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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07 [08:01]
[김준곤 설교] 신앙인격 수도와 건축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
 
김준곤

고린도전서 3:10~17

▲ 김준곤 목사      ©뉴스파워



  한 해가 갔습니다. 그만큼 늙어졌다기보다 그만큼 성숙하고 알이 들었다는 의미도 됩니다. 시간이란 허식과 위장으로 가리어진 나를 한 꺼풀씩 벗고 누에가 마지막 잠을 자고 고치를 만들려는 순간처럼 투명해지고 더 순수해 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새로워진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이 세상은 때 묻고 더 교활해 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성경은 인생을 경주마당을 달리는 선수로 비유했고 이 선수는 목적을 향해 달릴 때 몸에 얽매이는 것을 다 벗어 버리고 가볍게 하여 열심히 달려야 한다고 했고 또 농부라고도 했습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거두는 과정은 우리 인생의 밭에다가 의식, 무의식 가운데 날마다 인격의 씨앗을 심는 것에 비유됩니다. 이 심은 것들은 이 세상이 다하고 영원이 시작될 때 싹이 트고 나와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인생은 순례자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시민권은 하늘에 있어 여기 살기는 살되 귀화하지 말며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토기장이와 질그릇입니다. 토기장이인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질그릇을 빚어 만들고 우리는 그 피조물입니다.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에게 창조와 목적이 있습니다.

인생은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노예입니다. 의지와 시간의 자유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 노예는 강요되었으나 우리는 자발적인 노예입니다. 인생은 포도나무 가지와 선한 목자의 양이라고 했고, 그리스도의 대사라고 우리의 본문을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는데 이는 편지 스스로가 가감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했는데 신부는 끝까지 남편에게 순종하고 절개를 지킵니다. 남편은 신부를 통해서 생명을 잉태하고 번식 시킵니다. 또 우리를 예수님의 친구, 하나님의 자녀라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일생을 건축물에 비유하셨습니다.

1. 인생은 건축물입니다.
  예수님이 인생을 심판하실 때가 옵니다. 크리스천의 심판은 형벌의 법정이 아니라 인격의 건축물을 불같은 표준으로 시험을 통과시키는 과정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겉으로는 똑같은 크리스천이지만 숨겨진 부분은 이 세상에서 다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은 예수의 터 위에다 매 순간마다의 행동과 인격의 벽돌을 쌓아 올린 것을 하나님의 저울로 달아 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겨우 합격선에 들어가 부끄러운 구원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많은 점수가 나오는 이도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가볍게 본 일도 그때에는 총천연색으로 확실히 크게 나타납니다. 우리는 크리스천 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닦고 생활을 깨끗이 하고 인격 수련을 쌓아서 하나님께 가지고 갑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그때는 지식도 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은 임시적 입니다. 혈육 관계도 폐지됩니다. 예술도 의복
같은 것이어서 벗어 버립니다. 본질적인 것은 예수를 믿는 믿음과 예수를 바라보는 소망입니다. 이것을 토대로 현재가 사랑으로 충만해 지는 것은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나무에 비유하면 뿌리는 믿음, 소망은 잎사귀, 열매는 사랑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에 뿌리를 박고 잎에서 동화 작용을 하는 것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것이 임시적이고 상대적이나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나와의 사랑의 삼각관계는 영원합니다. 인격의 내용은 이 삼각관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아가페의 사랑이 성령으로 내 속에서 역사하는 것이 곧 사랑의, 신앙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쌓아 올리고 닦아야 합니다.

이것은 심은 대로 거둡니다. 이 책임은 엄숙합니다. 우리 인생의 하루하루의 언행은 중요합니다. 건축 설계자는 하나님, 건축의 터는 예수 그리스도, 건축자는 성령이며 재료는 믿음에 기초한 사랑입니다. 건축물 자체는 나 자신입니다. 하나님도, 그리스도도, 성령도 없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지은 집입니다.

