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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5.22 [23:03]
치매 권사님을 25년 만에 만난 순간
정준모 목사의 생명의 샘 칼럼
 
정준모

 

▲     ©정준모

 

 

박인숙 권사님(93)이시다. 그분의 고향은 이북이다. 1.4 후퇴 때, 남쪽으로 피난 오시다가 남편은 유복 자녀를 남기시고 부인 권사님 눈앞에서 폭탄 파편에 맞아 돌아가셨다. 피가 범벅된 남편이 자신의 가슴에 안기셔서 돌아가셨다는 비참한 순간의 이야기를 25년 전에 들은 적이 있다.

서울로 월남하신 후에, 남대문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시면서 유복 자녀인 딸을 애지중지 키우셨다. 이북에 계실 때, 미국 선교사님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월남하신 후 영락교회에서 고 한경직 목사님을 영혼의 목자로 삼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셨다. 권사님은 새벽기도를 비롯하여 모든 예배를 참석하시어 예수님을 신랑으로 삼고, 홀로 외롭게 생계를 꾸며 가시는 피난 과부의 삼을 사셨다.

유복자녀인 딸이 성인이 되어, 아들 1명을 낳을 무렵, 그 남편은 권사님의 딸을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권사님도, 그의 딸도, 그 태어난 아이도 또 다른 큰 충격을 받았다. 그 후, 권사님의 딸은 미군 부대에 일하면서 흑인 군인을 남편으로 맞이했다. 그 후 권사님은 40년 전 미국 콜로라도로 미군 사위를 따라 딸과 손자와 함께 이주하게 되었다.

 

미군 남편은 권사님 딸과 함께 콜로라도 인근 주인 네바다주에 가서 살았다. 권사님은 손자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서민 아파트에서 사셨다. 외손자가 자신의 유일한 핏줄이었다. 그 아들의 이름은 요한(가명)이다.

그 때, 나는 리폼드신학교에서 학위를 마치고 이모님이 계시는 이곳에서 잠시 목회를 하면서 그 때, 처음 박인숙 권사님을 만났다. 사실 나도 당시 수입이 없어서 권사님이 사시는 (한달 월세 당시 30달라 정도하는 아파트 )동네에서 살게 되었다. 그 때, 한국에서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권사님을 어머니처럼 돌보며 함께 약 2년간 살았다.

권사님께서 그곳에서 태어난 나의 막내아들(지금 휘튼대학교 졸, 트리니티 신학대학원 재학)을 증손자처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 주셨다. 늘 함께 나의 차로 새벽기도 및 주일 예배를 모시고, 마치 어머니처럼 모시고 살았다.

 

▲     ©정준모

  

로키산맥 산자락에 위치한 이곳 콜로라도스프링스는 미국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곳이다. 미국 사람들이 은퇴하고 살고 싶어하는 선호도 제 1위 지역이다. 로키 산맥 중 제일 높은 파익스 픽 산이 눈 앞에 보이고, 청량한 공기와 맑은 물을 항상 접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영적으로 미국 전 도시 중에 가장 성시화 된 도시이다. 토요일 이른 아침에 빵집이나 식당 여기저기서 성경 공부하는 소그룹을 쉽게 볼 수 있다.

박인숙 권사님과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한지 만 2년 만에 여기서 낳은 막내아들과 함께 우리 4식구는 한국 대구 성명교회의 청빙으로 귀국하였다. 21년간  목회를 마무리 하고 다시 이곳으로 이주하였다. 그 이유는 막내아들이 태어난 곳이며 옛 교인들이 여전히 부족한 나를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이사 오기 5년 전에 여름 휴가철에 서민 아파트에 사시는 권사님을 찾아 뵌 적이 있다.

 

그런데 아파트 사무실에 갔더니, 권사님이 치매가 와서 Genesis라는 요양원으로 10일 전 옮기셨다고 했다. 헐레벌떡 그곳을 찾아 갔을 때, 21년 만에 권사님을 상종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마치 야곱과 에서가 만나는 순간과 같다고 할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 심정이라고 할까? 가슴이 떨리는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일부러 권사님을 깜짝 놀리기 위해, 그리고 치매 환자인데 그분이 설마 21년 만에 나를 알아보실까 궁금해 하면서 권사님이 계시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권사님은 요양원 복도에서 휘체어를 타고 이리저리 다니시고 계셨다. 나는 설마하면서 여보세요, 한국 분이시지요. 미국 요양원에 한국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데, 여기 한국 사람이 계시네요라고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무슨 일인가? 아니 이게 누구야, 이게 누구야, 정준모 목사 아니야. 아니 이게 꿈이냐 생시야하시면서 나와 나의 이름 석자를 정확히 대시면서 엉엉 우셨다. 내가 한국으로 귀국한 그 이후 늘 그리워하시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했다고 하셨다. 그동안 종종 당시 장로님과 그의 부인이 찾아오셔서 용돈도 주시고 기도도 해주었다고 하셨다.

