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파워인터뷰생활/건강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19.07.24 [18:02]
“5.18 당시 광주는 평화 그 자체였다”
5.18과 세월호 진상규명에 앞장서온 장헌권 목사(광주서정교회) 파워인터뷰
 
김철영

 

“518일부터 27일까지 은행이나 상점에 돈이나 물건을 가져간 일이 없는 평화 그 자체입니다. 이처럼 광주시민들은 성숙한 모습으로 민주화를 요구한 것입니다.”

▲ 5.18 진상규명과 4.16 진실규명을 외치는 인권운동가 장헌권 목사(광주 서정교회)     © 뉴스파워

  

광주 서정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장헌권 목사. 그는 민주, 평화, 정의, 인권을 외치는 현장에는 항상 맨 앞에 서 있다. 5.18 광주정신을 실천하는 행동하는 목회자이다.

 

19805월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1년 뒤인 1981527, 전도사로 섬기고 있던 서광주교회 수요기도회에서 5.18의 참상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설교를 했다. 당시로서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5.18의 아픔을 쉽게 꺼낼 수 없는 상황에서 24살의 호남신학교 4학년 학생의 신분으로 그런 설교를 했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라고 할 수 있다.

 

5.18 때 가족의 일화도 소개했다. 바로 아래 동생(장헌일 목사, 생명나무숲교회)이 당시에 전남대 학생이었던 동생이 집에 들어오지 않아 도청 앞에 상무관에 놓여 있던 주검들의 이름표를 일일이 확인했는데 장하일이라는 이름표가 있어서 얼굴을 확인해 보니 동생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해마다 5월이 오면 우울하고 답답함과 살아 남은 자로서 죄책감이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광주의 정신 저항정신과 민주, 평화, 인권의 광주도시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장 목사는 이후 광주에서 목회를 하면서 인권운동에 앞장서왔다.

 

지난 2014416,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후에는 세월호 유가족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보듬으면서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에 앞장서왔다. 특히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세월호 선장 이준석 씨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가 보내온 편지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지난해 제12회 오월어머니상을 수상한 장헌권 목사(우측에서 세번째)     © 장헌권 목사 제공

  

지난해 ‘5월 어머니상을 수상한 장 목사는 오월과 영령들을 기만하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5.18 역사 왜곡 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목사는 한국교회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값비싼 은혜를 싸구려 은혜로 만들고 있다.”는 독일의 본회퍼 목사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번영신학으로 기복적인 맘몬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하나님 나라는 정의와 자비, 평등과 평화의 가치 위에 세워진 것이라며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을 강조했다.

 

특히 민족의 모순인 분단된 조국을 생각하는 통일신학이 필요한다.”그동안 권력과 밀착하여 장로 대통령을 만들었지만 얼마나 부패하고 탐욕의 정치인가를 알 수 있다. 그래도 어느 누가 회개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다시 5 ‘그날이 왔습니다.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까.

누구나 5월하면 가정의 달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광주사람들은 광주의 고통과 아픔을 생각하지요. 저 역시 광주의 상처와 고통은 여전히 집단적인 충격인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우울하고 답답함과 살아 남은자로서 죄책감이 있지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광주의 정신 저항정신과 민주, 평화, 인권의 광주도시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시 광주시민들은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그때는 모든 시민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지금 우리는 광주의 정신이 된 것입니다. 바로 대동정신이지요. 시민군들을 위해서 주먹밥을 만들어서 주고, 너나 할 것 없이 헌혈을 하는 일도 했지요. 또한 도청앞에서 시민궐기대회 등 집회를 할 때 참여를 많이 했습니다.

 

518일부터 27일까지 은행이나 상점에 돈이나 물건을 가져간 일이 없는 평화 그 자체입니다. 이처럼 광주시민들은 성숙한 모습으로 민주화를 요구한 것입니다.

▲ 민주화 시위를 하다가 경찰차에 태워진 장헌권 목사     © 뉴스파워

 

 

동생(장헌일 목사)가 집에 들어오지 않아 찾아다녔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서 우리 가족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동생이 두 명이 있습니다. 바로 아래 동생은 지금 목회 사역을 하는 장헌일 목사는 당시에 전남대 학생이었습니다. 그때는 무조건 학생과 젊은 청년들은 계엄군들에게 걸리기만 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 상황입니다. 동생도 시내에서 곤봉으로 맞고 시외로 나간 것입니다.

