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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10 [09:13]
오히려 은혜인 가시(고후12:7-10)
정준모 목사(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고후 12:7-10)
 
정준모

 

 

 

▲   내 인생의 가시가 결국 감사의 열매가  되는   역설의 은총을 이 가을에 체험케 하소서 © 뉴스파워 정준모


 

고통 속에 자족이 있는가

 

현재 당면한 우리의 인생살이가 무척 고달프지 않는가? 여러분 중 직장을 잃거나 폐업의 위기에 봉착한지 이미 오랜 시간이 되었지만 아직 아무런 해결의 기미를 찾지 못하는 성도가 있는가? 여러분 중 온갖 명약 명의를 찾아 병의 뿌리를 뽑으려 했지만 아직도 질병의 늪에 헤어 나오지 못하신 분이 있는가?

 

남들처럼 짝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싶은 푸른 꿈이 이제 너무나 지친 나머지 먹구름같이 느껴지는 분이 있는가? 여러분들이 주님께 몸부림치고 해결해 달라고 간구하지만 아직도 변화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 자신과 가족들의 영적인 문제가 있는가?

 

우리의 가족 중 사고를 당했거나 죽음으로 말미암은 이 땅위에서 영원한 이별속에서 아직도 안타까워 흐리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분들이 있는가? 특히 하나님을 바로 믿고 신앙으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성도들에게 마저 이런 가슴 아픈 일들이 면제되지 않기 때문에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성도들을 돌아보시고 우리들의 인생길을 인도하신다는 것에 대하여 원망과 회의를 가지고 계신 분이 있는가?

 

오늘 당면한 우리와 같은 인생의 고통과 인생의 속에 빠져 있는 하나님의 사도 바울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가 얼마나 주님의 복음과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분명한 인생 목표를 가지고 살아갔던 자가 아닌가?

 

그런데 왜 하나님의 사람 바울에 그런 고통을 하나님을 면제하여 주시지 않으시고 허락하셔야만 했는가? 그런 고통 속에 있는 바울이 하나님께 나와 간절히 3번씩이나 완전하게 간구했으나 바울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문제의 아픔을 해결해 주셨는가? 어떤 문제의 해답을 주심으로 궁금증을 해결해 주셨는가? 아니다. 결코 그가 바라는 것으로 하나님은 해결해 주시지 않으셨다.

 

다만 주님은 바울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12:6)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이해가 될 수 없다. 너무나 생각 밖의 엉뚱한 말씀이다. 차라리 안된다. 혹은 조금 기다려라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하시니 말이다. 더욱이 바울이 주님을 위해 최선의 삶을 산 자가 아닌가? 주님의 복음을 위해 생명까지도 내어 놓았던 자 아닌가? 그가 주님 때문에 당한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던지 너무나 잘 아시는 주님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의 아픔을 제거 해달라고 간구하는 그의 종에게 왜 하나님은 이렇게 기상천외의 말씀하시는 것일까? 얼마나 인색한 말씀인가? 얼마나 바울의 아픔을 외면하시는 말씀인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그 말씀의 의미를 잘못 이해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말씀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가? 지금도 우리의 고통스런 현실의 인생문제를 두고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우리 삶에 개입하셔서 우리가 원하는 모양으로 시원스럽게 즉각적으로 해결해 주시지 않으시고 또한 우리의 눈에 역역이 보이도록 해결해 주시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말씀하실 때 과연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더욱이 약함 중에 강함이라는 이 역설적 진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우리가 지금 당장 급한 이 고통의 불을 꺼야할 판에 이런 뚱단지같은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정말 이 뚱단지 같은 말씀을 이해한다면 얼마 우리의 수수께끼 같고 도저히 이해 될 수 없는 인생문제가 우리가 이제 문제 밖에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지혜와 여유가 생기지 않겠는가? 문제의 늪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거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멀리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이해와 해결 방법과 평강 안식을 찾게 되지 않겠는가?

