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광고
광고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파워인터뷰생활/건강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19.11.14 [16:31]
하나님 말씀으로 시작된 ‘홀트’ 입양
시애틀 이동근 장로(전 중앙일보 시애틀 편집국장)칼럼
 
이동근

 

▲ 31년전에 만났던 버사 홀트여사와 딸 말리 홀트씨. 당시 사진이 없어 인쇄된 오래사진이라 질이 좋지 않지만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 뉴스파워 이동근

 

 

말리 홀트(Molly Holt) 홀트 아동복지회 이사장이 지난 5월 17일 83세에 숙환으로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뉴스를 들었다.

홀트 아동복지회를 설립한 해리(Harry, 1904–1964) 홀트와 버사(Bertha, 1904–2000) 홀트 부부의 1남 5녀 중 셋째이며 둘째딸로 태어난 그녀는 간호사로서 지난 60여 년간 한국에서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팔순을 넘긴 고령에도 홀트 일산복지타운에서 중증 장애인들과 고아들을 몸소 돌봐 ‘말리 언니’로 불리기도 했다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나는 이번에 별세한 말리 홀트 이사장뿐만 아니라 홀트 아동국제복지회를 설립한 해리 홀트씨의 부인이며 남편 사후에 홀트 사업을 실질적으로 발전시킨 그녀의 어머니인 버사 홀트씨를 31년 전에 함께 만나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홀트 입양에 대해 직접 보고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

▲ 홀트씨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될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사진: 동방의 자손들 중에서     © 뉴스파워 이동근


그러나 최근 어느 글을 보니 홀트 부부 이야기에 매우 틀린 점이 있는 것 을 발견하고 나는 이를 수정해야 한다는 마음과 특히 31년 전에 만나 감동을 받았던 홀트 입양 스토리를 정확히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잘못된 글에서는 이들 홀트 부부가 오리건주에 살던 가난한 농부였고 영화를 보러갔다가 영화가 나오기 전에 한국전쟁에 대한 짧은 광고를 보았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많은 고아들이 생겼고 고아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직도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광고를 본 부부는 성령의 감동으로 가진 밭의 절반을 팔아 한국에서 8명의 자녀를 입양했으며 그후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이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잘못 소개되어 있었다.

31년 전 1988년 어느 추운 겨울날 나는 눈길에 차가 미끄러지면서도 1-5 고속도로로 수시간 거리에 있는 오리건주 유진에 있는 홀트 아동국제복지회 총본부를 방문했다. 당시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어린이들의 해외 입양문제가 현대 포니 자동차처럼 해외에 수출한다는 비난이 있었기 때문에 직접 본부를 취재하고 싶었다.

세계적인 명성으로 거창한 건물을 기대했는데 유진의 홀트 본부는 상상외로 초라한 2층 목조건물이었고 특히 건물 안 정면에 홀트 입양이 하나님 말씀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해리 홀트씨가 받은 이사야 말씀이 벽에 적혀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예배실 옆 2층 한 구석에 버사 홀트 여사의 아주 조그만 사무실이 있었다. 그녀는 1966년에 ‘미국의 어머니’상을 그리고 1995년에는 한국 정부에서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무궁화’ 훈장을 외국인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받았다.

이 집무실에서 어머니 버사 홀트 여사와 이번에 돌아가신 딸 말리 홀트여사를 함께 만났는데 집무실에는 벽에 남편 해리 홀트씨의 사진이 걸려 있을 뿐 책상하나와 침대 하나 그리고 의자 몇 개가 전부일 정도로 너무 좁고 초라했었다.

버사 홀트여사는 “돈이 있으면 한 푼이라도 아껴 어린이들을 돕는데 쓰기 때문에 좋은 사무실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아이들을 가정에 입양시키라고 지시하신 하나님의 사업을 실행하는 크리스천일 뿐” 이라고 겸손해 하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당시 그녀는 “하나님이 불러 가면 행복하겠지만 살아 있는 한 더 많은 고아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가정을 마련해주고 또 입양된 어린이들을 돌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수십 년 전 어려움 속에 미국에 입양되었던 아이들이 이제는 성인이 돼서 각 분야에서 성공해 보람을 느낀다고 기뻐했다.

