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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2.12 [09:03]
"바울 연구의 새관점에서 유익 찾아야"
캐나다 밴쿠버 트리니티웨스턴대 신대원 장동신 교수(성서학) 파워인터뷰
 
김현성
▲ 캐나다 밴쿠버 트리니티웨스턴대 신대원 장동신 교수     © 뉴스파워

  

샌더스가 촉발한 바울신학의 새 관점 논쟁, 여전히 신약학의 주요 논점

 

캐나다 서부 밴쿠버에 위치한 트리니티웨스턴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성서학 교수로 사역하고 있는 장동신 박사가 10월 말 한국을 방문해 부산 대청교회에서 열린 영남신약신학회에 참석해 주제발표를 하는 등 일정을 갖고 있다.

 

뉴스파워는 장동신 교수를 만나 그의 전공과 관련된 내용의 인터뷰를 가졌다. 본 보는 장동신 교수의 <비느하스, 사독의 자손, 멜기세덱>의 출판을 보도한 바 있다.

 

이 책은 장교수의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 박사 논문을 개정한 것으로, 영국 블룸스베리 티엔티 클락 출판사(Bloomsbury T&T Clark)에서 2성전기 연구서 시리즈90번째 단행본으로 선정되어 2016년도에 출판된 책이다. (Bloomsbury는 일반인들에게는 헤리포터출판사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신약 성경과 신구약 중간기에서 제사장직이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였는지를 연구하였고, 특별히 제사장에 관한 구약전승들을 서로 다른 유대교 공동체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했는지에 주목하여 저술되었다.

 

초대 교회 당시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제사장적 기독론(Priestly Christology)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배경을 밝힘으로서 신약성경을 보다 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이번 방문 일정과 목적은 무엇인가?

일차적인 방문목적은 제가 재직하는 학교의 홍보다. 우리 학교는 캐나다 최초로 한국어로 공부하는 종합 대학교 수준의 학위과정으로서 교육부 인정 및 북미 최고 학점 승인 기관인 ATS 인준 학위과정을 개설하였다. 캐나다 최고수준의 사립대학교인 트리니티웨스턴대학교 액츠신학대학원이 운영하는 글로벌리더십 전공 MA, M.Div 학위과정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노스웨스트 신학대학원의 ATS 인준 목회학박사과정도 개설되어 있다.

 

이러한 과정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홍보하려하는 것이다, 수준 높은 북미의 신학교육과 연계하여 열심있는 한국의 교육기관들과의 협력방안도 살펴보고 있다. 또한 방문기간 중에 영남신약신학회 발제도 예정되어 있다. 제가 영국에서 연구한 분야나, 캐나다에서 강의하는 있는 내용이 한국교회의 전통적 신앙을 더욱 강화하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성서학을 전공하셨고, 신약신학을 주로 강의하고 계시는데 현재 개혁주의 입장에서 신약신학의 논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1970년대 샌더스(E. P. Sanders)<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출간으로 촉발되고, 이후, (James Dunn)과 라이트(N.T. Wright) 등이 이끌어 온 바울의 유대교 이해에 관한 새 관점논쟁이 여전히 신약 학계의 중요한 논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그간 한국 교계에서는 새 관점에 무관심하거나 막연히 비판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으나, 지난 10여 년간 새 관점 학파 학자들의 책들이 다수 번역 출간 되면서, 새 관점 이해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고 본다. 던이나 라이트의 지도로 학위를 받으신 분들도 여러 분이 계시다고 알고 있다.

 

새 관점 논쟁의 출발점은 과연 사도 바울이 유대교를 행위-구원 종교라고 여겼겠느냐 하는 점이다. 루터가 바울을 이해했던 기본 틀이, 유대교의 행위/율법 구원관에 저항한 기독교의 은혜/믿음 구원관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예수님 당시 유대교를 반영하는 탄나임 문헌들(주후 130-200년 사이에 기록된 유대 문헌들)의 연구를 통해, 유대교가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는 율법주의 종교가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였다.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종교, 율법을 지키는 것은 연약 백성을 유지하는 목적으로 이를 언약적 신율주의 (Covenantal nomism)라고 부른다.

 

이를 바탕으로 던과 라이트 같은 사람들은 바울도 이같은 유대교의 특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 서신에 나타난 율법과 믿음의 논의를 단순히 행위 구원론과 믿음 구원론의 대결구도로 이해한 개혁주의자들의 바울 이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했다. 이로 인해, 새 관점은 반개혁주의적인 관점으로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던이나 라이트 같은 사람들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율법의 행위에 대한 이야기가 모든 율법 규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논리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정체성을 취득-유지하는 지표로, 특히 할례와 정결법, 특히 음식에 관련되어 사용되었다고 주장했었다.

