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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10 [00:01]
이유를 깨닫고 여호와께 감사하라
정준모 목사(콜로라도 말씀제일 교회)의【추수 감사절 설교]
 
정준모

추수 감사절 설교이유를 깨닫고 여호와께 감사하라

 



▲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라  ©  뉴스 파워 정준모


 

본문 시편 1071-16

 

107: 1-16, 개정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3] 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4]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5]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6]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10]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1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12]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13]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14]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15]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16]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서론) 2019년도 추수 감사절이 다가오고 있다. 해마다 맞이하는 추수 감사절이다. 의례적이고 의식적인 감사절을 맞이해서는 안 된다, 습관적이고 연례 종교적 행사가 되어서는 안된다. 신앙생활의 습관화는 영적 경직화의 위험이 있다. 감사절의 의미가 신앙생활의 연륜이 깊어 갈수록 그 의미도 더욱 성숙해져야 한다.

 

2019년도 한 해 동안도, 지구촌 여러 곳에 온갖 재난과 사고, 전쟁과 질병, 폭동와 시위, 자연재해와 인재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그분의 뜻대로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는 창조 주, 섭리 주, 심판 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피조물로서,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마땅한 자세이며 태도일 것이다.

 

시편 107편은 124편과 함께 공동체 감사이다. 개인적 감사 시는 시편 18, 30, 116편을 들 수 있다. 감사는 개인으로부터 공동체로 확산되고, 전개되고 흘러가야 한다. 마치 시냇물이 모여, 강물이 되고, 강물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듯이, 개인, 가정, 교회, 국가적 감사되어야 한다. 청교도 후예인 미국의 경우는 아직도 개인과 가정에서 감사가 교회 공동체와 국가 공동체적 감사로 연 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본문 중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해야 하는 그 이유를 살펴보고, 또한 어떻게 감사해 하는지 성경적 교훈을 얻고자 한다.

 

1.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감사하라(1-3)

 

1절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성경에 선하고 인자하심이 성경에 상당수가 나온다. 그 대표 구절이 오늘 본문인 시편 1071절과 시편 266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말씀이다.

 

()은 히브리어로 토브로써, 창세기 1장에 토브라는 말이 좋다라는 말로 매일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하신 말씀이다. 창세기 14, 12, 18, 21, 31절 등에 나온다. 이 단어 뜻은 하나님의 판단으로 보실 때, “좋다는 그 것이 바로 선이다. 하나님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좋다고 보신다는 뜻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 긍휼, 자비, 은혜 모든 것을 내포하는 의미로 불 수 있다.

 

인자(仁慈)는 히브어로 헷세드”, 헬라어로 아가페로써, “긍휼”, “사랑”, “자비등으로 하나님이 범죄한 인간에게 베푸신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속성을 의미한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폭넓은 의미 같은 의미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함께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하나님의 속성이며 또한 인간에게 베푸신 가장 크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다. 범죄한 인간, 하나님을 떠난 인생, 자행자제하면 자기 고집대로 살았던 탕자같은 인생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그 근거는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있기에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하여도 영접해 주시고 환영해 주신다. 또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에 우리가 염치 불구하고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시편 25:7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여기서 시인이 고백하는 것이 무엇인가? 지난 날 자신이 저질렀던 죄와 허물을 생각하면, 자신 스스로 생각해도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지난날의 삶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인자하심을 따라 자신을 기억해 주시고, 주의 선하심을 따라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시편 1038-11절에 시인을 놀라운 감사를 드리고 있다. [8]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9]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그렇다. 2019년 한 해도 주께서 베푸신 가장 큰 은혜는 우리의 행위와 모습대로 우리를 판단하지 않으시고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맞아 주신 그 풍성하시고 놀라우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릴 수밖에 없다.

