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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11.30 [16:11]
[교회사 이야기]황제를 고발한 황후
로마에서 풀어놓는 한평우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
 
한평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황제를 고발한 황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남편을 성적 문제로 고소한 황후가 있다. 즉 황제가 잠자리를 강요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일은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이해될 수 있겠으나 12세기 초에 이런 일이 있었다니 놀랍다 싶다. 12세기 초란 우리로 치면 신라 말, 또는 고려 초다.

 

더구나 최고의 자리에 있는 황제의 부인이 말이다. 상대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다. 그는 일찍이 교황 그레고리 7세의 파문을 받고 모든 제후들이 파문의 문제가 회복되지 않으면 우리는 당신을 왕으로 섬길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멀리 이태리까지 찾아가야했다.

 

그리고 교황이 머물고 있는 여 백작 아틸다의 성문 앞에서 아내와 큰 아들 콘라드와 함께 삼일동안을 맨발로 추운 계절인 1월에 닫혀있는 성문이 열리기를 간청 드렸던 자다.

 

사실 교황이 세속 군주를 폐위하는 일은 4세기 기독교가 국교회가 된 이래로 단 한번도 선례가 없던 일이었다.

 

결국 파문을 용서 받았지만 교황의 처사에 복수심에 불타는 심정을 감추고 돌아왔다. 그런 차에 제후들이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워 반란을 도모하자 진압의 칼을 뽑았다.

 

그리고 교황은 제후들이 선정한 왕을 지지하였음으로 다시 그를 파문하였지만 그 때는 황제에게 막강한 힘이 주어졌을 때이었다. 황제는 반란을 진압하고 여세를 몰아 군대를 거느리고 로마를 공략하고 교황을 갈아 치워 버렸다.

 

그리고 입맛에 맞는 라벤나의 주교를 교황으로 임명하였는데 그가 클레멘트 3세다. 하루아침에 교황의 자리에 오른 신임교황은 감격하여 자진하여 황제의 머리에 찬란한 관을 씌워주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의 통치권을 공인했다.

 

그러나 황제가 세운 교황은 로마 시민과 교황청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추기경들은 불란 서인을 교황으로 세웠는데 그가 곧 우르바노 1세다. 교황 우르바노는 하인리히4세를 몰아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교황은 43세나 된 여 후작 아틸다를 남부독일 바이에른 벨트가문의 17살 난 벨트5(1072-1120)와 정략결혼을 주선했다. 무려 스물여섯 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이 결혼으로 독일 남부와 북 이탈리아의 황제를 반대하는 세력들을 규합하여 동맹을 맺었다. 놀랍게도 이 일에 하인리히 4세의 큰 아들 콘라드도 동참하였다.

 

그는 이미 아버지와 공동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에 있는 상황이었다.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아버지 하인리히4세의 심정은 어떠했을 까 싶다. 아마 아버지 다윗 왕을 대적하여 반란의 선봉에 섰던 압살롬을 바라보는 심정과 비슷하지 않았을 까 싶다.

 

장남 콘라드는 10933살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파문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 위해 교황이 머물고 있는 아틸다의 굳게 닫혀버린 성문 앞에서 3일 밤낮을 맨발로 울며 자비를 구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 그 성주인 여장부 아틸다에게 가담하여 아버지를 향해 칼을 들었으니 세상사는 참 알 수 없지 싶다. 기다리면 모든 권력은 자신에게 오는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1095년 피아첸자 공의회에서 하인리히 4세의 두 번째 부인 유프락시아가 남편이 잠자리를 강요하고 의붓아들 콘라드와 동침을 명령하는 등 비윤리적인 행위를 일삼았다고 증언하고 황제를 고소하는 일이 일어났다.

 

물론 이런 말은 황제를 모함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반대자들을 규합하는 데 있어서는 묘약 같은 것이었다. 황제를 반대하여 일어난 귀족들에게는 더할 나이 없는 좋은 질료가 되었다. 그것이 근거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황제의 부인의 입으로 직접 고백하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하인리히 4세는 전투의 경험이 풍부한 황제이었다. 역전 노장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반대파들의 비난과 공격은 전투의 승리를 통해 입을 닫게 만든다. 황제는 반대파들과의 전투에서 승리

하고 돌아온 후에 마인츠 왕국회의를 개최하여 장남을 폐위시키고 차남을 하인리히 5세로 자신의 뒤를 승계하도록 했다.

 

교황 우르바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와 끊임없이 대치한 것은 개혁의 궤를 같이한 전임 교황 그레고리 7세에 대한 연민과, 또한 황제의 권력으로 인한 자신의 입지가 불안정하였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자신도 세속의 권력을 지닌 황제에 의해 전임 교황처럼 갈아치움을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를 불안하게 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황제를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일에 골똘하였다. 그런데 뜻을 이루지 못하고 1099년에 세상을 떠났고, 결국 후임 교황인 파스칼리스 2세 때인 1106년에 하인리히 4세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버지를 배반한 둘 째 아들 하인리히 5세에 대한 한을 풀지 못하고 말이다.

 

두 아들과 부인까지 황제를 거역한 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문제가 있지 않을 까 싶다. 할 수 있는 대로 이웃 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는 삶이야말로 복된 일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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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2/24 [20:01]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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