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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0.19 [05:01]
춘천 성시화운동의 '불씨' 윤수길 간사
1970년-1972년 춘천CCC 대표간사 역임...신학 후 태국 선교사로 1980년 파송
 
김철영

  

성시화운동은 한국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1972731일부터 84일까지 강원도 춘천에서 CCC 전국 대학생들과 춘천지역 교회들이 연합으로 춘천실내체육관에서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를 개최하면서 시작됐다. 지금은 한국의 시군과 유럽, 미국, 호주, 일본, 과테말라 등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 윤수길 선교사     ©뉴스파워

 

 

춘천성시화운동의 불씨 역할을 했던 한 사람이 있다. 윤수길 선교사가 그 주인공이다. CCC 간사로  첫발을 내딛었던 1970년 춘천CCC 대표간사로 부임해 1972년 말까지 사역을 했다

 

CCC 간사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무명의 전도자의 삶을 지향한다. 목사도 아니고 전도사 아니고 간사(幹事)라는 이름으로 대학생선교와 민족복음화를 위해 헌신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을 전하리라는 순례자의 노래를 부르며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민족복음화 요원 훈련의 홍보요원으로, 강사로 섬겼다.

 

윤수길 선교사와 한대희 선교사를 지난 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 1층 북카페에서 만나 당시 이야기를 들었다.

 

강원일보 사장을 역임하신 조남진 장로님의 말씀에 의하면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를 개최하기까지 윤수길 선교사님의 역할이 컸다고 들었습니다.‘

▲ 1972년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춘천실내체육관에서 열렸던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     ©뉴스파워

 

 

“1970년 춘천CCC 대표간사로 부임했어요. 그리고 김연호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춘천중앙교회(감리교단)에서 평신도신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제가 한국교회를 통해 일하신 성령의 역사에 대해 특강을 했습니다.  당시 강원일보 조남진 편집국장님이 그 강의를 청강했습니다. 며칠 후 강원일보사에서 둘이 만났습니다. 조 국장님이 당신의 신앙여정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리고 조 국장님 집에서 춘천성경구락부라는 이름으로 성경공부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당시 중학교 교감이었던 문선재 선생(나중에 목사가 되고 강원대 총장이 되었다.), 이학규 교감(초등학교 교장 역임)등 네 명이 모였습니.”

 

윤 선교사는 당시 출석하고 있던 춘천제일교회 청년부 헌신예배 설교를 했다. 설교에 도전을 받은 대한생명 지점장 김형목 집사, 미군부대 캠페이지(camp page) 사령관의 통역 담당 박재헌 집사 등이 합류했다방송국 부장, 중앙정보부 과장, 춘천시청 공무원 등 20여명으로 늘었다. 춘천성경구락부는 조남진 국장과 문선재 교감 집을 돌아가면서 통행금지 시간이 다 될 때까지 성경을 공부했다.

▲ 맨 앞 좌측이 춘천성시화운동본부 조남진 장로(좌)와 고 이학규 장로     ©뉴스 파워 자료사진

 

 

저는 마무리 결론을 내려주는 역할을 했어요. 그분들이 스스로 큐티도 하고 성경 공부에 열심히 있었기 때문에 잘 하시도록 격려하고 기도해 드렸어요. 그리고 문선재 교감은 강원대로 옮겨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성경 공부를 한 내용을 소개했지요. 강원일보 안에도 성경을 공부하는 모임이 생겼습니다. 대한생명 춘천지점에는 예배모임이 생겼습니다. 춘천시청 안에도 예배모임이 생겼습니다. 춘천 교계의 유명한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30대 초반의 신학도 공부하지 않은 윤수길 간사의 헌신으로 춘천의 직장들에서 조용하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공부하는 모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CCC에서는 이러한 모임을 순모임이라고 한다. 민족복음화를 위한 최소한 전략단위 성경공부 모임을 지칭한다.

 

한국CCC 설립자이자 대표로 평생을 민족복음화와 성시화운동, 세계 복음화를 위해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께 대한 절대신앙과 절대훈련, 절대헌신을 도전했던 김준곤 목사(1925-2009)가 주창했던 민족복음화를 위해 59천 자연부락마다 사랑방운동을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실천한 것이다.

