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광고
광고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파워인터뷰생활/건강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19.11.18 [03:02]
유성(遊星) 김준곤 목사님의 설교: 역사적 분석과 그 화두(話頭)
김정우(한국신학정보연구원 원장, 총신대 명예교수(구약학)
 
김정우

 

이 원고는 고 김준곤 목사 10주기 추모 학술발표회 발제 원고로 참고문헌과 각주 등은 뉴스파워에 게재하면서 생략했다.(뉴스파워)

▲ 김준곤 목사 10주기 추모 학술포럼에서 김정우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뉴스파워

 

 

다음은 원고 전문.

 

유성(遊星) 김준곤 목사님의 설교: 역사적 분석과 그 화두(話頭)

김정우(한국신학정보연구원 원장)

 

 

장자(莊子)는 자신의 ’()를 설명하기 위하여 그의 책 첫 장 소요유’(逍遙遊)에서 대붕(大鵬) 이야기를 한다. “북극 바다에 있는 물고기 곤()은 그 크기가 수 천리이다. 그는 변하여 길이가 수 천리 되는 ’()이란 새가 되었는데, 태풍이 불면 바로 남극으로 간다. 그는 한 번 물을 치면 삼천리에 튀고, 회오리를 타면 구만리를 올라가며, 육개월을 날아서 쉰다”. 목사님의 설교를 다 읽고 나서 느낀 점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마치 곤()과 붕()의 변화를 본 것같다. 목사님 역시 곤()처럼 지도’(知島)라는 섬사람이었으며, 이름에도 곤()과 같은 계열의 ’() 자가 있다.목사님이 한 번 말씀으로 치시면, 삼천리 금수강산에 물결이 튀어오르고(水擊三千里), 성령의 회오리를 일으키시면 그 바람 길은 하늘 구만리에 올라(扶搖而上者九萬里,扶搖而上者九萬里) 온 세상이 뒤흔들렸다. 그 일성(一聲)으로 청년들의 가슴을 녹였고, 엑스플로 ’74의 태풍과 ’80세계복음화 대성회의 회오리를 만드셨다.

목사님은 자신의 설교를 회고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에 거미줄을 뽑아내던 체험으로 빗대어 말씀하신 적이 있다. “지금은 죄송한 데, 나는 어린 시절의 호기심으로 큰 거미의 항문에서 거미줄을 뽑아내는데, 끝없이 거미줄이 나왔다”(1994).목사님은 이 원색적인 체험을 자신의 설교가 거미 줄처럼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에 대한 비유로 들려주셨다. 또한 목사님은 자신의 설교를 수도꼭지로 비유하신 적이 있다. “그렇게 많은 생각이 터져 나옵니다. 견딜 수 없어서 수도꼭지를 막아버리자, 피곤하니까 이것으로 그치자 생각하였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사를 주셔서 굉장히 많은 원초적인 생각을 끝없이 끝없이 주셨습니다”.사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설교 한 편을 만들려면 긴 시간 동안 고통스럽게 머리를 쥐어짜야 하고, 준비한 말씀을 전할 때에는 허공을 치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데, 이런 간증을 들으면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느낄 것 같다.

정말 하나님은 불공평 하실까?” 그렇게 쉽게 속단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목사님은 그 만큼 젊은 시절에 책을 많이 읽었다. 목사님은 1944년초 소만(蘇滿) 국경에 있는 만주의 마창에서 피난 가서 인광식 목사님과 김인석 목사님의 서재에 있는 책들을 모두 읽으며, “오로지 성서와 주님과만 얍복강의 야곱처럼 씨름하며 밀월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목사님은 자신의 독서에 대해CCC 편지어디에선가 나는 먹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독서를 취미나 학문으로 한 것이 아니라, 체화하신 것이다. 목사님께서 80번째 설을 맞이하며 띄운 메시지에서 젊은 시절, 나는 길을 찾기 위해 미친듯 책을 읽었다. 모든 것을 접촉해 보았다고 회고하셨다.

그렇지만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먹었다 하여도 목사님의 설교 같은 설교가 이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있을까? 목사님의 설교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했던 설교자들의 그 어떤 설교에서도 느낄 수 없는 독특한 향기’(香氣)가 있다. 그 향기는 어디에서 만들어진 것일까? 그것은 아마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었던 6.25 동란 중, 목사님이 직접 겪은 극한적 가족의 비극을 통해서 나온 것일 것이다. 또한 사랑하는 딸 신희를 먼저 주님께 보내는 고통을 겪고 용해한 정신 세계의 작품일 것이다.

김준곤 목사님의 설교는 역사적으로 CCC 편지에 담겨 있으며, 이후 1984년에 김준곤 문설집 1-6에 주제별로 분류되어 출간되었다.CCC 편지창간호는 1964127일에 처음 발간되며, 목사님의 설교는 2004년까지 게제되었다. 2005년부터는 설교가 거의 없으며 대신 예수 칼럼이 게재된다. 목사님의 설교 자료들에서 안타까운 사실 중 하나는 강원용 간사님이 만든 김준곤 목사 육성녹음테이프를 목사님이 분실하였다는 것이다.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CCC 편지에 목사님의 설교들이 대부분 담겨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CCC 편지에 나온 목사님의 설교를 거의 모두 읽을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목사님의 초기 설교는 세로로 빽빽하게 기록되었는데, 3편을 읽고 나면 나의 온 몸에서 힘이 빠져 기절하듯이 수면을 취해야했다. 나는 자주 어떻게 태산을 그려낼 수 있는가?”라는 압도감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글을 읽고 있는데 마치 목사님께서 김군, 지금 뭐하고 지내오? 이제는 내게 대해 어떻게 생각하오?”라며 말을 거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 자신은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이 한없이 부족하지만, 목사님에게 생명의 빚, 사랑의 빚, 사명의 빚을 지고 있음을 느끼며 감히 시도해 보았다.나는 제한된 시간과 자료 가운데 이 글을 썼으므로 나의 해석은 잠정적이고, 앞으로 더 많은 사료들과 더 밝은 해석에 따라 계속 수정될 수 있음을 먼저 말씀드린다.

 

 

1. 설교의 특징

 

목사님은 초감각을 지닌 문인과 시인의 언어 속에서 하나님 없는 그 진실하고 민감하고 심각하고 처절한 고백을 들을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내가 볼 때, 목사님 자신이 -고감각의 문인이며 시인이다. 또한 목사님은 위대한 시인은 창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직관이 계시를 받는다고 하셨다”.시인 조지훈은 시는 천계다(天啓). 시는 최초의 생명의 진실한 아름다움을 영원한 순간에 직관적으로 포착하여 이를 형상화 한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목사님의 모든 설교는 범인의 감각을 뛰어넘는 직관으로 심오한 언어의 차원에서 형성되어 우리 말로 다듬어져 쏟아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목사님의 설교에는 다음 세 가지의 중심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로, 목사님의 설교는 독창적이고 고유하다(originality). 우리에게 목사님의 설교는 너무나 친숙하여 그 설교가 그 설교라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교회의 역사에서 목사님의 설교 같은 설교는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다. 목사님의 설교는 루터나 칼빈의 설교처럼 신학적, 주해적이지 않고, 스펄전의 설교처럼 목회적이지 않으며, 역사상 이런 작품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독자적인 사색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언어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목사님의 설교는 항상 생생하게 살아 있는 언어, 정선된 언어, 체화된 언어, 영혼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언어의 은하수를 만든다.

