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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2.26 [07:02]
소강석 목사 파워 인터뷰 “문화적 병리현상, 우리 사회 병들게 해"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 파워인터뷰 "한국 교계 통합 위해 몸 던지겠다"
 
김철영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는 ‘3M의 목회자로 잘 알려져 있다. 1988년 서울 가락동 지하 상가에서 맨손, 맨몸, 맨땅에서 교회를 개척해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로 성장을 견인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     ©뉴스파워

 

소강석 목사는 그러나 개교회주의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한국 교회 최초로 6.25 참전 해외 용사들을 초청해 보은행사를 개최했다. 한 두 해 보여주기가 아닌 13년 동안 진행해왔다. 외교부는 소 목사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했다.

 

지난 2018년에는 교회설립 30주년을 맞아 40억 원의 예산을 교회 밖으로 흘려보냈다. 예배당 건축 부채가 아직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산이 필요한 기관으로 흘려보내는 파이프라인이 되어 주었다.

 

지난해에는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조언을 하기도 했다. 교계 사역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적 현안에 대한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한 것이다.

 

소 목사를 만나보면 열정이 느껴진다. 그가 맡은 사역 하나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성도들과 정성적으로 교감하면서 설교를 한다. 대중가요를 개사하여 복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한다.

 

가끔 설교 도중에 “J에게등 개사한 노래를 부를 때는 기성 가수 이상의 제스쳐와 감정 몰입을 한다. 이 교회 장로인 가수 남진도 손뼉을 치면서 환한 미소로 소 목사의 모습을 응원한다.

 

그런가 하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설교할 때는 전라도 남원 산골에서 자라면서 체험했던 장례 행렬에서 불렀던 소리꾼의 만가를 구성지게 한가락 뽑기도 한다. 한마디로 네러티브 스토리텔링 설교는 성도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는 자신의 설교 스타일을 광대설교라고 정의한다. “광대설교는 남아공의 한 신학자가 사용한 용어다. 한국 교회에서 광대 설교의 한 영역을 구축한 설교자라고 평가할 수 있다.

 

소 목사는 여야 정치권을 아우르는 폭넓은 인맥과 친화력으로 한국교회의 현안 해결에도 앞장서왔다. 신학과 신앙은 철저한 보수이고 이념적 입장도 보수주의자이지만 남북문제와 복지 문제 등에서는 실용적 입장을 취한다.

▲ 소강석 목사는 하나님을 심장처럼 사랑한다. 그의 사무실에서 걸려 있는 시편 말씀     ©뉴스파워

 

소 목사는 차별금지법안 제정 반대, 이슬람 수쿠크법 반대, 할랄단지 반대, 성평등 조례 반대,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성적지향삭제 개정운동에 앞장서왔다.

무엇보다 종교인 과세 문제의 올바른 시행을 위한 역할을 주도했다. 종교과세를 종교인 소득과세로 시행되도록 하는데 김진표 장로(더불어민주당, 국회조찬기도회장)와 함께 정부 여당을 설득했다. 자칫 종교과세로 시행될 경우 교회 세무사 조사 등의 우려가 제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소 목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종교인소득으로 한정했고, ‘기타 소득으로 포함되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소 목사 때문에 종교인 과세가 통과된 것처럼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것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소 목사와 새에덴교회는 오래전부터 교회 사역자들에 대한 4대 보험과 소득신고를 해왔다


소 목사는 지난해
9월 한국 최대의 교단인 예장합동 부총회장에 당선됐다. 총회 역사상 37년만에 단독으로 입후보해 추대가 되었다. 소 목사는 교단 총회장이 되려는 것은 교단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공적 사역을 보다 더 잘 감당하기 위함이며, 한기총, 한교연, 한교총 등으로 분열된 한국교회 연합기관의 통합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오는 9월 총회장에 취임하게 된다. 부총회장으로 있을 때는 조용히 자세를 낮추고 총회장을 보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총회장이 되면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해 온 몸을 던지겠다고 밝혔다. 한교총, 한교연, 한기총을 하나의 연합기관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소 목사는 시인이다. ‘천상병 문학상윤동주 문학상도 수상했다. 일반 목회자들보다 훨씬 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가 시를 쓸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사색의 공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문학적 감성의 저수지를 만드는 그만의 비책이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등산이다.

