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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06 [07:02]
“한국 새벽기도회 시작은 1898년 2월”
이은선 교수, 김명혁 목사와“새벽기도의 영성” 대담에서 밝혀
 
김현성

       

 

지금까지 한국교회 새벽기도회는 1906년 가을 길선주 장로의 주도로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했다고 알려졌다그런데 이보다 6년 전인 18982월 강진교회에서 새벽기도회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교단적으로는 성결교가 1939년 새벽기도회를 공식적으로 결정했다.

▲ "새벽기도 영성을 염원하며"를 주제로 진행된 특별대담. 왼쪽부터 이은선 안양대 신학과 교수,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김철영 목     ©뉴스파워



이같은 사실은 19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도곡동 강변교회 지하 1층 비전홀에서 열린 새벽기도의 영성을 염원하며를 주제로 진행된 특별대담에서 안양대학교 신학과 이은선 교수가 밝혔다. 이날 대담은 이은선 교수와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전 합동신학교 교장)가 대담을 했으며,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뉴스파워 대표)가 진행했다.

 

이 교수는 옥성득 교수(UCLA)의 자료를 인용해18982월 강진교회에서 31명의 한국인 교인이 참석한 가운데 겨울 사경회가 열렸을 때.(Lee)목사와 휘트모어(Whittemore)목사를 초빙했는데, 이들의 보고서는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이 사람들의 열심은 놀랍다. 이 사경회에서 새벽기도회가 시작되었다. 아침 해가 올라오기 훨씬 전에 찬송하고 기도하며 성경을 공부하는 소리가 옆방에서 들렸다. 같은 찬송들을 하루 종일 밤늦게까지 들을 수 있다. 모든 비용은 본토인 그리스도인들이 부담했는데, 선교사들의 한국인 수행자들의 식비까지 부담했다.’”는 기록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일주일 간 사경회를 하면서 수안 강진 교인들은 매일 동이 트기 전에 자발적으로 새벽기도회 시간을 가지고 찬양, 기도, 성경공부를 했다.”이것이 한국 교회사에서 사경회에서 기록된 최초의 새벽기도회였다. 한국인들이 개척한 교회에서 한국인들이 주체적으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했다. 이후 여러 지역의 사경회에서 비슷한 새벽기도회가 간헐적으로 열렸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또 한국교회의 새벽기도는 복음이 수용된 초기부터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실시하기 시작하여 1930년대에 이르면 전교회적으로 시행하게 되었다.”이말테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에서 새벽기도는 백홍준이 1880년대에 개인적으로 매일 했다는 기록이 있고, 1892년 동계 신학반 학생들이 새벽기도를 했으며, 장대현교회에서 마펫과 한석직은 1983-96년 사이에 매일 아침 일찍 같이 기도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19012월 번하이즐 선교사는 황해도에서 열린 사경회들을 인도했다.”“‘밤에 많은 성도들이 예배당 안에서 잠을 잤다. 거의 매일 아침 4시경에 우리는 성경공부를 시작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저녁에도 동일한 과정이 계속되어 밤 10까지 계속되었다.’ 이 보고서에서도 보듯이 사경회에서 한국 교인들은 선교사의 지시를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새벽 4시에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새벽기도회는 19031231일부터 2주일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개최된 사경회에서 정식 순서로 포함되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화학당의 새벽기도를 소개하면서 초창기 새벽기도회는 교회에서만 진행된 것이 아니다. 새벽기도회는 선교사나 교사들이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학생들이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새벽기도회를 만들어 진행했다.”며 학생들이 주도했던 새벽기도회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보고는 19049월에 열렸던 이화학당 부흥회와 관련된 선교 보고에 나온다고 밝혔다.

 

지역교회의 새벽기도회도 소개했다.

이 교수는 새벽기도 운동은 평양 장대현 교회(1893년 설립)에서 1905년 가을부터 길선주 장로의 새벽기도에서 활성화 되었다.”그는 새벽기도에 국가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을 걱정하며 새벽에 교회에 나가 기도하기 시작했고 같은 교회 장로인 박치록이 이에 동참했다. 날이 갈수록 여러 교인들이 호응하여 같이 기도하기 시작하였는데 얼마 후에는 300~500명의 교인들이 새벽에 모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길선주 장로는 교회의 공식적인 허가 없이 매일 수백의 교인들이 교회에 모이는 것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고 당회에 정식허가 요청을 했으며 장대현 교회 당회 허락 하에 새벽기도회를 시작하게 되었다.”처음 새벽기도는 개인적인 기도의 시간이요, 개인적인 신앙 훈련의 한 방법으로 시작된 개인적인 기도 시간이었지만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새벽기도에 참여하여 자연스럽게 새벽기도 운동은 확산되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분명한 것은 새벽기도는 부흥회 또는 사경회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하면서 그 이유는 부흥운동은 성서 연구와 기도에 대한 당시 교인들의 밑바탕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에서도 사경회, 새벽기도회, 전도를 통한 복음 전파가 함께 이루어졌다. 새벽기도가 열정적으로 시작 될 수 있었던 것은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성경 공부도 한 몫을 했다.”이와 같이 새벽기도를 통하여 성령에 충만함을 받은 교인들이 자원하여 기도회에 참여했으며, 새벽기도운동 역시 이들의 뜨거운 기도의 열정에 힘입어 계속해서 확산된 것이라고 밝혔다.

