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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9.24 [00:02]
“영원한 것에 베푸는 사랑의 실천자”
[파워 인터뷰] 리아 암스트롱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 상임고문
 
이동근

 

 

▲ 암스트롱(앞줄 가운데)씨가 장학금 수혜자들과 이사진과 함께 기념촬영     © 뉴스파워 이동근

 

 

“어려운 사람을 돕는 지금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돈은 행복을 살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남과 함께 나누면 행복하고 다시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리아 암스트롱(Lea Armstrong,김예자)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World-KIMWA) 상임고문이 올해에도 인종을 초월해 가정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도 공부하는 싱글 부모들에게 사랑을 전달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인으로서 큰 본이 되고 있다.


라스코 (Lea Armstrong Scholarship and Community Organization, LASCO) 장학재단 설립자인 리아 암스트롱 고문은 서북미 한인사회 유일하게 17년째 총 234명에게 33만불의 장학금을 전달했는데 올해에도 지난 8월14일 싱글 부모 21명 칼리지 학생들에게 각각 1500불씩 총3만1500불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내년에는 2000불로 인상된다.

 
2016년 미국의 훌륭한 자선 사업가 (National Philanthropist) 후보로 선정 되었을 정도로 워싱턴주 한인사회와 미주류사회에서 수많은 봉사와 자선 사업으로 잘 알려져 있는 그녀는 “뒤돌아보면 많은 어려움과 시련도 있었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을 정도로 하는 일마다 하나님이 때를 완벽하게 잘 맞춰주셨고 복을 주셨다" 고 감사했다.

이날 오후 6시부터 타코마 CI 세나니간 식당에서 열린 올해 장학금 수여식에서 학생들은 싱글 부모로서 여러 명의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 일하면서 공부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은데 장학금은 큰 도움이 되고 희망을 주었다며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공부해 전문인이 되고 박사까지 되는 꿈을 이루겠다고 감사했다.

암스트롱씨는 인사말을 통해 “한국에서 미국에 왔을 때 빈손으로 왔지만 하나님 은혜와 미국 시스템으로 교육을 받고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며 “큰돈은 아니지만 하나님에게서 받은 사랑을 함께 나누고 미국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장학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여러분들도 현재는 홀 부모로서 일하고 자녀를 키우며 공부하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칼리지를 졸업해 추구하는 꿈을 이루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장학금을 받은 학생(오른쪽)이 암스트롱씨와 이사진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 뉴스파워 이동근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UW 타코마 분교를 비롯해 PLU, 베이츠 테크니칼 칼리지 등 피어스 카운티 여러 칼리지에서 공부하고 있다.

올해에 3번째 장학금을 받은 한 여학생은 “9살 딸을 키우며 다시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드디어 이번에 졸업하게 되었다”며 “남을 돕는 사랑의 손길이 있다는데 감사하다”고 기뻐했다.

암스트롱씨는 “칼리지에 다니는 싱글 부모를 위한 장학금이 많이 없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장학금은 성적이 좋아야 하지만 싱글 부모는 일하며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요구조건을 갖추기 어렵다”며 그래서 라스코 장학금은 성적도 GPA 2.0이상으로 낮췄다고 말했다.

피어스 카운티 제일 큰 자선 사업단체인 The Greater Tacoma Community Foundation 2014년 홍보대사에 선정되기도 한 그녀는 1975년부터 여러 한인단체의 발전과 워싱턴주 여러 노인회에 많은 도네이션과 컴퓨터 학교를 무료로 제공했다.

2006년 설립된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 초대 및 2대 회장을 역임 했으며 세계에 흩어져 있는 50만명 국제결혼 여성들 네트워크와 전세계 42개 지부를 형성, 16개국 여성들의 멘토 역할과 지도자 양성에 이바지 했다.한인 사회에는 75년부터 활동하고 있지만 그와 못지않게 미주류사회와 다른 소수민족 커뮤니티에도 적극적으로 오랫동안 봉사했고 계속하고 있다.

특히 미주류사회에서는 그린리버 커뮤니티 칼리지 이사장, 이사를 비롯 미국 상공회의소 타코마,피어스 카운티 이사, 타코마 심포니 오케스트라, 유나이티드 웨이, 워싱턴주 한미무역인 협회 등에 봉사 했다. 현재도 미국에서 처음으로 타코마에서 추진 중인 여성 박물관 창립멤버로 봉사하고 있다.