 

김세윤 교수나 카슨(D. A. Carson) 같은 분들은 오랫동안 새 관점의 해석적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바울 신학에 여전히 전통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해석적 여지가 있음을 피력해 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양측이 오랜 논쟁을 통해, 상호간의 바울 이해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제와 돌아보면, 새 관점과 전통적 관점의 논쟁은 상호 배타적 논쟁에서 보다 건설적인 또는 상호보완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복음주의적이고 개혁신학적 목회자로서, 바울신학 특히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 관심이 있는 목회자라면, 새 관점을 막연히 배타적인 관점으로 보기보다는, 새 관점과 전통적 관점의 바울 이해에 대한 논의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들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영국에서 공부하셨는데, 지금은 캐나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연구할 때와 실제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입장은 어떻게 다른가?

▲ 캐나다 밴쿠버 트리니티웨스턴대 신대원 장동신 교수     © 뉴스파워

 

 

좋은 질문이다. 학교 사역을 시작하고 지난 2년간 매우 바쁜 시간을 지냈다. 연구를 많이 못했다는 핑계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과목들을 준비하는 부담이 크다. 당장 이번 학기에도 새로 가르치는 과목이 있었고, 다음 학기에는 새로 가르치게 된 과목이 있다.

 

앞선 교수님들이 처음에 몇 년 동안은 새로운 과목 준비하는데, 시간이 적잖이 걸린다는 조언을 해 주신 것이 드나마 힘이 된다. 다만, 연구할 때에는, 뭔가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그것을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절차를 얼마나 잘 구조화해서 제시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부담감도 있다.

 

학생들을 만나서 수업을 할 때에는, 내가 준비한 것들이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도 의미 있는 내용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된다. 특별히 문학석사 과정은 입학 요건에 딱히 신학적인 배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사이에 성경 말씀과 신학에 대한 이해도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성경 해석학과 주해 과목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한 과목에 두 개의 수업계획서가 필요한가?’ 라는 생각이 해보기도 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가르치려는 내용이 학생들에게도 과연 의미 있는 내용이 될 것인가를 더 생각하게 된다.

 

학문에 대한 꾸준함과 새로움의 조화 배워야

 

한국과 북미주 신학교와 교수들이 신약학 혹은 신학을 접근하는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들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교수님이 보실 때는 어떠한가?

 

개인적으로는 제가 아직 한국과 북미주 교수들의 접근법 차이를 말씀드릴 만큼 역량이나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몇 년간 북미주에 소재한, 신학교에서 일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한마디로 꾸준함과 새로움의 조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역하는 래리 퍼킨스 교수님과 캔트 앤더슨 교수님 두 분의 사역 태도를 설명하는 도움이 될 것 같다퍼킨스 교수님 같은 분은 평생을 학교의 교수로, 교무처장으로 총장으로 섬기고 은퇴하셨는데, 은퇴하시고도 변함없이 연구하시는 모습은 큰 도전이 된다. 그분은 Greek for Breakfast라는, 자신의 샐러리에 포함도 되지 않는, 헬라어 강독-석의 수업을 수십 년동안 진행하시고, 그 결과물들이 석의 주석으로 출판되는 것을 보았다.

 

개인 블로그에는 아직도 왕왕 헬라어 단어를 연구하고, 목회와 리더십이라는 관점에서 적용될 만한 부분들을 고려하여 작성한 에세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리고 여전히 북미성서학회(SBL), 70인경 분과에서 매년 새로운 논문을 발표하고 계신다.

 

벌써 은퇴하신 지가 몇 년이 지났는데, 변함없는 성실함으로 연구하시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또 현직 총장님이신 켄트 앤더슨(Kent Anderson)교수님을 통해서는 늘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고, 그것을 통해 자신과 학교를 발전시켜 나가는 모습을 본다.

 

최근 북미주에는 새로운 신학 교육 모델로 CBTE (Competency Based Theological Education, 역량/과제 기반 신학 교육)모델이 부상하고 있는데, NBS (Northwest Baptist Seminary)가 캐나다 서부에 있는 작은 신학대학원이긴 하지만, CBTE 분야의 선도자로 미국-캐나다 신학교들을 이끌고 있다.