▲ 반팔 와이셔츠를 입고 인터뷰하는 소강석 목사     ©뉴스파워

 

소 목사는 24일 오전 새에덴교회 집무실에서 만났을 때 반팔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는 한 겨울에도 반팔 와이셔츠를 입는다고 했다. 더 놀라운 것은 교회 뒷산 야간 산행을 하고 새벽 2시 넘어 하산했다고 한다. 그리고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시집과 풀꽃시인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새벽 4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고 했다.

 

시인이자 목회자인 소 목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목회자’, ‘하나님 나라 관점으로 한국교회를 품은 목회자’, ‘하나님이 주신 섬세한 감성으로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목회자’, ‘국가와 민족을 예수의 심장으로 품은 목회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 목사는 이날 대담에서 가짜뉴스의 폐해에 대한 경고를 했다.  그는 가짜뉴스에 병들면 문화적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가게 된다. 오히려 동성애와 여러 차별금지법이 갖다 주는 패악 못지않게 국민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집무실 벽에는 국민훈장증을 비롯해 수많은 감사패와 위촉패 전시되어 있었다. 가히 그의 활동의 보폭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2020년 새해, 그의 활동을 통해 한국 교회가 새로워지고 초갈등 사회를 화해사회로 만드는 일에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원했다.

▲ 새에덴교회     ©뉴스파워

 
 다음은 소 목사와 나눈 대담 전문.

 

예장합동 부총회장이다. 앞으로 총회와 한국교회를 이끌어 나가셔야 한다.

 

부총회장으로서 일단 준비하고 있다. 준비하고 있다는 말은 각오도 돼 있다는 것이다.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세상 말로 지금 교계가 혼돈스럽지 않은가. 주류파는 잠잠하고 일각에서는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정치적 목소리를 낼 뿐 아니라 4.15총선이 돼 봐야 알겠지만 자기 욕심을 챙기려는 움직임도 있을 것이다. 교계 분열보다 정치적 이념적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보수도 분열이 있을지 모른다. 보수가 통합하고 있지만 교계까지 함께 가진 못할 것이다. 그 이후 한국교회가 얼마나 공허와 혼돈에 빠질 것인가 고민해 본다. 목적을 이뤄도 교계 통합은 쉽지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게 우리 교단은 큰 틀에서는 알고 있지만 세세하게는 모르는 부분들도 있다. 그런 부분들을 준비할 것이다. 그럼에도 교계는 총회장이 일일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교계 연합기관을 하나로 통합하는 일을 위해 체력을 비축하고 있다. 모든 희생과 헌신을 각오하고 있다. 이 한 몸을 던져서 그것 하나만 이룰 수 있다면 좋겠다.

 

한국교회가 분열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오는 412일 부활절 연합예배도 한교총과 NCCK, 한교연, 한기총 등이 별도로 드린다. 사분오열된 분열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교회의 화해자 중재자 역할을 감당해 오셨는데 통합과 연합의 키는 무엇일까.

 

저는 지금 현재 부총회장이라 입장이 어정쩡하다. 총회장 같으면 목소리를 확실하게 내고 결단할 수 있을 것이다.

 

없는 척 하면서 소통하고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적 마인드라고 생각한다. 사적 욕망을 버리고 공익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저는 한국교회를 정말 사랑하고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또한 아무리 공익을 위하더라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섬기고 신뢰하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사람을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과정으로 봐선 안 된다.

 

누구나 아픔이 있다. 내면의 상처를 일단 보듬어주고 그들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소통이 된다. 그리고 내 진정성을 보여주고 공익적 마인드를 확실하게 보여주면 소통이 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를 끝까지 섬겨주고 희생하며 인간과 인간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 성을 무너뜨리고 길을 내줄 때 사람들이 감동받고 마음 문을 열기 시작한다. 저는 교회에서도 그렇게 해왔다.

 

사랑의교회 7년 간의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합의하는데 중재자 역할을 했다. 100퍼센트  해결됐다고 할 순 없지만 내가 할 역할은 어느 정도 했다고 생각한다하나님 나라와 한국교회 공익을 위해 쓰임 받도록 해야 한다.