미주류사회 정치인들도 적극 후원, 2007년에는 한인계 메릴린 스트릭랜드 타코마 시장의 시의원 출마를 지원, 시장 당선까지 적극 후원했다.

이 같은 사회 헌신으로 인해 제 1차 세계 국제결혼 여성대회 사회봉사상을 비롯, 87년 한국 국민훈장 목련장 사회봉사상, 타코마시 홈타운 영웅상, 부스가드너 워싱턴 주지사의 뛰어난 자원봉사상, 중국 커뮤니티의 1990년 올해의 여성상을 받았다.

2000년에는 타코마,피어스 카운티 상공회의소 최우수 기업인 상, 2014년 중앙일보 시애틀 지사 사회봉사상, Business Examiner의 영향력 있는 여인 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피어스카운티 조 스토티니 (Joe Stortini) 군수와 놈라이스 시애틀 시장은 각각 리아 암스트롱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 암스트롱씨가 시상식에서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노력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 뉴스파워 이동근



대구 출신으로 5남3녀의 대가족 중 둘째며 큰 딸로서 경북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자 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한 후 신문방송학과로 전공을 바꾸고 64년 하와이로 도미했다. 69년 타코마에 재이주해 퍼시픽 루터런 대학교(PLU)에서 회계학 학사, 퓨젯사운드 대학교 (UPS)에서 MBA 석사를 받았다.

타코마 이주 후 처음에는 보잉 컴퓨터 서비스 회사에서 3년 동안 회계담당, 그리고 매니저 7년 등 10년 동안 근무하기도 했다. 76년에는 대한부인회에 참여하여 회장 5년, 이사장 1년, 사무국장 7년 등으로 18년을 대한부인회에서 활동 하다가 1994년에 떠나 노약자들에게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는 '암스트롱 유니 서브’ 라는 간병회사를 세웠다.


당시 직원은 단 2명이었지만 회사는 50여개국 출신의 3000명이 일하는 대기업으로 변신해 2005년에는 워싱턴주에서 소수민족이 소유한 회사 중 가장 큰 회사로 인정받았고, 2006년에는 노스웨스트 아시안 위클리가 선정한 ‘올해의 동양계 미국인 기업인상’을 받기도 했다.

이 회사는 그후 켄터키 루이즈빌 본부의 ‘ResCare HomeCare’ 사와 합병되었다. 레스케어사는 미국의 36개주를 비롯 워싱턴 DC와 푸에르토리코, 캐나다에까지 사업을 하고 있는 대규모 '휴먼 서비스’ 회사이다.

암스트롱 고문은 이제 사업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계속해 국제결혼 여성들의 권익 신장과 사회봉사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하고 있다.

"World-KIMWA는 세계 국제결혼 한인 여성들을 하나로 뭉치고 권익을 신장할 뿐만 아니라 이젠 한국에 있는 외국인 국제 결혼여성 다문화 가정의 권익옹호를 위해서도 한국정부에 적극 건의하고 있다”며 “World-KIMWA가 지향하는 목적은 지구촌 국제 결혼 여성들이 얻은 경험과 지식을 하나로 결속해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글로벌 시대에 맞는 각종 정보 교류와 민간 외교관 역할, 한국의 세계화와 국제 무역을 통한 한국의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 정부통계에는 지난 1950년 이후 국제 결혼해 한국을 떠난 수가 30만명, 유학생으로 현지에서 결혼했거나 1.5세 포함 50만명, 국제결혼 여성들의 남편과 자녀까지 포함하면 200만명"이라고 밝히고 “50만명 국제결혼 한국여성들은 세계 각국에서 한국인들의 근면성과 개척자 정신으로 열심히 생활터전을 마련하고, 한국의 홍보대사 역할을 수행 했으며, 자녀교육을 훌륭하게 해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딸들“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하는 일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에 그 동안 이혼 문제가 있었고 때로는 상처도 많았으며 재기하는데 어려움과 시련과 고통도 있었지만 오히려 감사하고 있다.