 

이같은 도전 정신은 그분의 수업에도 드러나는데, 경험이 많은 과목을 강의하더라도, 한 가지 형태로 머물러 있으려 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과 접근이 시도되는 것을 본다. 지역 교회 목회자들과도 협동하여 강의를 진행하시기도 하는데, 그 창의적인 다양성에 놀란다.

 

물론 총장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시면서도, 작년에 Baker Academic에서 <통전적 설교> (Integrative Preaching)이라는 설교학 책도 출간했다. 총장님의 책은 한국교회에도 번역 소개되고 있다.

 

세상은 교회의 신앙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할 것, 믿음의 논리 가져야

 

요즘처럼 교회와 복음이 어려웠던 적이 없다. 신학자로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는가?

 

맞다. 시대가 점점 더 복음과 교회를 등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한국 교회가 받는 어려움들은 상당 부분 교회 내의 타락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물질주의, 목회자의 도덕성 해이 등이 이슈화 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들은 사회 시스템이 발달 되면 상당 부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긴 하다. 캐나다 교회가 상대적으로 그 같은 문제가 덜 일어나는 이유는 캐나다의 신앙인들과 목회자들이 원래 더 도덕적이고 원래 더 깨끗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시스템, 예를 들어 세무 보고 시스템 등이 그런 문제를 유발할 여지를 거의 허락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다만, 제가 염려하는 부분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시대와 사고가 더 복음과 교회를 등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 한국교회가 미국-캐나다 교회를 10-20년 차이로 뒤 따라가고 있다는 말이 있었다. 그렇다고 본다면, 한국교회가 앞으로 만나게 될 더 큰 도전은 세상이 더 인본주의화 되면서, 기독교의 가치와 윤리를 비도덕적인 것으로 배척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한국 사회가 교회를 향해서, “너희가 너희 자신이 가르친 대로 살지 못했다라고 비판했다면, 이제 곧 너희의 가르침 자체가 잘못 되었다라고 비판하게 될 날이 곧 오게 될 것이다.

 

지난해 여름 캐나다에서는 복음주의권 비영리 단체들이 낙태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정부의 여름 인턴십 펀딩에서 일체 제외 되었다. 지난 가을 제가 일하는 트리니티 웨스턴 대학이 준비하던 법학대학원 설립이 BC주와 온타리오주 변호사 협회에 의해 무산되었다. 입학생들이 결혼과 성관계에 대한 전통적 가치를 인정하는 공동체 서약에 서명해야만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 이면에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소수자 차별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BC주에서는 석사과정을 마치면 대학원 졸업 취업 비자를 받을 수 있는데, 신학 전공자들은 차별적으로 그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2016년에는 캐나다에 안락사가 합법화 되었고, 이번 달 (20181017)에는 여가용 마리화나의 재배와 유통, 소비가 합법화 되었다. 인간의 자율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와 전통적 기독교 가치관에 대한 반감이 빠르게 퍼지고, 그것이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로 드러나고 있다. 이것이 비단 캐나다 이야기 뿐만은 아니다.

 

사실, 초대교회를 생각해 보면, 지금 세상이 교회를 등지는 이같은 현상이 역사에 없었던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런 어려움 앞에서, 변함없이 신앙을 지켜가는 것은 어렵지만 의미 있는 일이다.

 

제가 걱정하는 바는, 이것이 교회와 사회 사이의 문제에서 이제 교회와 교회의 사이의 문제로 변형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들에 있어서, 진보적인 성향의 교단들과 보수적-복음적 성향의 교단들이 갖는 스탠스에 차이가 있다.

 

결국 사회가 교회 전체를 등을 돌리는 그림이 아니라, 사회와 일부 교회가 다른 일부 교회에 맞서는 그림이 된다. “교회가 말하는 윤리 기준은 잘못되었다라는 비판에서 다른 교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너희는 그렇게 생각하니 너희가 잘못되었다라는 비판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럴 때일 수록, 한국 교회와 성도들의 올바른 성경 이해가 중요하다고 하겠다.

 

앞서 말씀드린 이슈들과 관련된 성경 말씀 들을 보면서, 사회적-문화적으로 변하는 요소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변화 속에서도 시대를 초월해서 변함없이 보여주는 원리는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작업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특히, 성경 말씀을 근거로 한 복음주의 교회의 내러티브에 치밀한 논리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다른 입장을 보이는 신학 시류와의 대화에서 논리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어야 앞으로 복음주의 교회들이 복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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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30 [14:5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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