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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1.12 [14:50]
[김준곤 설교] 밀알처럼 살자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
 
김준곤

요한복음 12:24~27

▲ 김준곤 목사     ©뉴스파워



본문은 예수님 자신이 한 알의 밀알처럼 모든 인류를 위해 죽어야 한다는 것을 미리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도 주님을 따르기 때문에 우리들의 삶의 원리가 밀알처럼, 예수님처럼 살아야 된다는 교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구명 기구, 생명 보험, 또는 응급 장치나 비상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을 보존하고 구원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기 생명을 보존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원어에는 ‘생명’이란 말이 ‘조에’와 ‘푸쉬케’두 가지로 표현되었습니다. ‘푸쉬케’는 이 세상에 있는 혼적인 생명이며 ‘조에’는 거듭난 사람이 예수에 의하여 받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썩어질 생명은 썩지 아니할 영원한 생명을 위해 썩어져야 합니다.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훨씬 높은 자기의 생명을 소유하기 위해서 썩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생활은 예수와 함께 고난 받는 것이고 예수님처럼 자기를 부인하는 생활이고 예수와 함께 자기를 죽이는 생활입니다.

1. 생명의 중대한 법칙을 말해 줍니다.
  밀알의 살 길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밀알이 꽃처럼 되거나 사람에게 보이기 위하여 존재하거나 자기를 주장한다면 죽어 버리고 맙니다. 밀알의 존재 가치는 생명을 유지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땅 속에 들어가 자기를 썩혀 버리고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높은 차원의 생명으로 재생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상의 삶의 원리에도 가정의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 되고 죽고, 한 사회나 단체도 희생자와 밑거름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꽃이 되길 바라고 스타가 되길 바란다면 그런 사회는 조만간 쇠퇴하고 맙니다. 우리는 이 민족과 교회 속에서 예수님처럼 남이 보든지 안 보든지 기도하고 땀을 홀려 그것 이 밑거름이 되어서 누가 했는지도 모르게 교회가 부흥하고 민족이 번영하는 밀알 같은 존재가 되라고 하나님께서 불렀습니다. 정치의식이 과열되는 것은 좋은 뜻도 있으나 깊은 동기에는 벼락감투 벼락부자를 위한 것도 있지 않을까요? 교회에도 십자가를 지고 밀알이 되고자 하는 동기가 아닌 벼락감투를 원하는 교직자가 있어서 교권 싸움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밀알의 기도, 밀알의 의지, 밀알의 희생이 우리의 운명 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CCC에는 감투가 없습니다. 이름 내는 일을 하지 말고, 남을 섬기고, 깃발도 없이 CCC 자체를 선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2. ‘한 알의 밀알이 되라’는 것은 설교하기 위해서 있는 말이 아니라 내게 적용하기 위해서 있습니다. 원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됩시다. 매일같이 이것을 기도의 제목으로 삼아야겠습니다. 가정과 직장, 그리고 교회에서 자기의 욕심을 최대한 희생시켜야겠습니다.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겨 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종으로 살 것을 결심하는 것은 예수를 따르고자 결심 하는 것입니다.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같이 제물이 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는 자기 삶의 비결을 말하기를, “나 자신은 예수와 함께 죽었다. 세상에게도 자신에게도, 또는 세상의 칭찬과 비난에 대해서도 죽었다. 예수 안에서 살고 예수를 위해 살고 하나님께 대하여 사는 것이 비결이다.” 라고 했습니다. 크리스천은 세상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자기를 욕하거나 칭찬하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칭찬을 받게 되면 두 가지 불안이 따릅니다. 하나는 나무에 올라가라고 한 뒤 흔들어 버릴까봐 걱정 이고 하나는 영적으로 둔해 질까봐 걱정입니다. 칭찬은 반갑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께 순종하고 따르면 그것이 기쁨이요, 평안이요, 승리입니다.

