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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10 [00:01]
심판을 철저히 준비한 노아
【히 11장 믿음장 강해 4강】
 
정준모

11장 믿음장 강해 4심판을 철저히 준비한 노아

 

▲   이 시대 또 다른 노아 시대. 이 시대 또 다른 노아의 삶을 살게 하소서  © 뉴스 파워 정준모

  

 

정준모 목사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후사가 되었느니라 (11:7)

 

 

분명한 사실은 인류의 종말과 개인의 종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진리요, 역사의 진리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특성은 바로 종말론을 확실히 믿고 그에 따른 준비를 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린가?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인류역사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하나님이 끝을 내실 것입니다. 인류역사는 의미 없이 공전하는 역사가 아닙니다. 변증법적, 진화론적 발전도 아닙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시간의 영역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언젠가 이 시간이 멈출 날이 올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1:1 이하에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역사는 장차 만 왕의 왕으로 만 주의 주로 다시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그 끝을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이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영광스러운 날이지만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심판과 재앙의 날이 될 것입니다. 아니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이 날은 두려운 날이 될 수 있습니다. 은혜를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경각심을 가지지 못하고 게으름과 어리석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책망을 의식할 때 분명 두려운 날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는 노아시대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노아시대 이상으로 죄악이 관영하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패역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진노의 잔을 높이 드셔서 인류를 심판하실 만큼 죄악의 홍수가 이 시대의 모든 영역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강해 설교자인존 맥아더(John MacArthur)는 다음 몇 가지 사실을 예로 들어 이 시대가 노아의 홍수시대와 매우 유사함을 지적하였습니다.

 

1) 사람이 매우 번성하였다.

2)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조롱을 받았다.

3) 죄악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관영한 시대였다.

4)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고 인내하셨다.

5)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설교자가 있었다.

6) 하나님의 신이 사람과 싸우셨다.

7)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존재하였다.

8) 마귀가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기 위하여 활동하였다.

9)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시대적 상황이었다.

 

역사의 황혼녘에 서 있는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현재의 영적, 도덕적 모습은 마치 노아 시대를 방불케 합니다. 부패와 타락의 극치를 달렸던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물 심판을 통한 진노,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노아의 믿음 상은 오늘 우리에게 귀한 표본이 됩니다. 그것은 종말의 위기에 있는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진노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노아의 상을 찾으시는 시대적 부름 앞에 믿음의 영적 바톤을 이을 성도에 대한 표본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떠난 비극 시대

 

노아 시대의 시대적 상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의 혼합성(6:12) 2) 하나님의 신이 떠난 비극(3). 3) 육체가 되어 버린 도덕적 부패상(34). 4) 항상 악을 도모하는 비인간적 모습(5). 5) 강포와 패괴가 땅에 가득찬 시대상(1112). 6)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심에 한탄하실 정도의 비극(67)의 시대입니다.

 

2437절에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증오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과 증오는 함께 존재합니다. 사랑하시기에 사랑의 반대인 증오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이를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해가 되는 모든 것에 대해 우리 또한 싫어할 것입니다. 선을 사랑한다면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사탄이나 죄를 싫어할 것입니다.

 

9710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119104, 113, 128, 163주의 법도를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행위를 미워하나이다... 내가 두 마음 품은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법도를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내가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나, 죄를 증오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심정을 찾으시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십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들

 

61719절에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들에 대한 목록이 나와 있습니다. 이 목록은 경건하게 살아갈 성도들에게 반드시 점검되어야 할 영역들입니다.

 

1) 교만한 눈: 히브리어의 문자적 표현입니다. 이것은 교만은 치켜 뜬눈에서 나타나는데 교만한 사람은 얼굴을 들고 눈을 치켜든다는 데서 온 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든 불순종과 반항의 근원이 됩니다(1:22).

 

2) 거짓된 혀: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요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6:18). 거짓말은 원래 마귀의 것으로 마귀가 사람들을 거짓으로 미혹하는 것입니다. 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귀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잔악한 손 :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감행하는 자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일에 실패나 좌절을 겪는 고통을 당하기보다 차라리 방해되는 사람을 제거하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9:6절에 보면 하나님은 남의 생명을 취한 자는 자기 생명으로 그 대가를 치르도록 정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사악한 마음: 하나님은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을 싫어하십니다. 악을 행하는 것도 나쁘지만 어떻게 악을 행할까 하고 오래 궁리하는 것은 더욱 나쁘다. 사악한 마음은 새로운 범죄 방법을 고안해 내기 위한 사탄의 작업장입니다.

