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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2.11 [13:03]
"北 주민 의식, 이념보다 경제제일주의"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전 외교통상부장관), “북한의 변화는 불가역적”
 
김현성

 

 

참여정부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한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는 북한 주민의 의식은 이념에서 경제제일주의라고 바뀌었다고 밝혔다. 또한 북한의 변화는 불가역적 변화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지난 1일 오후 인천 영종도 하이얏트 호텔에서 열린 아시아경제공동체포럼에서 "한반도에서의 비핵화와 평화정착"이라는 제목의의 기조 연설에서 이같이 밝혔다. 윤 교수는 강연 원고 전문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 윤영관 박사(전 외교부장관, 서울대 명예교수)     ©뉴스파워

 

 

윤 교수는 북한의 내부에서는 지난 20여 년간 시장화의 과정을 통해 엄청난 변화가 진행되었다. 생산수단의 공식적인 사유화는 인정하지 않았기에 아직도 사회주의의 명목은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 북한경제는 이미 시장경제화가 되어버렸다.”고 밝혔다.

 

이어 “2009년 화폐개혁으로 시장과 시장 중심의 사회세력을 억누르려 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도는 완전한 실패가 되어버렸다. 김정은 위원장은 7년 전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오른 이후 그러한 시도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았다.”오히려 시장친화적인 정책으로 그에 대한 북한 주민의 인기도는 상승했다. 또한 북한경제는 이미 대외무역의존도가 48% 정도로 세계 평균수준인 58%에 근접하는 개방경제가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시장과 무역활동 없이는 지탱할 수 없는 경제체제가 되어버렸고, 갈수록 시장과 무역에 종사하는 사회세력들의 힘이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불가역적인 변화라고 밝힌 윤 교수는 그러한 변화를 통해 주민들의 의식은 이념이 아니라 경제제일주의(economy-first)로 바뀌어버렸다. 김정은 위원장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러한 내부환경의 변화 속에서 정권의 정통성과 지지도를 강화해야 되는 입장으로 내몰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시장활동의 주요사회세력과 대결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적극적으로 품어안기로 결정했다고 본다.”다시 말해 북한경제의 시장화와 개방화가 김정은 위원장의 정치적 전략적 선택에 결정적인 변수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 교수는 “2017년의 경제제재도 그러한 방향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나아가도록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작년 수준의 제재가 지속 되면 올해 말까지 북한경제는 5%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발전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제재가 풀려야 하고 국제사회에 북한이 진입해야 할 것임을 인식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려면 또한 핵을 포기해야 할 것이라는 것도 인식했을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그가 북한의 본격적인 국제사회 진입을 원하는 징후는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의 북미정상회담, 3차에 걸친 남북정상회담, 평양 정상회담 당시 15만 군중 앞에 문재인 대통령을 초대하여 남북간의 비핵화 합의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만든 것, 최초로 서울 방문을 결정한 것, 그리고 아마도 교황의 북한 초대, 이 모든 것들이 그러한 징후라고 본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판 등소평이 되기를 원하는가 아닌가,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라는 질문은 별로 의미 있는 질문이 아니다. 그러한 가능성이 1%만 되더라도 우리가 그 가능성을 100%로 높이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라며 그러한 노력의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앞에서 언급한 미북 간의 정치적 관계의 선행적인 개선조치입니다. 그리고 비핵화 진전에 따라 북한이 국제사회에 진입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중국처럼 대국의 정치지도자인 등소평도 1979년 미중 간의 외교관계 개설로 우호적인 대외환경이 마련된 후에야 내부적으로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외교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피폐하고,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북한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대외환경의 개선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 교수는 “‘신뢰하라, 그러나 검증하라 (Trust, but verify)’라는 레이건 대통령의 금언은 지금 북핵 문제를 다루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지침이라고 생각한다.”그러한 지침 아래 협상이 계속되고 비핵화의 진전이 이루어지면, 그에 따라 대북 경제제재도 풀리게 될 것이다. 그 경우 남북 경협도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고, 남북한 주민들 간에는 자유 왕래와 상업거래를 통해 서로를 끌어당기는 통합방향으로의 구심력도 강화될 것이라고전망했다.

 

윤 교수는 그렇게 되면 한반도에서의 항구적인 평화정착도 가능해질 것이다. 다시 한번 이는 막연한 낙관적 전망이 아니라, 치열하게 노력해서 만들어나가야 할 목표라며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비핵화 방법이며 제가 고대하는 평화로운 미래 한반도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2018 아시아경제공동체포럼

10.31-11.2 기조연설>

 

다음은 윤영관 교수의 강연 원고 전문.