3. 우리가 밀알처럼, 예수처럼 살려면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운동선수는 많은 훈련을 합니다. 우리가 예수와 함께 살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연단이 필요합니다. 연단은 수난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 이 세상 통념 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예수와 함께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당시에 내가 살았다면 죽임을 당할지라도 십자가를 버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은 우리의 형제들 속에 계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를 섬기는 일은 주의 교회를 섬기고 말씀을 전파하며 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모든 행동이 됩니다. 주님을 따르는 생활은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고생스러울 것 같으나 남이 알지 못하는 평화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수녀와 수도사가 되어 주님을 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을 볼 때 숙연해 집니다. 여러분과 나는 수도사가 되고 순교자가 되어 십자가를 지고, 밀알이 되는 것을 위해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날마다 주 안에서 죽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 씽은 티베트에서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이 세상에서 무명의 순교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자신을 감추어 버렸던 것 같습니다. 예수원의 토레이 신부님을 보면 생활 전폭에서 주님 때문에 가난해졌고 주님 때문에 밀알처럼 인생의 전체를 바쳐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분은 미국에서 노동 운동을 하고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신 분인데 성자처럼 생활하고 있습니다. CCC 학생들도 유명한 기독교 사상자가 된다거나 심오한 사색가가 된다든가 혹은 대교회의 목사나 인기 있는 설교자가 된다든가 하는 기독교의 스타가 되고자 하는 유혹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날마다 적은 수의 사람을 모아 놓고 겸손하게 성경을 가르치고 소자 하나를 두고 하루 종일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 주고 기도해 주는 종이 되어야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매들 가운데는 서울의 취직자리라도 버리고 시골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교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정말 겸손하게 한 명을 놓고도 일주일 동안 성경을 가르치는 설교의 자세를 가져야겠습니다. 예수를 섬기려면 예수를 따라가야 합니다.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에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약속이 있습니다. 따르는 자는 항상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십니다. 크리스천이면 누구나 주님과 동거하며 주님이 내주하는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함께 하신다는 것은 생활로써 동참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 이 내 속에서 사십니다.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받고 가난해 지며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사람이 예수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자의 최선의 환경, 최선의 상태는 예수님이 함께하는 생활입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그와 함께 왕 노릇 할 것이다’(딤후 1:11). 크리스천의 삶의 비결은 주님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죽는 자만이 주님과 함께 삽니다. 주님과 함께 산다면 주님이 가신 길을 갑니다. 예수 믿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수도사가 될 필요는 없으나 주를 위해서 언제나 부모나 형제를 상대화시킬 용의가 있어야겠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죽고 죄에 대하여 죽고 주님에 대하여는 사는 것이 되어야겠습니다. 저절로 유명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유명해 지기 위해 시간과 돈과 정력을 소모하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돈을 버는 것은 좋으나 주님을 위해 100% 써 버리십시오.
 
여러분의 청춘과 건강과 재능을 주를 위해 희생하고 하나님을 위해 깨끗이 쓰십시오. 알면서도 속아 주고 많이 주고 적 게 받으며 억울하게 욕먹을 때 감사히 받고 누구에 의해서인지 모르게 주어지면 기뻐하십시오. 세상에서 주를 위해 희생하면 천국에 큰 기록으로 남습니다. 영원한 투자를 해야겠습니다. 세상에서의 최대의 부자, 최대의 스타, 최대의 권력자는 최대로 허무하고 영적으로 무지하고 빈곤한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인은 금욕주의며 고행주의입니까? 기독교는 이것을 초월한 자유입니다. 분명 한 것은 자기가 죽지 않고는 살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를 낮추고 희생을 배우며 욕먹는 기쁨을 얻고 가난해 질 용기를 갖게 되면 평안이 있습니다. CCC의 젊은 학생들은 빛도 없고 이름도 없이 어디서나 여러분의 주변에 복음을 전하여 여러분 자신은 들어가지 않아도 이런 운동이 여기저기 예수의 이름으로 활발히 일어나길 바랍니다.


*이 글은 김준곤 목사가 <CCC편지> 1982년 10월호에 기고한 것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84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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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8/11 [08:04]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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