▲ 가족 기도회 시간에 홀트씨 가족과 입양 어린이들이 함께 하고 있다.     © 뉴스파워 이동근



그녀의 말과 같이 현재 수십 년 전 입양되었던 수많은 입양 어린이들이 이제는 대학교수, 의사, 과학자, 사업가등 여러 분야의 전문직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서 버사 홀트 여사가 나에게 직접 서명해 준 자신의 저서 ‘동방의 자손들’ 책을 읽어보니 한국 고아의 아버지이며 한국 해외 입양의 효시인 해리 홀트씨의 스토리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홀트 창시자 해리 홀트씨는 오리건주 유진 인근 교외 지역인 크레스웰에 살고 있던 농장을 하는 백만장자로 방이 13개나 있는 저택을 소유했다.

이들은 1남 5녀의 자녀들과 함께 물질문명과는 동떨어진 단조롭고 건전한 생활을 행복하게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1950년 해리 홀트씨가 심한 심장마비를 일으키자 크리스천인 그는 그동안 경제적 부에만 치중했던 자신을 뒤돌아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사업을 구상했다.

그러던 중 1954년 가을 유진 고등학교 강당에서 선명회 총재 피어스 박사가 개최한 영화와 강연회에 참석했다. 첫 영화는 어느 한국 목사의 처절한 순교를 다룬 ‘휴가 중의 죽은 자들’ 이었고 두 번째는 ‘잃어버린 양’이란 제목의 기록영화로 한국의 전쟁 과부들과 고아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보여주고 선명회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내용도 소개했다.

이 영화를 본 홀트 부부는 거의 정신을 잃었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이날 강연회가 후에 이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특히 영화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미군 혼혈아들의 비참한 모습에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영화상영 후 피어스 박사는 고아들을 돕는 사업에 참여할 사람들에게 고아 사진과 인적 사항 카드를 보내준다며 헌금 봉투를 나눠주었다. 이때 홀트는 아내에게 “여보, 연필 가지고 있소? 고아 두명을 부양하기로 합시다”라며 지갑을 꺼냈다.

▲ 한국에서 고아들을 데려온 홀트씨가 부인과 감격적인 재회를 하고 있다.     © 뉴스파워 이동근

 

그러나 다음날 해리 홀트씨는 농장에서 잡초 제거작업을 하면서 타오르는 불길 속에 처참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다며 가족들에게 2명에서 8명이 늘어난 열명의 한국 고아들을 부양하기로 확정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자녀들도 참여, 모두 13명을 돕기로 하고 부양비를 포틀랜드에 있는 선명회 사무실로 송금했다.

그 후 한국 고아들의 사진과 인적 사항을 받은 가족은 한국의 비극적인 사태를 잊지 않고 괴로워했고 무엇인가 돕도록 하나님께서 지시하고 계심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마침내 해리 홀트씨는 직접 한국에 나가 8명의 미군 혼혈아를 입양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당시 피난민 구호법은 한 가족의 입양 가능 인원을 두명으로 제한했다. 그래서 리차드 노이버거 상원에게 8명을 입양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토록 해달라는 청원서를 보냈다. 또 보증인 인적사항, 재산증명서, 방이 13개가 있는 저택 사진 등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1955년 50세 때에 아이들을 데리러 한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한국에 도착하기 전 잠시 동경에 체류했을 때 홀트씨는 기적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 새벽 3시에 여러 가지 생각으로 괴로워 하다가 자신의 계획이 독단적인 것인지 또는 하나님이 같이 하는 것인지 묻기 위해 기도한 후 성경을 펼치고 불을 켜보니 엄지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부분은 이사야 43장 5절부터 7절까지였다.

▲ 미국에서의 첫 아침 식사 기도     © 뉴스파워이동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 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즉 한국에서 데려오는 고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데려오라는 하나님 말씀이었다. 이 말씀에 그는 입양이 하나님의 뜻이고 또 하나님께서 훨씬 많은 아이들을 구하시려고 역사하실 것이라는 확신으로 눈물을 흘리며 감사기도를 올렸다.

해리 홀트씨는 1955년 10월 14일 다른 부부 입양 어린이 등 12명과 함께 포틀랜드에 도착했는데 그 후 수백명의 부부들로부터 한국 고아의 입양 방법을 문의하는 편지를 받자 1956년 입양 사업의 조직을 시작하였다.