  1) 터가 필요합니다. 든든한 기초를 닦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7:24∼27에는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자요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지은 자요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장마와 폭풍, 곧 심판 때에는 넘어진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 합격 점수가 됩니다. 점수 이하라도 합격시킵니다. 이것은 은총입니다. 신자는 종자가 다릅니다.

누가복음 16:19∼36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 부자는 부정한 사람이 아니라 부지런하여 자수성가했거나 상속을 받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또 나사로를 아주 고상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이들은 인생의 바탕이 전혀 달랐습니다.

부자는 학문, 물질, 명성, 부에 있어서 성공한 대표적 인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표준에서 무대가 달라질 때 이 세상의 성공자는 하나님 나라의 실격자가 됩니다. 부자의 인격의 터 위에는 하나님도 내세도 없었습니다. 다만 자기 자신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의 인생의 터엔 하나님과 내세가 있었습니다. 그 집이 아무리 못생겨도 기초가 튼튼해야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터를 생각지 않고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고 한 이가 있습니다. 잘못된 원리에서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것은 비극입니다.

소련 과학의 최고자들은 최근에 인간이 화산에서 나왔다는 한 학설을 내놓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잘못된 지성의 방향도 유치합니다. 모래 위의 집이며 바벨탑입니다. 나사로와 부자는 극과 극의 차이며 유정란과 무정란의 차입니다. 여러분은 최소한 중생한 생명을 소유했습니까? 예수님은 ‘내 피와 살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2) 재료는 매 행동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믿음으로 쌓아 올리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의 행함이란 중요합니다. 한 장씩 쌓아 올리는 벽돌입니다. 운동선수, 예술가, 정치가가 되기 위해서도 온갖 정성을 드립니다. 이 세상의 역사 가운데 위대하고 강한 것은 훈련을 통한 것입니다.

신앙의 인격을 닦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인생을 예술품으로 생각한다면 결작이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나와 합작입니다. 생각의 깊이 속에, 인격의 뿌리 속에 피와 살 속에 나쁜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제하고 깨끗하게 해서 하나님께 가지고 가야 합니다.

원시적인 감정을 절제하는 것은 교육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절제입니다. 자기가 자기의 수양을 해야 합니다. 교육과 신앙생활을 위해서 절제가 필요합니다.

오늘날도 일정 기간 금식과 노동의 수도원 생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교정 기간이 됩니다. 인격은 날마다 닦아야 합니다. 힘써 선을 행하여 죄의 세력을 파 버리고 깨끗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2. 영원한 소년성을 지닙시다.
  현대인은 일찍 늙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호기심과 꿈, 환상이 있습니다. 그는 항상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장래는 소망에 차 있습니다. 그는 창조적이고 진취적입니다. 그에게는 절망과 비극이 없습니다.

인생은 항상 신입생이어야 하고 늙는 것이 아니라 성숙해야 합니다. 세상은 늙지만 하늘의 법은 날마다 젊어 갑니다. 우리는 한없는 청춘이어야 합니다. 끝까지 인생을 닦고 꿈속에 살며 첫사랑을 간직해야 합니다. 날마다 자기에게 기대를 갖고 밀월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는 청춘의 원동력 입니다. 예수님과 나의 관계는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매 순간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야 합니다. 예수님과 큰 관계를 가지고 크고 깊은 대화를 하며 큰 거래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더 알기 원하고 더 실천하기 위한 욕심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원동력으로 이 민족을 하나님의 민족으로 만들고, 나아가서 세계를 바치고자 하는 것은 좋은 야망입니다.

3. 충성스러운 제자의 삶을 삽시다.
  자기 자신 보다도 부모나 처자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냐, 맘몬(Mamon)이냐의 택일입니 다. 사랑의 절대성, 충성의 절대성이 도처에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각자의 천직에 충성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생명을 희생하는 충성을 배워야 합니다. 1983년에는 더욱 충성스런 제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이 글은 김준곤 목사가 <CCC편지> 1982년 12월호에 기고한 것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84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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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01 [16:17]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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