 

5) 악을 향한 발걸음: 하나님은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도 싫어하십니다(18). 이것은 실족하여 짓는 죄와는 달리 악을 조장하고 악을 고의적으로 가능한 빨리 지으려는 성향을 말합니다.

 

6) 거짓 증인 : 하나님은 무고한 편을 비난하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거짓증인은 정의실현의 장애물이며, 무고한 사람의 명예를 무너뜨리고 그 사람의 삶까지 파괴하는 죄인 것입니다.

 

7) 이간하려는 마음: 형제사이를 이간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이솝이야기에 나오는 토끼와 같은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코끼리와 고래를 이간시키는 토끼의 모습입니다. 일치단결 하는 것을 분열로 조장시키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상에서 지적한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악한 감정과 생각과 발출되는 행동도 싫어하시지만 우리 마음과 생각밖에 있는 이 세상의 것을 사랑하고 집착하는 것도 역시 싫어하십니다.

 

악한 영적 체계로서의 세상

 

성경에서는 세상을 3가지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1) 이 땅(the Earth)혹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현상적인 모든 세계를 가리킵니다. 1724절에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 인류(Humanity)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10절에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현상적)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며(현상적)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고(인간)” 말씀하셨습니다. 3) 악의 체계(system of power)보이지 않지만 존재하여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고 악의 영향을 미치는 영적 체계를 가리킵니다. 요일 2: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도덕적으로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미혹하여 넘어뜨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단절시키려고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항상 교묘한 계략으로 성도들을 미혹하여 넘어뜨립니다. 사탄은 처음에는 손님처럼 어색하게 접근합니다. 그러다가 양의 탈을 쓰고 우선 보기에 다정한 친구처럼 다가옵니다. 나중에는 아주 친숙한 동반자가 되어 매사에 함께 잘 어울립니다. 사탄의 겉은 천사의 모습을 하지만 속에는 악마의 이빨을 가지고 적당한 이유를 고집하면서 죄를 짓게 합니다. 사탄은 이제 지은 죄를 정죄하고 고발하면서 삶을 포기하게 합니다. 사탄은 죄의 종노릇을 하도록 감금하고 후에는 폭군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신 시대의 의인: 디카이오스

 

노아는 믿음의 증거와 진보를 가진 자요, 성경에 의로운 자라고 불리워진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6:9).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에는 노아를 묘사할 때 의로운이라는 뜻을 가진 디카이오스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입니다. 로마서 320절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의 의를 내세울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22절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증거와 진보를 그의 순종에서 볼 수 있다.(6:7). 그의 헌신, 그의 경외심, 그의 도전 등에서 역력히 볼 수 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들:

 

노아 당시의 상황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미확인의 갈등:그 당시까지 비를 경험하지 못하였고 더욱이 홍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궁창이 터져 비가 되고 안개가 된다는 자연적 상황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 120년 동안 인내의 시련:하나님의 심판의 성취가 하루 이틀 이후 짧은 기일 내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12년 세월을 기다리는 것도 아닙니다. 12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을 인내하면서 기다렸다는 사실입니다.

 

3) 비합리적 현실:당시 바다와 너무나 먼 티그리스강과 유프라데스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어느 한 장소에서 배를 만든다는 사실은 너무나 엉뚱하고 어리석은 생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의 갈등:배의 규모, 배에 들어가는 인력 규모, 배를 짓기에 필요한 경제적 상황들이 도저히 노아의 현실에 맞지 않았습니다.

 

방주의 크기에 대한 실제적 이해

 

방주의 규모나 크기를 살펴보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길이 132미터, 22미터, 높이 13미터(4)3층으로 되었습니다. 20세기 초 영국 해군 기술자들이 당시 최대, 최고의 전함을 만들었는데 그 배이름이 드레드노트(Dreadnought, 용감한 사람)라는 배였습니다. 이 배가 완성되자 온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 전함의 치수 비율과 노아방주의 치수 비율이 완전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되어진 완벽한 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기식하는 동물이 노아의 방주 안에 다 들어 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문들 어떻게 홍해 바다가 갈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물위로 걸어 갈 수 있을까? 어떻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천명이 배불리 먹고 열 두 광주리나 남았을까? 어떻게 생각하면 의심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도저히 인간의 지혜와 상식으로는 이해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십시요 그러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믿어지게 될 것입니다(참고적으로 어떻게는 헬라적 사고이고 는 히브리적 사고입니다).