 

오늘 총신신학대원 동기생 중 시골에서 목회하시는 한 분 목사님이 계신다. 안타깝게도 그 분은 신체장애인이시다. 그러나 항상 긍정적이고 성실하신 분이시다. 늘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그 사람을 칭찬하는 인품의 소유자이다. 같은 마을에 은퇴하신 노 목사님 부부도 마치 자신의 가족처럼 모시고, 섬기도 계신다. 특히 결혼한 지 37년째 지나도록 한결같이, 어려운 시골 환경, 남편 목사님의 불편하신 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남편의 내조자로써, 기도의 어머니로 섬기는 고귀한 사모이시다. 나는 예전에 그 분들과 종종 교제하고 기도 제목을 나누고, 그 지역에 연합집회를 인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총신 동기회 카톡 방에서 그 분을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내 기억으로 그 분의 자제 분들의 혼사가 모든 부모의 마음과 같이 기도제목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제분들의 혼사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목사님은 바로 결혼사진, 가족사진을 보내 주셨다. 참으로 행복한 모습이었다. 아들은 축협 직원이고 며느리는 학교 교사라는 소식을 들었다. 난 이것이 불구의 몸으로, 시골에서 항상 기쁨으로 살아가는 이름 모를 야생화처럼 하나님 앞에서 굳건히 살아가는 그 목사님에 선하심과 인자하심함께 하셨다고 고백할 수 있겠다.

 

우리는 크고, 놀랍고, 대단한 일을 만나면 감사하는 간사함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제일 큰 기적은 “로에 당첨되고, 대박사업이나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작지만, 이름 모를 자이지만 그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사랑하며,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고, 지극히 평범하지만 참 기쁨 속에 살아가는 것이 기적 중 기적이며,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함께하신 증거임을 알 수 있다.

 

2019년도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올해 한 해 동안 주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무엇인가? 그것을 알고, 깨닫고, 감사하고, 그 은혜를 보답하는 것이 추수감사절의 진정한 의미요 마땅한 태도이다. 다윗은 보잘 것은 목동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뙤기까지, 자신의 전 생애를 회고하면서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 자신에 따랐다고 감격하고 감사하고 찬양하였다.

 

2. 건져주시고 인도하심을 감사하라(4-9)

 

본문 4-9절 말씀을 다시 읽어 보자. [4]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5]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6]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본문 기자는 역사적 상황을 회고하면서 여호와께 공동체적 감사를 드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출애굽 사건, 40년 광야 생활, 가나안 정복 등의 역사적 사건을 회상하며 감사드리고 있다.

 

430년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의 극적 사건으로 바다를 육지 같이 건너는 대 출애굽 기적을 체험하였다. 그러나 불행스럽게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 광야 길에서 모질게,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다. 그 이유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정탐꾼들의 보고에 대한 불신, 불평, 불만, 불순종으로 기인되었다(14:33-34).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40년 간의 광야 길은 고달픈 길이었다. 그들은 거할 성 없었다. 황량한 사막이 그들의 거주지였다. 물도 식량도 충분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구름기둥 불기둥의 은총, 만나와 메추라기의 역사, 반석에서 생수의 은혜를 맛보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본 시편에는 근심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말이 4번 나온다(6, 13, 19, 28). 연약한 인간들은 고통 전에는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지 않는다. 고난을 당하면, 두 손 들고 하나님 앞에 나온다. 그래서 고난이 내게 유익하다, My suffering was good for me”(119: 71)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고난 속에 하나님의 율례, 진리를 배우게 된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군요”, 고난 속에서 하나님 말씀이 옳습니다”, 제가 죽어 마땅할 죄인입니다. “주여, 용서하소서라고 깨닫고 부르짖게 된다.

 

나는 어제 하나님께서 광야 길의 어두운 긴 터널에서 벗어나게 하심을 감사 시로 하나님께 올려드렸다. 시를 쓴 경험이 없는 나로서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나의 지난 삶의 여정을 짧게 표현하기에는 적절한 방법이었다. 한 때, 하나님의 큰 은총과 큰 영광을 받은 나였지만, 그 은총과 영광을 지속적으로 누리지 못하고 한 순간에 추락해 버렸다.

