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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2.26 [06:02]
성경적 역사관을 정립하라
정준모목사(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Ph.D & D.Miss)
 
정준모

 

 

 

 

서론) 새로운 10년이 시작되었다. 역사는 쉴 틈 없이 흘러가는 물처럼 종말을 향하여 질주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국내 정세를 비롯하여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현실적 상황 속에서 "역사"의 의미에 관한 문제만큼 중대한 물음은 없을 것이다.

 

"도대체 역사가 바로 흘러가고 있는가?" "역사가 거꾸로 흐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회의적인 자문을 종종 받게 된다.

몇 년 전 한국과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전을 비롯하여 각종 선거전에 의해 온 국민이 열광의 도가니 속에 빠져 있다가 그 이후에 얻게 된 허전함과 허탈감 때문에 많은 기독 지성인들이 "아니,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하면서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질문을 내뱉었다. 2020년 국내외 정세도 별다름이 없을 것이라고 예측된다.

 

화란의 저명한 신학자인 헨드리쿠스 벌코프(H. Berkhof)는 "우리의 세대는 전율과 두려움이 가득 차 있는데, 그것들은 인간에 대한 두려움, 인류의 장래에 대한 두려움, 우리의 뜻과 희망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이것을 거스리는 우리의 행동에 대한 두려움 등이다. 그리고 이 두려움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에 관한 환한 빛을 찾으려는 울부짖음이 나오고 있다. 그것은 역사의 의미에 관한 오래 된 질문들에 대해 해답을 얻기 위한 울부짖음이다."라고 말하였다.

 

벌코프(H. Berkhof)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경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마땅히 역사의 의미에 관한 그 해답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수세기를 지내면서도 교회와 많은 신학자들이 교회에 역사 신학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을 만한 자료를 성경 속에서 거의 찾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새로운 세기에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역사가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 있다는 관점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주위에서 일어나는 급속한 변화들에 대항해 영적으로 굳건히 설 수 없게 되었다.“라고 의미 있는 지적을 현 상황에서도 충분히 적용하여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교회는 세속적인 관점에서 현 세대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다. 또한 교회는 세속적인 태도로 두려움 가운데 속박되기도 하며 세속적인 방법으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케 되려고 발버둥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현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의 의미 속에서 하나님을 제외시키거나 하나님은 역사의 방관자, 혹은 일시적인 자선적 참여자로만 생각하고 있기에 더 이상 헤어날 수 없는 와중과 혼돈 속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바른 성경적 역사관, 즉 그리스도 중심의 역사관을 재정립하여, 역사의 냉소주의자나 방관주의자가 아니라 역사의 개혁자(Reformer)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겠다.

 

1. 역사관에 관한 여러 관점 이해

 

데이빗 베빙톤(David Bebbington)󰡐역사관의 유형들'(Pattems in History)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5가지로 역사관의 유형을 소개하고 있다.

 

1) 순환론적 역사관

 

이 역사관은 동양과 고대사회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 역사관이다. 이 이론에서는 역사를 자연의 계절순환과 유사한 유형의 순환으로 본다. 순환론은 대부분 서사시의 형태로 민족과 문명의(심지어 우주조차도) 생성 몰락의 주기적인 반복을 상정하고 있다. 이것이 2세기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의 스토아 철학에도 분명히 나타나 있다.

 

아우렐리우스는 "합리적인 영혼은 위대한 순환의 재생"이라고 썼다. 아우렐리우스는 역사적 사건들이 결코 많은 것을 증진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 부류에 속하는 순환론적 역사관 지지자들은 몰락만을 기대하는 비관론적 경향을 띠고 있다. 이런 관점은 단지 동양이나 고대사회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니이체(Friedrich Nietzsche), 스팽글러(Oswald Spenglar), 토인비(Amold Toynbee)에게서도 나타난다.

 

2) 유대교­기독교적 역사관

 

이 역사관은 유대교­기독교 전통과 연관되어 있다. 역사를 순환이 아니라 직선으로 이해한다. 이 이론에서는 역사과정을 창조라는 특별한 지점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계시적인 인도에 의해 마지막 때인 목적지까지 계속된다. 그 사이에 계속되는 신의 간섭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무조건은 아니지만 하나님에 의하여 약속된 미래가 이 역사관을 낙관적으로 만든다. 어거스틴의 "신국"(City of God)에서는 최소한 교회의 선을 위하여 하나님이 지상의 일들을 감독하신다는 믿음을 고전적 표현으로 쓰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12세기의 수도원장이었던 요아킴(Joachim of Fiore), 20세기의 니버(Reinhold Niebuhr)와 같은 신학자 버터필드(Sir Herbert Butterfield)와 같은 역사가를 들 수 있다.