 

어떻게 노아 방주 안에 땅위에서 숨 쉬고 있는 동물들을 모두 한 쌍씩 집어넣을 수 있었고, 어떻게 방주 안으로 이끌어 왔고, 방주 안에 있었던 동물들이 어떻게 1년이 넘도록 무엇을 먹고살았을까? 최근 조사에 따르면 양보다 큰 포유류 290, 양보다 크고 고양이 보다 작은 것이 1,359, 그리고 고양이보다 작은 종류가 2,500종류로 합이 약 4,000종류입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0.2평방미터 차지한다면 다 채우고도 남는 공간이었고, 하나님이 그들을 이끄셨고 특별하신 섭리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한 갈등 가운데서도 그가 견디고 인내하고, 투자하고, 바라고, 순종하고, 믿었던 것의 바탕은 무엇인가? 그의 인간적 인내와 신념과 확신과 경영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경고에 즉각 순종한 노아

 

히브리서 기자는 그가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았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외함으로 순종했습니다. 참으로 감격적인 말씀은 9절에서 의인이요, 완전한 자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 믿음으로 사는 자라는 부분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있는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는가? 그 말씀을 경외하고 있는가? 경외라는 말은 두려워 떤다는 의미보다 너무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머지 기꺼이 그 명령을 받든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놀라운 것은 노아의 믿음과 순종에 온 식구들까지 노아가 행한 믿음의 사역에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노아가 믿음의 증거와 믿음의 진보를 삶으로, 행동으로, 분명히 가족들에게 보여 준 결과입니다. 아버지의 권위로나 시부모의 권위로 그들을 맹종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는 가족들에게 물보다 진한 혈육의 감정으로가 아니라 객관적 믿음의 증거와 진보를 보여준 영적인 가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과연 나의 믿음의 진보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또 다른 노아의 시대의 또 다른 노아가 되자

 

21세기는 노아시대 이상의 험준하고, 악하고, 심판을 초래하는 말세 지말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러므로 21세기 성도는 노아 이상의 믿음과 순종의 삶이 요구됩니다. 확인해야만 믿는 시대에 노아처럼 미확인된 사실도 믿는 믿음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조급하고 참지 못하는 시대에 120년을 기다리는 노아의 인내가 절대 필요합니다. 합리적 사고가 보편화되고 정당화되어진 이 시대에 믿음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조롱을 극복하여야만 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의 능력과 자포자기의 좌초의 늪에서 하나님을 앙망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더욱이 성도는 세상 속에서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창세기에서 보여준 노아의 삶입니다. 노아는 그 시대의 사람이었지만 그 시대의 풍조에 떠밀려 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노아는 그 시대의 상황 속에 거하였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삶을 살았다. 예를 들어보면, 배는 물이 있어야만 뜰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배 안에 들어오면 배는 침몰되어 버리고 맙니다. 성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 은둔적인 삶을 살 수 없고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살지만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에 대한 바른 정의를 가지고 말씀의 확신 속에 역사를 이루며 더 나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믿음의 사람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를 찾는 자에게는 상주시는 이시며 그를 부인하는 자에게는 심판을 내리시는 분임을 믿는 자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는 노아 시대입니다. 현세에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이 시대의 또 다른 노아가 되길 축복합니다.

 

토의사항

 

1. 노아시대와 오늘날의 시대가 어떤 면에서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까?

 

2. 시간의 흐를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땅과 하늘 중 어느 것에 더 집중되고 있다고 느낍니까?

 

3. 성도를 미혹하려는 사단의 계략을 단계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4.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5. 오늘 이 시대에 심판을 준비하며 사는 삶이란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속세를 떠나 경건에만 열중하는 삶이라고도 볼 수 있을까요?

 

기도

 

주님, 노아를 통하여 깨우침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노아를 통하여 경고주심 감사드립니다.

주님, 노아를 통하여 재무장케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노아와 달리 불순종의 삶을 용서하소서.

주님, 노와와 달리 인내의 부족을 꾸짖어주소서

주님, 노와와 달리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소서

 

주님, 노아의 순종을 배우게 하소서,

주님, 노아의 믿음을 허락하소서

주님, 노아의 인내를 본받게 하소서

주님, 또 다른 노아가 되게 도와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저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719.248.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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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30 [05:49]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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