▲ 리아 암스트롱씨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 기독교인의 본이 되고 있다.     © 뉴스파워 이동근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가져가시는 이도 하나님이기 때문에 어떤 결과에도 절대 원망하거나 좌절 하지 않습니다. 미리 알아서 인도해주시고 필요할 때 미리 주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저를 위해 주십사하고 기도 하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 능력이 있는 한, 한사람이라도 더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남을 도와주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도와줄 때 오히려 즐거움과 보람이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갈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그녀는 이처럼 자신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으니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자신에게 건강 주시고 복을 베풀어 주신다며 특히 하나님은 자신에게 부동산 투자의 은사를 주셔서 40년 전부터 시작한 부동산 투자들이 모두 성공을 거두는 축복을 받았다고 감사했다.

부동산도 많지만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는 유명 브랜드를 사지 않는가 하면 한국에 가서도 동대문 시장 야시장에서 싼 물건들을 살 정도이다.

"인간적인 면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다음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맡기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다"며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도 하나님을 믿고 긍정적으로 적극 추진하고 있어 겁이 없는 사람이란 소릴 듣기도 하는데 이 같은 적극성이 사업 성장의 큰 요인이 되었다고 말했다.

▲ World KIMWA 세계대회에서 리아 암스트롱 회장(둘째줄 가운데)과 회원들과 참석 인사들이 함께 하고 있다.     © 뉴스파워 이동근



이와 함께 사람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활발한 사교성이 성공의 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제 사업 배경에는 어떤 막강한 정치인이나 실력자가 돕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배경은 없고 정치인이나 일반인들을 가리지 않고 처음 본 사람도 친구로 만들기 때문에 이들이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뒤돌아보면 그렇게 많은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었나하는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지만 이 모든 것이 자신은 너무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너무 사랑해 주시고 능력 주셨다고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구 동산기독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중 한 백인 선교사가 나병환자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하는 걸 보고 자신도 인종과 민족을 떠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다른 한국인들은 병이 옮을까봐 나병환자를 기피하는데 그 백인은 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안 통하는 한국인 나병환자들을 자신의 가족처럼 알뜰히 보살펴 주었습니다. 제 눈에 그 사람은 천사처럼 보였고 제 인생의 롤모델이 되었습니다”

▲ 리아 암스트롱씨가 큰아들 찰스 교수(오른쪽)와 엘리아(왼쪽 2번째) 부부와 함께 큰딸 미라의 졸업식에 함께 하고 있다.     © 뉴스파워 이동근



여름이어서 수용소 나병환자들의 살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손가락 등이 떨어진 나환자들의 모습은 정말 흉측했지만 선교사인 미국인 의사는 하나도 거리낌 없이 진실한 예수님의 사랑으로 환자들을 돌봐주는데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았다.

나병환자들이 그런 모습으로도 찬양을 하는데 이 세상 음성이 아닌 천사의 목소리로 들렸다. 그 미국인 의사에게 감명을 받은 그녀는 앞으로 자신도 그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로 결심하고 그 후 미국 적십자사와 미국 병원 등에서 자원봉사를 많이 했다.

타코마에 와서도 푸드 뱅크에서 자원 봉사할 때 많은 사람들이 매일 와서 식품을 타가지고 갔는데 어느 날 봉사기관에서 직접 그들의 집에 가서 음식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집에 가보니 진짜 먹을 것이나 아이 줄 우유조차 없는 것을 확인하고 미국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특히 71년에는 파크랜드 미국 교회의 목사 사모님과 함께 자원 봉사로 미국 양로원을 많이 방문했다. 양로원에 갈 때마다 노인들을 위로해 드리고 머리를 감겨드리기도 했는데 이들이 매우 외로워하는 것을 실감했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자식 올 때를 기다리며 문 앞에서 하루 종일 서있는 가하면 심지어 외로워 도망가다 잡히기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부모님을 절대 양로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돌봐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그 마음대로 친부모님뿐만 아니라 시부모님까지도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 모셨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자녀 축복도 받아 더욱 감사하고 있다. 둘째 아들 데니엘씨는 어머니 사업을 돕고 있으며 한국에서 태어난 큰 아들 찰스씨는 예일 대학을 졸업하고 콜럼비아 대학교 역사학과 석좌 교수로 있으며 뉴욕 콜럼비아 대학교 한국 문제연구소 전 소장, 국무성의 북한 등 동부 아시아 전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며느리 이은영씨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에서 사회복지 학사, 런던 School of Economics에서 개발국가 사회정책과 기획 석사를 취득했으며 현재 UN 본부 윤리국장이다. 또 대학 졸업 후에 토론토 대학에서 피아노 전공도 했다.