 

3) 진보주의

 

이 역사관은 기독교 역사관의 계속화 결과 18세기 계몽주의 영향으로 나타난 관점이다. 이 사상의 중심 개념은 "진보"이다. 기독교 역사 유형의 직선론은 지속되고 있으나 그 신학적 합리화는 부인된다.

 

이 부류의 사상가는 신을 역사의 인도자로 보는 대신에 인간을 역사의 유일한 행위자로 본다.

 

이 사상에서는 지도자적 옹호자인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가 지적한 바와 같이 "진보는 미래의 인간 모두가 속박으로부터 해방되고 운명의 지배와 적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진리와 덕성과 행복의 길로, 확고하고 확실한 단계로 발전" 할 때까지 기술의 면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결정적인 낙관론은 물질적인 면에서 진보의 증거를 보여 준 19세기에 널리 확산되었다.

 

이 사상은 생시몽(Heri de Saint-Simon), 꽁트(August Comte), 뒤르껭(Emile Durkheim) 등에 영향을 크게 미쳐 사회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발전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

 

또한 이 진보사상은 다윈(Charled Dawin)의 진화론 사상과 일치하고 스펜서(Herbert Spencer)에게 이르렀다.

 


"진보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우리가 악()이라 부르는 부도덕성은 사라져야 한다. 인간이 완전해지리라는 것은 확실하다󰡓(Herbert Spencer, Social Statics).

 


이 사상은 역사가 버터필드(Sir Herbert Butterifield)와 영어로 쓰인 19세기의 가장 유명한 역사작품 "영국사"(History of England)를 집필한 머큐리(Thams Babington Macaulay)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

 

4) 역사주의

 

역사주의 역시 18세기 프랑스와 영국에서 성장한 진보사상에 대한 독일의 반발로 일어났다. 역사주의는 역사가 직선적이라는 신념을 거부하는 대신에 그 중심 주제를 "각 민족은 그 민족 특유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는 사상이다. 역사가의 임무는 자기의 문화와는 다른 문화를 감정이입이라는 기술을 통해 이해하는데 있다.

 

이 사상은 역사주의 학파의 선구자인 18세기 이태리의 비코(Giambattista Vico)에게서 수립되어 1780년 낭만주의가 독일을 지배하던 때에 관념론과 함께 정교히 완성되었다.

 

최초의 위대한 대변자는 "문화적 상대주의"(Cutural Relativism)에 반대하여 "모든 문화는 다른 문화에 완전히 비교할 수 없는 고유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다원"(Pluralism)을 주장하였던 헤르데(J. G. Herder)와 역사주의 이념을 로마서 연구에 적용시켰던 니버(B. G. Niebuhr), 딜타이(Wilheim Dilthey), 그리고 불가사의한 작품을 쓴 콜링우드(R. G. Collingwood)󰡐역사의 사상󰡐(Idea of History)에 이르게 된다.

 

5) 마르크스주의 역사관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역사과정은 기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동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므로 마르크시즘의 그 본질에 있어서의 역사에 관한 견해는 "유물론"이다. 마르크스는 계몽주의와 역사주의 사상을 조화시킨 헤겔(Hegel)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사상은 근대 사회 뿐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수많은 역사서술이나 해석학의 도구로 제공되고 있다.


 

역사관

대표할 수 있는 특징

영향권에 있는 학자들

순환론적역사관

시대의 영광이 운명의 여신의 물레바퀴를 돌리리라

-W. Shakeare-

아우렐리우스, 니이체, 스탱글러, 토인비

 

기독교

역사관

오 하나님, 지나간 세월 우리의 도움이셨고 장차 우리의 소망이신···”

-Issac Watts-

어거스틴, 밀러, 니이버, 버터필드

 

진보사관

“···미래야말로 우리가 이룩할 유일한 행복이라고 말하리라.”

-안토 체흠-

생시몽, 꽁트, 뒤르깽, 다윈, 스펜서, 머큐리

 

역사주의

“···한 정점으로서 나타나는 역사적인 국면··· 모든 사건은 영원에 참예 한다는 점에서 영적인 국면을 갖는다.”

-Jakob Burchhart-

비코, 헤르데, 니버, 딜타이, 콜링우드

 

 

 

 

 

2.
그리스도인이 배격해야 할 역사관


 

우리는 위에서 5가지 유형의 역사관을 포괄적으로나마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들 중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배격해야 할 역사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순환론적 역사관을 배격해야 한다. 순환론적 역사관은 역사를 하나님의 목적 완성과 그 목적을 향한 움직임으로 보는 기독교적 사관과는 병립될 수 없다. 성경에 나타난 역사란 의미 없는 일련의 순환 희귀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과 우주에 대한 자신의 목적을 실현시키시는 하나의 매개 수단이다.