둘째로, 목사님의 설교는 그림을 보듯이 선명하다(image). 197012한국기독화 요원 훈련 강습회에서 하신 설교를 보면, 혁명은 화산처럼폭발하고, 전염병처럼 번진다. 혁명은 광풍, 방화, 홍수, 발광, 열도가 죽이거나 죽을 수 밖에 없는 피와 생사의 필요성으로 외인과 내인을 내포하고 있는 모순부정의 질적변화 운동이다라고 말씀하신다.여기에 나오는 모순부정의 질적변화 운동이란 언어는 고도의 조어(造語) 능력을 보여준다. 목사님은 비유(比喩)를 탁월하게 사용다. “이기주의는 진드기처럼 모든 사람을 자기의 수단으로 생각하여 긁어 모으기만 한다”.목사님은 2002어둠을 탓하지 말고 민족을 밝히는 한 자루 촛불이 되십시오라는 대담에서 남북관계의 어려움을 세계사와 문명사적 관점에서 논하면서, “맷돌은 천천히 돌아가지만 모든 것이 가루가 되어 나오듯,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계획은 조금도 후퇴하지 않고 다 이루어간다는 맷돌 비유를 하셨다.동일한 대담에서 CCC의 역사적 역할과 고독을 나는 정말 나룻배다로 기탁(寄託)하셨다.

셋째로, 목사님의 설교는 시어(詩語)가 운()을 이루며 아름답다(poetic). “기독교의 가정 토착화 문제”(5:22-6:4)라는 설교에서 가족과 가정에 대한 문화사적 발전 형태를 논하시면서, “가정은 학교 이전의 학교, 사회 이전의 사회, 교회 이전의 교회이다. 현대의 위기는 인간의 위기이고 그 인간의 위기가 가정의 위기이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는 어머니의젖줄, 탯줄, 핏줄, 숨줄, 생명줄에서 신앙을 배웠다고 노래하신다.때로는 설교가 시가 된다.

 

무덤이인생의마지막이라면

보람찬인생, 불멸의업적들모두

존재와그들의문화, 선과,

모두가무에서무로돌아가는,

죽음의바다에서피어오르는안개,

마지막생명의하나까지

그리고이상죽을생명이없을때까지

죽음의북이울리고만있을만유의거대한무덤,

삶의도살장밖에무엇일까?...

순수삶은끝만치도죽음을모르고,

순수죽음의개념에는삶의그림자도허용안되는백과흑이다.

죽음은삶에게생소한순수모순이다”.

 

우리는 여기서 마치 예수 칼럼의 원조(元祖)를 보는 것 같다. 때로는 설교의 제목까지 두운과 각운을 맞춘다. “그리스도의 대신성, 대속성, 대사성, 대생성의 의미와 신비(53:4-12)”.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그리스도의 대속에 관한 메시지를 이렇게 시적으로 풀어낼 수가 없다. 그만큼 본문에 대한 깊은 묵상을 한 편의 시로 다듬어 낸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전민족 신자화 운동을 위한 전성도 총단합 총집중 전원 정예화 운동에 대한 제안”(1973.07.01)은 제목 자체가 너무나 벅차게 느껴진다. 여기서는 목사님이 운을 남용하신 것 같다.

이상의 세가지를 특징으로 꼽은 것은 이런 특징들이 거의 모든 설교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2. 설교의 중심 장르: 스토리텔링 내러티브 설교

 

목사님의 설교는 전통적인 제목설교나 강해설교나 주해설교가 아니다. 물론 강해설교가 없는 것은 아니며, 교리설교도 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벧전 4:10-14)이란 설교는 목사님이 장로교 목사임을 드러낸다.목사님은 성탄절, 신년주일, 부활절, 가정의 달, 8.15 해방 주일 설교에는 대부분 절기설교를 하신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편지 설교’. 목사님은 처음부터 편지 장르로 대학생들과 복음의 소통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서 CCC 편지였다.

무엇보다도 목사님은 문학적, 사상적, 철학적인 설교를 하시면서, 현대 정신과 소통하고 대화하며 주로 맞서 대결하면서 복음을 전하신다. “현대인의 실존적 심연과 예수의 노크소리”(130:1-8)에는 무신론의 형태로서 7가지를 열거하신다.(1)독단적 이론적 무신론, (2) 회의적 무신론: 불가지론, (3) 실천적 무신론, (4) 전투적 살신적 무신론, (5) 종교적 무신론: 간접적 무신론, 불교의 허심론, 진화론, 이신론, 휴매니즘, (6) 비판적 무신론: 도덕율로 사는 것, (7) 실존적 무신론: 신은 신이고 나는 나이다.

목사님의 설교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장르는 스토리텔링’(story telling)내러티브 설교’(narrative preaching)이다. 이 설교 형식은 CCC 편지의 제 2, “죽음의 시점에 서서”(1964.02)에서부터 이미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다.이 설교는 친구의 아버지를 망우리 묘지에 묻고 오는 오후부터 차가운 겨울 비가 내리는 밤이다라는 서정적 장면 묘사로 시작한다. 설교자는 1인칭 시점에서 물리적 죽음과 관계적 단절로부터 시작하여 무신(無神)과 허무(虛無)를 자랑삼는 현대 지성의 죽음의 신조의 잔혹함으로 연결해 간다. 그리고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죽음의 신비를 말하며, 육신의 죽음과 영적 죽음을 구분하고, 죽음의 참된 비극을 드러낸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죽음과 죽음에게 승리한 예수의 부활을 증거한다.

목사님의 스토리텔링의 내러티브 설교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탁월한 인물화’(characterization)이다. 목사님은 복음서의 중심 인물들인 베드로, 젊은 부자 청년, 막달라 마리아 등의 모습을 너무나 멋지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너는 나를 따르라’(21:22)”라는 설교에서 베드로는 입체적인 인물로 묘사되며 우리와 동일시 된다.베드로는 죄의식이 깊고, 자기 주장이 강하며, 강한 액션, 겁쟁이, 변덕, 약한 데가 있었다. 그는 간사하지 않다. 야심은 없고 담백하며 이용당하기 쉬웠고 불면증에 걸려본 적이 없다. 소 같이 억센 신앙의 노동자이다. 그는 인문교양은 없어도, 인간 바탕이 소박하고 순수하여 호감이 가는 자이다로 성격을 묘사한다. 이 설교는 베드로와 예수님의 인물화를 통한 내러티브 설교의 진수를 보여줄 뿐 아니라, 설교자가 갑자기 베드로와 직접 대화를 나눈다.

