국에서 온 잘비스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셨는데 한경직 목사님이 통역을 하셨다. 나는 부흥회에 참석하면서 은혜를 받고 있었는데 잘비스 목사님이 회개는 혼자서 조용히 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씀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앞으로 나와서 공개적으로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라고 권면했다.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내가 먼저 일어나서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회개의 고백을 했다. 이성봉 목사님을 통해서 회개의 중요성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내가 무슨 죄를 고백하며 회개했는지 기억이 되지 않지만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진지하게 회개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성봉 목사님은 은혜 사모를 강조하셨는데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가 있어도 신자들이 은혜를 떠나서는 살 가 없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재림 신앙을 늘 강조하셨는데 밤에 자다가 옆 집 방앗간에서 방아 찢는 소리만 들어도 주님이 오시지 않나 하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는 고백을 여러 번 들었다.

 

6.25 전쟁이 우리 나라와 민족에게 참으로 불행한 전쟁이었지만 전쟁과 재난을 통해서도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에서 볼 때 저에게 있어서는 물론 한국교회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사건이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간 한국교회의 목회 지도자들 수 백 여명이 한 곳에서는 한경직 목사님을 중심으로 또 한 곳에서는 박윤선 목사님을 중심으로 며칠 동안 금식하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렸는데 그 일로 인해 한국교회 안에 회개 운동이 계속해서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면서 전쟁이 재발되지 않도록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서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남북한 사람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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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2/23 [15:4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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