 

바울은 주님의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자신 당한 환란, 고통, 궁핍, 고난, 매맞음, 투옥, 굶주림 등을 고전64-5절에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인지는 확실히 성경이 밝혀 놓지 않아서 분명한 것은 잘 모르지만 지금까지 당한 고통과 아픔보다 더 격심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는 127절에 자기 육체에 있는 가시 곧 사탄의 사자라고 불렀다. 우리는 바울의 육체에 있었던 가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알려고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그것이 무엇이었던 분명한 사실은 그것은 그의 선교 사역에 큰 방해물이었다. 그것은 사탄의 공격으로 오는 고통과 아픔이었지만 또한 그것은 그 자신이 생명을 다해 사랑하고 헌신하는 섬기는 주님의 허락하게 그에게 주어졌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아마 이 고통과 아픔은 12장 첫 부분에 나오는 바울 특별한 체험과 관련 있었다. 그가 자신이 언급한 바와 같이 그는 세째 하늘로 이끌려 가서 낙원에 이르러 말할 수 없는 영적인 신비롭고 황홀한 경험을 하였다. 그런데 바울은 그만이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었기에 그는 다른 사람 앞에서 교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혜가 무궁하신 우리 주님께서 그의 사도요 종이 바울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그가 자신의 받은 바 은혜의 체험을 교만하여 실족하고 은혜를 쏟아버리지 않도록 안전한 하나님의 방파제를 쳤던 것이다.

 

네 은혜가 족하도다

 

주님은 바울이 체험한 놀라운 은혜를 휩쓸고 갈 교만의 폭풍우 속에서도 거떡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방파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 온전하여짐이라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난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7-10)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란 무엇인가? 이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우리가 보통 은혜라고 말을 할 때 그 뜻이 무엇인가?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값없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호의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런데 9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바울에게 머문다고 했다. 이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전달되는 도우심을 가리킨다. , 은혜란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뜻한다.

 

이것을 미루어 볼 때 은혜란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것에 의하여 우리가 구원과 그 밖의 모든 축복들이 값없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둘째는 성령님을 통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가리킨다. 첫 번째 의미의 은혜는 모든 축복의 원천으로서 은혜라고 한다면 두 번째 의미의 은혜는 날마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내게 충분하도다라는 말씀과 같다. 바울에게 그처럼 육체적 가시를 주는 것도 바울에게 고통 그 차체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도우심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니 우리가 이해하기가 상당히 힘드는 진리이다. 이것은 오늘 우리 성도들이 당면하고 있는 인생의 수많은 질문에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주요한 열쇠가 되는 말씀이다.

 

가시 속에 숨은 은혜

 

바울에게 은혜가 필요로 했으나 또한 하나님이 보실 때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인지라 그가 얼마든지 빠질 수 있는 교만의 유혹을 막기 위해 하나님은 가시를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7절에 보면 두 번이나 거듭 강조하고 있는 말씀이 무엇인가?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 “여러 계시를 받는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이 하나님이 그에게 가시를 주신 목적을 두 번이나 서술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교만을 막기 위해서 였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사도들 중 사도 그리고 모든 성도들 중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3:8), 죄인 중에 괴수(딤전1:15)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여건만 주어지면 교만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더욱이 큰 계시를 받은 것이 오히려 그를 교만하게 할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교만에 항상 빠질 수 있다. 항상 자기가 무엇이 된 것처럼 오만할 수 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사실을 망각하고 자기 스스로 자기가 어느 정도 서 있는 줄 알고 착각할 때가 많다. 조금 학벌이 좋아도, 조금 부유해도 조금 자식이 잘 되도 조금 교회가 부흥해도, 조금 은혜받아도 항상 자기라는 우상을 세우고 우쭐하기를 좋아한다. 자신은 항상 완벽할 줄 알고 착각에 빠지고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티끌을 보는 오만에 빠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 말씀하신 것을 볼 때, 교만은 은혜의 적수이며 교만은 은혜를 떨어뜨리고 교만은 은혜를 송두리채 빼앗아가는 장본인이다.

 

우리는 말로는 쉽게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진심이 없는 입술 고백은 얼마나 얼마나 쉽게 잘 하는가? 우리는 얼마나 쉽게 자신은 부족하다고 마음이 없는 고개 숙임을 잘하고 있는가? 그러나 실상 우리의 마음은 교만으로 꽉 차일 때가 많다.

 

제동 장치는 은혜 장치

 

이런 인간의 본질상 연약함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그에게 제동장치를 마련하셨다. 비록 주님이 그를 남달리 사랑하셔서 신비로운 은혜까지 체험할 수 있게 하셨지만 그도 교만의 과속으로 영적 법규를 위반할 가능성이 다분히 있을 수 있기에 바울의 인생길에 적신호대를 만드셨다.