▲ 안양대 신학과 이은선 교수     ©뉴스파워

 

이 교수는 “1907년 대 부흥 운동의 열기를 타고 새벽기도회는 전국 교회로 확산되어, 전국 방방곡곡의 열심 있는 교회들은 새벽마다 기도회를 열게 되었는데, 이때의 일들에 긔도의 효력이라는 제목으로그리스도회보에 보도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한국의 새벽기도회는 한국 교회의 정규 집회 형태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은 초기 부흥운동 기간이었다. 이와 같은 특징적인 신앙양태는 강화 교인들의 마리산부흥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마리산 부흥회는 강화도 교인들이 매년 음력 510일부터 보름간 장봉도 옹암교회에서 시작하여 강화 본도의 여러 교회를 순회하고 마지막 날에는 마리산에 올라 기도회를 하는 것으로 마치는 일종의 순회 부흥회였다. 이 부흥회는 1914년에 시작되어 1960년대까지 계속되면서 토착적이며 민족주의적인 정규집회 형태로 한국 교회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 마리산 부흥회가 시작된 계기는 바로 새벽기도회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개교회에서 시행되던 새벽기도회는 1910년부터 1930년대까지 교회전체가 시행하지는 않았다.”필요한 경우에 개인들이 새벽기도회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교회들이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새벽기도회들은 대부분이 일주일이나 10일간을 정해 놓고 하는 기도회였다. 이러한 새벽기도회는 성도들의 자발적인 시행에서부터 생겨났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건을 위해, 전도를 위해, 신유를 비롯한 개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하여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매일새벽기도회가 시행되었다는 것이다. 성결교회에서는 1939년에 교단에서 매일새벽기도회를 하기로 결정했고, 각 교단의 공식 결정을 찾기는 어렵지만 개별교회들에서 매일새벽기도회를 하는 경우가 발견되고 있다. 특히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다가 이것이 매일새벽기도회로 발전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한국교회가 올바르게 성장하고 부흥할 때 사경회와 새벽기도회가 연결되어 발전했다.”앞으로 한국교회가 새벽기도회를 그 날 설교를 통해 들은 말씀을 중심으로 공적인 기도를 적극적으로 진행하면서 각자의 개인적인 문제들을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해결하기 위한 사적 기도를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김명혁 목사가 새벽기도 신앙의 영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뉴스파워

 

김명혁 목사도 발표를 통해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큰 축복은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의 신앙이라고 말하고 싶다.”하나님께서 저 개인에게 주신 큰 축복도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의 신앙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저는 처음에는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그 다음에는 평양 서문밖 교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서문밖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들인 이인복 명선성 최병목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주일성수새벽기도순교신앙을 몸에 지니고 살게 되었다.”저는 그 때부터 평생토록 주일성수새벽기도를 철저하게 했고 감옥에 게시다가 순교의 길로 가신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을 바라보면서 순교신앙을 귀중한 신앙으로 몸에 지니고 살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저는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의 신앙을 몸에 지니고 살기 위해서 11살 때인 19488월 어느 날 캄캄한 밤에 38선을 뛰어넘어서 남쪽으로 오게 되었다.”함께 오던 어른들은 모두 인민군에게 붙잡혔고 저 혼자서 40여분 동안 언덕을 넘고 파밭을 달리고 강을 건너서 남쪽으로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 때부터 저는 평생 고아와 나그네로 외롭게 살았지만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부족함이 없는 한 평생을 살게 되었고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이곳 저곳으로 달려가는 즐거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성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이신데도 친히 힘쓰고 애쓰시면서 기도에 전력하는삶을 사셨다. 특히 새벽에 기도하셨고 밤에 기도하셨다.”예수님께서는 또한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을 흘려서 쏟으시면서 간절하게 기도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는 성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새벽 미명에 그리고 밤에 힘쓰고 애쓰시면서 기도에 전력하는삶을 사신 것을 생각하면 새벽기도와 밤 기도에 게으른 우리들은 너무너무 부끄러워서 머리를 들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평양장대현교회 조사 길선주 목사가 1906년 어느 장로(박 씨)와 함께 새벽기도를 시작했으며, 한 달 동안 기도하면서 놀라운 축복을 받았다.”그리하여 교회는 곧 매일 아침 규칙적으로 새벽기도회를 갖기로 결정했다. 새벽 4시에 종이 울렸고 신자들이 새벽 430분에 장대현교회에 새벽기도회로 모여 죄를 회개하며 부흥을 위해 기도했다.”고 소개했다.

 

특히 길선주 목사로부터 시작된 한국교회의 새벽기도는 죄를 회개하며 부흥을 위해기도하는 죄 회개부흥 사모의 기도였다.”길선주 목사의 새벽기도의 절정으로 나타난 1907년 부흥 운동의 특징이 바로 눈물과 회개의 기도였다.”고 밝혔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도 새벽기도에 전력한 분이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길선주 목사와과 김익두 목사의 기도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 받은 주기철 목사는 새벽기도에서 은혜를 받아 회개하면서 중생을 체험했고, 새벽기도를 계속하면서 교회를 부흥 발전시켰고, 새벽기도를 계속하면서 일사각오의 신앙을 굳게 지켰다.”고 밝혔다.

  

사랑의 원자탄손양원 목사도 새벽기도에 전력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손양원 목사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손종일 장로의 손을 붙잡고 새벽기도를 시작했는데 평생 새벽기도를 계속했다. 그리고 주일 성수를 생명처럼 귀하게 여겼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신자들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인 동시에 절대 명령이라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새벽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했고, 다윗은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하나님께 서원했다. 우리 주님께서는 친히 새벽 미명에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를 드렸다.”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베푸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새벽기도와 밤 기도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시기를 바라고 소원하며 그래서 교회의 갱신과 부흥과 성장을 허락하시기를 바라고 소원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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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19 [15:14]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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