 

당시에는 통신이 발달되지 않아서 연락이 두절되고 어떤 일이 있는지 모르고 며칠간 집에 오지 않았서 찾으러 나간 것입니다. 어머니와 누나는 나주 남평쪽으로 신발도 신지 못하고 걸어서 가는데 어느 마을에 가니까 빨리 피하라고 해서 어머니와 누나는 화장실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바로 이어서 총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막내 동생(장헌길)이 있습니다. 헌혈을 한다고 광주기독병원에 갔습니다. 헌혈 후 병원에서 나가지 말라라고 해서 있는데 나가다가 공원 쪽에서 총소리가 나면서 먼저 나간 여고생이 죽었습니다.(박금희 학생)

 

저도 역시 동생을 찾는다고 도청 등을 다니고 있는데 도청 정문에 관들이 즐비하게 있었습니다. 관은 태극기로 덮어져 있었고 관뚜껑에는 이름이 적혀 있는데 장하일이라는 이름이 있어서 깜짝 놀라서 확인해보니까 동생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확인후 지원동쪽으로 가는데 당시에는 비포장도로에 뒤에서 총소리가 들리는데 도무지 발걸음을 옮길 수 없는 공포에 집에 어떻게 온지 모르게 온 적이 있습니다. 동생은 며칠후 무안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보호를 받은 것입니다. 어머니는 저와 함께 또 다른 신학생 전도사님을 데리고 있었습니다.

▲ 1981년 5월 27일 전도사로 섬기던 서광주교회 수요기도회에서 5.18참상을 설교한 장헌권 목사. 당시 설교테이프.     © 장헌권 목사 제공

 

19815월 27일 수요예배에서 5.18관련 설교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삼엄한 시절인데 무슨 내용을 담았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런 설교를 했는지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서재실을 정리하다가 38년전 설교테이프를 발견한 것입니다.

 

예배전체 내용이 녹음 되었습니다. 찬송가와 기도 순서 모두가 녹음이 된 것입니다. 설교 내용이 지금 생각하니까 굉장히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는 내용입니다

 

38년전 1981527(수요일) 광주 5·18 설교 테이프를 서재실 정리하면서 발견했습니다. 당시 신학생이면서 나이가 24세였습니다. 서광주교회 전도사로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때 어느 누구도 광주의 비극을 말 할 수 없었습니다. 제대로 1주기 추도식도 할 수 없는 엄혹한 시절입니다.
 

잠깐 요약을 해보겠습니다.

 

설교본문: 요한복음 18:28-40. 설교제목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라>(1981527일 수요일) *당시에는 광주사태라고 해서 설교내용도 사태와 민중봉기라고 했다 (원래설교전문 A4용지 8. 40분 설교)

너무도 슬픈 날이었습니다. 518일 기점으로 해서 527일 미명에 계엄군이 도청을 점령함으로 수 많은 젊은이들이 쓰러졌습니다.

 

우리는 이날을 보내는 이 마당에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그때 당시에 전남고등학교 교사로 있었던 김준태 시를 낭독하므로 그때의 상황을 다시한 번 머릿속에 되새기고자 합니다. <아 광주여! 우리나라 십자가여> ! 광주여! 무등산이여!/죽음과 죽음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당시에 시 전문을 읽을 수 없는 상황)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가야바 관정으로 연행되어서 공의회 심문을 받은 후 관정으로 끌려 갔습니다.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는다는 말씀입니다. 현재 우리가 진리편에 서서 광주의 울부짖음을 듣고 있습니까.

 

사람이 죽으면 마땅히 제사를 지내는 것은 인간의 의무입니다. 그 영정 앞에 모여서 그동안 일들을 고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의무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도 할 수 없으며 조의를 표하는 검은 리본도 차고 다니지 못한 이 엄청난 비 진리에 속한 우리가 아닙니까.

 

진실이 진실되지 못하며 참말을 참말 되지 못하는 이 땅에서 하나님은 지금 오늘 우리에게 진리편에 서서 주님의 음성을 귀담아 들으라고 합니다. 이사야 581절에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같이 높이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광주사태는 처음에 평화적인 학생들의 시위가 아니었습니까? 비상계엄이 확대 실시되기전까지 광주시내 대학가는 교내 시국성토 대회하다가 민주화 애국성회를 갖기 위해서 도청앞 분수대에 모였습니다. 이 평화적인 시위가 왜 참담한 살인이 자행되는 눈 뜨고 볼 수 없는 비극으로 돌변하고 말았습니까? 그 진범이 누구입니까?