 

고마운베드로, 신자의원인(原人), 당신의어리석음으로우리는지혜를베운다. 당신이수치를당함으로우리가영광을누린다. 베드로, 형님이여친구여. 당신은그렇게밖에다르게길이없었나이다. 전체를바쳤기에유다가되든가베드로가되든가밖에는없었나이다. 씨알의운명처럼속에썩지않고는살길이다르게남아있지않았나이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다. “주의 영원한 소년이여, 갈릴리의 어부여, 당신이 천재나 성자가 아니기에 나도 당신 곁에 서서 하루도 열번 배신한 상처를 안고 그 신앙과 사랑의 고백에 내 고백을 더해 보고 또 허락하시면 목숨이라도 드리겠나이다”. 이 설교는 일반적인 묵상’(默想)을 넘어서 거의 관조’(觀照)관상’(觀想)에 가깝다. 목사님은 설교 사역의 초기에 이미 성경의 시공간(chronotope) 속에 참여하면서 소요’(逍遙)하고 계셨다.

한 창녀의 이야기”(7:36-50)는 스토리텔링 설교의 최고봉이며, 창녀가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과정을 묘사해 가는 1인칭 내러티브 설교이다.

 

창녀는자기생일도모른다. 줄이끊어져버린몸통만남은거문고같이감정이굳어져야있었다. 사람은모조리짐승같이무섭고싫다. 어떤남자가어제예수의이야기를들려주었다. 창녀도빨려들어가듯흐름의뒤를따랐다. 말씀마다가슴에못박히듯박혀지고예수님은그녀만을쳐다보는같았다. 처녀가남자를만나면여자가되고, 여자가예수를만나면다시처녀가된다. 가닥가닥끊어진영혼의거문고줄에서노래가흐르기시작했다. 새로태어나는수난이었다. 얼굴에성스런광채. 갓깨어난병아리가보골보골노란솜털병아리로변호하듯이. 신비스러운중생의현장을상상해보라. 베로니카의전설의여주인공도그녀였다. 지금은주님앞에입맞추는그녀는바로창녀같은영혼의자화상인듯싶어글을쓴다.

 

목사님이 이와 같은 인물화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관찰력으로 사물들과 사람들을 그려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향기”(1983)에는 온갖 얼굴들이 소개된다.“맑은 얼굴, 청순한 얼굴, 어진 얼굴, 교활한 얼굴, 요염한 얼굴, 간사한 얼굴, 능글맞은 얼굴, 경박한 얼굴, 무겁고 경건한 얼굴, 슬프고 외로운 얼굴등이다.

 

 

3. 설교의 시대구분

 

목사님의 설교에는 시대마다 변곡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목사님은 까뮤처럼 우리의 시대에 대한 폭넓은 민감성”(a widespread sensitivity of our times)으로 자신과 말씀을 비추었다. 또한 시대마다 키엘케골처럼 믿음과 사랑의 비약’(leap of faith and love)을 하셨다.목사님의 설교를 시대별 흐름을 따라 다음과 같이 잠정적으로 3기로 나누어 보았다.

 

(1) 초기 설교(1958~1974):대학생선교 및 민족복음화 설교

(2) 정동채플 설교(1976~1989): 목회적 설교와 하나님의 모든 경륜

(3) 후기 설교(1990-2005): 사랑의 실천과 백문일답

 

초기 설교(1958~1974):대학생선교 및 민족복음화 설교

 

이 시기의 설교 속에 평생토록 하신 설교의 모든 씨앗들이 있으며, 이미 설교가 형식과 내용에서 완성된 모습을 보여준다. 설교 한 편마다 시와 수필의 문학 작품 그 자체이다. 이 시기는 크게 초창기(1964-1969)와 민족복음화 태동기(1970-1974)로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초창기 설교(1964-1969)는 마치 설교 자체가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설교 안에 어떤 다른 동기가 없이 순수하며, 진심으로 대학생들에게 복음으로 구애한다. 학생들을 통하여 어떤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민족복음화 태동기(1970-1974)의 출발을 알린 대전 집회(1971)를 계기로 민족복음화 운동 설교로 넘어가고 있다. 물론 민족복음화의 꿈은 이미 1962년에 삼각산 금식 기도에서 꾸셨다. “1962년 어느 겨울 밤, 산정의 동굴 속에서 6인의 간사들이 하나 같이 온 맘을 새워 조국의 복음화를 위한 헌신 기도를 올렸다입석의 푸르고 아름다운 심령의 향연들은 우리들의 소중한 유산이었다.”목사님의 민족복음화의 열정은 바로 외길 42이었다.

CCC 편지에 나오는 목사님의 첫 설교(1964.1.27)사랑의 송가”(고전 13)이다. 이것은 설교라기보다는 성경 본문에 대한 의역’(意譯)이다. 요즈음으로 말하자면,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바이블 형식이다. 고린도 전서 13:13에 대하여 목사님은, “우리 안에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 그 하나님의 사랑에서 생기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에 대한 소망.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는 나를 맡기는 믿음.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다로 의역을 하였다. “결국 크리스챤의 삶은 사랑이다. 사역 이전에도, 이후에도 사랑일 것이다는 결론을 내린다.

목사님께서 CCC 편지첫 호(1964)사랑의 송가로 시작하신 것은 오랫동안 고심한 후에 결심을 내린 의도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목사님의 정체성(identity)이며 사역의 중심 방향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목사님은 6.25 동란 중에 아버지와 아내가 눈 앞에서 잔혹한 죽음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런데 기도 중에 살인자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절정에서 자의식과는 전혀 다른 기도가 나왔다. 그것은 하늘의 언어로 드리는 사랑의 기도였다. 그리고 나는 용서한다는 말씀을 이후에 가해자들에게 하셨다.그렇다면, 목사님이 이해하신 사랑은 유가적(儒家的)인 인격 수련으로 쌓는 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며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해야 할 인격이다. 따라서 목사님의 설교의 중심주제는 사랑이며, 고린도 전서 13장에 대한 설교는 이후에도 줄기차게 반복된다.

초기 설교에는 이미 주님과 나만의 시간과 장소에 제물이 되자는 말씀을 하신다.여기서는 시간과 공간의 중요성이 병아리와 태아의 비유로 아름답게 나온다. “병아리가 깨이고 태아가 성장하며 열매가 익는데 시간의 길이를 소요(所要)하신 주님의 신령한 생명의 성장을 위하여 시간과 공간을 드리자”.