▲ 추운 겨울도 반팔와이셔프를 입는 소강석 목사     ©뉴스파워

 

우리사회는 초갈등 사회다. 갈등 극복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과 정치권에 있다. 저도 아쉬운 것은 대통령의 신념과 자신의 철학대로 밀고 나가기만 해선 안 되고 포용하고 들어주고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는)해명도 하면 좋겠다. 상종 못할 사람이라 여겨도 설득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더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을 신뢰할 것이다.

 

야당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뜻함과 희망을 주면서 왜 그렇게 가야 하는지를 설득했으면 한다. 무엇보다 국민의 편이 되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런데 야당도 편 가르기를 하고 투쟁 일변도로만 간다. 그러면 결국 국민은 진영이든 정파든 편 가르기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여기에 종교의 역할이 있다. 종교의 역할은 미미하다. 그러나 그 미미함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종교가 왜 있는가. 기독교가 왜 있는가. 먼저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서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회를 통합하는 기능도 있다. 먼저 사회가 잘못 하면 경책하고 꾸짖는 선지자적 기능도 있지만, 동시에 사회가 교회를 비판하면 귀담아 듣고 '이러면 안 되겠다, 더 투명하고 도덕적으로 해야지' 하는 반응하는 면도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기독교가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와 안 맞아도 우리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분열돼 있으면 하나 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사실 갈등 없는 사회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초갈등, 극초 갈등이 문제다. 적어도 갈등 관계를 경쟁 관계로 바꾸는 것을 교회가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논리적으로 다 맞는 이야기라도 교회가 극단으로 가면 누가 이 일을 하겠나. 교회는 때로는 이쪽과도 이야기하고 잘못 했다고도 말해야 한다.  정파적이 되면 어느 누구와도 대화가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종교의 존재와 역할이 없어진다.

 

차라리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아예 정당을 만들어서 정당 구조로 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 간판을 달고 정치 세력을 규합하는 것은 순기능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역기능이 많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국민들에게 한국교회는 혐오 세력으로 몰리게 될 것이고 선교적 순기능을 많이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 소강석 목사     ©뉴스파워

 

목사님은 차별금지법 반대운동, 동성애 반대운동, 인권위법 개정운동, 종교인 과세 문제 등에 앞장섰다. 그럼에도 억울하게 비판을 받기도 한다.

 

많은 기독교인과 국민들이 일부 극소수가 주장하는 가짜뉴스에 놀아날 수 있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많은 국민과 기독교인들에게 가짜뉴스 분별법을 가르쳐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나에게도 더 많은 가짜뉴스와 진짜뉴스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선물로 주셨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짜뉴스를 통해 사람이 더 새로워지고 통합의 의지를 더갖게 한다. 가짜뉴스에 병들면 문화적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가게 된다. 오히려 동성애와 여러 차별금지법이 가져다주는 패악 못지않게 국민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우리 몸 안에 정상 세포가 있고 암세포가 있다. 정상 세포는 주기적으로 죽고 살고 일정 기간이 되면 죽고 새로운 세포가 나온다. 선순환 된다. 그러나 암세포는 바깥에서는 아주 잘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안에서 썩는다. 가짜뉴스는 혹세무민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고 사회를 파괴한다.

 

중요한 것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를 생각해봤다.

 

첫째,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됐다. 아시다시피 나는 박두식(2014년부터 기독당 대표를 맡고 있다가 얼마 전에 물러났다)이 장로인지 목사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박두식 님과 손을 잡고 기독민주당을 만든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다. 이런 가짜뉴스가 더 큰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 근거가 있으면 오해라도 하는데 오히려 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아 이건 아니다를 보여줬다.

 

내가 차별금지법을 막고 NAP(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를 막고 종교인 과세를 막고 다 하지 않았는가. NAP는 박근혜 정부 때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첫 단추는 MB(이명박 정부) 때였다.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도 MB 때 시작됐다.

NAP
는 원래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가려고 했던 것인데 내가 그것을 막았다. 일부에서는 소 목사가 온 몸으로 뛰어도 결국 통과됐지 않냐고 말한다. 그것이야 말로 무지의 소치다. 지금 이만큼이라고 된 것은 나를 비롯해 여러분들의 노력으로 이 정도까지라도 막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시작한 종교 과세를 내가 '종교인 과세'로 바꿨다. 둑을 쌓은 것이다. 그런데 (나를 비판하는)그들은 그때 무엇을 했는가.