 

공수 특전단의 너무나 잔악한 만행을 저질러지지 않았습니까. 방망이를 휘둘러 마구 난타하며 뒤통수를 맞고 피가 낭자하게 흘리며 쓰러진 학생들이 있었으며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붙잡혀온 학생들을 군화발로 짓밟고 기압을 주며 M16에 꽂은 대검으로 등과 허벅지를 사정없이 찔러 그었습니다. 그들을 굴비처럼 엮어 군인들은 싣고 갔습니다.

 

통금이 밤9시로 단축된것이 발표되자 귀가하는 학생들 젊은이까지 무조건 두들겨 패고 연행했습니다. 이를 만류하는 시민들까지 개머리판으로 마구 때렸습니다.

▲ 1980년 5월 27일 호남신학교 4학년생으로 서광주교회 수요기도회에서 5.18 참상을 설교한 장헌권 목사. 당시 설교 녹음테이프를 듣고 장 목사가 녹취한 원고.     © 뉴스파워

  

당국의 발표에도 상당수 시민들을 칼로 찔렸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또 몽둥이로 맞았다고 당국에서도 발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아벨의 울부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을 분노케 하고 있지 않습니까? 광주사태의 진실이 밝혀져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감옥 안에 김성룡 신부님과 홍남순 변호사, 명노근 교수, 정동영 학생30여명 가량이 무기와 20,10,6년등 형을 받고 죄없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서 머리를 깎이우고 푸른죄수복을 입고 외로이 한숨짓는 주님의 종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서 조금이라도 위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청사의 빛나는 칼날의 무서움을 모른채 사랑하는 내 시민을 짓밟아 버리는 천추에 맺힌 한, 원한의 맺힌 한을 어느 누가 풀어줄 길이 없어서 시민 모두가 일어선 5·18 광주민중봉기를 우리 민족의 슬기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일이 되도록 진실을 증언해야 합니다.”

 

호남신학교 1년 선배 문용동 전도사도 희생을 당했지요.

저는 망월동과 국립묘지에 가면 가장 먼저 문용동 선배님을 찾아 갑니다. 지난 56일에도 다녀왔습니다. 금년에도 수차례 다녀왔지요.

 

문용동 선배는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해서 1학년 과정을 하고 계셨던 선배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제가 독서모임을 하는 것으로 알고 좋은 책 있으면 소개해달라는 이야기도 했지요.

 

문용동 전도사님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길게 해야 합니다. 당시 제일교회를 다니면서 상무대교회 전도사로 사역을 했지요. 519일 상무대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가 구타당하는 모습을 보고 말리다가 자신도 함께 구타를 당한 것입니다. 이후부터 시위에 참여하면서 공수부대가 철수한 후 도청 지하실에서 무기고 관리와 헌혈운동 등으로 활동을 했지요.

특히 지하실에 TNT와 수류탄이 폭발하면 위험하므로 뇌관분리작업을 합니다. 전문가가 없어서 관리에 어려움이 있어서 24일 상무대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지요. 문관이 와서 뇌관분리작업을 도와주게 됩니다. 이것이 나중에 프락치설이 있지만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지요.

 

26일 저녁에 누나가 도청으로 찾아와 곧 계엄군이 들어오면 죽는다고 집에 가자고 설득했지만 내가 여기서 나가면 누가 여기를 지키냐고 내가 죽거든 태극기에 싸서 묻어달라고 했지요.

 

그리고 27일 새벽 계엄군이 들어오면서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자동으로 쏘아대는 총에 맞아 사망한 것입니다.

 

이후 신학교에서 2000년도에 명예졸업장을 받고 최근에는 총회에서 순직자로 인정되었으며 현재 총회에서 순교자로 추서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문용동 전도사님은 평소에 타인에 대한 배려와 주님을 따른다는 고민을 하는 순수한 신학도입니다. 그분의 시 가운데 있음 이라는 시를 보면 확인 할 수 있지요.

 

<있 음> 고난과 아픔을 싫어하고/ 멋있고 안일만을 살려는/ 오늘의 마음들// 어느 엉거주춤한 그림자/ 난 아의 십자가를 지고/ 어디쯤 서 있는가//

▲ 5.18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문용동 전도사 묘 앞에선 장헌권 목사     © 뉴스파워

   

5.18 역사왜곡과 망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의, 평화, 인권 등 민주주의 정신을 지키고자 했던 비폭력 저항운동의 정신은 어떻게 계승되고 지켜져야 할까요.

오월과 영령들을 기만하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5.18 역사 왜곡 처벌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진상규명을 통해서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지요. 광주정신은 광주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 필요한 민주, 평화, 인권 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폄훼와 왜곡하고 있는 몰지각한 보수집단 극우세력들이 있습니다. 적폐를 청산하는 일과 촛불정신으로 정의와 평화 민주주의 정신을 지켜야 합니다.