목사님은 CCC 창립 10주년을 기리면서, ‘나사렛 형제들을 결성하신다. 이 때 나사렛 형제들에게 드리는 편지”(4:1)를 쓰신다.이 설교에는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에 대해 한 폭의 그림 같은 시를 쓰신다. “기독교의 요람, 영원한 모상, 농부의 땅, 산골 두메마을, 올리브 나무들, 아낙네들, 지하수처럼 맑고 고요하고 은밀한 기다림이 있는 곳, 예수님의 소박하고도 순수하며 다정한 언어로 생생하게 하나님과 주고 받은 대화가 있는 곳, 주님의 고향, 가난과 서러움을 먹고 주님이 자라나신 고향, 그러기에 우리 모두의 영혼의 고향으로 묘사한다. 나사렛 동네의 지리와 역사에서 목사님은 나사렛 형제들의 성격, 성품, 정체성을 만들어 내셨다. 예수님의 동네 나사렛에 대한 수많은 글들과 시들이 역사 속에 있어 왔지만, 이렇게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글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서정적인 나사렛의 그림으로 마음을 녹인 후에, 나사렛형제들이 보냄 받은 자’, ‘제자들의 집단’, 그리고 한국교회사나 민족사의 독생자인 제 3의 집단으로서 민족의 입체적 구원에의 헌신하도록 요청하신다. 이 때부터 CCC는 동력(動力)을 갖춘 선교단체로서 움직일 준비를 한다.

목사님은 민족복음화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대통령 조찬 기도회를 1970년에 처음으로 개최하신다.그 때 하신 연례 대총령 조찬기도회 메시지현대를 극복하는 신앙이라는 제목의 설교로서, 민족복음화 설교가 처음 나온다.“역사상 전례 없이 새 문화, 새 민족, 새 인종 만드는 것. 이 민족 머리부터 발 끝까지 정치, 경제도 철저히 그리스도화 시키고, 통일시키고 성화 시키는 것. 한국 영성의 세계 교회사적 위치는 상징적인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해 겨울에 CCC에서는 <한국기독화 요원 훈련 강습회>가 개최되었다. 이 때 목사님은 민족의 예수 혁명론”(37)을 평신도들에게 직접 전하셨다.

이듬해 목사님은 민족복음화의 절대 가능성과 민족 부활의 비전을 갖자는 설교를 하신다.이 설교에 비로소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고 있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 설교에 이미 ‘10만의 절대 헌신자를 꿈꾸고, 민족 복음화 꿈을 완성하였다.

목사님의 초기 설교는 민족복음화의 꿈으로 마무리된다. 1973년에는 민족적 축복의 성서적 원천”(28:6)을 말씀하신다. 이 설교가 중요한 것은 목사님이 직접적으로 민족복음화 운동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목사님은 6회 연례 대통령 조찬 기도회를 개최하시고(1973), 그 때 그 유명한 정신사의 강은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지셨다.이 설교는 황금빛 나는 별 저편에는 누가 사는가?”라는 하이네의 감미로운 시 한 수로 시작하지만, 서구의 핵심적인 시인들, 소설가들, 사상가들과 문학사 및 문화사, 정치사, 경제사, 종교사를 모두 섭렵하여 거대한 스케일로 펼쳐가며 청중들과 독자들을 압도한다. 설교자는 역사의 절정(絶頂)과 정점(頂點)을 짚어가면서, ‘나갈 길이 없는인류 역사의 절망과 복음화된 민족의 소망을 강하게 대비하고 있다.

 

 

정동채플설교(1976~1989):목회적 설교와 하나님의 모든 경륜

 

CCC 편지는 엑스플로 ’74 운동 준비와 후유증으로 상당한 공백이 생긴다. 1973년의 제 53호는 전민족 신자화 운동을 위한 전성도 총단합 총집중 전원 정예화 운동에 대한 제안”(1973.07.01)이라는 목사님의 설교와 엑스플로 ’74를 위해 드리는 기도를 담고 있다. 엑스플로 ’74는 한국교회의 부흥과 세계선교의 비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지만, CCC해수욕장의 가을처럼 내부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었던 것 같다.그 후 CCC 편지는 약 5년 정도 정간되며, 이 시기의 설교는 김준곤 문설집에서 일부 찾아 볼 수 있다.

1978CCC는 한 편으로는 창립 20주년을 맞이하고 또 다른 편으로는 정동채플을 열면서, CCC 편지가 복간되고, 목사님의 설교가 계속 연재되기 시작하였다.한국사적으로는 유신 말기였으므로 캠퍼스는 몹시 불안정하였고, 목사님은 다시 인류 최후의 혁명”(3:1-10)이라는 화두로 시작하신다.목사님은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되어 구걸하던 사람의 변화를 통하여 전인 구원과 입체 구원의 상징을 만들고 우주시계에서 인류문명의 영성의 시간은 몇 시인가?”를 물으며, “영의 시대에 성령운동이 자유 운동만큼 세계화 될 비전을 바라 보았다.

정동채플 시기의 설교는 그 기본적인 성격에 있어서 목회적 설교이다. 목사님은 주일 채플 설교를 통하여 내부적인 역량의 결집을 결심하면서, CCC가 배출하는 학생들의 영적 양육과 지도력을 배양하려고 하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시기에도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가 설교의 변함 없는 기조를 이루는 것도 사실이다.그렇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마치 목회자가 성도들을 양육하듯이 크리스찬의 삶에 대한 기초적이고도 포괄적인 교육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 목사님이 거대 담론보다는 다양한 신앙의 주제들을 섬세하게 가르치고 교육하는 설교로 전환하신다. 그리고 강해 설교를 하시며 만족해 하시고, 자주 탄탄한 성경신학적 설교가 나온다. 이 시기의 설교들은 신자의 삶에 필요한 말씀들이며, 놀랍게도 성화가 중요한 강조점으로 자주 반복되어 나온다. 이 시기의 설교들을 주제별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믿음: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홍해를 믿음으로 건너는 사건(9:14-29)과 다윗의 믿음(삼상 17:38-51)과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의 믿음(3:7-17)은 신자들이 본받아야 할 믿음의 모델이며, “믿음과 행함에는 인과 관계”(15:5)가 있다.

(2) 기도: 기도에 대한 변함 없는 가르침은 주님과 나만의 시간이다. 정동채플 시기에는 생활 속에서그리고 개인 기도로서 주님과 나만의 만남 시간이 강조된다.1978년의 기도에 대한 설교로서는 기도의 제단에 불을 붙이자”(33:3)가 인상적이다.