 

아내가 바지자락을 붙잡고 총회장을 하기를 말렸다. 그러나 명예욕에 붙잡힌 나를 부총장에 당선되었다. 그 이후, 침소봉대된 과정 된 뉴스와, 간교한 정치꾼의 권모술수로 나의 삶을 산산조각 나게 되었다. 그러나 사건의 모두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교만과 죄악을 치신 것이다.

 

나는 지금 나를 피눈물 나고 쓴물이 올라오고, 잠 못 이룬 숱한 날의 광야 길을 걷게 한 그들을 용서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주권 속에 이루어진 일고, 내가 뿌리대로 거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악역을 한 그들을 용서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래서 시를 적기에 부족한 나임을 인정하면서도, 흰 눈이 내리는 밤에 로키 산 자락 아래 있는 나의 글방에서 다음과 같이 “2019년 추수 감사 시를 적었다.

 

본문 9절 말씀에 힘을 얻고 아래의 시를 적어 보았다,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2019년 부족한 나에게 영혼의 만족, 영혼의 깨달음, 영혼의 치유, 영혼의 응답을 주셨다, 그것이 바로 잃어버림에 감사하는 성령의 깨우침, 말씀의 위로였다.

 

잃어버림의 감사

 

벌써 7년째 접어든 2019년 가을

삶이 무너진 날 그 순간이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온 영혼이 산산이 부서지고

치욕과 모욕의 어두운 골짜기

끝없이 펼쳐지고 어두운 밤길

그 퇴색된 낙엽을 밟고 가지만

 

그러나 긴 광야 길에서

길손의 친구가 있었네

긴 터널에서, 길고 긴 터널에서

속삭임의 노래 소리 거름되어

심령 밭에 이름 모를 야생화 피우고

어둠과 빛의 조화 속에 내 인생의

창세기 1장을 심비에 새겨 놓네

 

수직으로 치솟았던 명성도

일순간 내동강친 조각들 되어

눈물의 아교풀로 조각을 잇고

희미하게 비춰진 생명 빛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미래진행형 남은 인생 살련다.

 

약함 중에 강함이란 의미를

실패, 고난, 아픔이 약재료라고

고난이 하늘을 찾는 확성기라고

부활은 십자가로부터 시작된다고

주홍빛 죄도 고백으로 흰눈된다고

이제는 자신에게 외치고 있다오

 

길 가는 나그네여, 비웃지 마오

하늘 길 붙잡고, 하늘을 연다오

그날이 없었던들 끊겨버린 풍선되어

사탄의 가시에 터져 버릴 육욕덩이

그날이 있었기에 하늘 이슬비 양식 삼고

눈물의 골방에서 파라클레토스를 벗 삼고

잃어버린 감사, 오히려 하늘의 마중물 되네.

 

다시 읽어 본다. 9이는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의 모습이시다.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며 사모하며 간절히 구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며 그들의 영혼을 만족시키신다.

 

3. 구원하시고 베푸신 기적을 감사하라(10-16)

 

본문 10절에서 16절을 살펴보자,[10]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1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12]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13]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14]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15]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16]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중요한 인생의 질문과 해답이 있다. , 선하신 하나님,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흑암, 사망의 그늘에 아래 두실까?, 왜 사랑의 하나님께서 사람들은 곤고와 쇠사슬에 매이게 하실까? 고난에 대한 질문이다. 성경, 신학, 철학, 종교에서 숱하게 던지는 질문이다. 왜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실까? 라는 질문이다. 내가 존경하는 박윤선, 김준곤, 옥한흠 목사님도 이 문제에 대하여 자신들이 설교를 했지만, 여전히 그들에게도 실존적 아픔이 존재하였고, 그것을 극복하시느라고 힘드셨다.

 

해답은 성경에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에 오는 채찍으로서 고난이다. 또한 마음 낮추시기 위해 오는 연단의 고난이다. 그 고난 속에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게 되는 신앙에로의 회복이니 감사하게 된다. 고통에서 구원, 흑암과 사망의 그들에서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니 감사하게 된다. 얽은 줄을 끊으시고, 놋문을 깨뜨리시고, 쇠빗 장을 겪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니 감사하게 된다.