 

그 모임이 춘천 성시화운동의 불씨가 되었군요

 

김연호 목사님, 조남진 장로님, 문선재 교감 그리고 제 마음속에 춘천 복음화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197012310시 기독교방송(CBS)을 통해 김준곤 목사는 민족복음화운동을 선언했다. 서울농대 수원캠퍼스에서 4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족복음화 지도자 요원 강습회가 진행됐다. 19718월 2일부터 8월 6일까지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1만명 민족복음화 운동요원 강습회’가 진행됐다.

▲ 1971년 8월 2일부터 6일까지 대전충무체육관에서 열린 1만명 민족복음화 운동요원 강습회     © 뉴스파워

  

서울 정동 CCC 본부에서는 전국의 초등학교 교사 13천여 명이 민족복음화 전도훈련을 받았다. 윤 간사도  교사들을 동원하기 위해 CCC 간사와 학생(순장)들과 함께 뛰어다녔다. 강원도 내 강원도 초등학교(국민학교)와 분교까지 777개가 있었는데 그 중 600여 학교를 방문했다.

윤 간사는 당시 수많은 일화 중 춘천지구 김성주 총순장(학생 대표, 나중에 목사가 되었다)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김성주 총순장이 강원도 골짜기에 있는 학교까지 다니면서 홍보를 했어요. 한번은 높은 산에 있는 분교에 들러 부부교사에게 홍보를 했답니다 허기진 채로 길을 가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메주콩 냄새가 났답니다.그래서 따라 들어갔더니 할머니가 메주콩을 쓰고 계셨대요. 그래서 메주콩을 좀 달라고 해서 한바가지를 먹었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간첩으로 오인해서  지서에 신고를 해서 경찰들이 들이닥쳤답니다.”

▲ 윤수길 한대희 선교사 부부     ©뉴스파워

  

당시 서울지구 간사로 사역했던 한대희 선교사는 경북 청송지역을 돌면서 교사들에게 홍보와 동원을 독려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윤 간사는 김형목 지점장과 함께 춘천시청 총무과장의 차를 빌려 타고 인제로 합숙전도훈련(LTI)을 동원하러 갔다. 그런데 38선을 넘으면서 차가 넘어졌다. 차 안에서 기어 나왔다. 세 명 모두 다친 데가 없었다. 차도 안 다쳤다.

▲ 1971년 11월 8일부터 12일까지 민족복음화 요원강습회가 홍정길 간사를 강사로 묵호에서 열렸다.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가 지역단위 훈련의 구호였다.   ©뉴스파워

 

 

그 때 김 지점장이 하나님, 너무하십니다. 내 돈 벌러 갑니까? 하나님 일하러 가는 것인데요.(왜 이런 사고를 당하게 하십니까)라고 투덜거렸다. 그때 윤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모두 무사하게 지켜주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자.“라고 위로했다. 그러한 헌신으로 강원도에서 480명의 교사가 서울로 올라가서 LTI 훈련을 받았다.

 

한국교회 안에 민족복음화에 대한 기도와 열망이 태풍의 눈처럼 강력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을 눈으로 보듯 들을 수 있었다. CCC 대학생들이 전국 대학생 여름수련회를 마치고 농촌 거지순례활동을 하면서 교회가 없는 마을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해 교회가 개척되는 일도 있었다.

▲ 1972년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춘천실내체육관에서 열렸던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     ©뉴스파워

 

 

“19718월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1만 명 민족복음화 전도훈련 이후 복음이 들불처럼 번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원주에서도 전도훈련과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 때 김준곤 목사님은 원주에 있는 1군 사령부를 방문해 1군 사령관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민족복음화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구체적으로 실행되면서 춘천도 목회자와 깨어 있는 평신도들의 마음속에 춘천 복음화에 대한 열망이 심어졌던 것이다.

"
1971년 겨울 CCC 정동 본부에서 LTI가 열렸을 때 강원도에서 480여명이 참석했어요. 그때 1972년 여름에 춘천에서 민족복음화 운동요원 강습회를 하면 좋겠다고 김준곤 목사님께 건의를 드렸습니다. 춘천에 사는 모든 분들에게 예수님을 들려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지요.”

 

강원도 CCC 간사들 중에는 힘들다고 반대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춘천에서 전도훈련과 집회를 갖는 것으로 김준곤 목사가 최종 결정했다.

▲ 1972년 춘천성시화운동 전도대회     ©CCC

  

김준곤 목사님께서 춘천 집회에 대한 브레인스토밍을 하시면서 처음으로 성시화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셨습니다. 민족복음화 이전에 한 도시만이라도 완전 복음화 된 거룩한 도시를 만드는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성시화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춘천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시민들이 예수 믿기를 기도했던 것입니다.”