 

속도를 줄이기 위해 제동장치로 인도에 도로보다 약간 높게 하여 질주하는 자동차의 속력을 줄이는 것처럼 하나님은 바울이 교만하지 않도록 제동장치를 해 두셨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랑하는 주님의 종 바울이 과속파생될 영적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은혜의 제동장치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어떤 의미와 목적이 없이 무턱대시고 그분의 자녀인 성도들에게 고통을 허락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결코 사탄도, 어떤 환경, 어떤 시험도 결국 우리를 선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결재 테이블을 통과하지 않고는 허락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것이 합력하여 우리의 긍극적인 선을 이루게 하시는 목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결국 우리가 더욱 주님을 닮아가고 주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가꾸어 가는 것이다(8:28-29). 그리고 더 귀하고 아름답고 성숙되고 가치있는 것으로 바꾸어 가시는 하나님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약함 속에 강한 하나님을 열망

 

바울의 가시의 목적이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시려고즉 자기를 의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어렵고 역경의 고난 속에 던지실 때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하시고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나의 연약함을 깨우치고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그 자체이다.

 

그래서 바울의 가시는 바로 바울의 자신의 부족을 깨우치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그 은혜가 바울에게 정말 충분한 것이다. 베세다 광야 떡이 충분해서 복된 곳이 아니다. 충분케 하시는 주님, 그분 자체가 계시기 때문에 충분하다. 그렇다. 바울에 있어서 가시는 바로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은혜의 통로로 방편이였기에, 그 자체는 참으로 복된 것이다.

 

인생은 본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창조하셨다. 아담이 범죄 타락 이후 하나님은 계속하여 인생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도록 촉구하고 계신다. 사도행전1728절 말씀처럼 우리가 육체적 주님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도록하셨고 요한복음155절 말씀처럼 주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항상 의식적으로 계속적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살도록 바라고 계신다. 사탄은 계속하여 인간에게 하나님이 없이 살 수 있고 인간이 하나님의 위치 서 있을 수 있다고 계속 유혹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만을 의뢰하기를 바라시면서 때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하여 극한 상황까지 처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을 40연간 긴 세월을 광야에 헤매게 하셨는지 아는가? 하나님의 잔인한 방법인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행동에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 하나님이 그처럼 행동하실 수밖에 없었던 그 얼마나 어리석고 배역하고 교만하고 불신에 가득찬 이스라엘 민중을 오히려 다시 보라. 얼마나 여러 차례 주님의 기적과 은혜로 구원과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체험했던 그들이 아닌가?

 

그런데 조그마한 어려운 일리 생기면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기회로 삼지 못하고 불평하고 지도자에게 대항하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 보낼 필요가 있었다. 그들을 굶길 필요가 있었다. 그들을 낮출 필요가 있었다. 그들이 말씀을 먹고살아야 한다는 훈계가 필요했다. 40년 동안을 광야에서 지낸 후 모세 신명기에서 그들이 경험한 것들을 다음과같이 열거하여 놓았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8:2-3)

 

여기서 모세가 밝히고자하는 진리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 극한 상황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었는가? 하나님이 그들을 낮추시고 그들을 주리게 하시고 그들에게 알지 못했던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셨던 것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이시고 계신다는 사실, 그들을 날마다 그들의 삶을 인도하시고 모든 필요를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알리고 알린 그 말씀을 확실히 믿고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광야는 자아를 불태우는 소각장

 

그렇다. 우리의 인생이 당면한 광야는 바로 인간 스스로의 의지로 버틸 수 있는 버팀목과 지지물을 제거하는 소각장이다. 광야 훈련에서 얻은 값진 교훈은 바로 인생이 자기를 의뢰할 때는 실패하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할 때는 승리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광야를 만난 성도가 있는가? 바울처럼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인생 문제가 있는가? 광야에 있음을 낙심하시지 말고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로 삼으시길 바란다. 광야는 멸망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라,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이다. 광야는 바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의 고난의 현장에 실현시킬 절대 기회이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불시험이 있었기에 불시험 가운데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는 약함 중에 강함이라”, “하나님의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는 말씀의 깊고 오묘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신비스런 찬스가 되었다. 9절 말씀을 보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약함에서 온전함의 역설적 진리

 

주님의 능력은 우리 인생이 약한데서 온전해진다. 인간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성과 온전함을 더욱 잘 나타내는 기회이다. 인간이 지혜롭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의 지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인간이 자기의 힘을 의지할 때는 아직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인간의 방법이 남아있을 때 하나님의 방법은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때 하나님의 영광의 때가 이르게 된다.