 

박근혜 정부 때 만든 종교인 과세를 문재인 정부에 와서 종자연이나 납세자연맹에서 종교소득과세보다 더 무서운 올무를 씌우려고 했다. 그걸 막아낸 것이다. 어차피 종교인 과세는 시행하게 돼 있었다.

그런데 내가 대표자가 되어 김진표 장로님과 앞장서서 세무조사까지 가능한 규정을 바꿨다. 그래서 그야말로 원래 의도인 순수한 종교인 과세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를 했다. 그 내용은 기재부 관계자들도 잘 아고 있다. 그럼에도 박수는 못 쳐줄망정 , 그랬구나정도는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가짜뉴스는 이 사회를 병들게 한다. 얼마나 사회가 병들었으면 이런 가짜뉴스가 나오겠는가. 그러나 나에게는 순기능이 있었다. 가짜뉴스 구별법을 가르쳐 줬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회를 안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

 

둘째는 욕망과 미움이다. 한국교회가 하지 못한 일을 했는데도 한쪽에서는 나를 공격한다나도 우리 대통령이 마음에 안들 때가 있다. 이 정부가 사회주의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미동맹을 가볍게 여기는 것 같아 걱정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럴 때는 목소리를 높여 비판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정치인이 아니라 목회자다. 목회자의 자존심과 정체성과 품격을 지켜야 한다. 그러니까 비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고마운 부분도 있다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과유불급이다.

 

금도를 넘어 버리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우리나라 대통령은 욕을 안 먹을 수 없다. 교회가 이런 극단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자유민주주의는 국민들의 표로 심판하는 것이다. 심판하고 싶으면 그렇게 되도록 여론을 몰고 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끼리 모여서 하는 것은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 부정적 극단의 왕국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저도 양심적으로 용기가 없는 사람인가 생각해 봤다. 그러나 아직 이 문화에 익숙하지 못하다. 비판을 하더라도 목사다움, 성도다움을 잃지 않아야 한다.

 

오는 4월 15일 실시되는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한국 교회와 국가에 중요한 선거다. 투표는 합법적인 의사 표현의 수단이다.한 말씀 부탁드린다.

 

진영 논리와 지역 논리 그리고 정파 논리에 한국교회가 매몰되거나 편승해선 안 된다. 누구나 나라를 사랑한다. 그런데 자신의 신앙으로, 지금 시대가 어떤 것을 요구하는가를 바라보면서 적어도 기독교적 가치관을 갖고 기도하면서 신앙 양심으로 투표해야 한다.

 

과거에는 기독교계가 보수 정권을 세웠다. 그런데 보수 정권은 기독교를 외면했다. 동성애에도 침묵하고 종교인 과세 시행계획을 만들었다. NAP 추진과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고 했다. 할랄과 수쿠크법 도입도 추진했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 일부가 지나치게 반정부적으로 가고 있다. 또 보수 성향 내에서도 견해가 분명하게 엇갈린다. 우려가 많다. 김진홍 목사님이 말씀을 잘 하시더라. 더 많은 기독교인들을 국회에 보내야 한다. 기독 의원들이 많이 배출되면 뒤에서 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게 좋다. 그런 의미에서 전국에 기독교 신앙을 가진 정치인들을 길러야 한다. 당장 당선이 안 되더라도 대한민국을 위해 그들과 유대관계를 가져야 한다.

 

 

▲ 새에덴교회 2020년 표어     ©뉴스파워

올해 '사람을 세우는 교회', '킹덤빌더의 교회', '교회세대를 잇는 교회'라는 교회 표어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사실 작년까지 엄청 바빴다. 부총회장이라서 조금 어정쩡하다. 튀어도 문제고 너무 안 나타나도 문제다. 공적 사역을 하지만 작년처럼 두드러지게 하진 못하고 있다. 그 대신 교회에서 사람을 키워야 한다.

옛날 평양만상 홍득주는 장사 중에 장사는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을 얻고 키우는 게 진정한 목회이고 사역이다. 대중은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사역은 핵심적인 사람들이 감당한다. 그런 사람들을 키워놓을 때 함께할 수 있다.

