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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8.24 [22:01]
[김준곤 설교] “네가 낫고자 하느냐?”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
 
김준곤

 

▲ 김준곤 목사 흑백사진     ©뉴스파워

요한복음 5:2~9

요한복음 5장에는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베데스다 못가에 가셨을 때 많은 병자가 물의 동(動)함을 기다렸다가 들어가서 병을 고치고자 몰려있었습니다. 이 우물은 간헐천이었는데 당시는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 한다는 민속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육체는 반신불수가 되고 그 영혼도 말할 수 없는 절망상태에 있던 38년 된 병자는 38년간이나 가마니를 깔고 사는 한 가지 삶의 궤도를 가진 자였습니다. 처음에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치료하실 때 먼저 우리 마음 속에 갈망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명령은 “일어나 걸어가라.”는 것으로, 그 병자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축복은 인간의 갈망에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더한 것과도 같습니다. 기독교인은 인간의 갈망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지 안락의자에 누워서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이 인간의 힘으로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주시지만 우리가 받을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낫고자 하는 열망, 일어나라고 할 때 일어나려고 하는 열망이 있을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악인은 자기가 악인임을 모르고, 정신병자는 자기가 미쳤다는 것을 모르고, 죄도 적당히 범했을 때는 아픔을 느끼지만 죽음 같은 죄 속에 완전히 빠져버리면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회개하고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하므로 어떤 노력도 포기한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입니다. 나이가 많아도 소년 같은 사람이 있고, 젊은이도 늙어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예수님의 물음 속에는 무한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모르게 굴 껍질 속에 자신을 가두어 버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뱀은 몇 번이고 자신의 허물을 벗어버릴 때마다 몸이 커집니다.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듯이 우리의 눈도 보이지 않는 비늘 같은 것들로 가려져 있습니다. 바닷가에 가면 게와 조개가 합해진 것같이 생긴 생물이 있는데, 등에 껍질을 지고 다니다가 사람이 오면 그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 껍질을 벗기만 하면 바위 밑이든 아무 곳이든 자유롭게 살 수 있는데도 버리지를 않습니다.

82세 된 거지가 있었는데, 그는 2대째 거지였고, 아들도 거지였습니다. 그는 항상 같은 마을, 그 반경 속에 살았고, 그곳을 떠나면 굶어죽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껍질들 속에서 살고 있고, 이것을 벗어버리면 마치 죽을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자신을 바칠 수도, 아무에게도 맡길 수도, 신앙생활의 투신도, 모험도 할 수 없는 동굴 속에서 죽음의 동면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안주한 상태에서 그 이상의 것을 구하지 않는 이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코페르니쿠스가 몇 천 년 동안 믿어오던 천동설을 깨뜨린 것처럼, 우리도 어떤 때는 가던 길을 멈추고 180도의 방향전환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 중심에서 예수 중심의 생활로,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법으로 탈출하는 것, 이것은 일회적이 아니라 거듭거듭 일어나야 하는 사건입니다.
 
푸른 하늘을 높이 날아다녀야 할 독수리가 날개가 부러져 어느 사이엔가 땅 밑에서 강아지들과 함께 놀면서 자기가 강아지인 줄 알고 살 듯이, 자기의 틀 속에 영혼을 감금시켜놓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우주의 왕자입니다. 날개를 달고 자유롭게 날며 하나님과 연애를 할 수 있는데도 우상과 편견, 암시, 오염 등에 빠져서 굼뱅이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00년 간 애굽의 노예로 살다보니 타성에도 젖고, 그 생활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셔서 홍해 앞에 세우기도 하고, 반석을 쳐서 먹이기도 하고, 애굽에 열 재앙을 내려 충격을 주심으로 그 자리에 안주하려고 했던 이스라엘을 일으켜 가나안 땅으로의 대탈출을 시키십니다. 신앙은 인류 전체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능하게 합니다. 여러분에게 신앙의 골리앗은 무엇입니까? 지구 궤도를 탈출하는 인공위성처럼 대담하게 자기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자기의 허물을 벗고, 자기의 동굴을 탈출해서 젊은 독수리의 날개침 같이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사도행전 3장에 기록된 앉은뱅이는 돈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을 때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전 욕망과 직업의 목적은 돈이었고, 생전에 예수의 축복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 거지가 구하는 몇 닢의 돈이 여러분의 욕망은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이 있는 것을 알았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런 욕망을 버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가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복음을 발견한 감격을, 어느 밭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데 그것을 갖기 위해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산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아는 지식이 너무 고상하므로 선하게 여기던 것을 모두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리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돈, 권력, 이기심의 노예에서 놓이기를 열망해야 합니다.

‘신앙에로의 용기, 신앙에로의 의지’를 사용해야 합니다. “주여,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믿게 해주시기를 바라나이다!” 그리고 자기를 고발해야 합니다.

“내 영혼아, 너는 그 자리에 있기를 원하느냐? 너는 반항하여라. 꿈에서 깨어나라. 날개를 쳐보아라. 지금보다 새로워진 삶을 살아보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활을 해보라.”

자신을 메뚜기로 보는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잠재적 가능성을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영원한 발전의 기회가 있습니다. ‘기도하고 책임져보라. 뛰어 들어가 보라. 행동하라. 나를 따라오라.’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게 힘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청년은 환상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용기, 생명의 운동이 여러분의 삶 속에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 글은 김준곤 목사가 <CCC편지> 1978년 3월호에 기고한 것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84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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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15 [07:56]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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