 

평생 질고로 살았던 일본의 기독교 여류작가인 삼포능자(미우라 아야코)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체험한 시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믿지 못할 기적이 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소가 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우러러 뵙지 못할 주님이 있습니다.

!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 일 수 조차 없습니다.“

 

지난 10월 말에 3년 만에 한국에 나갔다. 목적은 94세되신 노환으로 계시는 처의 어머님이신 장모님을 만나기 위함이다. 뜻하지 않았지만, 평소와 삶을 나누는 한 붅이, 나의 소식을 듣고 그동안 궁금했던 분들에게 나의 소식을 듣고, 이분 저분 상당히 많은 분들을 본의 아니게 만나게 식사와 차를 나누었다. 그 중에 나의 소식을 전한 집사님 가정의 이야기다. 그는 부인과 갈등이 있었지만, 그 부인은 나의 아내를 통하여 많은 갈등이 회복된 분이다. 이제 그 가정이 건강하고 따뜻하고 꿈이 있는 가정이 될 것이다. 그의 어머님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분이시다. 그분들은 한 때, 잘 사셨던 분이시다. 그 어머님의 남편은 교회당 건축 시 귀한 소나무, 철쭉 등으로 교회당 주변을 꽃밭을 꾸며 주신 분이시다.

 

그런데 그 어머니 권사님은 참으로 믿음으로 사시는데 경제적 어려움이 많으셨다. 부족한 나를 만나러 택시를 탈 상황이 못되어, 지하철을 차고 오셨다. 지하철 계단에 오르기도 힘든 상한 무릎을 가지고 아픔을 극복하고 사셨다. “무릎 관절을 수술라면 되지 않느냐고 당연한 질문을 던진 내 마음을 찡하게 하는 말씀을 하셨다. “목사님, 사실 제가 무릎 수술을 할 수 없는 것은 지금 제가 유치원 다니면서 봉사하는 일이 있기에 그 일을 앞으로 1. 2년간 마친 후 수술을 할 생각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처럼 힘들게 사시는 권사님의 말씀에 또 다시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셨다. “목사님, 저와 저의 가정의 어려움도, 이제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고난의 터널을 빠져 광명을 볼 수 있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고난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기 위한 하나임의 뜻이 우리 가정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가정이 복음으로 하나 되고 가족 간의 사랑이 회복되어짐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목사지만 나보다 인내하시고, 기도하시고, 하나님을 찾는 권사님의 그 아름다운 마음과 신앙심에 고개를 숙였다. 마음이 찡했다. 그리고 나에게 그런 권사님이 계셨다는 것을 감사드렸다.

 

결론을 맺는다) 나는 참으로 행복한 추수감사를 맞이하고 있다. 성경연구로 인생을 아름답게 영글어 가시는 모교회 장로님. 함께 글을 쓰시는 시애틀 장로님 계시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빠 뒤를 이처럼 어렵고 힘든 긴 시간의 신학 공부를 하는 두 아들, 든든하고 친구 되는 사위와 지금도 첫 딸로 손녀딸 보다 내 마음에 남아 있는 딸, 어렵고 힘든 고난의 길을 동반해주고 있는 아내, 더욱이 이름 모른 그 분들이 부족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늘 감사드린다. 오늘도 할머니 10불이 탐나 성경구절 외우는 3명의 손자손녀들 때문에 감사하다.

 

그래도 지난 날 담임목사였다고 반갑게 맞아주는 후배 교역자들을 생각하면 내게는 참 감사한 추수감사절이다. 또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비록 카톡 방이지만 따뜻하게 맞아주는 신학 동기생들- 그들 때문에 새로운 용기와 위로를 얻게 된다. 또한 늘 아침마다 오늘의 묵상을 보내주시고 성경을 보내 주신 후배 목사님이 계심으로 나는 행복자이다.

 

더더욱, 부족한 자의 갈 길을 잃지 않게 글을 쓰면서, 하나님을 만나도 눈에 보이지 않는 독자들을 만나고, 로키 산자락의 제한된 공간이지만 세계를 향해 글로써 복음 전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신 언론사 대표님께도 감사드린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e is good; his love endures forever.”