 

그래서 킹덤 빌더의 교회를 표어로 정했다. 나도 옛날에는 다른 교회가 어떻게 되든 우리 교회만 부흥하면 되는 줄 알았다. 지금도 옛날 나와 같은 (개교회주의)생각을 하는 목회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 생태계 원리를 알면서 방향을 전환했다. 다른 교회가 무너지면 우리 교회도 무너진다. 교단도 마찬가지다. 그게 생태계의 원리다.

 

우리가 목회를 생태계 원리로 하진 않지만 그것을 풀어낸 게 킹덤 빌더다. 내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다른 교회와 공적 사역을 함으로써 킹덤 빌더가 되는 것이다. 그걸 우리 교회부터 실천하자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교단을 섬기고 종로에 나갈 때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의식을 갖도도록 전할 것이다. 자기 사역과 정치적 욕망에 함몰되어 있으면 킹덤빌더를 이룰 수 없다. 킹덤 빌더가 되어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고 교회 세대를 이어가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 내부에서는 다음 세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다음 세대는 주로 가문의 믿음을 이어간다는 의미다. 사변적이고 철학적이고 막연한 장밋빛 희망을 이야기할 때 다음 세대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 용어는 포괄적이다. 그러나 현실성이 떨어진다.

 

다음세대 운동하는 사람들 다 쓰러졌다. 너무 캐치프레이즈가 막연했기 때문이다. 교회성장연구소 김두현 소장으로부터 교회세대라는 말을 처음 듣고 제 목회의 키워드로 삼았다. 다음 세대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파라처치와 가문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만 교회가 무너지면 기독교 가정도 없다. 여기에 영국과 미국 교회가 속았다. 나는 킹덤 빌더를 먼저 주장했고 젊은이들과 어린아이들의 믿음이 교회를 통해 이어가는 교회 세대 운동을 계속 할 것이다.

 

▲ 한 겨울에도 반팔 와이셔츠를 입는 열정의 목회자 소강석 목사     ©뉴스파워

지치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

 

교회든 사역이든 생체 리듬이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교회를 개척하는 생성기와 그 다음 도약기, 꾸준한 성장기, 다음은 절정기다. 그런데 절정기는 짧다. 고난은 길지만 영광은 짧다. 절정기가 지나면 정체기가 있고 쇠퇴기가 오고 사멸기가 따라온다. 모든 바이오그래픽이 그렇다. 인간도 그렇다. 제 사역도 그렇다.

 

저는 지금 전성기에 막 진입하려는 초입이라고 본다. 어쩌면 전성기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는 이 전성기가 길었으면 좋겠다. 길게 하려면 한없이 제 마음이 젊어야 한다. 할 수 있으면 교회를 젊게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 교회 예배는 분위기는 역동적이다. 예배와 설교가 정형화되면 반드시 화석화된다. 매뉴얼만 있고 생명과 동력이 없다. 전성기를 길게 가려면 초심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진심이다. 세 번째는 중심이다.

 

요즘 정치도 그렇고 교계도 그렇고 중심을 잃어버리니까 양 극단으로 가는 것이다. 이것을 계속 받쳐주는 것은 불타는 소명감이다. 뿌리 깊은 영성이 중요하다. 이것이 초심, 진심, 중심을 유지하게 하고 지치지 않고 교회를 이끌어가는 사역의 동력이다.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일반 목회자와는 다르다. 네러티브적 스토리텔링에 가요을 개사해 부르는 등 신선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광대설교라는 영역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옛날 설교학은 복음을 어떻게 잘 전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복음에 콘텐츠가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것을 전달하는 폼과 의식을 강조했다. 당연히 설교자는 우아해야 하고 격조가 있어야 하고 폼이 멋있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설교가 대부분 정형화될 수밖에 없었다.

 

정형화까지는 좋다. 과거는 구조주의 시대이고 권위주의 시대였기 당연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전통 설교는 그런 방식을 따랐다. 그런데 어느새 신설교학이 등장했다.

 

신설교학은 형식을 파괴했다. 그것은 시대 흐름과 맞다. 물론 복음의 내용은 그대로다. 신학과 복음은 불변한다. 복음은 오히려 더 강조되어야 한다.