암스트롱 고문은 4살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후 줄 곳 남침례 교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다. 그녀의 부모님은 아들 5명과 딸 3명을 두었지만 아들 3명과 딸 1명이 어릴 때 하나님 곁으로 가서 현재 형제는 모두 4명이다.

특히 남동생인 폴 김(김규식) 목사는 중학교 때 미국 선교사를 만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부름을 받았는데 하와이대에서 정치학, 택사스 포트워스 침례 신학대학에서 석사 2개, 그리고 골든게이트 신학대학에서 목회학 박사를 받았다.

UC 버클리 앞에 있는 버크랜드 침례교회를 창립하고 미국 명문 대학 앞 마다 14개의 버크랜드 교회를 세운 것을 비롯 전 세계에 40여개의 버크랜드 교회를 창립했다.

몇 년 전 26개의 버클랜드 교회를 각 교회 담임목사들에게 총괄하도록 이전 해주고 필요에 따라 협력해 주고 있다. 암스트롱씨는 “후배 목회자들을 열심히 양성해두었기에 모두들 잘 운영되고 있다고 들었다”며 “창립목사이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굳게 믿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 “그 후 하바드 대학 앞에 있는 교회를 포함 14개의 교회는 ‘안티옥 교회’로 명칭을 바꾸어 창립목사로서 남아있고 Fort Worth 에 있는 Southwestern Theological Seminary 의 이사이며 (신학대학 100주년엔 이사장 역임) 남침례교 본부의 이사로서 10년간 봉사했고 남침례교 교단 소속 1800 여개의 Asian 교회 연합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후배와 후임자들을 양성하는 등 내 동생이지만 모든 면에서 존경한다”고 자랑했다.

미국 남침례교회 교단에서는 그를 21세기의 비전으로 뽑기도 했는데 그의 부인 이금하(베키)씨도 서울대 졸업 후 골든게이트 신학대학에서 석사를 취득하고 하버드 대학 Asian ministry의 교목 (평생직) 이고 몇 년 전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열심히 하나님 사역을 하고 있다.

암스트롱씨는 1975년 11월에 레이크우드 소재 미국 침례 교회에서 6명으로 한국인들을 위한 코리안 미션(K.M: 현 타코마 제일 침례교회 전신)을 창립했다. 당시엔 한인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은 2000명 정도였고 한인 교회도 없었던 때라 한인 미션에는 그녀와 오빠 김규태(타마스 김)씨를 비롯 식구 3사람이 포함되었는데 예배도 드리고 성경공부도 하였으며 특히 현재 콜럼비아 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는 큰 아들 찰스 암스트롱이 당시 13세로 피아노 반주를 했는데 한인 예배가 자리를 잡자 그녀는 다시 파크랜드 미국 교회에 다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누굴 도와줄 수 있을까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는 암스트롱씨는 “베푸는 것은 영원히 남는 것”이라며 “어려운 학생이 장학금을 받아 훌륭한 사람이 되어 다시 또 다른 사람을 위해 장학금을 주는 등 좋은 정신과 가치관에 베푸는 것은 생산력이 있고 영원히 지속된다”고 강조했다.(시애틀 이동근 기자)

▲ 암스트롱씨가 메리린 스트릭랜드 타코마 시장으로 부터 공로상을 받고 있다.     © 뉴스파워이동근



 

 

 



이동근:시애틀 뉴비전교회(담임 천우석 목사) 시무 장로. 전 중앙일보 시애틀지사 편집국장. 전 월간 신앙지 ‘새하늘 새땅’ 발행인

지은 책: 100명 신앙 간증집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들’ 상.하권, 서북미 여행가이드(2018), ‘아름다운 오리건’, ‘아름다운 워싱턴’, 중앙일보 칼럼모음집 ‘비, 눈, 바람 그리고 튤립’. 대한민국 국전을 비롯 일본 아사히 신문국제 사진전, 홍콩, 한국 국제사진전 등 수많은 사진전에 입상, 입선했다. 또 오리건주 오리거니안 신문 사진전에서 1위, 3위를 했고 미국에서 개인 사진전도 개최했다.

이메일:nhne70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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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8/16 [10:3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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