홀트씨는 다시 한국에 나가 직접 고아원을 건립하고 전국 각지로부터 혼혈아를 모집했으며 후에 홀트 양자회로 개칭되었다. 홀트씨는 자신의 전 재산을 팔다시피 하면서 이 사업을 계속하고 고아들이 늘어나자 61년에 경기도 일산에 60에이커의 자체 복지원을 건설하고 고아들을 돌보았다.

심장마비 증세가 계속되는 속에서도 이처럼 한국 고아들을 미국 가정에 보내는데 헌신했던 홀트씨는 1964년 4월28일 일산 고아원에서 숨져 소원대로 일산 고아원 위쪽 언덕에 영원히 잠들어 있다. 당시 그의 나이 59세였다.

▲ 버사 홀트씨는 자신의 책에 서명을 해주었다.     © 뉴스파워 이동근


큰 기둥을 잃은 홀트 사업은 그 후 잠시 주춤했으나 부인 홀트 여사가 다시 남편의 사업을 맡아 더욱 더 땀 흘리고 헌신함으로써 더욱 성장했다. 그녀 또한 2000년 하나님 품으로 갔으며 남편이 있는 일산 복지원에 함께 잠들어 있다. 아버지 못지않게 딸 말리씨도 65년부터 일산 고아원에서 결혼도 하지 않고 자원봉사로서 자체 부자유 어린이들을 돌보았는데 그녀도 부모님과 함께 일산 복지원에 묻힐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2대에 걸친 홀트 가족의 숭고한 사랑과 희생정신은 정말 감동적으로 귀한 본이 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직접 이들을 만나고 취재하면서 특히 진실한 기독교인이었던 홀트 부부가 처음 입양사업을 하나님 말씀으로 시작했고 또 가족들이 그 말씀대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하나님 사랑을 실천한 정말 훌륭한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을 적극 알리고 싶다.

버사 홀트여사는 책 머리말에서 “ 이 책에 기록된 사건들이 발생하기 이전에 나의 남편 해리와 우리 아이들과 나는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지시해 주실 것을 기도했다.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은 그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비록 아무리 천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주님의 지시대로 수행하기를 원했다. 여기에 전개되는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감격적으로 응답해 주시고 우리의 생활을 얼마나 변화시켜 주셨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라고 밝혔다.

우리들도 홀트 가족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삶의 목적으로 삼을 때 하나님은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주시고 앞서 인도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10)

 

■이동근: 뉴스파워 시애틀 본부장. 시애틀 뉴비전 교회(담임 천우석 목사) 시무장로. 전 중앙일보 시애틀지사 편집국장. 전 월간 신앙지 ‘새하늘 새 땅’ 발행인. 저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들’ 상,하권. 서북미 여행가이드(2018), ‘아름다운 오리건’, ‘아름다운 워싱턴’, ‘비,눈,바람 그리고 튤립’. 대한민국 국전, 일본 아사히 신문 국제 사진전, 홍콩, 한국 국제 사진 전 입선, 오리건주 오리거니안 신문 사진전 1위. 미국 개인 사진전 개최.

이메일:nhne7000@gmail.com

▲ 방 13개가 있는 홀트씨의 저택. 이처럼 방이 많아 고아 8명을 입양할 수 있었다. 백만장자인 그는 자신의 개인 재산을 다 털정도로 입양 사업에 적극이었다.     © 뉴스파워 이동근



 

 

 

 

 

 

 

 

 

 

 

 

 



이동근:시애틀 뉴비전교회(담임 천우석 목사) 시무 장로. 전 중앙일보 시애틀지사 편집국장. 전 월간 신앙지 ‘새하늘 새땅’ 발행인

지은 책: 100명 신앙 간증집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들’ 상.하권, 서북미 여행가이드(2018), ‘아름다운 오리건’, ‘아름다운 워싱턴’, 중앙일보 칼럼모음집 ‘비, 눈, 바람 그리고 튤립’. 대한민국 국전을 비롯 일본 아사히 신문국제 사진전, 홍콩, 한국 국제사진전 등 수많은 사진전에 입상, 입선했다. 또 오리건주 오리거니안 신문 사진전에서 1위, 3위를 했고 미국에서 개인 사진전도 개최했다.

이메일:nhne7000@gmail.com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19/06/04 [10:18]  최종편집: ⓒ newspower
 
관련기사목록
[홀트] 하나님 말씀으로 시작된 ‘홀트’ 입양 이동근 2019/06/04/
뉴스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8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