 

그런데 신설교학은 대지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서론, 본론, 결론도 아니다. 무슨 제목으로 시작한다거나 말씀을 맺는다는 형식도 없다. 신설교학은 어디서 시작해서 끝나는지 모른다. 그리고 내러티브적이다. 판을 깔아놓고 메시지를 넣는다. 설교자의 우아함과 격조보다는 자연스러움을 강조한다.

 

남아공 스텔른보쉬 대학 뮐러 교수가 원조 신설교학의 원조다. 그의 친구인 독일 신학자 리델프 보렌도 같은 맥락으로 주장했다. 그런데 그의 제자 요한 실레가 하나님의 어릿광대라는 책을 냈다.

 

그들의 주장은 설교를 언어학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결국 설교는 언어라는 것이다.

 

언어학에는 크게 세 가지 단계가 있다. 단순 발화행위가 있다. 성경 내용만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미 수반행위가 있다. 왜 이 성경이 기록 됐나, 시대 배경은 무엇인가를 분석하고 오늘날에는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적용한다. 대부분의 설교가 여기까지다.

 

그런데 효과수반 행위가 있다. 현장에서 회개를 하든지 눈물이나 폭소를 자아내든지 하게 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언어 사건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효과적으로 잘 전달되어 효과수단발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하게 언어학 이론의 이야기인데 설교도 이와 같다는 것이다.

▲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     ©뉴스파워

 

오늘날 설교가 이런 의미 수반발화 행위와 효과 수반발화 행위가 이뤄지고 있는가를 평가해 봐야 한다. 내 생각으로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설교자의 설교 행위는 총체적 언어 행위가 되어야 하고 언어적 행위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총체적 예술행위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리델프 보렌은 설교는 놀이라고 했다. 뮐러와 쉴레는 광대를 이야기한다. 언어 행위를 넘어서 예술 행위로. 광대는 무엇인가. 진정성, 진심, 에토스, 자기 비하, 우아함이나 격조보다 중요한 게 자기 비하다. 청중을 향한 진심이 있을 때 자기를 낮추고 깨뜨려서라도 하나님의 눈물겨운 사랑,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다. 설교자의 삶과 인격과 언어를 통해 진정성을 갖고 전달할 때 효과수반발화행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가 언어 전달만 해서는 안 된다. 총체적인 행위를 하려면 감정과 제스처가 필요하고 예술 행위까지 필요하다. 그 예술 행위는 때로 옛날 부흥사처럼 춤도 춘다.

 

심지어 성()과 속()으로만 구분하면 설교 시간에 대중가요를 불러선 안 된다. 어떻게 거룩한 강단에서 그렇게 하겠나. 그런데 성과 속으로만 하면 정치 이야기도 세상 이야기도 못한다. 예수님도 세상 이야기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나. 성과 속으로 구분하면 세상 예화를 들면 안 된다. 요즘 누가 어떻고 저렇고 말을 못한다. 그러나 설교자의 언어 행위는 때로는 성과 속을 초월할 수도 있다.

▲ 새에덴교회 2020년 신년예배에서 소강석 목사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     ©뉴스파워

 

 

설교 중에 과거에 전두환 정권, 이승만 정권 이야기를 한다. 하나님 말씀을 돕기 위한 예화로 사용한다. 심지어 타종교인 이야기도 한다. ()과 속()으로 구분하면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복음을 강화시키고 청중을 감동시키고 소통하고 복음의 콘텐츠를 강화시키려면 때로 대중가요도 사용할 수 있다. 설교를 격하시키고 만담처럼 세속화시키려고 작정하는 건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을 이야기하고 복음으로 청중을 울리려면 필요하다.

 

가령 가수 이선희의 돌아와 그대를 부르면서 호세아 선지자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하나님 마음을 전할 수 있다. ‘나는 너뿐이다’ ‘돌아와라탕자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 마음을 이야기할 때 설교자는 언어적 총체 행위뿐 아니라 예술적 총체 행위를 한다. 그때 부르는 것이다. 그때 광대가 되는 것이다. 세상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그것은 설교의 장르이고 형태이고 문화다. 개혁신학적이지 않은 게 아니다. ‘J에게는 교회를 떠난 성도들, 전도해야 할 사람들을 지칭할 수 있다. 전도 설교 때 전도 대상자를 J라고 해보자. 실제로 가락동에서 교회를 개척해 목회할 때 마이크를 잡고 오 그대여 변치 마오.’를 불렀다. 천국 갈 때까지 변치 말자는 목양의 고백이다. 이게 몸에 배였다.