 

역사는 신성하게 설정된 목표를 향해 움직이며, 미래는 과거에 만들어진 약속의 완성과 성취로 바라보아야 한다.

 

둘째, 마르크스주의, 역사주의, 진보사관 등 무신론적 실존주의 혹은 실존주의자들의 역사론도 배격하여야 한다.

 

이런 유형의 역사관에서의 역사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는 어떠한 중요한 유형도, 목표를 향한 어떠한 움직임도 찾아볼 수 없으며 단지 의미 없는 사건의 연속일 뿐이다. 또한 인간을 하나의 󰡐유물론적󰡑 입장에서 해석해 버리는 경향은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  역사의 주는 주님이시고 역사의 통로는 그의 몸인 교회이다. 역사는 종말을 주께서 이끌어 가신다.




3.
성경적 개혁신학적 역사관의 의미

 

1) 역사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과정이다.

 

하나님은 그의 목적을 역사 속에 나타내신다. 일반적으로 역사를 󰡐신성한 역사󰡑(Sacred history) 혹은 󰡐거룩한 역사󰡑(Holy history)라고 지칭한다. 󰡐신성한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의미한다.

 

이 구속은 구약의 약속들, 모형들, 예식들 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로 부활로 완성되어 장차 다가올 미래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 최고 정점에 달하게 된다.

 

2) 하나님은 역사의 주()이시다.

 

구약은, 하나님은 왕국의 모든 만물을 지배하시며(10319), 세상의 열방들도 통치하시며(대하 206), 그가 원하시는 바 임의대로 왕의 마음도 돌이키신다(211)고 증거하고 있다. 신약에서도 하나님은 그의 뜻대로 모든 것을 성취하시며(11), 땅 위의 나라를 위해 세우신 연도와 그들이 거주할 장소를 정하시고 제한하신다(1726).


성경 신학자 래드(G. Ladd) 교수는 하나님은 왕이시며, 역사 속에 나타난 그의 행동들은 신적으로 조정된 목표를 향해 역사를 이끌고 있는 것󰡓(G. Ladd, Presence)이라고 하였다.

 

3) 그리스도는 역사의 중심이다.

 

러시아 작가 니콜라스 베르쟈예프(Nicolas Berdyaev)에 의하면 󰡒기독교의 독보적인 역사적 특징과 그 역동성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결과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 가장 중심적인 사실을 구성하고 있다(N. Berdyaev, The meaning of History).

 

오스카 쿨만(O. Cullmann)은 "그리스도의 오심이 인류 역사의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이 사건 이전과 이후의 모든 사건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중요성을 띠고 있다"고 하였고, "현재 우리는 그리스도 재림의 V-day 사이에 살고 있다"라고 하였다.(Cullmann, Time)

 

4) 역사의 새로운 세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신약시대의 신자는 죄의 옛 세대로부터 그리스도인의 자유로운 새로운 세대로 옮겨졌다.

 

헤르만 리더보스(Herman Ridderbos)󰡒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체는 이 위대한 역사적, 구속적 계시의 신비와 중심점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계시되었기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옛 세계는 끝나고 새 세계가 시작된 것이다󰡓(H. Ridderbos, Paul and Jesus)라고 하였다.

 

5) 역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고 있다.

 

신약 시대의 신자들은 역사가 이 마지막 결정점의 목표를 향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종말론적 역사관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면서 역사의 주가 되시고 섭리자가 되시는 주의 뜻을 매일 이루어 드려야 하겠다.

 

 

▲  역사의 해석의 핵심 관점은 구속사 중심이다.


 

결론) 2020년 새로운 역사의 10년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다가올 10년은 인류 역사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는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적 역사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바라보는 믿음의 혜안과 역사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도하시고 그 분의 때에 맞추어 역사는 종말을 지향하고 있다. 역사의 중심은 그리스도이시며, 그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역사를 주도하시고 이끌어가지신다.

 

그러므로 교회의 목적과 존재의 가치를 알고 복음적 사명과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또한 역사와 문화 속에서 존재하는 교회가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 감당하며, 사회의 정의 빛을 잃지 않고 일어나 빛을 발하며, 정의를 강물같이 흘러갈 수 있도록 시대적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종말론적 역사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이루어지도록 깨어 근신하며 복음적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다.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저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719.248.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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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12 [12:4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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