 

한반도에서의 비핵화와 평화정착

 

2018년 제10차 아시아경제공동체포럼의 성공적인 개최를 축하하며, 이 귀한 자리에 저를 초대해주신 주최 측께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오늘과 내일 이틀에 걸친 회의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그리고 아시아 경제협력의 진전을 위한 활발한 토론과 논의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 생산적인 많은 아이디어와 제안들이 도출되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오늘의 회의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와 그 안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은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반도로서의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오랫동안 험난한 고초를 겪어 왔습니다. 주변 강대국들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으로 나뉘어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습니다. 몇몇 사례들을 들자면 1592년의 임진왜란, 1894년의 청일전쟁, 1904년의 로일전쟁, 1910년의 일제 식민지로의 병합, 1945년 분단 시작, 19506·25전쟁, 냉전기 남북대결,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치열해진 한반도에서의 미중경쟁 등, 이 모든 사건들이 바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과 주변 강대국들 간의 세력경쟁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정학적 딜레마의 극복은 바로 경제협력의 증진을 통해서 그것도 아시아에서의 다자적인 협력의 심화로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아시아경제공동체포럼의 기본 문제의식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즉 한국의 지정학적(geo-political) 딜레마를 지경학적(geo-economic) 접근으로 풀겠다는 것이고 이는 저도 그동안 고민해왔던 주제입니다. 오늘의 토론이 그러한 문제의식을 더욱 구체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저는 비핵화와 평화정착이라는 주제에 대해 간단하게 제 소견을 나누어볼까 합니다. 작년 이맘때만 하더라도 한반도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어느 전문가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확률이 50%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올해 초부터의 극적인 상황전개로 인해 더 이상 전쟁 걱정은 덜게 되었고 이제는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의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 논의하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긍정적인 상황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초 이래의 상황변화 이후, 저는 이런저런 자리에서 북핵 문제에 대해 강연을 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제가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과연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하는 전략적 결단을 내렸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엊그제만 하더라도 그런 질문을 어떤 분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답변했습니다. 결단을 내렸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즉 예스 앤 노우(yes and no)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그러한 질문은 사실 본질적인 질문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이유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북핵 문제는 북한과 미국, 또는 남북한 간의 상호적인 작용(mutual interaction)의 결과일 것이라는 점입니다. 종종 우리는 이점을 망각합니다. 그러면서 비핵화는 우리 쪽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상관없이 북한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거나 말거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은 현실적이 아닙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결단을 처음에는 내렸다가도 그 뒤에 미국이나 한국, 국제사회의 반응을 보고 마음을 바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반대로 처음에는 적당히 핵을 보유하면서 미국과 관계 개선하고 제재 해제를 노렸다가도 미국이나 한국, 국제사회의 대응에 따라서는 안 되겠다, 완전히 핵을 포기해야 하겠다고 마음을 바꿔 먹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할 것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하게끔 우리가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수많은 전문가나 정책결정자들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핵 없이도 안보를 유지하고 정치적, 경제적으로 번영할 수 있다고 믿게 되기 전에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김정은 위원장이 그렇게 믿게 만들기 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노력은 미약했습니다.

 

그 대신 북한을 압박하는 데만 주력해왔습니다. 즉 국제정치학 분야의 학술 용어를 원용하자면 억제(deterrence)’에만 온갖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것입니다. 강력한 미국의 국력을 바탕으로 소국인 북한을 압박하면 북한이 결국 비핵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제에 기반해서 북한을 압박해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협상 상대방을 어떻게 보는지, 즉 미국이나 한국의 의도와 행동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다는 것입니다. 로버트 저비스(Robert Jervis)라는 국제정치학의 대가가 최근 포린에페어즈(Foreign Affairs) 저널에서도 강조했듯이, 억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인식(perception)’의 문제인데 미국이 그동안 이 문제는 소홀히 했다는 것이고 이것이 지속되는 경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과거 미국 행정부의 유일한 예외는 클린턴 행정부였다고 봅니다. 여러분은 2000년 미국의 대북 포용의 시도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결국 지난 20여 년 동안 미국의 북핵 외교가 성공하지 못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북측에게 당신네가 먼저 전면적으로 비핵화를 해라, 그러면 그다음에 우리가 보상해주겠다는 방식의 대북정책을 채택해왔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우리가 잘 목도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기는커녕, 상황은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실질적인 핵보유국이 되었고 작년에는 아까 말했던 것처럼 한반도 전쟁위기까지 갔던 것입니다. 저는 지금의 시점이 냉철하게 그동안의 북핵 외교를 되돌아보고 기조를 바꿔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싱가포르회담 이후 지금도 그러한 과거의 전통적 북핵 외교의 기조가 관성처럼 적지 않게 지속되고 있다고 봅니다. 최근까지 이른바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이 미국의 주요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 거론되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이 그러한 리비아식 모델을 과연 받을까요? 받을 때까지 압박만 하면서 기다리다가 여기까지 온 것 아닌가요?

