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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7.22 [05:02]
“예수와 함께, 민족과 함께”
오는 4월 21일 주일 오후 2시30분, 여의도순복음교회당에서 70개 교단 참여
 
김현성

2019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가 오는 421주일 오후 230분 여의도순복음교회당(이영훈 목사 시무)에서 열린다.

▲ 2019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준비위원회 기자간담회     © 뉴스파워

 

 

부활의 생명을 온 세계에라는 주제와 예수와 함께, 민족과 함께를 표어로 열리는 2019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는 대회장 이승희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장)가 대회사를 하고, 환영사는 이영훈 목사(기독교하나님의성회 총회장)가 전한다. 설교는 전명구 감독(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이 선포하고, 윤성원 목사(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가 성찬을 집례한다. 축도는 림형석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장)가 담당한다.

 

2019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준비위원회(위원장 김진호 목사, 기성 총무)3일 오전 9시 여의도순복음교회 선교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사무총장 최우식 목사(예장합동 총무)의 사회로 준비위원장 김진호 목사(기성 총무)가 인사말을 전했다.

 

최우식 목사는 예배 개요 및 대회 조직 소개를 통해 이번 부활절연합예배 요절은 요한복음 11:25-27(”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이며. 주제 찬송은 할렐루야 우리 예수(161)’”라고 밝혔다. 또한 70개교단이 참여한다고 밝혔다.

 

이날까지 부활절연합예배에 참석하겠다고 밝힌 교단장은 순서를 맡은 교단장 외에도 김성복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총회장), 정동균 목사(기독교하나님의성회 총회장), 박종철 목사(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장), 신상철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한영) 총회장), 김영희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중앙) 총회장), 임춘수 목사(대한예수교복음교회 총회장), 이주훈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대신) 총회장), 서익수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총회장), 진영석 목사(기독교한국루터회 총회장), 신민규 목사(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 감독) 등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주제해설.

 

주제 해설_ 부활의 생명을 온 세계에 (11:25-27)

 

세상의 그 어떤 종교에도 부활절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긴 생명의 종교, 부활의 신앙인 기독교에는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님을 인하여 부활절이 있습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25, 26)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고전 15:17)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부활 신앙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아울러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과연 부활 신앙이란 어떤 신앙 입니까?

 

성경적 부활을 믿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연한 사건이나 돌발적 사건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성경에 예언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적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것은 성경대로 ...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고전 15:3-4)신 것이라고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같은 예언의 성취는 죄의 부패와 오염으로 죄와 사망의 종노릇하는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였습니다. 죽음이 끝이라면 인간은 얼마나 허무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케 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을 부활케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은폐시키려고 죽은 예수님의 시체를 그의 제자들이 훔쳐가서 다시 살았다고 조작설을 퍼뜨렸습니다만 도망갔던 제자들이 다시 사신 예수님을 뵙고 순교를 무서워 않고 부활신앙으로 부활사건을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지켰던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 자신들이 받을 처벌이 두려워 십자가에서 죽은 것 같으나 실상은 기절했다가 돌무덤 속에 장사지냈을 때 시원하여 다시 제정신이 들어 탈출했다고 헛소문을 퍼뜨리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도한 것은 실상이 아니라 환상이었다고 역사적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오늘날 철학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몸이 다시 살아났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죽지 않은 그의 사랑의 사상이 진정한 의미의 부활의 의미라고 실존적 해석을 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비역사가 될 수 없습니다. 역사적 사실은 비역사로 믿는 그들이 불신의 사람임을 밝힐 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불신하던 도마 역시도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26:28)고 고백했습니다.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실 때에 두려워 도망갔었지만 다시 사신 예수님을 뵙게 될 때에 생명을 잃어버리면서까지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거짓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어리석은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부활 후 세상에 40일을 더 계시면서 열 한 차례나 오백 여명의 사람들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신앙은 부활의 복음 위에 견고히 서 있습니다. 핍박과 억압, 전쟁과 죽음, 착취와 유린의 시대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신앙입니다.

26절 말씀에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는 나 자신의 현재적 부활을 믿게 합니다.

구약시대에 농사를 짓고 첫 열매곧 밭의 첫 번 수확의 한 부분을 하나님께 바치면 전체 수확을 바친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23:19, 34:26). 이같이 예수님의 부활은 나를 대표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믿음으로 붙어있는 우리들의 부활을 현재적으로 계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경적 부활을 믿는 사람은 그 역사성만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적 부활까지 믿는 신앙입니다. 따라서 죽음의 공포와 절망에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고 죽음의 권세를 초월하게 됩니다. 191931일의 만세 사건은 부활신앙의 산물 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일제 강점기의 잔인한 핍박과 고문,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은 것은... 무릇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11:25,26)라는 현재적 부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미래가 지금 여기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나 자신의 죽음을 인정치 않는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인은 죽지 않고 다만 잠잔다고 하시면서 죽은 나사로를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깨우러 가노라.”(11:11)고 말씀하셨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죽을 때 잠잔다고 했습니다(왕상 2:10, 7:60). 바울 사도께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저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8:11)고 전파했습니다.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신앙이 없는 사람입니다. 부활신앙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 위에서 봉사하고, 헌신하고, 심지어 순교까지 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의 쾌락과 이생의 부귀영화에 자신을 맡겨버리고 아무렇게 살지 않습니다. 부활신앙은 죽음은 마치 고통과 고민, 고생과 고난을 잊고 잠시 잠드는 것과 같고, 마치 잠든 자를 깨우면 일어나는 것과도 같습니다. 곧 영생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깨어나는 것을 확신합니다.

 

미래적 부활을 믿는 신앙입니다.

19절 말씀에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우리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가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만 아니라 오는 세상을 살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영화로운 부활을 기다리는 신앙인들입니다.

이 세상은 삶의 전부가 아니라 한 부분임을 확신합니다. 잠시 잠깐 후에는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 옵니다. 주관적으로는 우리의 삶의 현세적 종착역이고 객관적으로는 우리 주님의 재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성, 실상만 믿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다시는 썩지 않는 산 부활의 소망이 있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천국 소망, 부활 소망, 영생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렇게나 막 살지 않습니다. 세상이 어려워도 자학하거나 결코 자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신앙으로 겉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필요한 것은 부활 신앙이 가져오는 평화입니다. 진정한 평화, “샬롬은 전쟁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죄악의 반대 개념입니다. 죄의 오염과 부패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부활 신앙입니다. 다가오는 미래에 남과 북의 진정한 평화도 복음통일의 근간위에 세워지도록 하기 위한 기독자의 책임이 큽니다.

 

우리는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하는 신앙인들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겨진 사람들은 세상일보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쓰게 됩니다(고전 15:58). 전에는 축복 받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지금은 주의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부활신앙으로 어떤 경우에도 낙심 말고(6:5) 전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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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03 [16:01]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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