 

당시 춘천 성시화운동의 비전과 전략은 춘천 성시화운동 전략노트라는 이름으로 제작되어 지금까지 교과서처럼 전수되고 있다.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 때는 종교개혁자 존 칼빈의 제네바 개혁운동을 이야기 하거나 모델로 하지 않았습니다. 제네바 개혁운동은 나중에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972731일부터 84일까지 춘천실내체육관에서 CCC 전국대학생들과 춘천기독교연합회 소속 교회들이 연합으로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를 개최했다. 춘천성시위원회 위원장은 춘천중앙감리교회 김연호 목사였다.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의 참가자들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숙박했다. 교육청과의 협조 관계는 문선재 교수와 조남진 장로 등 춘천성경구락부에서 담당했다. 참가자들은 낮에는 4영리 전도훈련을 받고 오후에는 둘씩 짝을 지어 시내 구석구석을 누비며 복음을 전했다.

▲ 1972년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열렸던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 전도실천 후 보고회를 갖는 모습     ©뉴스파워

 

 

당시 김인중 목사(안산동산교회 원로,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총재 역임), 김정우 교수(총신대 신대원 신약학 명예교수) 등이 학생으로 대회에 참석했다. 전용태 장로(당시 검사,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총재 역임 후 대표회장)도 참석했다.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는 복음이 교회 안에 갇혀 있던 것이 사회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상이용사로 여수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김성영 장로(여수제일교회, 여수성시화운동본부 초대 본부장)가 참석해 훈련을 받은 후 1982여수시를 예수시로!라는 슬로건을 걸고 여수성시화운동본부를 조직해 김준곤 목사 초청 여수성시화대회를 개최하는 등 성시화운동을 시작했다.

 

김 장로는 이와 함께 여수 남해화학 등 기업과 직장들에 직장신우회를 조직해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공부할 수 있도록 도전했다. 지금도 여수직장선교회는 전국에서 가장 활발한 사역을 하고 있다.


김준곤 목사는 1974813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엑스플로 ‘74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한국 기독교 인구가 280만 명에서 300만 명으로 추산되던 때 323419명이 등록하고 56일 동안 낮에는 전도훈련을 받고, 오후에는 둘씩 짝을 지어 전도를 했다. 하루에 22만 명이 결신했다는 기록이 있다. 밤에는 나라와 민족 복음화를 위해 기도했다.

 

특히 대회 셋째날 8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육영수 여사가 재일동포 문세광에 의해 서거를 당했지만 참가자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오히려 더 뜨겁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간구했다.

▲ 엑스플로 '74대회     ©뉴스파워

  

1년 후 한국 교회는 110만명이 성장했다. 엑스플로 ‘74대회에 참석했던 민족복음화의 불씨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공부하면서 교회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교회가 세워지는 데 쓰임을 받았다.

 

윤수길 간사는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후 그해 사역을 춘천에서 서울로 옮겼다. 그리고 엑스플로 ‘74대회 이듬해인 1975년까지 사역을 하고 CCC 간사를 사직했다. 이어 총신대 신대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한 후 목사가 되어 1980년 태국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당시 태국에는 선교사가 4명밖에 없었다.

 

윤 선교사와 한대희 선교사 부부는 민부리에서 사역을 했다. 66세 되던 해에 GP선교사로는 1호로 66세에 은퇴를 했다. 교육권과 지상권을 모두 이양했다. 그리고 현지인 리더가 안정적이 이끌어 가도록 지난 10여 년 동안 협력했다. 1년에 한번 가서 강의도 하고, 한국 강사도 연결해 주면서 새로운 연합팀이 구성되어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조용하게 섬겼다.

 

윤 선교사와 한 대희 선교사 부부는 아직 안정적인 거처가 마련되지 않았다. 그들이 1970년대 민족복음화운동의 불쏘시개가 되어 강원도 인제와 경북 청송 등 산골 학교까지 찾아다니면서 민족복음화의 비전을 도전하면서 민족복음화의 요원으로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던 그 때 불렀던 순례자의 노래처럼, ‘동구밖 과수원길을 부르며 풋풋한 젊음을 주님께 바쳤던 그 때처럼 그들은 여전히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 엑스플로 '74대회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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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18 [16:4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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