 

5.18은 비폭력 저항운동입니다.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 우리의 선배들이 비폭력 저항으로 한 것처럼 광주민중항쟁도 비폭력으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무기고 탈취하고 교도소를 습격하고 간첩침투 등으로 가짜뉴스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무기고에 가서 무기를 가지고 온것은 사실입니다. 그때 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는가에 공수부대의 일방적인 학살을 보고 참을 수 없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교단의 여수에 있는 교회 목사도 설교시간에 확인도 하지 않고 폭력과 교도소 습격을 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역사의 진실을 바로 알고 증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5.18 관련자료를 다 보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 보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80년 이전과 이후의 자료, 성명서 등 책, 비디오, 영화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5.18 때 미국 선교사 기독병원 원목과 호신대 강사로 있던 헌틀리 선교사님이 기독병원 근무하는 직원에게 준 사진 (30장정도) 있지요.

 

그 사진이야 말로 차마 볼 수 없는 모습들의 사진입니다. 얼굴이 이그러지고 형태를 알 수 없는 사진들이지요. 그 사진을 가지고 학교에서 전시회를 하고 간직하기 위해서 무척 노력을 했습니다.

 

지금이야 공개된 사진이지만 최근까지도 사진을 보면 얼마나 계엄군들의 잔인함을 알 수 있지요.

 

그이외도 당시에 나온 자료들이 있습니다. 계엄분소에서 나온 자료와 기독교에서 수습위원으로 활동한 보고서 등이 있습니다.

▲ 세월호 인양 현장에 선 장헌권 목사     © 뉴스파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활동에도 열심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제가 광주기독교협의회(NCC) 회장으로 있었습니다. 6월부터 광주법정에서 선장과 선원들 재판이 시작 되었습니다. 안산에서 오신 가족들이 재판 후 법정을 떠나지 않고 있어서 결단을 했지요.

 

상처와 아픔의 도시인 광주에서 이분들과 함께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지요. 우는자와 함께하라는 말씀처럼 이분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되겠다고 생각을 했지요. 그래서 재판이 끝날 때까지 14개월 정도 함께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도보순례 서명운동 1인시위 등 했지요.

 

특히 선장과 선원들에게 양심고백을 하도록 편지를 보내게 되었지요. 15명 가운데 처음에는 선장을 비롯한 다섯 명은 수취인거절로 반송이 되었습니다. 두 분은 회신을 했으며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양심고백을 한 분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매월 416일은 기억의 날 행사를 하면서 예술인 행동의 장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날마다 희생된 자녀들 학생들 생일을 기억해서 페이스 북과 우리 시민상주라는 단톡방에 올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추모사업 등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야 생명존중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바로 하나님 선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는 일입니다.

 

지난달에는 선장 이준석씨와 편지를 주고 받은 것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광주교도소에 선장과 선원들이 수감되었을 때 편지와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을 영치했지요. 하지만 선장과 선원들 다섯 명은 반송되었습니다.

▲ 세월호 선장 이준석 씨가 교도소에서 장헌권 목사에게 보낸 편지의 봉투     © 뉴스파워

 

 어느날 후배 목사님으로부터 선장이 순천교도소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성공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면회를 갔습니다. 면회에 성공을 했지요. 이후 편지를 주고 받게 된것입니다.

 

편지 내용을 공개했지요. 의도적으로 한 것은 아니고 5주기 때 일간지 신문기자가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본인의 건강이야기와 희생자에 대한 죄송함과 잘못에 대한 참회등의 이야기 이지요. 저와 국민과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좀더 세월호에 관한 진질을 듣고 싶지만 아직은 아닌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마음이 움직이면 고백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져준 교훈은 무엇일까요.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참사가 아닙니다. 구조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는데 구조를 하지 않했습니다. 그리고 왜 침몰을 했는지 정부가 발표한 것에 대한 신뢰가 없습니다. 하나의 국가폭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윤을 생각하면서 나오는 생명경시이지요. 안전보다는 돈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당시의 국가부재처럼 대통령의 7시간등 정치실종입니다. 국정농단으로 국기가 문란된 것입니다. 그리고 언론의 거짓된 보도입니다. 아직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은 진실과 정의가 없는 사회입니다. 안전한 사회와 생명 존중하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진실과 정의가 우선시 되어야 하지요.