 

저는 대북 압박의 효용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압박은 압박대로 하되, 북측이 안보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가능한 조치들을 미국이 선제적으로 취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작성한 합의문의 1항이 북미관계의 평화적 관계로의 개선인데, 이는 북측의 안보 불안감 해소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대단히 획기적이고 의미 있는 대북접근법의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트럼프 대통령의 다른 정책들은 몰라도 그의 대북정책은 지지합니다.

 

그런데 6월의 싱가포르회담 이후 4개월여가 지나갔지만 비핵화 협상에 실질적이 진전이 없습니다. 저는 북한 측에도 그 책임이 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한 미북 관계의 질적인 개선을 위한 후속 조치가 결여되었기 때문인 측면도 상당히 작용했다고 봅니다. 종전선언이 그러한 의미에서 중요한 후속 조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전선언을 하면 그것이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갈 수밖에 없다면서 비판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주장의 뒤에는 미국과 한국이 그 과정에서 무력하게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봅니다. 저는 한국과 미국의 70년에 걸친 동맹관계가 그렇게 허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동맹과 주한미군을 유지하면서도 종전선언의 취지를 살리는 방법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적 효과보다 정치적 효과에 한정하는 선언이면 되겠지요. 저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한번 종전선언은 한미동맹이나 유엔사와 관계없다는 발언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확인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만일 정말로 종전선언의 위험이 우려된다면, 연락사무소 개설도 좋은 방안일 것입니다. 이는 미북 관계의 질적인 개선을 구체화하는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그 외에도 북한의 공연단이나 스포츠팀을 미국으로 초대하거나, 북한 관료나 학생들을 미국의 대학에 받아들여 시장경제에 대해 교육시키는 것도 미북 간의 정치적인 관계를 변화시키고 상호 간에 신뢰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더 나아가 북한의 안보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기여하는 중요한 조치들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다시 한번 문제는 기존의 전통적 대북접근법의 관성이 정책결정자들의 머릿속에 아직도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싱가포르회담 이후에 북한이 먼저 총체적인 핵 프로그램 신고부터 해야된다는 주장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금처럼 북미간의 상호신뢰가 대단히 낮은 상황에서 북한에게 모든 핵 프로그램의 리스트를 국제사회에 공개하라는 것은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는 받기 힘든 것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그동안 미국에서 운위되어오던 선제타격을 위한 목표물 리스트를 제출하라는 것 아니냐고 반발할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그래서 미국의 대북접근법이 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전환되기를 희망합니다. 현 상황에서 바람직한 대북 접근법을 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봅니다. 첫째로 북한의 안보 불안감을 해소시키기 위한,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이 핵 없이도 잘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도록 미국이 실질적으로 정치적 관계 개선조치들을 취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내용은 앞에서 설명한 여러 방안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그와 동시에 북한이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제안했던 영변 핵시설 폐기 문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협상을 진행시켜야 된다고 봅니다. 영변 핵시설은 이미 낙후된 별 쓸모없는 시설이라고 비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을 달리합니다.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경우 IAEA나 미국으로부터 사찰단이 들어가 사찰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와 물증들은 북한의 핵 개발 진전의 정도를 파악하기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할 것입니다. 또한 영변에는 수소폭탄의 원료인 삼중수소 분리시설이 있고 우라늄농축 시설의 일부도 거기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영변에서 근무하는 핵 과학자들의 직업전환 문제 등도 제기하여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영변 핵시설 폐기와 관련하여 북한에 제공할 보상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는 미북간에 협상을 통해 결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영변 핵시설 폐기는 받을 가치가 없다고 애초부터 거부하는 것, 그러면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에만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는 경우, 아마도 그 신고 내용이 맞냐 틀리냐의 논쟁이 곧바로 시작될 것이고, 실질적인 비핵화의 진전은 없이 교착상태에 빠져들어 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저는 영변 핵시설 폐기 제안을 받는 경우 이는 완전한 비핵화 프로세스의 의미 있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비핵화의 범위를 차차 넓혀나가고, 그에 대한 보상을 북한에 제공하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미북 간에는 서서히 상호신뢰가 쌓일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앞에서 언급한 미국의 대북 정치적 포용 조치들이 추가적으로 취해진다면, 비핵화의 동력은 더욱 강해지고 진전의 속도가 붙게 될 것입니다. 이는 오로지 미국의 비핵화 외교가 지금보다 훨씬 현실적(realistic)이고 실용적(pragmatic)이 될 때에 가능할 것입니다.