 

나는 요양원 간호사의 허락을 받아 몇 시간 동안 권사님과 좋은 시간을 가졌다. 내가 여행중이라 많은 시간을 할애 할 수 없었지만 잊을 수 없는 몇 시간의 만남이었다. 옛날 함께 살던 아파트를 돌아보고, 간단한 식사 나누고 권사님이 평소에 좋아하시던 아이스크림도 사먹었다. 권사님은 한결같은 믿음으로 주일날 교회에서 장애인 차를 타고 예배들 드리러 교회당을 가신다고 하였다.

그런데 주일이 되면 제일 마음이 아픈 것은 하나님께 나올 때, 빈손 들고 오지마라는 고 한경직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나서 힘들다고 하셨다.

나는 권사님의 그 아름답고 소녀와 같은 순수한 믿음을 보시고 가까운 은행으로 갔다.  1불짜리 새 돈 100개를 준비해 드리면서 권사님 이 돈을 가지고 조금씩 헌금 하세요”. 그리고 권사님 건강과 외로움 극복 및 가족을 위해 기도드렸다.

그런데 권사님이 나의 손을 꼭 잡으면서 자신의 오직 유일한 핏줄인 외손자 요한을 찾아 달라고 하면서 눈시울을 적시셨다. 요한은 잘 자라서 LA에서 회계사를 한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대학교 진학 이후 거의 15년 가까이 소식이 끊어졌다고 매우 아쉬워하셨다.

요한, 요한 그 애는 나의 유일한 핏줄이고 예수님 다음 나의 소망인데,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난 이해가 잘 안되었다. 요한이 어머니께 전화 드렸더니 도무지 요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   권사님의 미국 동료들  ©정준모

 

미국 땅에서 영어 한마디 못하시면서 미국 사람들만 상주하는 요양원, 먹고 싶은 김치도 없고, 눈에만 떠오르는 된장국, 친구들과 오순도순 이야기 잔치를 나누던 것도 먼 추억 뿐이다. 대부분 한국 분들이 늙어 요양원에 들어오시면 꼭 같은 생활 모습이다.

미국에 사는 이민자들이 늙어 갈 곳은 대도시 일부를 제외하고는 미국 요양원에 가야만 한다. 애지중지 키워 놓았던 자식들 마저 늙은 부모를 아량곳 없이 요양원 보낸다. 아니 요양원으로 버린다. 이것이 미국의 실정이다.

아마 한국에도 같은 현상일 것이다. 부모를 거역하고 부모의 은혜를 잊아 버린 말세의 현상이다. 나도 어머니를 지하실 방에, 쪽방에 살게 하셨던 불효자식 중 한 사람이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장로님 내외분도 평생 미국에 사시다가 미국 요양원에 살기 불편하셔서 한국으로 돌아가 경남 창녕 지역에 지금도 살고 계신다. 장로님 내외분이 미국 생활을 접으시고 신토불이 한국 음식을 먹는 곳으로 옮기신 그 이유를 알것만 같다.

 

▲ 로키산 자락 아래 있는 미국 요양원   " 제너시스"  ©  뉴스파워 정준모



언젠가 내가 요양원에 갈 때쯤에는 나는 어디서 내 인생을 보낼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3명이 자식이 있지만 나도 특별한 경우가 아닐 수 도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치매 환자 박권사님이 21년만에 만났을 때는 부족한 나를 그리워하는 목사, 날마다 빠지지 않고 기도해 준 목사였기에 기억나게 하는 은혜를 하나님이 주셨다.

그런데 25년 만에 지난 주 만남은 눈물겨웠다, ”누구시더라, 누구시더라, 많이 본 분 받은데, 누구시더라고개를 갸우뚱하셨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점 치매가 심해지는 권사님의 손을 잡고 기도하면서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엣적에 함께 신앙 생활했던 장로님 내외분, 교우들이 생각났다.

하나님 권사님 살아계실 동안 유일한 핏줄인 요한를 만나게 해 주셔요기도 드렸다.

요양원 창가 밖에는 권사님의 기억력을 점점 덮어가듯이 함박눈이 소복소복 내리고 있었다. 권사님을 만나고 돌아가는 나의 발걸음 비록 하얗게 쌓인 눈길을 걷지만 나의 마음은 무거웠다. 때가 악하니 주님을 더욱 가까이 가야하겠다.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정준모 기사 입력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저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719.248.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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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2/21 [01:59]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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