(3) 금식: CCC 운동은 초창기부터 금식가운데태동하였고, 역사의 분수령 마다 금식으로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 왔다. 그렇지만, 목사님의 금식에 대한 가르침이 설교로서 CCC 편지에 나오는 것은 단 한번이다.“보통 기도는 보통 폭탄이지만, 금식 기도는 원자 폭탄이다”. 목사님 자신도 40일간 금식기도 하였고. “금식 기도후 성령이 활성화 하셨다.”

(4) 회개: 다윗의 시편인 51편은 신자들의 참회의 모델이다.“다윗의 참회록”(51)이란 설교는 멋진서론으로 시작하는 걸작이다. “이처럼 짧은 시에 참회의 모든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참회록은 없다. 6.25 때 우리 민족의 잔학성을 보았다.”

(5) 감사: 목사님의 가장 깊은 감사 설교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온다. “죽은 딸의 손목을 붙잡고 앉았을 때 그것은 심장에 구멍이 뚫리는 아픔이었다. 그런데 그 뚫린 구멍에서 맑은 샘물 같은 찬송이 흘러 나왔다. 그 전에 부른 찬송과는 의미가 깊이가 질이 달랐다. 주님은 내게 새 일을 시작한 것이다.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

(6) 충성: 그리스도인의 충성은 순교적인 삶이다. “증거, 증인, 순교는 어원이 같다. 순도 100% 변화된 사람이 산 순교자이다. 무디가 성령 점유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성령이 무디의 점유권을 가졌다.”

(8) 언어생활: 언어는 존재의 표현이다. “기독교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고난의 길이지만, 우리 나라는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인 대우가 좋기 때문에 세속적인 동기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자 하기 쉽다우리나라는 설화가 많은 나라여서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많을까 하노라’(는 격언까지 나왔다). 침묵의 인생 철학을 배워야 한다.

(9) 자유: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서는 한국 신학계에서 수많은 글들이 쓰여졌지만, 목사님께서는 특히 성령과의 관계에서는 다루셨다.

(10) 크리스찬의 우정: 목사님은 배신의 시대를 맞아 계속 삶의 이야기를 하신다. “내가 제로가 되었을 때 친구가 있는가? 예수님은 나를 친구로 택했다. 열가지 나쁜 것 중에도 한 가지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승화시킨다. 부부도 좋은 친구. 위대한 친구가 되어라. 마지막까지 잘 사귀어라. 내 장례식을 부탁할 수 있는 믿음직한 친구. 우리는 별의 별 것 다 배우면서 친구되는 법을 안배우는 불쌍한 사람이다 예수님 같은 친구가 되라.”

(11) 사랑과 결혼: 청년 대학생 사역을 하시면서 성과 결혼에 대한 교육이 필요했다. “성은 육체 문제가 아니라, 인간고독, 정서의 원천에 있다. 성은 단지 정서나 심리학적 차원이 아니라 전인격적, 종교적, 영적인 문제이다. 결혼에서 배우자의 정서의 성숙도를 살펴라, 육체미에 끌리지 말라. 결혼식은 반드시 교회에서 목사님 주례로 하라. 결혼식은 둘 만의 사적인 사건이 아니다.”

(12) 가정과 효도: 목사님은 전통 가정 윤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효도를 기독교 가정 윤리로 수용하며,특히 기독교의 가정 토착화 문제를 다룬 것은 의미심장하다.

(13) 교리: 목사님께서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벧전 4:10-14)이라는 장로교 핵심 가르침을 계승하시고 특히 구약의 기독론에서 가장 중요한 본문 중 하나인 수난의 종의 노래를 심오한 제목으로 다루셨다.

(14) 예배: “예배생활의 샘터에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자는 완전한 목회 설교이다.이 설교에서 성경 전체를 예배의 역사를 따라 성경신학적으로 푼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은 전 존재를 하나의 제물로 바쳐 주야로 성전에서 주를 섬기는 특별히 세속과 성별된 신분을 가졌다. 사도시대에 예배의 집행자는 성령이고 예배의 제사장은 예수님이며 성령은 우리의 몸을 전으로 하여 직접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15) 찬송: 목사님은 6.25 때 공산당의 박해로 거의 사경을 헤매며 복수에 불탔을 때 찬송이 터져나온 경험이 있었으며 그 경험이 찬송 예찬으로 이어진다. “찬송은 신앙의 꽃이고 향기와 기도 속에 찬송의 향기가 있고, 예배 속에 찬송의 꽃이 핀다. 찬송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극치요 믿음의 최고 표현이다. 찬송하는 가운데 마음이 성화되고 주님의 임재를 체험케 된다. 찬송은 최고의 예술이요, 시요, 사랑과 신앙과 소망의 산실이다. 찬송이 찬송을 낳고 찬송할 때 나는 순수한 사람이 된다. 사랑의 나무를 찍으면 사랑의 향기가 더욱 진동하듯 내 존재의 어느 몸 어느 부분을 찍어도 찬송이 터지게 하자.”

(16) 실천적 사랑: “신앙 생활의 시금석이란 설교도 거대 담론이 아니라, 목회적이다.“고전 13장은 그 당시 기독교가 흠모하고 존중하는 모든 가치들의 최고형태를 기록하였다. 여기 모인 대학생들이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충성과 결사를 각오한다면 우리 민족 복음화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17) 품성과 인격: “크리스챤은 배우는 사람이다”(11:26)라는 설교에는 성령충만한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부모, 친구, 은인, 교회, 직장에 배신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이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가롯 유다의 배신이었다. 우리는 충성을 배워야 한다는 가르침이 나온다.

(18) 리더쉽: 목사님은 제자들이 기독교적 품성과 가치로 사회와 직장에서 리더쉽을 발휘하도록 성경적가르침을 하신다.

(19) 과학과 창조과학: “성서와 과학적 종말론이란 설교는 창조과학회가 한국에서 탄생하는 맥락 가운데 주어진 설교이다.이 설교에서 현대사회의 중추적 위치를 차지한 과학 때문에 하나님이 추방되는 과정을 다윈의 진화론으로부터 시작한다.그리고 지질학, 물리학, 프로이드의 심리학과 대화하며 성경적 창조 사상을 변정하신다.

(20) 기복과 축복: 기독교는 기복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축복을 설교와 삶에서 배제해서는 안된다. “은혜와 형통한 축복이란 설교에서 목사님은 순복음 교회의 요절이 된 사도 요한의 축복(요한 32)을 가져오면서, 여기의 축복은 원어적으로 먼길을 떠날 때 계속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기 비는 말로 풀어내신다,나아가 “(현대인들은) 신앙을 기복신앙 때문에 부끄러운 것으로 만든다. 하나님의 자녀가 받는 축복에 김을 빼어서는 안 된다. 합리적 사고는 교양의 표지이며. 인과법칙이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자들의 마음을 지배한다. 그러나 부자, 부부 관계는 합리적 사고 이상의 것이 있다.”