 

그러기에 나는 첫 눈 내리는 이틀 전 밤에 내가 드릴 수 있는 한마디는 오직 감사뿐입니다라는 소박한 시를 적게 되었다. 다음의 졸시(拙詩)로 추수 감사절 설교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오직 한마디 감사드립니다

 

소박한 식탁에 둘러 앉아

자녀들을 축복하고

하루의 휴식을 취하는

평안함 속에서

오직 드릴 수 있는 말은

오 주님, 감사드립니다

 

여름 날, 개구쟁이들이 남긴

장난감, 할매, 할배의 추억의 보물

믿음의 가문 되자고 함께 손 모아

드릴 수 있는 오직 그 한미다

오 주님 감사드릴 뿐입니다.”

 

가을 나무에 낙엽이 서로 엉켜져

형형색색의 물감으로 그린 화폭

창조주의 아름다움을 백내장 낀

눈으로 만끽할 때

오직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 감사드립니다뿐입니다

 

사랑하는 옛 교우와 동료들 만나

박장대소하며 작별의 아쉬움 남길 때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께 감사합니다뿐입니다

 

어수선한 조국 땅, 보호와 방패가 되셔서

평화를 누리고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그 은혜

제가 이 시간 드릴 수 있는 오직 한마디

주님, 감사합니다이 말 뿐입니다.

 

가을 녘에 주신 땅의 선물

오곡백과의 풍성함을 누릴 때

제가 드릴 수 있는 그 말 한마디는

, 주여, 감사를 드립니다

 

고된 일터지만 삶의 터전이 되고

비록 일용할 양식이 있기에

오늘 하루를 보내고 드릴 수 있는

그 기도는오 주님, 감사드립니다

 

크고 작은 모든 사건 속에,

고통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도

현재 이해될 수 없는 오묘한 섭리

주님의 주권을 바라보며 오직 한마디

, 주님, 감사합니다

 

신생아의 울움소리, 산모의 신음소리

초상집의 울음소리, 희비애락의

인생의 불가사의 모자잌도

지금 알 수 없으나

그날,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그 한 말

오직, 주님 감사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모든 영광 주님께 돌립니다.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저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719.248.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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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31 [15:3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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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목사] 칼빈의 교리교육론에 대한 이해 정준모 2019/12/03/
[정준모 목사] 인생의 풍랑에도 두려워 마라(막4:35-41) 정준모 2019/11/29/
[정준모 목사] 믿음으로 시험을 이깁시다 정준모 2019/11/27/
[정준모 목사] 온전한 언어생활을 하라 정준모 2019/11/26/
[정준모 목사] 2020년 목회 계획 세우기 원리와 지침(1) 정준모 2019/11/25/
[정준모 목사] 〚최후 승리 찬양〛의 분석과 신학적 해석 정준모 2019/11/24/
[정준모 목사] 국가관을 굳게 세우라 정준모 2019/11/22/
[정준모 목사] 화(禍)를 당할 20가지 지도자 유형들 정준모 2019/11/22/
[정준모 목사]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정준모 2019/11/22/
[정준모 목사] 가정불화, 이렇게 극복하라 정준모 2019/11/21/
[정준모 목사] 추수감사절에 꼭 알아야할 이야기와 음식 정준모 2019/11/19/
[정준모 목사] 【평신도 교리 200 문답(4)】성육신 교리의 성경의 증거 정준모 2019/11/18/
[정준모 목사] 불임을 극복한 믿음【히11장 믿음장 강해 (6)】 정준모 2019/11/15/
[정준모 목사] 감사하기 거리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정준모 2019/11/14/
[정준모 목사] 【평신도 교리 200 문답(3)】 그리스도의 양성(兩性) 교리를 거부하는 이단들 정준모 2019/11/14/
[정준모 목사] 『기쁨으로 히브리어』 출판 기념식 열어 콜로라도=정준모 2019/11/12/
[정준모 목사] 올바른 물질관 가지라 정준모 2019/11/12/
[정준모 목사]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 운동(13) 정준모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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