 

셋째로 그러한 과정을 거쳐 가면서 미국과 국제사회는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을 향해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레버리지인 경제제재의 수단을 적절하게 구사하여 북한을 압박도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압박과 함께,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는 정치적 포용과 긍정적 인센티브를 동시에 적절하게 배합하여 구사해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제까지 말씀드린 내용과 관련하여 제가 강의를 할 때 자주 받는 또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판 등소평(Deng Xiaoping)이 되기를 원하고 그 방향으로 갈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질문에 대해서도 솔직히 잘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누가 김정은 위원장의 속마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저는 다시 한번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그런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1%만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5%, 10%, 50%, 100%로 늘려나갈 생각을 해야지,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면서 가만히 손 놓고 방관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실적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남의 일처럼 바라만 볼일이 아니라, 그 가능성이 1%만 되더라도 그것을 붙잡고 노력하여 새로운 발전된 상황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결코 낙관론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비관론자도 아닙니다. 다만 현실과 그 현실의 변화를 정확히 보고, 그 현실이 제공하는 가능성의 영역 안에서 할 수 있는 일, 해야 될 일들을 찾아내서 이행하고 그렇게 해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의 길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자는 것뿐입니다.

 

사실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판 등소평이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냐 아니냐라는 질문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의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김정은 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 핵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 반대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34세 된 젊은 지도자, 아마도 앞으로 수십년 간을 북한을 통치해나가기를 원하는 김정은 위원장이, 그리고 북한의 국내 상황과 국제적인 상황이 엄청나게 변화해버린 오늘날의 상황을 도외시하고, 구세대인 김정일 위원장의 전략을 그대로 답습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되지는 않으시는지요?

 

북한의 내부에서는 지난 20여 년간 시장화의 과정을 통해 엄청난 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생산수단의 공식적인 사유화는 인정하지 않았기에 아직도 사회주의의 명목은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 북한경제는 이미 시장경제화가 되어버렸습니다. 2009년 화폐개혁으로 시장과 시장 중심의 사회세력을 억누르려 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도는 완전한 실패가 되어버렸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7년 전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오른 이후 그러한 시도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장친화적인 정책으로 그에 대한 북한 주민의 인기도는 상승했습니다. 또한 북한경제는 이미 대외무역의존도가 48% 정도로 세계 평균수준인 58%에 근접하는 개방경제가 되어버렸습니다. 다시 말해 시장과 무역활동 없이는 지탱할 수 없는 경제체제가 되어버렸고, 갈수록 시장과 무역에 종사하는 사회세력들의 힘이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불가역적인 변화입니다. 그러한 변화를 통해 주민들의 의식은 이념이 아니라 경제제일주의(economy-first)로 바뀌어버렸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러한 내부환경의 변화 속에서 정권의 정통성과 지지도를 강화해야 되는 입장으로 내몰린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시장활동의 주요사회세력과 대결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적극적으로 품어안기로 결정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북한경제의 시장화와 개방화가 김정은 위원장의 정치적 전략적 선택에 결정적인 변수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2017년의 경제제재도 그러한 방향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나아가도록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작년 수준의 제재가 지속 되면 올해 말까지 북한경제는 5%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발전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제재가 풀려야 하고 국제사회에 북한이 진입해야 할 것임을 인식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또한 핵을 포기해야 할 것이라는 것도 인식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가 북한의 본격적인 국제사회 진입을 원하는 징후는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의 북미정상회담, 3차에 걸친 남북정상회담, 평양 정상회담 당시 15만 군중 앞에 문재인 대통령을 초대하여 남북간의 비핵화 합의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만든 것, 최초로 서울 방문을 결정한 것, 그리고 아마도 교황의 북한 초대, 이 모든 것들이 그러한 징후라고 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판 등소평이 되기를 원하는가 아닌가,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라는 질문은 별로 의미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그러한 가능성이 1%만 되더라도 우리가 그 가능성을 100%로 높이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의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앞에서 언급한 미북 간의 정치적 관계의 선행적인 개선조치입니다. 그리고 비핵화 진전에 따라 북한이 국제사회에 진입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국처럼 대국의 정치지도자인 등소평도 1979년 미중 간의 외교관계 개설로 우호적인 대외환경이 마련된 후에야 내부적으로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피폐하고,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북한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대외환경의 개선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신뢰하라, 그러나 검증하라 (Trust, but verify)”라는 레이건 대통령의 금언은 지금 북핵 문제를 다루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지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지침 아래 협상이 계속되고 비핵화의 진전이 이루어지면, 그에 따라 대북 경제제재도 풀리게 될 것입니다. 그 경우 남북 경협도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고, 남북한 주민들 간에는 자유 왕래와 상업거래를 통해 서로를 끌어당기는 통합방향으로의 구심력도 강화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에서의 항구적인 평화정착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이는 막연한 낙관적 전망이 아니라, 치열하게 노력해서 만들어나가야 할 목표입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비핵화 방법이며 제가 고대하는 평화로운 미래 한반도의 모습입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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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02 [14:42]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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