(21) 일치와 연합: 우리가 CCC에서 배운 것은 초교파적, 국제적 연합과 일치이다. “성도의 일치의 원리라는 설교에는 현대 정신 무드를 고독으로 보며, 기계화된 산업사회 구조에서 예수님이 담을 헐므로, 화해자의 복음 없이는 인간에게 진정한 대화가 없다. CCC 안에서 일치운동, 가족과 친지 사이의 일치운동, 교회의 일치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가르침이 나온다.

(22) 하나님의 뜻: 신앙생활의 궁극적 관심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며 바로 인격적인 성화이다. “하나님의 우리 인생 설교 가운데 최고의 목표는 우리를 예수님 닮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 같이 성화되는 것이다.”

(23) 크리스찬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생활: 이 주제는 당시에 민감하였고, 자주 다루시는 주제였다.이 시기에 사회적 책임에 대한 설교가 많았던 이유는 민주화 운동으로 학원가가 투석전과 최루탄으로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위의 주제들을 조망해 보면,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폭넓은 전망을 제시하셨으며, 바울 사도처럼 하나님의 모든 경륜을 가르치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20:17-21).

이 시기에도 목사님의 깊은 묵상이 설교로 영글어져 가슴을 적시는 때가 자주 있다. “십자가상의 칠언”(23:32-46)은 다음과 같은 서론으로 시작한다.

 

일곱마디말씀, 십자가상의최후의설교, 또는최후의기도이다. 설교의현장은하늘과사이, 또한과거, 현재, 미래의모든사람을상대로말씀이다. 일찌기이와같은설교의강단과설교자와설교의내용이인간의설교가운데있어적이없다.

 

이런 말씀은 어느 책에도 나오지 않으며, 깊은 묵상에서 나온 말씀으로 보인다.

 

후기설교(1990-2005):사랑의 실천과 백문일답

 

1989년에 독일분단과 미국과 소련의 냉전을 상징하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1989.11.09). 이어서 폴란드의 바웬사의 민주화 운동으로 동구권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그리고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정책으로 구 소련에는 수많은 독립국가들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1990년부터 냉전시대가 끝나고 이데올로기가 종언을 고한 시대가 온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하였다. 이 때 목사님은 한국 주도의 선교시대가 왔다고 판단하셨다. “동구권의 공산독재자들이 무너지는 소리, 미소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이데올로기의 종말이 되면, 중국의 11억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졸업하고, 하나님은 중국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기 위해 복음의 기회를 부여할 것이다라는 설교를 하셨다.

CCC의 역사로 볼 때도 1990년은 목사님 후기 설교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해였다. 1990년 여름방학 때에 CCC새 생명 2000 마닐라 선교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때 목사님은 열린 문과 닫힌 문”(3:7,8,20)이라는 제목으로 한국대학생 3천명이 필리핀 마닐라시에서 집중전도하였다는 설교를 하셨다.이 후에도 마닐라 대회는 세계 선교를 지향하고 있는 한국 CCC의 목표로 평가하셨다.마닐라 대회 직후에는 전교회가 전복음을 전인류에게복음을 전하는 ‘21세기 운동’(AD 2000 and Beyound Movement)이 발족되었다.

그리고 1995년에 지코 II (GCOWE II)라는 세계선교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되었다. 이 때 목사님은 전세계 기독교 지도자 5천여명이 서울에서 세계복음화 선교전략회의를 가질 것이라고 한다”.이 대회는 목사님의 마음 속에 중요한 역사적 계기로 인식되었다. 왜냐하면, “22억이나 되는 미전도지역에 복음 전하고, 교회 세우고, 성경 번역하자는 세계 복음화 전략이 이 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이 시기에는 세계화가 중심 화두가 되었다. 목사님은 GCOWE ’95의 하일라이트로서 한국주도의의 세계 선교 시대가 도래한 것으로 보셨다.이 당시 목사님은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 1974)의 신학 사상을 흡수하셨다. 이것은 전복음’(whole Gospel)을 전교회(whole church)가 전인류(whole world)에 전하기 위한 운동이라는 표어로 구체화 되었다.

그렇지만, 3기의 목사님 설교를 보면, 초기의 지성인 전도 중심의 설교’, 중기의 목회 중심 설교에서 실천적인 사랑의 운동으로 전환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예수 사랑이 신학화 되고,실천으로 구체화 된다.목사님은 로잔 언약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하여 북한 동포들을 위한 식량 은행(Food Bank)을 만들도록 제안하신다. 그 모토는 한 손에는 쌀, 한 손에는 복음을 가지고 북한에 복음을 전하자이다.목사님은 1999년부터 북한에 젖염소 프로젝트를 서경석 목사와 함께 추진하시다가 드디어 2002년에는 봉산 목장을 세우시고, ‘우리 민족서로돕기 운동 상임대표 자격으로 한 주간 북한을 방문하신다(128). 이 때의 설교 제목은 어둠을 탓하지 말고 민족을 밝히는 한 자루 촛불이 되십시오였다.이 때 목사님은 사랑의 혁명론을 외쳤고, 구체적으로 한국민족사의 제 3의 운동인 사랑의 육화운동을 벌여야겠다고 다짐하셨다.

이 모든 구체적인 사랑의 운동을 목사님은 백문일답’(百聞一答)이라는 화두로 마무리 하셨다. 이 화두는 이미 1994년에 잉태되었고 자신의 순애보로 표현되었다. “언어가 하나 밖에 없는 어느 성자의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 무슨 말을 물어도 그의 대답은 하나 뿐, 백문일답의 사람이라 할까?”그리고 목사님의 생신 80번째 설을 맞이 하시는 날, “설엔 고향에 복음의 나무 심으세요라는 말씀으로 제자들에게 백문일답의 삶을 살라고 부탁하신다. “인생 80에 새로운 길을 떠난다. 청춘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80 성상이 흐르면서 육신은 노쇠해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설랜다.”

 

4. 설교의 화두: 그 초점과 중심 성격

 

목사님은 정작 자신의 설교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1983년의 설교에는 훌륭한 설교보다, 학문보다, 깊은 것이 인간의 품격이다라는 말씀이 나온다.목사님이 보신 인간의 품격의 진정한 모델로서 손양원 목사님이 6년간 옥고를 치루시고, 사람들이 아무리 비난하고 성토해도 사랑으로 감싸고 위로하신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손양원 목사님께서 6.25 때 공산당이 왔을 때, “이리가 오는데 양을 버리고 도망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순교하게 된 이야기를 전하신다. 목사님 자신은 내 생각 갈피 속에 목숨이 다한 후 무의식 속에 꿈속에 최후의 언어 속에 마지막 숨결에서 주님의 향기가 무지개처럼 뭉게구름처럼 피어났으면 좋겠다는 고백을 하셨다.

 

설교의화두: “정신사의 강은 어디로 흐르는가?”