▲ 세월호 선장 이준석 씨가 옥중에서 장헌권 목사에게 보낸 편지.     ©뉴스파워

 

  

목회사역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추구하는 목회 철학과 본질은 무엇인가요.

세상과 소통하며 바른길을 모색하는 사역입니다. 특히 본질에 충실하며 세상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기형도 시인<우리동네 목사님> 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 가운데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 긋는 것입니다. 지게꾼 신학과 지게꾼 목회입니다. 업어주는 목회입니다.

 

섬기는 일입니다. 세상을 특히 고난 받고 고통당하는 민중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또한 마중물 목회입니다. 세상과 소통하기위해서 마중물처럼 독서와 영화 그리고 시를 통해서 세상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시인이자 영화 평론집도 냈는데, 어디에서 그런 정의감과 용기가 솟습니까.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안에 존재하는 교회입니다. 타자를 위한 교회입니다.

 

저는 신학교 시절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논문도 본회퍼 목사의 사회적 윤리를 썼지요. 그래서 철저히 낮은 자와 함께하는 사역이지요. 그리고 우리민족의 모순인 분단입니다. 그래서 민족은 하나이지요. 평화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믿기에서 예수 살기로 해야 합니다.

 

부족하지만 어머니 김복례 권사(88)님 기도와 형제들과 가족들의 응원입니다. 가장 큰 것은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시고 함께 하시는 일입니다.

▲ DMZ 인간띠 잇기행사에서 철조망 앞에 선 장헌권 목사     © 뉴스파워

   

한국교회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말씀 하시죠.

한 마디로 값비싼 은혜를 싸구려 은혜로 만들고 있습니다. 본회퍼 목사님 이야기이지요. 번영신학으로 기복적인 맘몬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정의와 자비, 평등과 평화의 가치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교회는 예언자적 사명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위하여 소금과 빛의 사역이 필요합니다. 특히 민족의 모순인 분단된 조국을 생각하는 통일신학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권력과 밀착하여 장로 대통령을 만들었지만 얼마나 부패하고 탐욕의 정치인가를 알 수 있지요. 그래도 어느 누가 회개 한 적이 없지요.

 

개혁교회는 늘 개혁해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다음은 장헌권 (목사.시인) 목사의 시 두 편.

 

꽃만 봐도 서러운 그날

 

봄빛 가득찬 길가에

하늘의 쌀밥나무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오월 꽃잎들은

속잎 겉잎 섞어

꽃무덤으로 엎드려 있습니다

 

하늘 닮은 영혼들이

주먹밥 얼싸안고

춤을 춥니다

 

하얀 가슴들이

눈 시리도록 쏟아지는

싱그러움으로

새벽길 열어둡니다.

 

▲ 장헌권 목사는 시인이자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는 문인이다.     ©뉴스파워


망월동에서 보낸 편지

 

칼바람 불어오는

혹독한 세월

억울한 죽음끼리

도란도란 누워있다

 

손꼽아 기다리는

우리는 또 다시

폭도가 되었다

 

광주 눈물비가 내리는 동안

학살자가 오히려

또 광주를 쐈다

 

너무 태연한 민낯에

어린학생들 교실안

물러가라는 외치는 소리

 

침묵의 불꽃으로 다시

피어나

피의 함성으로

무등산 새벽

깨운다

 

길가에 주저앉아

울부짖는

오열하는 오월 어머니의

고통을 누가 알겠느냐

 

봄은 어차피 저 어머니의

눈물을 먹으면서

오고있다

 

저 어두운 땅 속에서

꽃핀다는 것을 보여 주리

 

툭툭 꽃망울 트는

핏빛 진달래로

타오르리 

 

망월동 무덤은 무덤이 아니다

열린 빈무덤

민주의 꽃으로 피어나리

아니 진즉 핀 자유의 꽃

 

으깨어지고 일그러진

시간 모아

핏물 적셔

말라 버린 뼈들이

펜촉되어 편지 쓴다

 

우리는 결코 죽은것이 아니라

살아

뻔뻔한 학살자의 섣부른

용서와 사면을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다시 일어나는 오월의 새싹을 보라

다시 피어나는

이팝나무 춤추는

망월동을 보라!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19/05/11 [11:30]  최종편집: ⓒ newspower
 
관련기사목록
[장헌권 목사] “5.18 당시 광주는 평화 그 자체였다” 김철영 2019/05/11/
[장헌권 목사 ] NCC 장헌권 목사 한 끼 금식 1인 시위 강경구 2014/07/07/
[장헌권 목사 ] 예장통합 광주 동노회, 시국기도회 열어 강경구 2014/04/09/
뉴스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8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