 

나는 고향이 남원이다. 판소리 문화에서 자랐다. 세상 예화는 곡조 없는 예화다. 어쩌다 쓰는 노래는 곡조 있는 예화다. 그런데 이것을 잘 사용해야 한다. 이것도 형식화되면 설교가 세속화될 위험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초심, 진심, 중심을 갖고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저 따라 부르는 건 정형화 화석화되는 것이다. 강단을 천박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락시장에서 목회하면서 보니까 교인들 속에 한이 많았다. 한을 보듬어줄 수 있고 품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목회가 쉽고 재밌다.

▲ 추운 겨울도 반팔와이셔프를 입는 소강석 목사     ©뉴스파워

 

마지막으로 목사님의 기도제목을 소개해 달라.

 

나도 인간이다. 때 묻을 수 있고 정치꾼, 모사꾼이 될 수 있다. 목회 재미보다 정치 재미를 느끼고 명예와 교권의 노예가 되고 그 성에 들어가서 내가 누구인지 잃어버릴 수 있다. 사역에만 집중해 일중독에 빠지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모를 때가 있다. 그래서 항상 저는 뭘 달라는 기도를 하기보다는 성찰하는 기도를 많이 한다. 내가 누구인가, ‘하나님 저는 무엇입니까를 묻는다.

 

두번째는 항상 제 정서와 심리적 자아가 파괴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결국 설교자의 자아가 파괴되면 설교가 파괴되고 인간관계가 깨어진다. 많은 사람들은 음악의 중요성과 시의 중요성을 모른다.

 

우리가 왜 시를 쓰는가. 고독을 이기기 위해서, 예술적 기쁨을 얻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자연과 교감하기 위해서,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건강한 자아상이 이뤄질 때 건강한 영성도 이뤄진다. 우리 몸이 건강해야 한다.

 

설교자에게 정서적 장애, 심리적 장애가 있으면 분명 목회 현장에서 나타난다. 나는 시를 쓰고 음악을 좋아한다. 등산하면서 사색한다.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성악가를 존중한다. 대중가요도 좋은 노래를 부르는 분들을 정말 존경한다.

 

▲ 소강석 목사 사무실에 진열되어 있는 각종 감사패     ©뉴스파워

우리 교회에 가수 남진 장로가 출석한다. 정말 존경한다. 음악 없는 세상이 있나. 여의도 국회도 음악이 없어서 말마다 싸우는 것이다. 구라파는 여야가 함께 음악회를 한다. 극과 극으로 가다가도 음악적 조화를 이룬다. 우리나라는 그게 없다.   

 

우리 목회자들도 음악을 도구로만 쓰지 삶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넬슨 만델라가 종신형을 받고 투옥 중일 때 영국에서 80명의 세계적 성악가가 석방 기원 음악회를 열었다. 그 음악회를 8월에 했는데 이듬해 3월 석방되었다. 음악의 힘이 대단하다.

 

찬송을 도구로만 사용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래서 저는 설교 중에도 찬송한다. 대중가요 대스타들을 만나보니 이 분들은 대기권 밖의 광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보다 소통과 감동을 더 잘한다.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도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박스화 교리화해서 감동이 없다.

그런데 그들은 대단하다. 그래서 그분들 사랑하고 교감을 갖는다. 저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 사랑을 전하고 그들은 제게 더 문화 예술적 감성을 이야기해 준다. 고수들은 서로 다른 영역의 고수를 만나야 한다고 한다. 하수 때는 동창들, 동종업계 사람들을 만나는데 어느 정도 고수가 되면 다른 차원의 사람을 만나는 게 유익하다고 한다. 하나님 사랑의 극치와 복음의 감동을 전하는 극대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반팔 와이셔츠를 입고 인터뷰하는 소강석 목사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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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26 [23:0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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