 

목사님의 설교에서 최고의 화두는 아무래도 정신사의 강은 어디로 흐르는가?”에 있다고 생각된다. 이 주제는 6회 연례 대통령 조찬 기도회 메시지”(1973.05)에서 가장 분명하게 제시되었다.그리고 정신사의 강은 어디로 흐르는가?”(1997)에서 다시 제기 되었다.

그렇다면, 목사님은 정말 정신사의 강은 어디로 흐른다고 생각하셨을까?” 2000년에 목사님은 하나님을 주로 삼는 민족건설 외길 42년 늘 푸른 청년의 꿈이라는 제목의 특별대담에서 이 점을 보다 선명하게 제시하신다.

나는 세계 정신사의 강은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기독교의 윤리, 자유, 신관, 영혼, 심판의 정신사가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 새 것이 올 줄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서너 가지는 절대로 한계가 있다. (1) 인간의 갈망을 채우지 못한다, (2) 죄는 극복하지 못한다, (3) 육체적 영적 죽음을 극복 못한다. 그러므로, 21세기 정신사의 강은 낙관론보다는 비관론이다. 역사, 정신사, 문화사의 강, 새 시대의 강이 묵시록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목사님은 정신사의 강은 어디로 흐르는가?”라는 화두를 통하여 인류 정신사가 스스로 구원을 할 수 없으므로, 오직 기독교 정신을 통하여 진정한 인류 정신사의 회복과 부활을 역설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좀 더 구체적으로 목사님 설교의 중심 성격을 살펴보면, 아래의 네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대학생 선교 설교

 

목사님은 대학생들을 자신의 선교대상으로 삼았다. CCC 사역을 처음 시작하던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 대학생들은 소수의 지성인들이었다. 목사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의미 있게 전달하여야 했다. 또한 복음의 능력이 그들에게 나타나야 했다. 따라서 그 동기와 지향점에 있어서 당시 교회 목회자들의 설교와 근본적으로 달랐다. 목사님은 자신의 청중과 설교 대상에 대한 분석을 정확하게 하고 설교에 접목하였다. 그런데 50년 동안 사역을 하면서, 대상이 계속 변해갔고 역사와 콘텍스트도 변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생 선교 설교는 평생을 붙들고 씨름한 핵심 주제였다. 목사님에게 대학생은 창조적 소수이며 변혁의 불씨였다.

 

둘째, ‘한국현대사의 무대에서 낭송된 복음 설교

 

목사님의 설교에는 한국 현대사의 나이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무대에서 목사님은 순도 100퍼센트의 복음을 전하려고 하셨다. 목사님이 말씀하신 순도 100퍼센트의 복음은 무엇인가? 목사님은 세 사람을 꼽으면서 순수 복음의 꿈을 설명하신다. 그들은 바로 문준경 전도사님, 손양원 목사님, 그리고 빌 브라잇이다.순도 100%의 복음에 대한 설교의 예증으로, 목사님은 1972년 성탄절 서울의 대연각 호텔의 화재 장면을 가져 오신다. 설교 제목은 저 불길 속에서도 그리스도는 복음일 수 있는가?”이다.목사님은 우리 눈 앞에서 사람들이 낙화처럼 떨어져 죽는 그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하신다. 그리고 바로 이런 생지옥에서도 어느 크리스천이 주의 성령이 특별한 방법으로. 그가 벼락 같이 들어닥친 죽음 앞에서 감사, 사랑, 평안, 기도 가운데 주를 맞이하며, 마지막으로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십시오라고 전도를 했다면, “사상 최악한 것으로 최대의 증언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목사님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복음은 복음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셋째, 인류 지성사의 무대에서 낭송한 복음의 묵상

 

목사님은 분명히 인류 문명사 전체를 붙들고 씨름하신 것으로 보인다. 2000하나님을 주로 삼는 민족건설, 외길 42년 늘 푸른 청년의 꿈”(특별대담)에서 세계 삼대 문명으로 헤브라이즘, 헬레니즘, 그리고 중화사상을 언급하신다.특히 로마는 세계 3대 문화의 호수와 같다.” 왜냐하면, 로마 문명은 이집트, 바빌론-페르시아-앗시리아와 그리스-로마가 합쳐진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가집대성해서호수처럼혼합시켰다. 거기복판에기독교가가서로마를기독교화시킨것이다. 거기로흘러들어간것이헬레니즘이다. 헤브라이즘, 헬레니즘이로마를통해합해져현대국가를이루어구라파가되었다. 중국은바다와같다. 세계의모든문화기독교, 불교, 몽고, 러시아, 청나라가빠져죽었다. 일본도빠져죽었다.

 

목사님은 이 거대한 문명사의 배경 속에서 초창기부터 마지막까지 복음의 묵상을 증거하셨다. 목사님의 설교의 화폭은 크고 넓고 정교하다. 그래서 히브리 종교와 희랍인”,르네상스 휴매니즘과 과학의 한계,정치인으로서 링컨과 간디(1964.06),철학자들(1964.2),소설가들,과학자들,시인들,종교와 종교인들,신학자들 등이 설교에 자주 등장한다.

 

넷째, ‘역사와 시대의 변화에서 종말론적 미션 공동체를 만드는 ‘Visionary 설교

 

목사님의 설교는 역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CCC를 통한 운동 에너지를 창출하고, ‘운동의 터닝 포인트를 계속 만든다. 목사님은 자신이 일으키시는 운동에 대하여 확실한 정의를 내리고 공동체를 이끌어 가신다. “민족복음화 운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깊었을 것이다. “신학적으로 정의된 것은 없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사람에게 예수를 믿을 기회를 주고, 신자들 마다 제자훈련을 받고 훈련 받은 크리스챤들이 전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 다음에 사회 문화, 신자들 마다 제자훈련을 받고 훈련 받은 크리스찬들이 전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 다음에 사회 문화, 민족, 더 나아가 국제화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모든 것에 그리스도의 뜻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민족복음화가 아닌가 생각한다”.이것은 목사님께서 민족복음화에 대해 내리신 가장 확실한 정의일 것이다.

목사님의 설교에서 역사와 시대의 변화와 도전에 대한 내용으로서는 한국현대사의 온갖 굴곡은 물론 9.11 테러(2001), 이슬람의 도전(2002.02),초자연과 신의 영역에 대한 도전(2002.02),생명 공학(2000) 등이 나온다.

이런 시대와 역사의 콘텍스트에서 목사님은 종말론적 미션 공동체의 환상을 가지고, 대학생 선교, 민족복음화 운동(1994.04, 2001.08.), 성시화 운동, 거지 전도, 10만명의 헌신자와 선교사 등을 꿈꾸셨고, 이루셨다.