 

나사로가 완전히 죽어 장사하기까지는 아직 인간의 지혜와 방법이 남아 있을 때이다. 이 때는 아직 주님의 때가 되지 못했다. 냄새가 날 때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는 시작되는 법이다. 아직 사람이 살아있고 인간의 의지가 주도되고 사람의 방법이 동원될 때 현상유지는 되나, 하나님의 기적적인 체험은 아직 때가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비록 약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족하게 생각할 수 있는 믿음의 자세가 절대 필요하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는 족하다. 족하다는 말은 디모데전서 68절에 나오는 말고 동일하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이 구절에서 족하다는 말의 의미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생필품인가? 사치품인가? 이것은 생필품, 필수품이다. 필수품이 있으면 우리는 만족해야 한다. 즉 우리는 필수품으로 족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때때로 더 많이 주시기도 하시나 우리는 필수품으로 만족해야 한다. 절대로 사치품을 넘나보고 없음을 부러워하고 불평해서 안된다. 영적인 면에서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하나님의 도우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때를 따라 우리가 필요한 것을 주신다. 먹을 것과 입을 것에 해당되는 필수품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으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힘을 반드시 주신다. 우리는 특정한 가시까지 제거해 달라고 하는 사치품을 구하나 하나님께서는 종종 그 가시를 견딜 수 있는 힘으로만 만족해라라고 말씀하신다.

 

가시는 여전히 그러나 감당할 수 있는 은혜가

 

가시가 제거되지는 않지만 가시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라. 왜 하나님은 그렇게 가시를 견딜 수 있는 힘만 주실 때가 있는가? 그리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인간이 교만하지 않고 항상 주님을 바라보게 하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마음의 그릇과 역사의 장을 준비하는 선한 기회임을 믿고 감사드려야 한다.

 

광야에서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였듯이 날마다 하나님을 의존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분명히 후하시고 풍성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연약하여 많은 것 모든 것 한꺼번에 주어지고 해결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하고 세상 길로 빠질 것을 아시기에 우리를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의존케 하시고 하나님의 은총을 날마다 체험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신명기 817-18절 말씀처럼 두렵건데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제물을 얻었다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그렇다. 하나님은 잘될 때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떠나버리는 인간의 연약과 간사함을 아시는 주님은 오히려 인간에게 잘 안되는 연약한 것, 바울과 같은 가시같은 것을 주셔서 그 고난과 고통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전적 의지하고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설적 은혜를 우리는 깊이 묵상할 수 있어야 하겠다.

 

하나님만 의뢰하게

 

약함 중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강함을 주시는 그 은혜를 아는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와 의지하는 순간이 인간이 강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지혜요 연약한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이시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8-9절에 지금까지 언급했던 자신 육체적 가시 뿐 아니라

 

또 다른 여러 가지 환란과 역경 속에서도 그는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음을 밝히고 있다.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여러분 여러분이 견디기 힘겨운 인생 문제가 있는가? 살 소망까지 끊어질 만큼 위기일발의 문제가 가로 놓여 있는가? 사형선고를 받은 만큼 진퇴양란의 깜깜한 문제가 있는가?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고통스런 문제 속에 던져 놓으시는가? 심지어 존재론적 회의가 드시는 분이 있는가?

 

성경은 밝히고 있다. 하나님을 더욱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약함 중에 강함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는 유일한 길이기에 그 고난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족한 것이다. 계속있는 가시든 때로 당하는 엄청난 위기이든 모두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연약함을 깨우치시고 하나님을 전적 신뢰하는 선한 기회임을 알기를 바란다. 인간의 고통과 연약함 속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더 무거울 때 더 많은 은혜

 

짐이 더 무거워질 때 더 많은 은혜를 베푸시고

일이 더 많아질 때 더 많은 은혜를 내려 주시네

고난이 더해지면 자비도 더하시고

지극한 시련 중에는 지극한 평화를 주시네.

 

우리의 인내심이 다할 때

하루가 반도 채 가기 전에 우리 힘이 고갈할 때

저장해 두었던 우리 자원들이 바닥을 보일 때

아버지의 풍성한 공급은 겨우 시작일 뿐이라네.

 

하나님의 사랑은 한이 없고, 그 은혜는 측량할 수 없으며,

그분의 능력의 한계를 인간은 알 수가 없네.

예수님 안에 있는 한없는 부요로부터

하나님은 주시고 베푸시고 다시 주시기 때문이네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저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719.248.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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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02 [18:37]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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