 

 

명설교들

 

목사님의 설교들이 대부분 탁월하지만, 나는 초기 설교로서 죽음의 시점에 서서”(1964.02),“가난한 마음을 위하여” (1964.08),“세 사형수의 이야기에서”(1964.11),“기뻐하는 종교”(1965.10),“베드로의 이야기에서. ‘너는 나를 따르라’”(1967.06),“한 부자 청년의 신앙에서”(1969.2),“나를 지키는 사랑의 눈동자가 있다”(1969.05),그리고 중기 설교로서 십자가상의 칠언”(1981),“다윗의 참회록”(1982),“한 창녀의 이야기”(1986)등을 꼽고 싶다.

끝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된 설교를 하나 꼽으라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교훈이다(1985).이 설교에는 목사님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친구의허물을덮어주는사람, 안내는아내와자녀에게안내는남편과아버지, 안내는것으로제자의마음에상처주는스승, 성내지않고온화한말로설교하는목사님, 친구에게성난말로감정속에평생뽑을없는화살을꽂는일을안하는사람, 맨발의성자이현필선생, 함석헌선생의아침길을가로지르지않으려고가던멈추고있는아주머니의고마운친절, 내가6.25 인민재판받고개처럼끌려가는길을어깨로부축하며위로해주던인민자위대원, 녹두죽을쒀주던공산당마을아주머니, 도망가숨으러집에서발각된나를밀고하지않은아주머니.

 

 

나가면서: 우리 시대의 과제

 

첫째로, 목사님의 설교 유산을 모두 정리하여 책으로 집대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 스펄전의 설교가 전생애에 걸쳐 설교집(Metropolitan Tabernacle Pulpit)으로 정리되고 완성된 것 같이 목사님의 전생애의 설교가 완성된 형태로 책과 오늘날의 다양한 매체로 증거된다면, 목사님에 대해 더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며 CCC 운동 70년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좀 더 공정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로, 목사님의 꿈 가운데 교육공동체가 있었다. 목사님은 한국성서연구원(KBS, Korean Bible Studies, 1983), 순성서신학원(SBS, Soon Bible Study, 1995)의 꿈을 꾸셨다.“신학의 모든 과정을 농축한 과정으로 400시간 내지 450시간의 분량으로, 강의, 자습, 순모임의 방법, 리트릿 등의 방법으로 한국의 평신도들을 선교사화 하려고 한다”.사실 목사님의 순성서신학원의 꿈은 민족복음화를 위한 오래된 꿈이었다. 목사님은 이미 6회 연례 대통령 조찬 기도회 메시지”(1973.05)에서 성서 자원을 개발하자는 제안을 하셨다.이 세상에 수많은 자원이 있지만, 진정한 자원은 성경이다.

 

권의책이나라와문화의의식구조를만든예가허다하다. 인도의베다경전. 동남아불교권의불경, 3억의회교국민들의코란경전, 우리들을포함한유교권문화의논어와맹자, 일본창가학회의절복교전(折伏敎典), 맑스의자본론, 서구자유와혁명운동의교본이루소의민약론이있다. 8여명의크리스찬들은성서를생명의말씀으로먹으며살고있다. 대한민국의역사개조를위하여59,000자연부락사랑방마다서당처럼성서를가르치면새마을과함께마음이가꾸어질것이다.

 

목사님은 한국민족의 피 속에 성경이 용해될 때 경제적인 부흥과 함께 정신혁명이 일어날 뿐 아니라, ‘세계 정신사적 새물결을 만들어 코리아가 세계의 신화가 될 것을 비전으로 제시하신다.

목사님께서 우리를 떠나신지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지난 10년 동안 세계사와 문명사의 판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은 사상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종교) 다원주의, 정치적으로 복합네트웍 시대’, 산업적으로 4차산업혁명과 AI(Artificial Intelligence), 환경적으로 지구환경과 생태계의 급속한 악화, 과학적으로 우주 개척 시대, 윤리적으로 동성애와 인권문제 등과 같은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가 급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목사님이라면, 이런 시대의 도전을 어떤 사유와 가치와 말씀으로 응답하였을까? 이제는 제자들이 목사님의 꿈을 계승하여 주님의 지상명령을 받들어 섬기는 집단 지성과 기도가 요청된다.

 

 

이 글은 () 遊星 김준곤 목사(1925.03.28~2009.9.29) 7주기 추모식(2016929CCC 본부 브라잇 채플)에서 처음 읽은 것으로서 새롭게 수정 보완 확장한 것이다(2019.06.30).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19/09/28 [18:10]  최종편집: ⓒ newspower
 
관련기사목록
[김준곤 목사] [김준곤 예수칼럼] 민족 흥망의 원리 김준곤 2019/11/12/
[김준곤 목사] [김준곤 목사 잠언]성령의 제3혁명운동 김준곤 2019/11/07/
[김준곤 목사] [김준곤 목사 잠언]반드시 건너야 할 지성의 강 김준곤 2019/11/06/
[김준곤 목사] [김준곤 예수칼럼] 양심 불감증 김준곤 2019/11/04/
[김준곤 목사] [김준곤 목사의 잠언]주의 영이 계신 곳에 김준곤 2019/11/02/
[김준곤 목사] [예수칼럼] 무명 전도자 베드로 김준곤 2019/11/01/
[김준곤 목사] [김준곤 목사의 잠언]나를 부르는 음성 김준곤 2019/11/01/
[김준곤 목사] [김준곤 목사의 잠언]비전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 김준곤 2019/11/01/
[김준곤 목사] [김준곤 목사의 잠언]민족 복음화의 꿈 김준곤 2019/11/01/
[김준곤 목사] [김준곤 목사 어록 전시 ]영원한 소년 김현성 2019/10/31/
[김준곤 목사] [김준곤 목사의 잠언] 참 자유는… 김준곤 2019/10/26/
[김준곤 목사] [김준곤 목사 어록전시회]사랑은 울릴 때까지… 김다은 2019/10/25/
[김준곤 목사] [임동규 작가의 김준곤 목사 어록전시회]십자가는… 김다은 2019/10/25/
[김준곤 목사] 유성(遊星) 김준곤 목사님의 설교: 역사적 분석과 그 화두(話頭) 김정우 2019/09/28/
[김준곤 목사] 김준곤 목사 어록 전시회 "내 생애에 일어난 최대사건은 그리스도 사건" 김현성 2019/10/23/
[김준곤 목사] [김준곤 설교]겸허한 인간자세(마11:29) 김준곤 2019/10/23/
[김준곤 목사] [예수칼럼] 서울 성시화 운동을 시작하며 김준곤 2019/10/19/
[김준곤 목사] [예수칼럼] 정치 스포츠 금메달 김준곤 2019/10/16/
[김준곤 목사] [김준곤 목사의 잠언]십자가 김준곤 2019/10/12/
[김준곤 목사] 예수 농도 100퍼센트 절대 사랑 김준곤 2019/10/12/
뉴스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8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